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Mother Of the Male Lead Who Lives With An Ad**terous Man RAW novel - chapter (119)
불륜남과 사는 남주 엄마가 되었다 (119)화(119/151)
시안은 예정된 모든 일정을 취소한 뒤 레이첼을 안아 들고 프람 저택으로 달려갔다.
프람 저택은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지난번에 불려왔던 의사들은 물론 황실 주치의들과 대공 가문의 주치의, 공작 가문의 주치의, 타국 사절단의 의사들과 티티예니스까지 프람 저택으로 몰려왔다.
그레이엄과 아트레이유가 비명을 질렀다.
“안 돼! 안 돼애애! 레이첼 백작 살려내! 살려내라고, 이 돌팔이 망나니 교주야!”
“엄마 죽은 거예요? 엄마, 엄마아! 으아앙!”
“맙소사, 죽긴 누가 죽었다고 그러세요? 그냥 정신을 잃으신 거라고요!”
케이티가 난리를 피우는 그레이엄과 아트레이유를 데리고 방을 나섰다. 그녀는 레이첼이 걱정되어 죽겠다는 표정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누군가는 아이들을 진정시켜야 했으니까.
침대에 레이첼을 눕힌 시안은 굳은 얼굴로 침대 곁을 지킬 뿐 입을 열어 말하거나 움직이지 않았다.
아이들이 사라진 뒤 의사들이 각자의 방법으로 레이첼을 진찰했다.
그들이 의견을 모으는 동안 티티예니스와 라일러스가 레이첼에게 예지력을 쏟았다.
반짝이는 은빛이 레이첼의 몸을 감쌌지만 그녀는 눈을 뜨지 않았다. 가만가만 숨을 내쉬며 누워 있을 뿐이었다.
프람 가문의 주치의, 웨이스가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지난번처럼 피로 때문인 것 같습니다. 레이첼 백작님께서는 지금 주무시고 계세요.”
“하아. 역시…….”
“행사 막바지에 쓰러졌다고 하셨지요. 제가 황실 행사에 참석해 본 적이 없어서 잘은 모르지만 분명 길고 고된 행사였을 겁니다. 아닌가요?”
대관식에 참석했던 사람들이 흘끗 시안을 돌아보았다.
대관식은 놀라울 정도로 규모가 컸다. 사람이 많고, 절차와 행사도 길고 복잡했다. 오랜 시간 서 있어야 했던 탓에 다리가 아프고 힘들었던 게 사실이었다.
“안 그래도 피로 때문에 쉬셔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때에 이런 행사에 참석하시다니, 쓰러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지요.”
라일러스는 바닥에 주저앉아 당장이라도 눈물을 터트릴 듯한 표정을 지었다.
“레이첼. 레이첼. 왜, 왜 약속을 지키지 않았니. 대체 왜. 중간에 돌아가겠다고 분명 나랑 약속하지 않았어.”
“……약속.”
그때까지 내내 입을 열지 않던 시안이 묵직한 소리를 냈다. 작은 목소리였지만 서린 기운이 흉흉해서 모인 사람 모두가 입을 꾹 다물었다.
시안이 천천히 고개를 들고 라일러스를 보았다.
“지금 약속이라고 하셨습니까, 라일러스 주교님. 그게 대체 무슨 소리입니까.”
라일러스가 바닥에 무릎을 대고 몸을 숙였다.
“용서하십시오, 폐하. 저와 레이첼은 오늘 대관식에서 레이첼이 쓰러질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알고 있었다고?”
“알고 있으면서도…… 폐하의 대관식을 지켜보겠다는 레이첼을 말리지 못했습니다. 레이첼이 대관식을 무척, 보고 싶어 했기 때문에.”
“하.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겁니까? 레이첼이 대관식에 오지 못하게 막든, 내게 미리 언질을 하든 하셨어야 하는 게 아닙니까!”
“죄송합니다. 그것 역시, 레이첼이 원하지 않았습니다. 레이첼은 폐하의 대관식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했어요.”
“그깟 대관식이 뭐라고!”
짧게 숨을 내뱉은 시안이 다시 레이첼을 돌아보았다.
“……미안합니다. 주교님 탓이 아닌데. 나 역시 그토록 레이첼을 바라보면서도 내 기분에 취해서 그녀가 피곤해한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으니까요.”
“레이첼은 마지막까지 황홀하다는 듯 폐하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결국 쓰러지기는 했지만 분명 후회하지 않을 거예요.”
“…….”
