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Mother Of the Male Lead Who Lives With An Ad**terous Man RAW novel - chapter (122)
불륜남과 사는 남주 엄마가 되었다 (122)화(122/151)
어이가 없어진 레이첼이 대체 어떻게 된 거냐는 눈빛으로 케이티를 돌아보았다.
케이티가 빙긋 미소 지었다.
“특이한 선물이라고 말씀드렸잖아요. 멜리타 부인께서 보내셨어요.”
“예비 황후가 되실 레이첼 백작님의 전속 의상사가 된 것을 무척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전속 의상사?”
캐롤이 흥겨운 듯 목소리를 높였다.
“앞으로 1년간 레이첼 백작님의 의상만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곧 황후가 되실 텐데 드레스가 많지 않으시니까요. 제가 옷장을 채워드리겠습니다.”
곁에서 케이티가 고개를 끄덕였다.
“특이하지요? 캐롤처럼 인기 있고 몸값이 비싼 의상사를 전담으로 쓰는 건 흔치 않은 일이거든요. 비용도 멜리타 부인께서 미리 내셨다고 하더라고요.”
레이첼의 곁으로 바짝 다가온 캐롤이 속삭였다.
“레이첼 백작님께 면박을 준 일 때문에 한동안 이아콥스 가문이 멜리타 부인에게 돈을 주지 않았거든요. 저를 백작님께 선물로 보내는 대신 다시 돈을 쓰게 되셨다고 해요.”
“그랬구나.”
멜리타가 스테판의 어머니이자 사교계의 꽃이기는 했지만 상대는 레이첼이었다.
결국 황후가 될 사람을 공식적으로 면박 준 셈이었으니 가문 차원에서 미리 멜리타를 처벌한 건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그래야 가문이 피해를 보지 않을 테니까. 시안이라면 친구인 스테판의 가문이라도 봐주지 않고 벌을 내렸을 거야.’
게다가 하필 처벌이 돈을 못 쓰는 것이었다니. 한 달에 드레스를 30벌씩 맞추던 멜리타에게는 다른 어떤 것보다 고통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레이첼은 자신을 찾아와서 엎드려 빌던 멜리타를 떠올렸다.
당시에는 왜 저렇게까지 사과하나 싶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하니 그렇게까지 사과할 일이었다. 적어도 멜리타에게는.
캐롤은 신이 난 얼굴로 레이첼에게 들고 온 상자를 내밀었다.
“이건 백작님의 선물인 제가 백작님께 드리는 선물입니다. 곧 결혼식을 치르실 테니까요. 분명 도움이 되실 거예요.”
결혼식이라는 말에 레이첼이 움찔 놀랐다.
“……결혼식에 도움이 된다고?”
“정확히 말하자면 신혼 생활에요!”
고개를 갸웃한 레이첼이 선물을 뜯으려 했지만 캐롤이 만류했다.
“아직! 지금 말고 나중에, 밤에 혼자서 뜯어 보세요.”
“꼭 밤이어야 해?”
“지금 뜯어 보셔도 되기는 한데 아마 레이첼 백작님께서 그러고 싶지 않으실 거예요.”
“……?”
대체 뭐길래.
어깨를 들썩이며 흥겨움을 감추지 못하던 캐롤은 내일 의상실 직원들과 함께 다시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갔다.
캐롤이 문을 닫고 사라지자 케이티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여튼, 캐롤도 장사꾼은 장사꾼이라니까요. 돈 벌게 됐다고 좋아하는 거 봐요.”
“그러게.”
사교 시즌이 끝난 겨울은 의상실의 비수기였다.
겨울 드레스 주문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대부분의 귀족이 영지로 돌아가거나 저택에 틀어박혀 지내는 덕에 사교 시즌만큼 주문이 많지는 않았다.
그런 시기에 멜리타에게 선금을 받고 레이첼의 드레스를 만들게 되었으니까.
더불어 예비 황후의 전속 의상사라는 명예도 얻게 되었고 말이다. 레이첼의 전속을 그만두는 순간, 캐롤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을 것이다.
캐롤의 입장에서는 신이 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레이첼은 캐롤이 주고 간 상자를 들어 올리며 어깨를 으쓱했다.
“뭐, 돈은 좋은 거니까. 안 좋은 척하는 것보다는 좋은 걸 좋다고 하는 게 낫잖아.”
