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Mother Of the Male Lead Who Lives With An Ad**terous Man RAW novel - chapter (116)
불륜남과 사는 남주 엄마가 되었다 (116)화(116/151)
시안이 터벅터벅 계단을 걸어 내려갔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위층과 달리 계단은 어둡고 음침했다. 반역 등 무거운 죄를 저지른 죄인을 수감하는 지하 감옥으로 이어지는 계단이었다.
감옥에 도착하자 기사들이 정중하게 예를 갖추며 시안을 안내했다. 감옥은 놀라울 만큼 텅텅 비어 있었다.
처음 황궁 지하 감옥에 내려와 보는 시안이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갇힌 사람이 없어. 그토록 많은 자를 반란이나 황제 모욕죄로 잡아들였는데.’
시가르가 전부 처형해 버렸다는 뜻이었다.
그가 자비 없이 많은 사람을 처형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한 사람도 남기지 않았을 줄은 몰랐다.
주먹을 꽉 움켜쥐고 한참을 걸어 들어갔다.
지하 감옥의 안쪽, 가장 어둡고 차가운 곳에 시가르가 갇혀 있었다.
시안을 발견한 시가르가 으르렁거렸다.
“……네놈.”
“감옥 생활이 그렇게 고되지는 않은 모양이야. 멀쩡하게 서 있는 걸 보면.”
무능하지만 잔인했던 전 황제의 황금색 눈동자가 분노를 머금고 이글이글 타올랐다.
“감옥을 벗어나면 제일 먼저 네놈을 갈가리 찢어 죽일 거다.”
“얼마든지. 감옥을 벗어나는 것도, 나를 찢어 죽이는 것도 불가능할 테지만.”
빠드득, 시가르의 어금니가 부딪치며 소름 끼치는 소리를 냈다.
“지금 네놈의 기분이 어떨지 잘 안다. 나 역시 내가 잡아넣은 죄인들을 보러 자주 여기에 찾아오곤 했으니까.”
“그랬나.”
“황홀하겠지. 짜릿하겠지! 황제였던 나를 잡아넣었으니 구름 위를 나는 것처럼 기분이 좋겠구나!”
시안은 고개를 저었다.
그는 황홀하지도, 짜릿하지도, 구름 위를 나는 듯 기분이 좋지도 않았다.
자신의 형이 평범하지 않은 인간이었구나, 건조하게 깨달을 뿐이었다.
이런 자에게 아버지를 잃고, 이런 자 때문에 자신의 딸과 사랑하는 사람이 상처받았다는 사실에 조용히 분노가 일었다.
“……시가르.”
“전부터 생각했지만 네놈은 참 버르장머리가 없어. 감히 하늘 같은 형님께 말을 낮추는 것도 부족해 이름까지 막 불러대다니 말이야.”
시안은 시가르의 말을 무시하고 준비해 온 말을 내뱉었다.
“오늘부터 네게 내려질 차다.”
“차?”
시가르의 표정이 오묘해졌다.
황궁 지하 감옥에 갇힌 죄수에게 차를 가져다주는 건 흔한 일이 아니었으니까.
“감히 내게 돈베 줄기를 내놓을 셈이냐? 테오도르에게 그랬던 것처럼? 하지만 이를 어쩌나. 나는 아무도 추행하지 않았는데.”
“그래. 네놈은 아무도 추행하지 않았지. 그러니 돈베 줄기를 내리지 않을 거다.”
“그럼 대체 무슨 차를 내리겠다는 것이냐.”
“휘지우스.”
“예.”
부름에 휘지우스가 앞으로 걸어 나서며 모습을 드러냈다.
다시 시가르의 심사가 뒤틀렸다.
“길드의 장인 척 시안의 발을 닦는 개로군.”
비꼬는 말에 휘지우스가 씩 웃었다.
“틀리다. 나는 길드의 장인 척한 적이 없어. 이름을 빌려 쓰고 있을 뿐 길드의 장은 여전히 대공 전하시니까. 대공 전하의 개라는 표현은 정확하군. 잘 맞췄다.”