그렇겠지.
아마 정신을 차리고 나면 환하게 웃으며 대관식이 정말 멋졌다고, 그걸 볼 수 있어서 무척 기뻤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래도.
그녀가 이런 식으로 누워 있는 모습을 보고 싶지는 않았다.
손등으로 살짝 열이 오른 레이첼의 뺨을 쓸어내린 시안이 말했다.
“여기 모인 의사들은 들으라. 지금부터 그대들이 알고 있고 할 수 있는 모든 지식과 방법을 동원하여 레이첼의 피로를 풀어라.”
“예!”
“단. 서로 상충되는 방법을 써 부작용을 보이는 날에는 여기 모인 전부가 벌을 받아야 할 거다. 주의, 또 주의하도록.”
살벌한 목소리에 의사들이 마른침을 삼켰다.
사태를 지켜보던 타국 사절단의 의사가 고개를 갸웃했다. 제국의 언어에 서툰 그는 티티예니스의 통역 덕분에 레이첼이 쓰러진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가 어눌한 발음으로 물었다.
“예비 황후, 힘들어. 그러니까 잔다. 문제는 무엇입니까?”
사람들의 시선이 사절단 의사에게 쏠렸다.
그는 움찔 놀라며 어깨를 움츠렸지만 질문을 철회하지는 않았다. 놀라운 호기심과 용기였다.
“자고 일어나면 좋은 건강 온다. 아닙니까? 지나치게 많은 걱정과 분노.”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던 라일러스가 입꼬리를 올리며 괴상한 표정을 지었다.
“열 개 국어의 귀재 티티예니스 님. 저놈이 지금 우리 레이첼한테 뭐라고 한 겁니까?”
“레이첼 백작은 그냥 잠들었을 뿐인데 왜 이토록 화내고 걱정하냐는 군요. 이해가 안 되는 모양입니다.”
“……제가 저놈의 멱살을 잡으면 종교적인 분쟁이 생길까요?”
“당연한 소리. 예니스 님을 악신으로 만들고 싶지 않다면 바닥에서 무릎을 떼지 마십시오.”
“그럼 저 대신 이 말 좀 전해주시겠습니까?”
“말씀하십시오.”
라일러스가 사절단의 의사를 향해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레이첼은 말이지, 나와 우리가 아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거든. 그런 사람이 쓰러지면 이유가 무엇이든 정도가 어떻든 세상이 무너진 듯 걱정하는 게 당연하단다.”
티티예니스의 통역에 사절단 의사가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 예비 황후. 모두가 사랑한다. 나는 알았다.”
시안이 한숨을 푹 내쉬었고, 그제야 의사들의 긴 회의가 시작되었다.
* * *
레이첼이 눈을 떴을 때는 깊은 밤이었다. 눈꺼풀과 몸, 모든 것이 무거웠다.
‘침실……? 대관식 도중에 쓰러진 것 같은데. 어떻게 된 거지?’
상황을 파악해 보려고 천천히 고개를 돌리는데 침대 곁에 앉은 시안의 얼굴이 보였다.
‘시안이 보이는 걸 보니 꿈을 꾸나 봐.’
그렇게 꾸고 싶을 때는 꾸지 않더니.
오랜만에 꾸는 시안의 꿈이 반가워서 레이첼은 반쯤 눈을 감은 채로 환하게 웃었다.
“시안. 보고 싶었어요.”
놀랐는지 시안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는 레이첼 쪽으로 몸을 숙이며 믿기지 않는 듯 되물었다.
“레이첼. 지금 뭐라고 했습니까.”
“보고 싶었다고요.”
“……당신이 그런 말을 해주다니 꿈을 꾸는 기분이군요. 몸은 좀 어떻습니까?”
“졸린 걸 빼면 아무렇지도 않아요.”
“하. 다행이군요. 정말이지, 아까는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습니다.”
시안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푹 숙였다.
꿈답지 않은 반응이었다. 보통은 시안 역시 보고 싶었노라고 말하며 다정하게 입을 맞춰주었으니까.
하지만 아무려면 어떤가 싶었다. 이렇게 곁에 있고, 얼굴을 마주 볼 수 있는걸.
레이첼이 손을 뻗어 가까워진 시안의 뺨에 얹었다. 그녀는 매번 꿈을 꿀 때마다 그랬듯 오늘도 자신의 감정을 참거나 숨기지 않았다.
