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Mother Of the Male Lead Who Lives With An Ad**terous Man RAW novel - chapter (115)
불륜남과 사는 남주 엄마가 되었다 (115)화(115/151)
똑똑똑―
규칙적인 간격으로 문을 두드린 시안이 깊게 숨을 내쉬었다.
“들어가겠습니다.”
기사들이 문을 열어주자 시안이 안으로 들어갔다.
아트레이유는 자신의 방에 놓인 동그란 탁자 앞에 바른 자세로 앉아 있었다.
“어서 와, 숙……. 아니.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아직 대관식을 치르지 않았으니 전처럼 숙부라 부르셔도 됩니다.”
“에이, 식만 안 치렀지 이미 황제가 된 거나 다름없잖아. 황태후 할머니도 그렇게 생각하실걸?”
정확한 예상이었다.
궁에 남은 유일한 아이사가 벨윈더이기에 임시로 그녀가 황제 대리가 되긴 했지만 실제로 일을 처리하는 건 시안이었다.
벨윈더는 함부로 서류나 인장에 손을 대지 않았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사교계를 돌보는 것이지 국정을 돌보는 것이 아니라며 선을 그은 것이다.
시안은 아트레이유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아이의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그의 눈동자와 목소리가 깊었다.
“왜 그러셨습니까.”
“뭘?”
“반란 말입니다. 분명 훌륭한 황제가 되어 달라고 부탁드리지 않았습니까.”
아트레이유가 킬킬거렸다.
“다 들었으면서 왜 또 물어? 이게 훌륭한 황제가 해야 할 일이라고.”
“그냥 가만히 계셨으면 제가 황제의 자리에 앉혀 드렸을 겁니다. 왜 굳이 나서서.”
“왜? 내 덕분에 더 깔끔해졌잖아.”
맞다. 아트레이유가 시가르를 몰아내고 황위를 깨끗하게 포기한 덕에 상황이 단순해졌다.
시안이 반란을 일으켜서 아트레이유를 황제로 만든 다음 아이가 황위를 포기했다면 일이 복잡했을 것이다.
더불어 아트레이유 덕분에 시안은 반란을 저지르지 않고 황위에 앉을 수 있게 되었고.
알고 있다. 알면서도 아트레이유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말없이 침묵을 지키던 시안은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입을 열고 소리를 내뱉었다.
“……아트레이유.”
“……어? 숙부, 지금 뭐라고 했어? 설마, 지금 나 부른 거야?”
시안은 아트레이유가 태어난 직후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아이를 이름으로 직접 부른 적이 없었다. 늘 말을 높이며 깍듯하게 호칭을 불러왔는데.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짧은 한 마디에 아트레이유가 부르르 떨었다.
칼에 찔리기라도 한 듯 고통스럽게 미간을 찌푸린 시안은 자신과 똑같은 아트레이유의 황금색 눈동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러지 마라, 다시는. 제발.”
아트레이유의 눈이 커졌다.
“수, 숙부?”
“그래. 네 말이 맞다. 네 덕분에 일이 더 간단해졌어. 아무나 할 수 없는 용감한 행동이었던 것도 사실이고.”
“어어. 으응.”
“하지만 아트레이유. 시가르는 네 아버지였어. 나는 네가 아버지에게 검을 들이대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
아트레이유가 등을 바르게 세우고 곧게 앉았다.
언젠가 돌로라사는 화내는 시안이 무섭다고 말했었다. 더불어 그가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혼을 내는 거라고도 했었다.
레이첼이 그레이엄을 혼내는 모습을 보며 때리지 않고도 혼을 낼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누군가 자신에게 그렇게 해주리라고는,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아트레이유는 낮은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을 잇는 시안을 보며 깨달았다.
눈앞에 앉은 저 훌륭하고 멋진 남자가 자신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한다는 사실을.
“그날 나는 똑똑히 보았어. 시가르에게 검을 들이대는 네가 얼마나 떨고 있었는지.”
“으……. 다 봤구나.”
“아트레이유.”
“으응.”
“……그동안 고생 많았다.”
“어?”
커다란 아트레이유의 눈이 끔뻑였고, 시안은 다짐하듯, 그리고 안심시키듯 단단한 어조로 덧붙였다.
“이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 지겨운 제왕학이니 정치와 권력 같은 건 내려두고 마음껏 뛰어놀렴. 곧 여기서 꺼내줄 테니까.”
“그래도 돼?”
“다시는 너나 돌리를 포함한 누구에게도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내가 네 대신 황제가 되겠다. 내가 지켜주겠어.”
“숙부…….”
“그러니 너는, 복잡한 것들을 잊고 건강한 어른이 되는 것만 생각해라. 부디.”
“응! 알았어! 이번에는 진짜, 진짜로 숙부 부탁 들어줄게! 나 건강한 어른 되는 건 자신 있거든!”