“큭.”
흐흐, 웃는 소리를 낸 휘지우스가 들고 온 나무 컵을 감옥 안에 넣었다. 컵 안에는 짙은 갈색 찻물과 검은 유리 나무 한 조각이 들어 있었다. 향기로운 냄새가 감옥 안에 퍼졌다.
시가르의 얼굴이 굳어졌다.
“……유리 나무?”
“말하지 않았나. 오늘부터 네게 차가 내려질 거라고.”
“헛소리하지 마라. 제국에는 더 이상 유리 나무가…….”
유리 나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려던 시가르가 표정을 험악하게 일그러트리며 컵을 발로 차 넘어트렸다. 그는 철창을 붙잡고 흔들면서 고함쳤다.
“망할 놈들! 나를 속였어! 나를 속였구나! 사실 유리 나무가 있으면서 없다고 거짓말을 했던 거야!”
속이지 않았다. 제국에 존재하는 유리 나무는 전부 레이첼이 밟아 으스러트렸으니까.
시안은 며칠 전 레이첼에게 차를 우리고 남은 검은 유리 나무를 달라고 부탁했다.
시안과 휘지우스가 가지고 있던 검은 유리 나무를 시가르가 모두 깨트려 버렸기 때문이었다.
적당히 향긋한 차에 쓰고 남은 검은 유리 나무 조각 하나를 넣어 시가르에게 건넸다. 시가르라면 속지 않을까 싶었는데 역시나였다.
‘나도 휘지우스도 이 차의 이름이 뭔지 말하지 않았는데.’
의심 많은 시가르는 시안이 자신을 속이고 감춰두었던 유리 나무 차를 건넸다고 지레짐작한 것이었다.
“으아! 젠장! 젠장할!”
철컹, 철컹, 철컹!
철창 흔들리는 소리가 지하 감옥을 울렸다.
흥분해서 소리 지르는 시가르를 바라보던 시안이 말했다.
“시가르, 앞으로 네게는 매일 차 한 잔이 내려질 거다. 그 차를 마시며 서서히 죽어갈지, 아무런 물도 마시지 않고 빠르게 죽어갈지, 선택해라.”
“시안, 네 이놈! 절대,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
“차기 황제인 내가 네게 내리는 벌이다.”
“차, 차기 황제라고? 네놈이? 어째서! 아트레이유는 대체 뭘 하는 거냐!”
“글쎄.”
지금쯤 햇살이 잘 드는 프람 저택 정원에 누워 낮잠을 자고 있겠지.
휘지우스가 어깨를 으쓱했다.
“감옥에 갇혀서 서서히 죽어갈 놈이 바깥일을 걱정하는군.”
“휘지우스! 감히 나를 속이다니! 천한 길드 장 주제에! 죽어! 죽으라고! 죽여버리겠어! 네놈 따위는 평생 시안의 발이나 닦다가 죽어야 해! 으아아, 휘지우스! 휘지우스으!”
시가르가 울부짖었고, 휘지우스는 웃었다.
“덕담 고맙다. 대공 전하를 위해 살다가 대공 전하를 위해 죽는 것이 내 소원이거든.”
“으아아, 으아아아!”
시가르의 비명이 오래도록 지하 감옥을 울렸고, 그 후로는 시안도 휘지우스도 더는 시가르를 찾아가지 않았다. 갈증에 시달리던 시가르의 숨이 끊어질 때까지.
* * *
프람 저택이 아침부터 들썩였다.
“빨리, 빨리! 저택 벽난로에 불을 더 지펴!”
“따뜻한 물은? 따뜻한 물이 더 필요해!”
“의사! 의사를 불러! 수도에서 가장 실력 좋은 의사를, 아니 제국의 의사를 다 불러 모으라고!”
여기저기 고함치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매일 같이 연무장에서 시간을 보내던 그레이엄도, 늦잠이 일상인 아트레이유와 라일러스도 아침부터 모여서 발을 동동 굴렀다.
