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Mother Of the Male Lead Who Lives With An Ad**terous Man RAW novel - chapter (12)
불륜남과 사는 남주 엄마가 되었다 (12)화(12/151)
레이첼은 깜짝 놀라 굳어졌다.
왜 이러는 거냐고 물으려는데 시안이 다른 손의 검지를 자신의 입술 앞에 세웠다. 쉿.
잠자코 숨을 죽이자 밖에서 사람 목소리가 들렸다.
“……수가 없습니다!”
“아, 아아! 아아아! 어머니……!”
베렝겔라와 테오도르였다. 복도를 지나는 길인지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엄살 부리지 말고 따라오십시오! 오늘은 끝을 보고야 말 테니까!”
“잘못, 정말 잘못했습니다!”
“겨우 평민 계집 따위를 품느라고, 겨우 그따위 것 때문에 대체 이게 무슨 꼴입니까!”
“어머니, 겨우 평민 계집이 아닙니다. 저는 정말로 제인을 사랑……. 아!”
“사랑 같은 소리 하고 있습니다. 대체 사랑이 넘치는 정략결혼이 얼마나 있다고! 그 모든 자들이 다 백작처럼 추잡하게 불륜을 저지르는 줄 아십니까? 그것도 황태자 전하의 생신 연회에서?”
속 시원한 얘기였다.
고지식해서 레이첼을 구박하는 일이 많았던 베렝겔라였지만 이 순간만은 아군처럼 든든했다.
“어쩌실 겁니까. 소문이 날대로 다 났으니 오늘은 저택에 돌아갈 수도 없을 거 아닙니까!”
“부끄럽긴 뭐가 부끄럽겠습니까. 제가 당당하면 그만, 아, 아!”
“……백작의 중요한 곳을 잘라버리기 전에 입 닥치시지요.”
“어, 어머니. 제발 그것만은…….”
“앞장서십시오. 황궁 근처에 따로 숙소를 구하셨다 들었습니다. 당분간 거기서 지내야겠어요.”
“예에! 당장 모시겠습니다! 여기서 멀지 않은 타운하우스인데 분명 어머님께서도 마음에 드실……. 악!”
목소리가 점차 작아졌다.
긴장을 풀고 입술에 닿은 손을 치우려는데 시안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아직.”
귀를 쫑긋 세워보았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길드의 정보원이라 남들보다 귀가 밝은 걸까?
레이첼은 고요 속에서 눈만 깜빡였다.
시안은 집중한 듯 먼 곳을 바라보다가, 슬쩍 레이첼을 보았다가, 그다음에는 땅을 보았다. 입술에 닿았던 손가락이 천천히 멀어졌다.
“……이제 됐습니다. 마주치지 않도록 샛길로 이동해야겠군요.”
“정말 여러모로 신경을 많이 써주시네요.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부인을 곤란하게 해드린 것이 죄송스러워 그러는 것이니 괘념치 마십시오.”
눈이 마주치자 시안이 슬쩍 웃었다. 그는 부드러운 동작으로 허리를 굽히더니 레이첼에게 커프스단추를 내밀었다.
“저런 놈에게 주기에는 아까운 물건이었습니다.”
처음부터.
가만히 커프스단추를 바라보던 레이첼이 고개를 저었다.
“갖고 싶은 물건이라 하셨지요. 대공 전하께 드리겠습니다. 제게는 이제 필요 없는 물건이라서요.”
“그래도 되겠습니까? 길드 원칙상 받은 비용을 다시 돌려드릴 수는 없습니다.”
“괜찮습니다.”
시안은 제 손바닥에 놓인 단추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주먹을 말아 쥐었다.
* * *
베렝겔라의 예상대로 그날 연회가 끝난 뒤부터 엘로사 저택 앞은 북적였다. 실제로 사람이 모인 건 아니었지만 골목, 창문 너머, 지나는 마차 안에서 수많은 시선과 소문이 쏟아졌다.
“백작이 불륜을 저질렀다죠?”
“무려 황태자 전하의 생신 연회에서요!”
“어쩐지 집에 자주 드나들지 않더라니 그런 짓을 저지르고 있었군요.”
“부인이 남편을 끔찍이 사랑한다던데 불쌍하게 되었어요.”
그러거나 말거나, 레이첼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테오도르도 베렝겔라도 없는 오전을 즐겼다. 오늘은 귀찮게 일정을 캐묻던 칼도 보이지 않았다.
“짜안! 어때, 그레이엄? 엄마가 선물을 준비했어!”
