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Mother Of the Male Lead Who Lives With An Ad**terous Man RAW novel - chapter (117)
불륜남과 사는 남주 엄마가 되었다 (117)화(117/151)
“아침에 일어나지 못해서 아침 식사도 거르지 않았니.”
“침대에 더 누워 있고 싶어서 그랬던 거예요.”
“오늘은 집무실 출입도 하지 않고 보고도 받지 않겠다고 하셨잖아요! 저와 함께 일한 뒤로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고요.”
“급한 일도 없고, 하루쯤 쉬고 싶었을 뿐이야.”
“그러니까 걱정이 되는 것 아니니.”
“맞아요. 안 그러던 분이 그러시니까.”
“휴우.”
크게 한숨을 내쉰 레이첼이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사실 몸이 좋지 않기는 했다. 어젯밤부터 으슬으슬하더니 아침에는 머리가 아프고 몸이 무거웠다.
겨울 초입이기도 하고, 시가르를 몰아낸다는 목표도 달성한 후라 긴장이 풀려서 감기가 오려나 보다 생각하며 하루 정도 푹 쉴 생각이었다.
‘걱정해 주실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난리가 날 줄은 몰랐어.’
의사들과 라일러스, 케이티와 아이들의 성화로 레이첼은 다시 침대에 누웠다.
백작 가문의 주치의인 웨이스가 말했다.
“고용된 후 한 번도 부르지 않으셔서 참 건강한 분이시구나, 했습니다.”
“맞아. 나 건강해. 정말 어디가 아픈 거라면 아빠가 예지력으로 고쳐줬을 거야. 그냥 좀 피곤해서 그런 거라고.”
“으음. 그러고 보니 그건 그렇군요.”
잠시 고민하던 웨이스가 몸을 일으켜 다른 의사들과 의견을 나눴다.
그는 대단한 의사결정을 하는 것처럼 진지한 얼굴로 이야기를 나눈 후, 레이첼에게 돌아왔다.
“저희의 의견도 백작님과 같습니다. 어디가 특별히 편찮아 보이지는 않아요. 말씀하신 대로 특별한 병에 걸린 거라면 주교님께서 진작 치료하셨을 테고요.”
“그것 봐.”
곁에서 안절부절못하던 라일러스가 얼른 끼어들었다.
“그럼 대체 레이첼의 몸 상태가 이렇게 된 이유가 무엇이오!”
“아무래도 쌓였던 피로가 몰려온 게 아닐까 싶습니다.”
“피로?”
“일단 피로 회복제와 숙면에 도움이 되는 차를 처방해 드리겠습니다. 급한 일이 없다면 며칠 푹 쉬십시오.”
“알겠소. 케이티, 어서 차를 끓이고 약을 달여오렴.”
케이티는 번개같이 달려가 차와 약을 준비해 왔다.
약을 먹고 차를 마신 레이첼은 금세 잠기운에 몽롱해졌다.
의사들이 돌아가자 그레이엄과 아트레이유가 레이첼의 곁으로 달려왔다.
“엄마, 훌쩍. 쉬셔야 하니까 저는 나갈게요. 저, 엄마랑 놀고 싶어도 참을 테니까 얼른 나아야 해요. 알았죠? 히잉.”
“레이첼 백작님 아프지 마요. 아픈 거 싫다구요. 얼른 나아서 나랑 놀아요.”
“안 돼! 엄마는 아트레이유 님이랑 못 놀아줘요! 아프다고요!”
“그러니까 다 나아서 놀자고 했잖아. 우씨!”
“자자, 도련님들. 백작님은 쉬셔야 하니까 나가서 싸우세요.”
케이티가 아이들을 데리고 방에서 나가자 사방이 고요해졌다.
레이첼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곁에 서 있는 라일러스에게 말했다.
“아빠도 이제 기도하러 가보세요. 저 이제 잘게요.”
“아프지 말렴, 레이첼.”
“응. 약 먹었으니까 푹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질 거예요.”
“폐하께는 정말 연락드리지 않아도 괜찮은 거냐?”
폐하?
졸음 때문인지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았다. 잠시 생각하고서야 레이첼은 폐하가 시안을 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안.
잠기운에 사로잡힌 레이첼의 얼굴에 조용히 미소가 번졌고, 라일러스가 웃음을 터트렸다.
“원, 녀석. 폐하가 그렇게 좋으냐?”
“아빠도 참. 그런 거 아니에요. 그보다 폐하께는……. 비밀로 해주세요.”
“걱정하실 텐데.”
“알아요. 그러니까.”