그레이엄이 아트레이유와 라일러스의 손을 잡고 눈물을 글썽였다.
“어쩌지? 어떻게 해요?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요.”
아트레이유는 잠옷에 수면 모자를 쓴 채로 그레이엄을 달래주었다.
“에이. 원래 이 정도는 누구나 아플 수 있어. 호들갑 떨지 마. 너는 제국 최고의 기사가 되겠다는 애가 이런 일로 울면 어떻게 하냐?”
“히잉. 몰라요. 제국 최고 기사 안 해.”
“어, 울지 마. 뚝. 뚝! 우씨. 검술 연습할 땐 열네 살 같더니 이렇게 보니까 네 살 맞네.”
하지만 달래주는 아트레이유 역시 불안한 건 마찬가지였다. 아이는 눈물을 뚝뚝 떨어트리는 그레이엄을 품에 안아주며 라일러스를 올려다보았다.
“할아버지! 어떻게 좀 해봐요! 할아버지, 여신의 그거라면서요!”
저택 복도를 서성이던 라일러스가 펄쩍 뛰었다.
“떼끼. 여신의 그게 뭐냐? 여신의 그게 맞긴 한데, 네가 말하니까 남들이 들으면 오해할 소리처럼 들리지 않느냐!”
“지금 그게 중요해요? 아무튼 여신력인지 예언력인지 쓸 수 있다면서요! 그거 아픈 사람 낫게 하는 힘이잖아요!”
“예지력이다, 이놈아.”
스스럼없는 성격 덕분인지 아트레이유와 라일러스는 함께 저택에 살게 된 뒤로 금세 친구처럼 가까워졌다.
거침없는 말투 때문에 싸우는 것처럼 보일 때도 많았지만 저래 봬도 둘 다 뒤끝은 없었다.
라일러스가 초조한 눈빛으로 복도 중앙의 문을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써봤어. 써봤단 말이다. 써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어.”
“이거 완전 돌팔이 사이비 교주네!”
“교주가 아니라 주교라고 몇 번을 말해!”
시근덕거렸지만 라일러스는 자신이 진짜 예지력을 잃고 돌팔이 사이비 주교가 된 것은 아닌가 고민했다.
하지만 미래는 전처럼 깨끗하게 잘 보였고, 불꽃놀이도 일으킬 수 있었다.
대체 뭐가 문제인지 알 수가 없었다.
잠시 후 우당탕 큰소리가 나며 홀 쪽이 소란스러워졌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저택 안으로 들어오는가 싶더니 그중 몇몇이 쿵쾅거리며 계단을 올라왔다.
무리의 가장 앞에 케이티가 있었다.
라일러스가 반색했다.
“케이티! 다녀왔느냐! 의사, 의사는!”
“모셔왔습니다. 일단 백작 가문의 주치의를 비롯해 제국에서 손꼽히는 명의 다섯 분을 모셔왔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황궁에 소식을 알리고 황실 주치의를 모셔오고 싶었지만…….”
“됐다. 지금은 그런 걸로 풀 죽을 때가 아니니 얼른 들어가자꾸나.”
케이티와 의사들, 따뜻한 물이며 수건 같은 물건을 잔뜩 짊어진 사용인들이 비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라일러스가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레이첼, 들어가마.”
“아. 아빠 오셨어요?”
레이첼의 목소리는 반쯤 잠겨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서로를 부둥켜안은 아이들의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그때.
“엣치!”
재채기 소리에 의사와 사용인들이 황급히 레이첼의 곁으로 모여들었고, 아이들은 결국 엉엉 울음을 터트렸다.
“으아앙! 엄마가, 엄마가아!”
“안 돼, 레이첼 백작님! 안 돼애애!”
자신의 손목과 얼굴과 입안을 샅샅이 살피는 의사 무리에 둘러싸인 레이첼이 쓰게 웃었다.
“다들 호들갑은. 그냥 감기 기운이라니까요.”
라일러스와 케이티가 엄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