“그것도 적당히 해야죠. 저런 애들이 나중에 돈 때문에 뒤통수치는 거라고요. 가만 보면 백작님은 너무 순진하고 착하시다니까.”
“나 무서운 사람인데. 케이티는 나를 너무 순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
레이첼이 눈에 힘을 주며 눈썹을 치켜떴고, 케이티는 이렇게 말했다.
“아이고, 차암 무섭네요.”
“…….”
“백작님이 사기 안 당하게 제가 곁에서 지켜 드릴 테니까 오늘은 이만 쉬세요.”
“으응.”
케이티가 방을 나간 뒤 혼자 남은 레이첼이 침대에 누워 중얼거렸다.
“나 진짜 무서운 사람인데. 케이티는 내가 테오도르랑 시가르한테 한 짓을 직접 보지 않아서 그러는 걸까……?”
악당 앞에서만 세지는 자신이 케이티 앞에서는 순진한 다람쥐쯤으로 보인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는 레이첼이었다.
그날 저녁.
방에서 혼자 캐롤의 선물을 풀어본 레이첼이 환하게 웃었다.
“와아, 예뻐. 역시 캐롤……!”
상자 안에 들어 있던 것은 고급 실크로 만든 우아하고 아름다운 잠옷이었다.
“흐음. 별거 없는데. 왜 혼자서 열어보라고 했을까?”
고개를 갸웃한 레이첼이 상자 안에 놓인 쪽지를 펼쳤다.
[신혼의 묘미는 역시 과감함 아니겠어요? 시스루 잠옷입니다.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네요.캐롤]
“시스루 잠옷?”
그제야 잠옷의 목 부분이 깊게 파인 데다 길이가 다른 잠옷에 비해 파격적으로 짧다는 것을 깨달았다. 게다가 실크는 뒤가 다 비쳐 보일 만큼 얇았다.
“맙소사. 과감한 것도 정도가 있지. 이건 너무 과감하잖아.”
이걸 시안의 앞에서 입으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나 참. 이런 선물을 주다니.”
“그러게요. 이런 선물을 주다니.”
레이첼은 갑자기 들린 목소리에 깜짝 놀라 들고 있던 잠옷을 등 뒤에 감췄다.
“시, 시, 시, 시안. 언제 왔어요?”
문을 반쯤 열고 안을 들여다보던 시안이 빙긋 웃었다.
“방금 왔습니다. 노크도 하고, 들어가도 되냐고도 물었는데 답이 없어서요. 잠든 것 같아서 슬쩍 얼굴만 보고 갈 생각이었습니다.”
“아……. 모, 못 들었어요. 어서 오세요.”
“실례하겠습니다.”
시안이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와 침대 옆 의자에 앉았다.
레이첼은 침대 위에 감추지 않은 잠옷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얼른 그것들을 주워 이불 속에 넣었다. 방이 어두워 잠옷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기를 바랐다.
“지금 끝나셨나요? 여전히 일이 바쁘신가 봐요.”
“바쁜 일은 이제 거의 다 마무리되었습니다. 시가르가 일을 워낙 엉망으로 해놔서 수습하느라 생각보다 시간이 좀 걸리네요. 저는 그보다 다른 적이 더 신경 쓰입니다.”
“다른 거요?”
별생각 없이 되묻던 레이첼은 문득 시안과 눈이 마주쳤다.
기쁜 듯 즐거운 듯 금빛 눈동자를 반짝이는 시안을 보며 레이첼은 순간 말을 잊었다.
“레이첼.”
시안이 몸을 기울였다. 그의 따스하고 보드라운 입술이 레이첼의 뺨에 살며시 닿았고, 그는 그 상태로 무언가를 속삭였다.
레이첼의 뺨이 화르륵 달아올랐다.
“시……! 어떻게 그런 얘기를……!”
“싫다면 강요하지는 않을 겁니다. 다만 제 마음이 그럴 거라는 얘기지요.”
얼굴이 빨개진 레이첼이 입술을 꾹 깨물었고, 시안은 그런 레이첼이 사랑스럽다는 듯 한껏 눈을 접으며 웃었다.
“그럼 얼굴을 봤으니 나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돌로라사가 잠들기 전에 돌아가야 해서요. 내일 또 들르겠습니다.”
“네에. 조, 조심해서 돌아가세요.”