레이첼이 고급스럽게 포장된 물건을 내밀자 그레이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어? 이게 뭐예요? 오늘 제 생일이에요?”
“생일은 아니지만 주고 싶어서!”
시안의 조언을 따라 준비한 선물이었다. 의도와 목적이 있었다고는 해도 미운 놈에게만 선물을 주고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선물을 주지 않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으니까!
그레이엄은 제 몸통보다 길고 얇은 선물을 받아들었다.
“뭘까? 뭐예요? 엄마, 지금 뜯어봐도 되나요?”
“그럼, 당연하지!”
포장지가 찢어지지 않게 살살 벗겨낸 그레이엄은 안에 든 물건의 정체를 확인하더니 환호성을 질렀다.
“우와아! 목검이네요? 와! 저 이거 정말 갖고 싶었던 거예요!”
아이는 벗긴 포장지를 곱게 접어 바닥에 내려놓고 어설프게 목검을 휘둘렀다. 분명 어설픈 몸놀림인데 목검이 움직일 때마다 후웅, 후웅,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났다.
“신난다! 이제 이걸로 엄마 지켜드릴게요!”
“마음에 드니?”
“네, 마음에 들어요! 엄청나게!”
“아, 잠깐. 그레이엄, 조심해!”
“앗!”
너무 신나게 휘둘렀는지 그레이엄이 목검을 놓치고 말았다. 빠른 속도로 움직이던 검은 아이의 손에서 벗어나 허공을 가르며 날아갔고, 공교롭게도 근처를 지나가던 하녀의 머리에 부딪혔다.
빠악!
“윽!”
하녀의 신음에 그레이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아이는 얼른 레이첼의 치맛자락 뒤로 숨으며 중얼거렸다.
“미, 미안…….”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전혀 괜찮지 않은 얼굴이었다. 뚱뚱하고 키가 작은 하녀는 눈을 치뜨고 그레이엄을 잡아먹을 듯 노려보았다. 레이첼이 없었다면 크게 호통이라도 쳤을 모습이었다.
“케리아. 괜찮아?”
“예. 정말 괜찮습니다.”
하녀는 레이첼이 말을 걸고서야 후다닥 자리를 비켰다.
레이첼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마샤의 영향이었다. 도련님을 제대로 돌보지 않고 무시하던 유모 덕분에 온 집안의 사용인이 그레이엄을 무시했다.
칼이 경고하겠다고 했었는데, 역시 소용이 없었던 걸까.
치마 뒤에 숨어 있던 그레이엄이 울먹였다.
“어, 엄마. 죄송해요. 제가 잘못했어요…….”
“아냐.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잖아. 케리아한테는 엄마가 사과할 테니까 다음에는 주변에 사람이 있는지 잘 살펴보고 꼭 필요할 때만 휘두르자. 알았지?”
“응! 앞으로는 조심할게요. 검도 두 손으로 꽉 붙잡을게요!”
“착하다, 우리 그레이엄.”
“에헤헤. 그럼 엄마. 저 방에 포장지 좀 가져다 두고 올게요!”
“응? 포장지를?”
“엄마가 주신 거니까요!”
그레이엄이 바닥에 내려두었던 포장지를 주워들고 종종걸음으로 멀어졌다.
그레이엄이 자리를 비운 사이, 레이첼은 자리를 비킨 하녀 케리아를 따라 정원으로 나왔다.
케리아를 비롯한 하녀들은 저택 입구 근처에 모여 서서 그레이엄과 레이첼의 험담을 늘어놓고 있었다.
“아, 정말 아파 죽겠다니까! 하여간 귀찮은 도련님 같으니라고!”
“어휴, 이거 혹 나겠는데?”
“혹 났으면 좋겠어. 확 의료 비용이라도 청구하게.”
“나 아는 의원 있어. 거기서 진료받으면 진료비 뻥튀기해 줄 거야!”
얼씨구.
언젠가 다 해고할 예정이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시기를 앞당겨야 할 모양이었다.
레이첼은 팔짱을 끼고서 근처 석조 난간에 비스듬하게 기대섰다.
하녀들은 레이첼이 듣는지도 모르고 실컷 수다를 늘어놓았다.
“하여간 끼리끼리 지내는 거라더니 가족이 다 똑같아.”
“맞아. 엘로사 집안에는 제대로 된 인간이 없다니까. 바람피운 남편이나, 남편이 바람피우게 만든 부인이나, 철없는 아들이나.”
남편이 바람을 피우게 만든 부인? 이것들이 보자 보자 하니까.