“있죠, 시안. 오늘 낮에 당신의 대관식을 봤어요. 믿기지 않을 만큼 멋져서, 당신이 아주 멀게 느껴졌어요.”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당신은 내게 가장 가까이 닿을 수 있는 사람인데요.”
“제가 당신에게 가장 가까이 닿을 수 있는 사람이에요?”
“당신이 만질 수 있는 내 육신이 남아 있는 한, 언제까지나 그럴 겁니다.”
“그럼 이렇게 해도 되나요?”
레이첼의 손끝이 시안의 단정하고 붉은 입술을 훑었다. 날카로운 턱선을 타고 움직인 손가락은 시안의 귓불을 툭 건드린 뒤 다시 목을 타고 내려왔다.
가만히 멈춰서 레이첼이 만지기 편하도록 얼굴을 내주던 시안이 낮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당신이 원한다면 얼마든 해도 좋다고 말하고 싶습니다만. 이건 조금 위험하네요.”
“오늘은 당신이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날인가 봐요. 매번 적극적이시던데.”
“당신이야말로 오늘은 정말…….”
“어라.”
옷깃에 손가락이 걸리자 레이첼은 그제야 시안이 대관식에서 입었던 옷을 그대로 입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가 가볍게 웃음을 터트렸다.
“낮에 대관식을 봐서 그런가. 꿈에서도 대관식 옷을 입고 계시네요.”
“……꿈?”
시안의 미간이 좁아졌다.
뭔가 생각하는 듯하던 시안이 피식 웃음을 흘리더니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두 손으로 레이첼의 머리 옆을 짚은 그가 중얼거렸다.
“온갖 것을 다 질투하긴 했지만 설마 당신 꿈속의 나를 질투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속삭임에 레이첼이 활짝 웃으며 두 팔을 뻗어 시안의 목을 감았다.
“질투를 하셨어요?”
“그랬습니다. 당신이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그리고 깊이.”
“기뻐요. 더 질투해 주세요.”
“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고통스러울 만큼.”
“저를 사랑해 주세요.”
“그것 역시, 하고 있습니다. 이 이상 더 마음을 내주는 것이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입 맞춰 주세요.”
이번에는 대답 대신 입맞춤이 내렸다. 톡, 마주 닿았다가 떨어지는 가벼운 입맞춤이었다.
레이첼이 볼을 부풀렸다.
“겨우 이게 끝이에요?”
“……대체 당신 꿈속의 나는 당신과 무슨 짓을 하는 겁니까?”
“이런 짓, 저런 짓.”
오랜만에 꾸는 꿈은 달콤했고 레이첼은 기분이 좋았다. 그녀는 시안의 목을 감쌌던 손을 내려 그의 등과 허리를 쓸었다. 요염한 얼굴로 씩 미소도 지었다.
“현실의 당신은 내게 아무 때나 입맞춤을 요구하겠다고 하고는 한 번도 입을 맞추지 않더라고요. 참 아쉬웠어요.”
“……아쉬웠습니까. 당신이 싫어할까 봐 참는 건데요. 당신은 나와 파혼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까.”
“맞아요. 하지만 입 맞추고 싶은걸요. 파혼 같은 것도 사실은 하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그래서 대신 꿈에서 나와 다정하게 입을 맞췄던 거군요.”
“네. 현실에서는 말하지 못했지만 사실 저도 당신을 좋아하니까요.”
“……정말이지.”
슬며시 몸을 낮춰 레이첼의 코끝에 자신의 코끝을 가져다 댄 시안이 말했다.
“원래도 달콤해서 참기 힘들었다는 거 압니까? 그런데 그놈의 장벽이 사라진 당신은 나를 미치게 하네요.”
“더 미쳐주실래요?”
“그 말, 후회하기 없습니다.”
레이첼이 고개를 끄덕이자 시안은 망설임 없이 깊게 입을 맞춰왔다.
매번 꿈을 꿀 때마다 기쁘고 행복해서 이 순간이 끝나지 않기를 바랐었다. 하지만 꿈은 달콤한 만큼 잔인했고, 늘 행복의 절정에서 사라져 버렸다.
오늘도 마찬가지이리라 생각하며 레이첼은 눈을 감았다.
‘오랜만이라서 더 좋았어.’
“…….”
“……레이첼.”
“…….”
“……연모합니다. 사랑해요.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 않을 만큼.”
버거울 만큼 짙은 입맞춤 사이로 시안의 고백이 끊이지 않았다.
‘뭔가 이상한데.’
원래라면 꿈에서 깨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그런데 대체 왜인지.
꿈이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