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Mother Of the Male Lead Who Lives With An Ad**terous Man RAW novel - chapter (118)
불륜남과 사는 남주 엄마가 되었다 (118)화(118/151)
“헨델 자작 가문의 셋째, 슈피 헨델. 곧 황녀가 되실 분께 참으로 대범한 짓을 저질렀군. 감히 네까짓 것이 작은 주인님께 그딴 말투를 써?”
“죄,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그분 앞에서는 찍소리도 못하는 주제에 뒤에서는 이러고 있을 줄이야.”
“아악! 제발, 제발 살려주세요!”
휘지우스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눈치는 빠르군. 죽이겠다는 말도 하지 않았는데 살려달라고 비는 걸 보면. 하긴, 선황 시가르라면 황실 모독죄로 가문을 싹 멸문시켰을 일이니까.”
“안 돼! 제발 그런 일은!”
“그럼 빌어.”
짧은 말에 유모가 바닥에 철푸덕 엎드렸다.
“공녀님!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주제넘었습니다!”
“어어……?”
“제가 멍청하여 공녀님을 은근슬쩍 하대하며 우월감을 느꼈습니다. 반성하고 다시는 공녀님 눈앞에 나타나지 않을 테니 제발, 제발 자비와 용서를 베풀어 주세요……!”
갑작스러운 상황에 돌로라사가 우물거리며 눈을 깜빡였다.
부복한 채 유모를 노려보던 휘지우스가 다시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용서하신다면 살리고 용서하지 못하시겠다면 처리하겠습니다.”
어린 돌로라사가 듣기에도 ‘처리하겠다’는 말은 심상치 않았다. 아이가 얼른 고개를 저었다.
“처리는 싫어요. 용서할게요.”
“알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선 휘지우스가 거친 동작으로 유모의 팔을 잡아끌었다.
“아깝게 되었어. 이분이 누구신지 알면서도 그딴 짓을 저지른 네놈의 사지를 찢어버리고 싶었는데 말이야.”
“찌, 찢……?”
휘지우스가 속삭이는 말을 들은 유모는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휘지우스는 저택 사용인들에게 유모의 뒤처리를 맡겼다. 세세하게 명령을 내리는 투며 동작이 원래 저택에 살던 사람처럼 익숙했다.
돌로라사의 눈에는 그런 휘지우스가 무척 멋져 보였다. 아이는 휘지우스가 유모를 처리하는 내내 그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기절한 유모를 실은 마차가 저택을 떠나고 나서야 휘지우스가 돌로라사를 돌아보았다.
“다른 사용인들의 증언을 들어보았습니다. 그동안 마음고생 많으셨습니다.”
“아니에요! 가끔 말을 못되게 하긴 했지만 때리거나, 밥을 안 주거나, 청소를 안 한 적은 없는걸요.”
“말씀 편하게 하십시오.”
“없, 없는걸.”
“주어진 일을 다 하는 것만큼이나 태도가 어땠는지도 중요합니다. 다른 일은 몰라도 작은 주인님을 모시는 일에 있어서는.”
딱딱한 말투로 해주는 상냥한 말이 기꺼웠다.
‘아빠랑은 달라. 아빠도 언제나 내 편을 들어주시고 상냥하긴 하지만 이렇게 멋있지는 않으셔. 아빠는 늘 부드럽고 다정하기만 하시니까.’
돌로라사는 휘지우스가 마음에 들었다. 무척, 아주. 그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휘지우스가 무심히 말했다.
“폐하께서 결혼을 앞두고 계셔서 당분간 새 유모를 들이기는 어려울 겁니다. 불편하시겠지만 조금만 참아주십시오.”
“응. 아빠가 결혼하면 엄마가 생기니까 괜찮아. 낯선 유모가 생기는 것보다 훨씬 좋은 일이잖아.”
“훌륭한 마음가짐입니다.”
“에헤헤.”
“그럼 저는 일을 마쳤으니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벌써 간다고?”
깜짝 놀란 돌로라사가 얼른 달려가 휘지우스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작은 주인님. 하실 말씀이 남으셨습니까.”
“아니. 할 말은…… 없어.”
“아직 아침 식사를 못 하지 않으셨습니까. 계획대로 레이첼 백작님의 저택에 가보십시오. 분명 반가워하실 겁니다.”
“으응. 그래야지. 그런데 말이야, 저기, 저어.”
“말씀하십시오.”
망설이던 돌로라사가 뺨을 붉히며 말했다.
“……나, 휘지우스랑 친구가 되고 싶어.”
아빠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던 돌로라사가 먼저 가까워지고 싶어 한 건 레이첼 이후 휘지우스가 처음이었다.
하지만 상냥하게 곁을 내주는 레이첼과 달리 휘지우스는 볼일을 마치자 칼같이 돌아섰고, 아이는 조급했다. 친구든 뭐든 그와의 연결고리를 만들어 두고 싶었다.
