I Became The Mother Of the Male Lead Who Lives With An Ad**terous Man RAW novel - chapter (113)
불륜남과 사는 남주 엄마가 되었다 (113)화(113/151)
“뭐……! 하, 이제 온갖 것들이 다 나서서 설치는구나! 너도나도 황제에게 검을 들이대다니, 황제의 권위가 땅바닥에 떨어져 구르고 있어!”
시가르는 어이가 없다는 듯 탄식했고 시안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잘 알고 계시는군요. 지금 아이사 제국의 위신과 황제의 권위가 겨우 이 정도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이 사태를 만든 장본인이고요.”
“웃기는 소리 마라! 네놈 때문이 아니냐! 네놈이 아이사의 이름이며 뛰어난 능력 따위를 가졌다고 나를 무시했기에 일이 이렇게 된 것이란 말이다!”
“내가 당신을 무시했다고? 웃기는 소리.”
시안의 금빛 눈동자가 살의를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아트레이유가 그에게서 등을 돌리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당신이 돌리에게 상처 주고 레이첼에게 허튼수작만 부리지 않았어도, 나는 여기 모인 누구보다 강력하고 충성스러운 신하가 되었을 거다.”
“어, 어느 안전이라고 감히 말을 낮추느냐!”
“처음도 아닌데, 새삼스레 그딴 것이 신경 쓰이는 모양이지.”
“큭!”
검을 들고 서 있던 아트레이유가 몸을 한 차례 부르르 떨었다.
“어우, 무서워. 숙부 화내면 무섭다더니, 진짜였네?”
태평한 목소리에 시가르가 이를 갈았다.
“아트레이유 아이사. 당장 내게 겨눈 검을 내려라. 어디서 검을 배웠는지는 모르겠지만 감히 네 아비이자 제국의 황제인 내게 검을 들이대다니. 이건 뺨 몇 대 정도로 끝날 일이 아니야.”
“그러면 겁먹을 줄 알았죠? 싫습니다.”
“당장 검을 내리란 말이다! 너는 황태자가 아니냐! 언젠가 내게서 황위를 물려받을 네가 내게 검을 들이댈 이유가 없어!”
“이유 있는데요.”
그것도 모르냐는 얼굴로 고개를 기울인 아트레이유가 말했다.
“황제 폐하께서 제게 가르쳐 주셨죠. 잘못을 저지른 자에게 자비를 베풀지 말라고. 그동안 황제 폐하한테 얻어맞은 게 한두 번이 아니라서요. 되돌려 드리려 합니다.”
시가르가 줄곧 아트레이유에게 가르쳐 왔던 가치가 부메랑이 되어 그의 목에 검날을 드리우게 한 것이다.
자신의 가르침이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시가르는 목에 핏대를 세웠다.
“나는 예외다! 나는 네 아비이고 황제가 아니냐!”
“저는 당신 아들이고 곧 황제가 될 사람인데요. 예외가 어디 있습니까.”
“이익!”
“아직 하나 더 있습니다. 제가 이러는 이유요.”
“됐다! 머저리 같은 이유 따위 궁금하지 않아!”
아트레이유는 웃었다. 언제나처럼 배시시 흘리는 웃음이 아니었다. 황실의 상징인 금빛 눈동자가 번뜩였다.
“저는 훌륭한 황제가 되고 싶거든요.”
단검을 감춘 채 아트레이유를 바라보던 시안이 움찔 굳어졌다.
‘나 때문이라고.’
이런 행동을 바라고 한 말이 아니었는데. 괜한 부탁을 했던 걸까 싶어 속이 쓰렸다.
시가르는 웃음인지 분노인지 모를 것을 쏟아내며 미친 사람처럼 소리쳤다.
“하하하! 그래, 얼마든 해라! 할 수 있다면 말이지! 여봐라! 당장 반란을 주모한 황태자를 감옥에 처넣어라!”
대회의장 밖에 어정쩡하게 서 있던 기사들이 이번에는 검과 창을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 아트레이유는 휘지우스나 시안만큼 위협적인 상대가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아트레이유는 겁을 먹기는커녕 어깨를 으쓱했다.
“안녕, 황실 기사단 여러분. 아직은 아빠가 황제니까 명령을 따르는 건 상관없는데, 그러려면 우선 우리 숙부를 이겨야 해.”
“……뭐, 뭐라고?”
“숙부. 나 안 다치게 해줄 거지? 필요할 때 무엇이든 하겠다고 했잖아.”
“……알겠습니다.”
아트레이유에게 훌륭한 황제가 되어달라고 부탁하며 했던 말이었다.
그걸 이렇게 이용할 줄은.