씩씩한 대답에 시안이 살며시 미소 지었다.
옅은 미소에 아트레이유의 얼굴에도 빛이 들었다.
“우와. 우리 숙부 진짜 잘생겼다.”
“벌써 장난치기는.”
“아닌데? 숙부 얼굴 완전 반짝반짝 빛나! 왜 인기 많은지 알 것 같아.”
그러고는 탁자에 팔꿈치를 대고 손바닥에 턱을 괬다.
“나 정했어! 오늘부터 숙부 같은 어른이 되는 걸 목표로 열심히 놀아볼래!”
시안은 어린 시절부터 끊임없이 수련하고 공부했지만 굳이 아트레이유에게 말해주지는 않았다.
지금은 아트레이유가 기운을 차리는 것이 더 중요했으니까.
* * *
다시 며칠 뒤, 시안이 아트레이유를 데리고 황태자궁을 나섰다.
아트레이유는 마차가 프람 저택 앞에서 멈추자 기다렸다는 듯 문을 벌컥 열고 뛰어내렸다.
“레이체에에엘! 내가 왔다아!”
저택 앞에 서서 아트레이유를 기다리던 레이첼이 생긋 웃었다.
“어서 오세요, 아트레이유 님. 오늘부터 당분간 아트레이유 님을 돌보게 된 레이첼 프람 백작입니다.”
“아, 맞다. 나 이제 황태자 아니지? 레이첼 프람 백작을 뵙습니다. 아트레이유 이아콥스입니다.”
그답지 않게 정중히 예를 갖춘 아트레이유가 씩 미소 지었다. 언제나처럼 짓궂은 모습이었지만 눈동자나 표정에서 전보다 성숙한 기색이 읽혔다.
‘이런저런 일을 많이 겪어서 그런가 봐. 원작 그레이엄도 어린 나이에 집을 나가 용병 일을 시작하면서 갑작스럽게 어른스러워졌으니까.’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레이첼은 마차에서 짐을 내려 룰루랄라 저택 안으로 들어가려는 아트레이유의 앞을 막아섰다.
“잠깐.”
“……엥? 나 들어가면 안 돼요?”
“들어가기 전에 제 부탁을 들어주셔야 합니다.”
“부탁?”
품에서 곱게 접어둔 종이를 꺼내 아트레이유에게 내민 레이첼이 말했다.
“소원 쿠폰입니다. 전에 제게 주셨었지요.”
“뭐야. 숙부도 그렇고 레이첼 백작도 그렇고, 소원 말하기 타임이야? 무슨 부탁인데요?”
“아트레이유 님을 한 번 안아드리고 싶어요.”
“어? 뭘 하고 싶어요?”
아트레이유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자신의 뒤를 이어 마차에서 내린 시안을 돌아보았다.
그는 슬쩍 레이첼을 살피더니 몸을 돌려 아트레이유를 등지고 섰다. 지금부터는 아무것도 듣거나 보지 않겠다는 신호였다.
레이첼이 풀 죽은 아이처럼 어깨를 떨궜다.
“안 되나요? 혹시 몰라서 소원 쿠폰도 챙겨 왔는데.”
“아냐, 아냐! 안 되는 건 아닌데요. 가, 갑자기 나를 왜……?”
“안아드리고 싶으니까요.”
당황했는지 눈을 깜빡이던 아트레이유가 머뭇머뭇 두 팔을 벌렸다.
“그, 그래. 레이첼 백작이 소원 쿠폰까지 가지고 왔으니까 아트레이유 이아콥스의 넓은 품, 한 번 빌려줄게요.”
“감사합니다.”
미소 띤 레이첼이 조심스레 다가와 아트레이유를 꼭 안아주었다.
“안아드리고 싶었어요. 무섭고 외로우셨을 텐데 내색하지 않고 씩씩하게 지내주어서 고맙습니다.”
“헤헷, 내가 좀 대단하죠.”
“……그리고, 베아트릭스 부인께서 아트레이유 님에게 전해 달라 부탁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머니께서?”
“겁이 많은 엄마라서 미안하다고,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늘 사랑했다고요. 몸을 회복하고 돌아올 테니 그때까지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셨어요.”
품에 안긴 아트레이유의 몸이 바르르 떨렸다. 아이는 더 이상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자신의 슬픔을 포장하지 못했다.
“몸을 회복하고 다시 돌아오면 그때는 다친 상처를 직접 돌봐주시겠다고, 시가르가 사라졌으니 이제 정말로 엄마 노릇을 열심히 하며 살아보겠다고도, 말씀하셨습니다.”
“흑. 으응. 기다릴게. 빨리 와. 엄, 엄마아.”
아트레이유는 레이첼의 품 안에서, 처음으로 열 살 소년처럼 엉엉 울었다.