바람은 테오도르가 피웠는데 레이첼한테 무슨 잘못이 있다고! 레이첼은 순진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부모님이 정해준 짝이랑 결혼해서 열심히 살았을 뿐이란 말이야!
게다가 그레이엄은 이제 네 살이거든? 한국 나이로 여섯 살이란 말이야. 그런 애한테 뭐, 철이 없어? 다시 제대로 사과하고 치료비를 주려던 생각이 쑥 들어갔다.
하녀들은 뭐가 재미있는지 저들끼리 키득키득 웃었다.
“레이첼 부인은 예쁘기만 했지 멍청하잖아. 질릴 만해. 저런 멍청한 여자가 좋다고 따라다니면 밤일도 하기 싫을걸?”
“맞아. 레이첼 부인 집착이 어지간했어야지. 나 같아도 바람피웠을 거야.”
“헛간에서 일하는 제이크가 그러는데 자기 같아도 레이첼 부인이랑 결혼해서 사는 건 끔찍했을 거라더라! 자기 집 재산이 줄줄 새 나가는 것도 모르면서 안주인이라니! 아하하!”
더는 듣고 있을 수가 없어서 뭐라 쏘아붙이려던 순간이었다.
때마침 검은 말을 탄 기수가 정원을 가로질러 와 입구 앞에 멈춰 섰다. 말 안장에 우편국의 문장이 그려져 있었다.
기수를 따라 시선을 옮기던 하녀들은 입구에 팔짱을 끼고 선 레이첼을 발견하더니 화들짝 놀라 고개를 조아렸다.
하녀들은 긴장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혹시 레이첼이 대화 내용을 들었을까 걱정하는 눈치였다.
저렇게 눈치 볼 거면서 그렇게 크게 떠들었다니 어이가 없었다.
말에서 내린 기수가 레이첼에게 예를 갖췄다.
“안녕하십니까. 혹시 엘로사 백작 부인 되십니까?”
“맞아요.”
허리춤에 매달아 두었던 귀족 패를 꺼내 보이자 기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서신과 물건을 전하러 왔습니다.”
“누가 보냈죠?”
“마샤라는 분이 보내셨습니다.”
그러고 보니 마샤에게 배상금을 보내라고 한 날짜가 이즈음이었다. 하녀들을 혼내줄 생각이었는데 마침 잘 되었다.
기수가 말 뒤에 묶어두었던 짐을 내려 레이첼에게 건넸다. 마샤의 이름이 적힌 편지도 함께였다.
[요청하신 배상금을 보내드립니다. 은혜가 아니었다면 저는 배상금을 준비하느라 시골에 남은 가족들과 굶어 죽어야 했을 겁니다. 다시는 부인의 눈에 띄지 않고 조용히 살겠습니다.마샤]
서신과 건네받은 짐의 무게를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나중에 답장 보낼 때 다시 사람을 보낼게요.”
“늘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수는 모자를 살짝 벗으며 인사하고 다시 말에 올랐다.
레이첼은 몸을 돌려 입구 근처 탁자에 받은 물건을 내려놓았다. 끈을 풀고 상자를 열어 안에 든 서류를 꺼냈다. 서류에 적힌 내용을 확인한 그녀가 씨익 미소 지었다.
기수가 사라지고 레이첼이 웃자 하녀들이 안도하며 긴장했던 어깨를 내렸다.
뭘 안도하고 있어.
“케리아.”
그레이엄을 노려보았던 시녀가 화들짝 놀라며 몸을 굳혔다.
“예, 예에.”
“아까 그레이엄에게 맞아서 아팠지? 받아. 치료비야.”
레이첼은 마샤가 보낸 돈주머니를 케리아에게 던졌다.
케리아의 얼굴이 믿을 수 없을 만큼 환해졌다. 의원 진료에 필요한 돈은 3코퍼였고 주머니에 든 돈은 3만 코퍼, 3골드였으니까.
“가, 감사합니다, 마님!”
“감사하긴 일러.”
“……예?”
“그 돈, 아마 곧 전부 써야 할 거거든.”
“그게 무슨…….”
레이첼이 빙긋 웃었다.
“네가 엘로사 백작 가문에 치러야 할 배상금이 450골드라서 말이야.”
케리아를 포함한 하녀들의 얼굴이 전부 하얗게 질렸다.
관대한 레이첼은 모든 사용인에게 황궁 다음으로 높은 급료인 월 1골드를 지급했다.
그런 급료를 한 푼도 쓰지 않고 37년 이상 모아야 갚을 수 있는 금액을 배상금으로 내놓으라 했으니 놀랄 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