시안이 천천히 걸어 나가 기사단과 아트레이유 사이를 막아섰다. 단검을 감춘 채였지만 느긋하고 여유로운 동작에 기사단이 몸을 굳혔다.
시가르가 침을 튀기며 소리쳤다.
“젠장! 겨우 한 놈 아니냐! 저놈이 대체 무엇이기에 황실의 기사단이라는 자들이 하나같이 이딴 꼴을 보이는 거야!”
내내 팔짱을 끼고 지켜보던 스테판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봐요, 황제 폐하.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되십니까?”
“뭐라고?”
“너 지금 작살난 거라고. 예니스, 귀족들, 심지어 당신을 모셔야 할 기사단에게까지. 원래는 목숨을 바쳐 당신을 지켜야 할 자들이, 다 당신 명령을 외면하고 있잖아.”
“뭐……! 말도 안 돼! 난 황제라고!”
“그냥 순순히 황위 내려놓지? 지금 여기 너 지켜줄 사람 하나도 없는 거 같은데.”
아트레이유가 고개를 끄덕였다.
“순순히 황위 포기 각서를 쓰고 황제의 관을 내놓으면 목숨은 살려드리겠습니다. 아버지니까 이 정도 배려는 해드릴 수 있지요, 제가.”
“웃기는 소리!”
“싫으시면 할 수 없죠. 죽이고 빼앗는 수밖에. 아버지가 할아버지께 했던 것처럼!”
기합을 내지르듯 말끝에 힘을 준 아트레이유가 검을 높이 들어 올렸다. 그레이엄이 매일 연무장에서 연습하던 위에서 아래로 곧게 내리치는 검세다.
후웅!
검이 거친 소리를 내며 허공을 갈랐고, 시가르는 눈을 질끈 감은 채 머리에 썼던 관을 바닥에 내팽개쳤다.
탱그랑!
관이 바닥에 떨어지고 곧이어 아트레이유가 휘두른 검이 시가르의 발치를 때렸다.
“…….”
대회의장이 고요해졌다.
관을 던진 시가르도, 관을 요구한 아트레이유도, 귀족과 기사들도 전부 말이 없었다.
레이첼이 자리에서 일어나 시가르에게 다가갔다. 그녀가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구두 굽이 대리석 바닥에 부딪혀 또각또각 규칙적인 소리를 냈다.
팔락, 시가르의 눈앞에 종이를 펼쳐 내민 레이첼이 침묵을 가르고 목소리를 냈다.
“황위 포기 각서입니다. 아까 예니스 교에서 요구할 때 서명하셨다면 이런 꼴을 보지는 않았을 텐데, 안타깝네요.”
공손한 말투 뒤에 숨은 비웃음을 깨달은 시가르가 벌게진 눈으로 이를 갈았으나 이미 물러설 방법은 없었다.
시가르는 레이첼이 내민 황위 포기 각서에 서명했다.
* * *
왜 죽기를 선택하지 않았냐는 시안의 물음에 시가르는 살아 있어야 복수할 게 아니냐고 답했다. 시가르다운 이유였다.
물론 시안은 복수 따위를 허용할 생각이 없었지만.
아트레이유는 황실 기사단에게 시가르를 지하 감옥에 가두라 명했다.
망설이던 황실 기사단은 시안이 휘지우스에게 단검을 돌려주고 아트레이유에게 깍듯이 예를 갖추는 모습을 확인하고서야 시가르를 데리고 사라졌다.
아트레이유가 삐딱한 자세로 황제의 의자에 앉았다.
“별거 아니었네.”
손가락에 황제의 관을 끼고 장난감처럼 빙글빙글 돌리던 아이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겨우 이 정도로 끝날 걸 그동안 왜 그렇게 맞고 살았을까?”
“오늘을 만들기 위해 쌓아둔 날들이라고 생각하십시오.”
“숙부가 그렇게 말하면 그런 거겠지.”
입을 삐딱하게 내민 채로 황제의 관을 바라보던 아트레이유가 흐음, 소리를 냈다.
“뭐, 예쁘긴 하네.”
“황제의 관이니까요. 제국이 만들어질 당시 제국에서 가장 솜씨 좋은 장인이 일 년을 꼬박 몰두해서 만들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심드렁하게 대답한 아트레이유가 머리에 관을 얹었다. 커다란 관은 아트레이유의 머리를 타고 쑥 내려가 귀에 걸렸다. 번쩍이는 관이 아이의 눈앞에서 덜렁거렸다.
곁에서 지켜보던 스테판이 참지 못하고 큭, 웃음을 터트렸고 아트레이유도 덩달아 헤실헤실 웃었다.
“완전 크잖아!”
시안은 아트레이유의 귀여운 투정에도 미소 하나 흘리지 않고 사무적으로 답했다.