갑작스럽게 결정된 즉위였다. 대관식 준비를 비롯해 권위 승계 등 할 일이 태산 같을 것이다.
특별히 병에 걸린 것도 아니고, 하루쯤 푹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질 건강 문제로 걱정 끼치고 싶지 않았다.
반쯤 잠에 빠진 레이첼의 머릿속에 시안의 목소리가 울렸다.
‘계속 나를 걱정해요. 당신이 나를 걱정한다는 사실이, 나를 아주 기쁘게 하니까.’
그가 어떤 마음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시안이 나를 걱정해 줬으면, 아프지 말라며 안아줬으면 좋겠어.’
약과 차의 기운 때문인지 마음이 말랑말랑했다.
예니스의 딸이 된 뒤로 한동안 꾸지 않았던 시안 꿈을 꾸고 싶다고 생각하며 레이첼은 눈을 감았다.
* * *
“끝!”
돌로라사가 환한 얼굴로 손수건을 펼쳐 들었다.
셀 수 없을 만큼 놓았다가 풀기를 반복한 자수가 드디어 마무리되었다.
아이는 반듯하고 미려하게 수놓인 자수를 보며 눈을 반짝였다.
“완벽해! 최고야! 이 정도면 레이첼 백작에게 선물해도 부족하지 않을 거야. 마지막에 바늘이 잘 안 들어가서 고생했어.”
손수건을 쥔 돌로라사의 양손 손가락 끝이 전부 엉성한 붕대로 싸여 있었다. 혼자 바늘에 찔린 상처를 치료한 결과였다.
천에 바늘을 밀어 넣어 툭, 소리가 날 때마다 손끝이 아리고 아팠지만 참고 또 참았다.
레이첼에게 예쁜 자수를 선물해주고 싶어서.
“이걸 보면 유모도 자기가 대신 자수 놔주겠다는 말 안 하겠지?”
“유모가 그런 말을 했니?”
“앗, 아빠!”
시안의 목소리에 돌로라사가 화색을 띠며 문 쪽으로 달려갔고, 시안은 제게 달려오는 딸을 번쩍 들어 품에 안아주었다.
“우리 돌리, 기분이 좋아 보이는구나.”
“응! 드디어 완성했거든요! 레이첼 백작 선물!”
돌로라사가 들고 온 손수건을 펼쳐 시안에게 보여주었다.
“짜안, 예쁘죠? 제가 만들었어요!”
“정말 예쁘네. 요즘 내내 방에 틀어박혀 지내더니 이걸 만들고 있었구나.”
“예쁘게 안 돼서 여러 번 다시 만들었거든요. 그래서 오래 걸렸어요.”
“오늘도 이걸 만드느라 이 시간까지 깨어 있었던 거니?”
“응? 지금 몇 시인데요?”
“벌써 자정이 지났어.”
“자정이요? 우와. 시간 가는 줄 몰랐어요! 아빠는요? 지금 들어오시는 거예요?”
“일이 많았거든.”
짧게 대답한 시안이 미간을 좁혔다.
“손은 어쩌다 이렇게 된 거야?”
“아……. 자수 놓다가 다쳤어요.”
“지금 생긴 상처가 아닌 것 같은데, 붕대는 네가 감은 거니? 유모는 뭘 하고?”
“그게, 유모는…….”
우물거리던 돌로라사가 시무룩하게 어깨를 내렸다.
“유모는 싫어요. 그래서 다친 거 말 안 했어요.”
“유모가 싫어?”
“응. 자수 놓다가 손 다친 거 알면 그러길래 쓸데없는 짓 하지 말라고 말씀드렸잖아요! 귀찮아, 정말! 하면서 화를 낼지도 몰라요.”
순간 시안의 얼굴이 험악해졌지만 고개 숙인 돌로라사는 보지 못했다.
“……유모가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었구나. 아빠는 몰랐네. 우리 돌리가 속상했겠어.”
“근데 매일 그러는 건 아니에요. 아마 가끔씩 기분이 나쁜가 봐요.”
“착한 돌리. 유모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구나.”
“웅, 그런가?”
아이를 안은 채 방으로 들어온 시안은 탁자 위에 손수건을 올려놓고 돌로라사를 침대에 눕혔다. 그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속삭였다.
“아빠가 바빠서 유모가 돌리 마음 아프게 하는 것도 몰라줬어. 미안해.”
“괜찮아요. 이제 자수 다 했으니까, 내일부터는 레이첼 백작 집에 놀러 가면 돼요.”
“그래. 내일 아빠가 유모 혼내 줄게.”
돌로라사가 이불을 덮으며 키득키득 웃었다.