탁—
건조하게 문 닫는 소리가 들리고서야 레이첼은 숨을 터트리며 이불에 얼굴을 묻었다.
‘지금 등 뒤에 감춘 것 말입니다. 나중에 입어주면 기쁠 겁니다. 당신이 그걸 입는다면 분명 나를 위해서일 테니까. 어쩌면 그대로 심장이 멎을지도 몰라요.’
보지 못했길 바랐는데, 시안은 시안이었다.
시안은 강요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그가 기쁠 거라고 말한 이상 레이첼은 이 요사스러운 잠옷을 버릴 수 없었다.
언젠가, 혹시나, 잠깐이라도 입지 않을까 싶어서.
시안이 그 금빛 눈동자를 반짝이며 기뻐해 준다면 자신 역시 심장이 멎을 것처럼 기쁠 것을 알기 때문에.
요사스러운 밤이었다.
* * *
의사의 말대로 레이첼의 잠은 서서히 줄었고, 피로도 사라졌다. 그 어느 때보다 몸이 가벼웠다.
레이첼이 몸을 회복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는 소식에 다시 축하가 쏟아졌다.
너무 많은 사람이 저택에 찾아오는 바람에 당분간 허락받은 사람만 들어오도록 제안을 걸어야 할 정도였다.
프람 저택은 며칠째 오가는 선물과 서신으로 번잡했다.
오늘도 케이티는 서신을 한 뭉치나 가져왔다.
벽난로 앞에 앉아 있던 레이첼이 서신을 받았다.
“오늘 도착한 서신은 열두 통입니다.”
“정말 끝도 없이 밀려드네.”
“그래도 열두 통이면 많이 적어졌어요. 처음엔 하루에 백 통 가까이 받았잖아요.”
“그랬지. 수도에 사는 귀족이며 상인들이 전부 서신을 보내는 통에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케이티가 고개를 끄덕였다.
서신을 넘기며 보낸 사람의 이름을 살피던 레이첼이 반색했다.
“어머, 베아트릭스 부인께서 서신을 보내셨어.”
“정말요?”
얼른 서신을 펼치자 단정하고 바른 필체로 쓴 편지가 나타났다.
[레이첼 백작님께.잘 지내시나요? 저는 덕분에 무척 잘 지낸답니다. 이렇게 온기가 감도는 따뜻하고 아늑한 곳에서 지낸 것이 얼마 만인지 모르겠어요.
몸이 아프다는 소식에 걱정했는데 다행히 금세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기에 안심했습니다.
따스한 봄이 오면 아트레이유를 데리러 갈 테니 그때까지만 아이를 부탁드려요.
베아트릭스, 이아콥스]
힘주어 쓴 이아콥스라는 글자에서 베아트릭스의 평온이 느껴졌다. 그녀는 아이사라는 이름을 버리고 수도와 멀리 떨어져 살면서 점점 안정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레이첼이 고개를 들어 창밖을 살폈다.
아트레이유는 그레이엄, 돌로라사와 함께 정원에서 눈놀이를 하고 있었다.
“캬캬캬! 나는 눈 인간이다! 우워어어! 잡히는 사람 나랑 눈사람 만들기!”
“꺄악! 눈 인간이 온다! 도망쳐! 공격해!”
“아하하! 공녀님, 그러다가 잡힐 거 같은데요!”
아이들은 온몸이 눈 범벅이 되었는데도 뭐가 그리 즐거운지 까르륵 웃음을 터트렸다.
레이첼의 입가에도 자연스레 미소가 걸렸다.
“베아트릭스 부인께 답장을 써야겠어. 아트레이유가 쓴 편지도 같이 보내드리자.”
“알겠습니다.”
“그리고 또 누가 서신을 보냈을까. 음……. 베네펠의 비비에트 공주랑, 스트리아에서 온 서신……. 어라? 이 사람도 서신을 보냈네?”
“누군데요?”
가볍게 웃음을 터트린 레이첼이 케이티에게 서신을 보여주었다.
케이티의 표정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세상에, 어쩜 이렇게 낯이 두꺼울 수가! 연락하지 말고 조용히 찌그러져서 살라고 분명 얘기했는데, 감히 서신을 보내다니요!”
“그런 얘기를 했었어?”
“당연하죠! 백작님을 피곤하게 만든 원흉이나 다름없는 사람인데!”
모든 사건의 시작이자 원흉, 제인이 보낸 서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