휘지우스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거절하겠습니다.”
“왜? 왜애?”
예상하지 못한 거절에 돌로라사가 눈물을 글썽였지만 휘지우스는 단호했다.
“작은 주인님은 작은 주인님이십니다. 저는 주인님의 명령을 따르는 개일 뿐이고요. 주인님과 개는 친구가 될 수 없습니다.”
“으.”
돌로라사는 입을 다물고 휘지우스의 옷자락을 꽉 쥔 채 생각에 잠겼다.
자그마한 머리를 열심히 굴린 끝에 아이가 내놓은 말은 이것이었다.
“휘지우스는 휘지우스 같은 사람을 많이 알아?”
“저 같은 사람? 잔인하고 난폭하고 정도를 모르는 자들 말입니까?”
“휘지우스는 그런 사람이야?”
“예. 폐하께서 길들여 주셨을 뿐. 본성은 여전히 그러하지요.”
“좋아. 그럼 그런 사람들 중에 아빠 부하가 아닌 사람들을 소개해줘. 친구가 될래.”
“예?”
휘지우스의 얼굴에 처음으로 당혹이 어렸다.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살인귀와 친구가 되고 싶으시다고요?”
“그러면 안 돼? 어차피 휘지우스가 지켜줄 거잖아.”
잠시 생각에 잠겼던 휘지우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지켜드려야지요.”
“와, 신난다! 휘지우스 같은 사람이 잔뜩 있으면 정말 행복할 거야!”
“…….”
휘지우스의 표정이 기묘해졌고 반대로 돌로라사의 얼굴은 환해졌다.
원작 돌로라사의 취향이 발아하던 날이었다.
* * *
시간이 빠르게 흘러 어느새 눈이 내리고 시안의 대관식 날이 찾아왔다.
예복을 갖춰 입고 저택 앞에 서 있던 라일러스는 마차에 오르려는 레이첼의 앞을 요리조리 막아섰다.
레이첼이 가볍게 웃음을 터트렸다.
“아트레이유한테 배우신 거예요?”
“어떠냐. 고 녀석이 버르장머리가 좀 없기는 해도 재미있는 걸 많이 알더구나.”
“아빠는 아트레이유를 정말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허허, 그래서 서운하니?”
“그럴 리가요. 아빠가 즐거워하시니까 저도 즐거운걸요.”
라일러스는 상냥하게 답하는 딸을 예뻐 죽겠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녀석. 원래도 예쁘지만 오늘은 더 예쁘구나.”
“정말요? 다행이다. 신경 써서 꾸몄거든요. 오늘은 시안이 주인공인 날이니 너무 화려하면 안 되겠지만 그래도 명색이 약혼한 사이인데 너무 볼품없이 갈 수는 없잖아요.”
“역시 내 딸.”
조용히 답한 라일러스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나저나 정말 괜찮겠니? 안색이 파란 게 걱정되는구나.”
레이첼에게 약한 감기 기운이 찾아온 날 이후 라일러스는 꼼꼼하게 미래를 살폈고, 오늘 대관식에서 레이첼이 쓰러지는 모습을 보았다.
그는 레이첼에게 대관식에 가지 말라고 했으나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말씀드렸지만 저는 시안의 약혼자인걸요. 제가 대관식에 빠질 수는 없어요. 대관식에서 시안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기도 하고요. 미래를 아니까 쓰러지기 전에 돌아오면 되잖아요.”
“꼭이다. 꼭. 쓰러지기 전에 돌아오겠다고 약속하는 거야.”
“아빠가 일부러 미래까지 봐주셨는데 당연히 그래야죠. 제가 쓰러지는 건 시안이 황제의 관을 쓰고 나서라고 하셨죠? 그 전에 저택으로 돌아올게요.”
걱정스러운 얼굴로 레이첼을 들여다보던 라일러스가 한숨을 푹 내쉬고 마차 문을 열었다.
“몸이 더 차가워지기 전에 얼른 타거라.”
“너무 걱정 마세요. 오늘만 잘 버티면 내일부터는 푹 쉴 테니까요.”
지난 며칠간 레이첼은 긴 휴식을 준비했다. 의사들이 푹 쉬라고 조언하기도 했고, 마침 겨울이라 일도 많지 않으니 겸사겸사 봄까지 푹 쉴 계획이었다.
마차 안은 온기로 따스했다. 눈 쌓인 바깥 풍경이 시원하게 느껴질 만큼.
마차를 타고 황궁으로 가면서도 여전히 걱정이 가시지 않는지 라일러스가 깊은 눈동자로 레이첼을 응시했다.
그러나 레이첼은 라일러스와 달리 내내 눈을 반짝였다. 시안의 대관식은 그녀가 무척 기대했던 행사였다.
“드디어 시안이 황제 폐하가 되는 날이네요.”
“그러게. 시간이 참 빠르구나.”