“에이, 아빠가 혼내는 거 하나도 안 무서운걸요.”
“그러니?”
“아빠 말고 귀신이 와서 혼내줬으면 좋겠어요.”
“귀신?”
“응! 유모는 겁이 많으니까요. 귀신이 나타나면 깜짝 놀라서 덜덜 떨걸요?”
시안이 침대 옆에 켜둔 조명의 불을 껐다.
“그럼 내일은 아빠 말고 귀신만큼 무서운 사람한테 유모를 혼내주라고 할 테니 오늘은 이만 자렴.”
“헤헤. 아빠 잘 자요!”
방에 켜진 조명을 모두 끄고 복도로 나온 시안이 이를 갈았다.
시안의 앞에서는 사근사근하고 돌로라사를 잘 돌보던 유모였다.
그런 유모가 시안이 집에 없는 사이 아이에게 못된 말을 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감히 내 집에서 내 딸에게.”
벗어둔 겉옷을 걸쳐 입은 시안이 빠른 걸음으로 저택을 벗어났다.
* * *
다음 날, 돌로라사는 아침 일찍부터 외출 준비를 했다. 프람 저택에서 아침 식사를 할 생각이었다.
‘모처럼 아빠랑 같이 아침 먹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시안은 해 뜨기 전에 벌써 저택을 비웠다고 했다. 어제 자기 전에 만났던 아빠가 꿈처럼 느껴졌다.
서둘러 옷을 꿰어 입는데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공녀님, 아침 식사하셔야지요.”
유모였다.
돌로라사는 고개를 저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안 먹어! 나 레이첼 백작이랑 아침 먹을 거야!”
“어머, 세상에. 공녀님 좀 봐.”
벌컥, 문이 열리고 유모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허리에 손을 얹더니 성난 얼굴로 말했다.
“이런 시간에 약속도 없이 다른 사람의 저택에 방문하는 건 실례라고요! 그 정도도 모르시는 건가요?”
오늘은 유모가 기분이 나쁜 날인 모양이다.
사실 시안이 저택을 자주 비우는 데다가 돌로라사가 자신의 일을 시안에게 일러바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유모가 슬슬 본색을 드러내는 거였지만.
어린 돌로라사가 유모의 속사정을 알 리 없었다.
아이가 뚱하게 볼을 부풀렸다.
“나도 알아.”
“게다가 아침을 굶고 가시겠다니요. 누가 보면 제가 공녀님을 굶기는 줄 알겠어요! 음식이 맛없으면 맛없다고 말씀하시라니까요.”
“음식은…… 맛있어. 난 주방장이 만든 음식 좋아해.”
“나 참. 그런데 대체 왜 아침을 안 드시겠다는 거예요?”
포크 잡는 법이 잘못됐다거나 그렇게 편식하니까 키가 이 모양이라거나 하는 잔소리를 들으면서 밥을 먹는 건 싫으니까.
돌로라사가 어린이치고 말을 잘하는 건 사실이었지만 작정하고 따지는 성인을 말로 이길 수는 없었다.
“레이첼 백작이랑 그레이엄이 보고 싶어서 그래. 오래 못 만났으니까.”
“그분들이 이런 아침부터 공녀님을 보고 싶어 하신대요?”
“그, 그건…….”
“보고 싶어 하시지, 물론.”
갑자기 들린 낯선 남자의 목소리에 돌로라사와 유모 모두 흠칫 놀랐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두 사람은 창틀에 걸터앉은 남자를 발견했다.
유모가 뒤로 주춤 물러섰다.
“누구, 누구야! 감히 대공 전하의 저택에 숨어들어오다니!”
유모의 말을 무시한 채 무심하게 걸어온 남자가 돌로라사의 앞에 정중하게 무릎을 꿇고 부복했다.
“작은 주인님을 뵙습니다. 저는 휘지우스라고 합니다.”
“휘지우스?”
“주인님의 명령으로 작은 주인님을 지켜드리러 왔습니다. 저자가 작은 주인님의 마음에 상처를 냈다 하여 지켜보았는데 진짜더군요.”
휘지우스가 하얀 눈동자를 번뜩이며 유모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처리할까요. 작은 주인님이 명령하시면 무엇이든 따르겠습니다.”
숨기지 않는 살의에 유모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바닥에 주저앉았고, 돌로라사의 가슴에는 환하게 빛이 들었다.
‘우와. 멋있어…….’
만 8년. 돌로라사의 인생에 이토록 카리스마 넘치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돌로라사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휘지우스가 유모를 바라보며 입꼬리를 비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