울음을 그친 아트레이유를 방으로 안내한 레이첼이 급히 응접실로 내려왔다. 시안이 자신을 기다린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벌컥, 응접실 문을 열고 들어온 레이첼이 시안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직 안 가셨어요?”
“제가 돌아가길 바라는 겁니까?”
“아뇨, 그런 건 아니지만…… 대관식 준비며 시가르의 일을 처리하느라 무척 바쁘시다고 들었거든요. 혹시 아직 볼일이 남으셨나요?”
“남았지요.”
자리에서 일어난 시안이 뚜벅뚜벅 걸어 레이첼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는 레이첼의 귓가에 얼굴을 바짝 가져다 대고 속삭였다.
“아직 당신과 아무런 얘기도 나누지 않았는걸요. 여기까지 와서 어떻게 그냥 갈 수가 있겠습니까.”
“아…….”
자신을 기다렸다는 말에 레이첼이 뺨을 붉혔다. 그녀는 가까이 다가온 시안의 얼굴을 피하며 응접실 의자에 앉았다. 그의 체온이 가까이 다가왔던 뺨이 간지러웠다.
“그, 그럼 앉으세요.”
시안은 대답 없이 걸어와 레이첼이 앉은 의자 등받이에 팔을 걸치고 앞으로 몸을 구부렸다. 속닥이는 그의 목소리는 어딘가 토라진 투였다.
“그날 이후로 일주일만이군요.”
“그러게요.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되었어요. 주변 정리하느라 정신없이 지냈더니.”
“지난 일주일간 당신이 무척 보고 싶었습니다.”
숨김없는 애정에 레이첼이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레이첼이 긴장했다는 걸 모를 시안이 아닌데, 그는 별다른 반응 없이 말을 이었다.
“자거나 먹는 시간을 아껴서 일 처리에 매달렸습니다. 그래야 얼른 당신을 보러 올 수 있으니까요.”
“……너무 무리하지는 마세요.”
“당신이 잠깐이라도 나를 만나러 와주면 이렇게까지 무리하지 않아도 될 텐데, 당신은 정말이지 단 한 번도 찾아오지 않더군요.”
“그건…….”
의자 뒤에 선 시안의 얼굴이 레이첼의 귓가에 가까워졌다. 그의 목소리가 점점 더 작고 은밀해졌다.
“요즘 마음이 무척 복잡합니다. 나와 당신을 노리던 시가르가 처리된 건 시원한 일이지만 아트레이유에게는 무척 미안하게 되었어요.”
레이첼이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저택 앞에서 엉엉 울던 아트레이유를 떠올렸다. 씩씩한 척했지만 아이도 무척이나 혼란스러울 것이다. 어른들의 싸움에 끼어 착한 아이가 피해를 보고 말았다.
골똘히 생각에 잠긴 레이첼을 바라보던 시안이 속삭였다.
“아트레이유를 걱정하는군요.”
“네에. 당분간 함께 지내게 되었으니 이참에 신경 써서 아이의 마음을 돌봐주려고요.”
“나는 어떻습니까.”
“……? 네?”
“갑작스레 형과 조카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된 데다 조카의 자리를 빼앗았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중인데요. 나도 아트레이유 만큼 위로와 걱정이 필요합니다.”
“아.”
자신을 사랑해달라는 시안의 신호였다.
시안이 눈을 감았다.
“지난번에 해준 위로가 무척 효과적이었어요. 그러니 또 해주십시오, 위로.”
갑작스레 고요가 찾아오고 레이첼의 세상이 온통 시안으로 가득 찼다.
긴 속눈썹과 반듯한 콧날, 그 아래 단정한 입술이 차례로 눈에 들어왔다. 조금만 고개를 뻗으면 시안의 코끝에 자신의 코끝이 닿을 것이다.
순간 레이첼은 시안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마주 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시안과의 입맞춤이 얼마나 아찔하고 달콤한지, 레이첼은 이미 알고 있었다.
‘안 돼.’
하지만 방금 파혼을 원한다고 했으면서 달려들어 입을 맞출 수는 없었다.
제 입술을 꾹 깨물어 마음을 억누른 레이첼이 탁자 위에 올려 두었던 주머니를 끌어왔다. 잘그락, 주머니 안에 든 물건들이 부딪히며 맑은 소리를 냈다.
시안이 미간을 좁히더니 천천히 눈을 떴다.
“제 부탁을 들어주셨군요.”
“괜찮으시겠어요? 안 그래도 마음이 안 좋으실 텐데 이런 것까지…….”
“글쎄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얘기하고 싶지만.”
고개를 내밀어 레이첼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툭 가져다 댄 시안이 속삭였다.
“그러지 않겠습니다. 계속 나를 걱정해요. 당신이 나를 걱정한다는 사실이, 나를 아주 기쁘게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