“아빠는 시안이 황제 폐하가 될 걸 알고 계셨어요?”
“그럼. 처음 만났을 때부터 폐하라고 불러드렸는걸. 싫어하셔서 그만둬야 했지만 말이다.”
“우와, 역시 아빠는 대단해요.”
레이첼이 천진하게 감탄하며 손뼉을 쳤다.
‘원래도 멋있는 사람이었는데 대관식에서는 얼마나 더 멋있을까. 기대된다.’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얼른 황제가 된 시안이 보고 싶었다.
대관식은 무척 성대했다. 국고가 비었다는 시가르의 거짓말을 비웃는 것 같았다.
수도에서 지내는 귀족과 지방의 명망 있는 귀족들, 타국의 사절단이 모두 모이고 몇 가지 식전 행사가 진행되었다.
예니스 교의 딸이자 귀족이자 시안의 약혼자인 레이첼은 모든 행사에서 앞쪽 자리를 배정받았다. 그녀는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시안이 황제가 되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화려한 금장식이 달린 복장, 평소와 달리 포마드로 깔끔하게 빗어 넘긴 머리, 단정한 태도로 예니스의 축복을 받아드는 모습.
행사를 거치며 황제로 인정받아 가는 시안은 레이첼이 아는 그 어떤 모습보다 엄숙하고 멋졌다.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아름다워. 나한테 애정을 속삭이던 사람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야.’
정말 숨 막히는 것은 모든 행사에서 시안의 시선이 언제나 레이첼을 향했다는 점이었다.
시선을 앞으로 향해 모여 선 사람들을 두루 바라보아야 할 때가 아니면 그는 늘 레이첼을 보고 있었다.
거기 있어요, 거기서 내가 황제가 되는 모습을 똑똑히 지켜봐요.
그가 눈빛으로 속삭이는 것만 같았고, 레이첼의 가슴은 쉴 새 없이 두근거렸다.
복잡하고 의례적인 절차들이 마무리되고 마지막으로 머리에 황제의 관을 얹을 차례가 되었다.
붉은 망토를 걸친 시안이 천천히 단상에 올랐다. 흰 여우 털과 화려한 금장식이 걸음걸이를 따라 부드럽게 흔들렸다.
황제 대리를 맡은 벨윈더가 관을 들고 단상 위에서 시안을 기다리고 있었다.
시안이 뚜벅, 뚜벅,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속도로 걸어 단상 꼭대기에 오르자 벨윈더가 배에 힘을 줘 말했다.
“시안 아이사, 그대에게 황제의 관을 내리겠다.”
스테인드글라스에서 쏟아져 들어온 오색찬란한 빛이 시안과 벨윈더를 비췄다.
시가르의 머리 위에서는 볼품없어 보이던 황제의 관이 허공에서 번뜩였다. 원래 제 위용이 이런 것이었노라고 선포하는 것만 같았다.
레이첼은 문득 현기증이 이는 것을 느꼈다.
‘저 관이 시안의 머리에 놓이고 나면 쓰러진다고 했지. 그러고 보니 어지러운 것 같기도 하네.’
조금 떨어진 곳에 선 라일러스가 레이첼을 걱정스레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나 레이첼은 홀린 듯 황금색 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조금만, 조금만 더 보고. 시안이 황제가 되는 순간만 보고 돌아가자. 딱 한 번, 오늘밖에 못 보는 거니까.’
시안의 검은 머리카락 위에 황금색 관이 놓였다.
“임시로 황제의 권한을 위임받은 벨윈더 아이사의 이름으로, 제국에 새로운 황제가 탄생했음을 선포한다!”
참아왔던 숨을 터트리듯 박수와 함성이 쏟아졌다.
레이첼의 가슴이 커다랗게 부풀며 벅차올랐다.
황제의 관을 쓴 시안은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우아하고 위엄 있었다. 처음부터 그의 것이었던 것처럼 잘 어울리기도 했다.
‘아……. 시안.’
동시에 레이첼은 자신이 몸을 가누지 못하고 휘청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앗.”
정말 시안이 황제의 관을 쓴 직후에 쓰러지는구나.
어떻게든 몸을 가누고 바르게 서려 했으나 허사였다. 레이첼의 의지와 상관없이 세상이 빙글 돌았다.
“레이첼!”
커다란 목소리에 레이첼이 고개만 겨우 돌려 단상을 눈에 담았다.
붉디붉은 황제의 망토를 벗어 내팽개친 시안이 날듯이 단상을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그의 모습이 가까워지고 단단한 팔이 그녀를 감싸 안았다.
“레이첼, 레이첼! 정신 차려요, 레이첼!”
‘관이…….’
아까까지 시안의 머리 위에서 반짝이던 황제의 관이 보이지 않았다.
급하게 달려오다가 떨어트린 걸까.
그러면 안 되는데. 주워야 할 텐데.
그런 생각을 하던 레이첼은 시안의 품에서 까무룩 정신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