“즉위식 전까지 새로운 관을 만들고 그 관은 폐하께서 성인식 이후에 쓰실 수 있도록 따로 보관하겠습니다.”
“오오! 숙부가 나 지금 폐하라고 불렀어! 신기한데?”
“앞으로는 쭉 폐하라 불러드릴 겁니다.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폐하께서 원하신다면 저는 언제든, 기꺼이 폐하의 수족이 되어드리겠다고요.”
아트레이유는 좋다고도, 알았다고도 대답하지 않았다. 아이는 귀에 걸렸던 관을 빼 손에 들면서 말을 돌렸다.
“숙부, 나 부탁이 있어.”
“하명하십시오.”
“좀 들어주기 어려운 부탁일 수도 있어.”
“제 약혼자 레이첼과 딸 돌리의 목숨을 위협하는 부탁이 아니라면 무엇이든 들어드리겠습니다.”
시안의 말에 아트레이유가 의자 팔걸이에 기댔던 몸을 일으키며 소리쳤다.
“와, 와! 아기 공녀 둘리랑 둘리 엄마 레이첼을 위험하게 하는 부탁 같은 거 나도 할 생각 없거든! 이 숙부 무서운 사람일세!”
팔짱을 끼고 있던 스테판이 덧붙이듯 목소리를 높였다.
“야, 시안. 나는? 내 목숨을 위협하는 부탁은 해도 된다는 거냐?”
“…….”
시안은 어떤 말에도 대꾸하지 않고 조용히 아트레이유의 부탁을 기다렸다. 그의 모습이 무척 진지해서 아트레이유는 괜히 헛기침을 했다.
“어, 그. 부탁 말이야.”
“무엇입니까.”
“새 관, 만들지 말라고.”
“……만들지 말라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무슨 말씀이냐면.”
그렇게 말한 아트레이유가 땅바닥에 관을 내팽개쳤다. 아까 시가르가 했던 것과 똑같은 모습으로.
아까부터 구경꾼처럼 멍하니 사태를 지켜보던 귀족들의 눈이 모두 크게 뜨였다. 시안과 스테판, 레이첼 역시 마찬가지였다.
“폐하. 지금 이게 무슨?”
“나 황제 안 할 거거든. 그러니까 관 만들 필요 없어.”
“폐하!”
시안이 미간을 찌푸리며 목소리를 높였고 아트레이유가 키득키득 웃었다.
“우와. 우리 숙부 이렇게 당황하는 거 처음 보네.”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기껏 시가르에게서 빼앗은 황위를 하루도 되지 않아 내려놓으시겠다니요.”
“숙부가 나한테 부탁했잖아. 훌륭한 황제가 되라며. 이게 내가 생각한 훌륭한 황제가 되는 방법이야.”
“…….”
“황위에는 관심도 없으면서 억지로 제국을 다스리려고 애쓰는 것보다, 나보다 제국을 잘 다스려 줄 사람한테 황위를 넘기는 게 훌륭한 황제가 할 일 아니겠어?”
“폐하.”
“예를 들면 숙부 같은 사람한테.”
주변이 술렁였다.
확실히. 시안은 선황 제지우스가 살아 있을 때부터 훌륭한 차기 황제가 될 거라며 사람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던 사람이었다.
아이사라는 이름과 황실의 핏줄을 의미하는 금빛 눈동자를 타고났으며 현명하고 용맹하고 아름다웠다.
시안이라면 누구보다, 어린 아트레이유나 시가르 따위보다 제국을 공정하고 안전하고 합리적으로 통치할 것이다.
귀족들의 눈이 반짝였고 시안은 침묵했다.
아트레이유가 커다란 의자에 반쯤 눕듯 몸을 기댔다.
“숙부한테는 선택권이 없어. 나 지금 황제거든. 황제는 뭐든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다고. 나는 폭군 아트레이유니까!”
딱딱하게 굳어졌던 시안의 몸이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그의 눈이 조금 떨어진 곳에 선 레이첼을 향했다.
‘뭐지? 지금 나한테 허락을 구하시는 거야?’
생각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슬쩍, 레이첼이 보일 듯 말듯 고개를 끄덕이자 시안이 아트레이유를 향해 예를 갖췄다.
“……폐하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아싸아아아! 나 이제 자유다!”
아트레이유가 만세 하며 자리에서 팔짝 뛰었다.
“아아, 내가 죽기 전에 이런 광경을 보게 될 줄은……!”
오래전부터 시안이 황제가 되었어야 한다고 생각하던 다이어 후작이 바닥에 엎드려 눈물을 흘렸고, 그 외의 다른 귀족들은 경외감 어린 눈으로 시안을 바라보았다.
몸을 일으켜 곧고 바르게 선 시안에게서 빛이 쏟아져 나오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