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Mother Of the Male Lead Who Lives With An Ad**terous Man RAW novel - chapter (123)
불륜남과 사는 남주 엄마가 되었다 (123)화(123/151)
레이첼이 말했다.
“너무 제인을 미워하지 마. 제인이 아니었다면 나는 아직도 테오도르랑 같이 살고 있었을 거 아냐. 난 오히려 고마운걸.”
“이것 봐요, 이것 봐. 백작님은 너무 무르시다니까!”
“시안도 만나지 못했을 거고.”
약혼반지를 보며 덧붙인 말에 케이티가 입을 다물었다.
테오도르와 헤어지며 레이첼은 많은 것을 얻었다.
작위와 부, 많은 사람의 애정과 명예, 살인귀가 아닌 아들의 미래 같은 것들.
그중에서 가장 소중한 것 한 가지가 시안이었다.
파혼을 원하면서도 레이첼은 내심 기대했다. 시안이 말해준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이 정말 파혼을 막아줄지.
‘시안은 기다리라고 했어. 믿자. 믿고 기다리자. 다른 사람도 아닌 시안의 말이니까.’
마음을 굳힌 레이첼은 입꼬리를 올리며 제인의 서신을 펼쳤다.
[케이티 님께서 연락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한 번은 연락을 드려야 할 것 같아 서신을 씁니다.백작님께서 편찮으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제 탓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고통스럽고 또 죄송스럽습니다.
건강에 좋다는 약초를 보낼까 하다가 제가 보내드린 건 어차피 드시지 않을 것 같아 서신만 보냅니다.
최근 황제 폐하의 배려로 아버지의 서신을 받았습니다.
정말이지, 평생 감사해도 부족할 거예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늦었지만 약혼도, 예비 황후 폐하가 되신 것도 축하드립니다.
멀리 제국 변방 시골에서, 제인]
옆에서 레이첼과 함께 서신을 읽던 케이티가 미간을 찌푸렸다.
“세상에, 황제 폐하께서도 똑같은 분이셨네! 죄를 저지른 것들이 뭐가 예쁘다고 서신까지 전달해 주신 거죠?”
“국무를 처리하기도 바쁠 텐데 이런 작은 것까지 신경 쓰고. 시안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야.”
제인에게 칼의 서신을 전하는 일.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평생 감옥에서 살아야 하는 칼과 작별 인사도 하지 못한 채 아버지를 잃은 제인에게는 간절한 일이었을 것이다.
시안은 그가 베푸는 아주 작은 호의가 누군가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은혜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었다.
사랑과 존경이 가득 담긴 눈으로 시안을 떠올리는 레이첼을 보며 케이티가 고개를 저었다.
“또, 또 황제 폐하 생각하신다.”
“아하하, 들켰네. 다음 서신 읽어야지.”
민망해진 레이첼이 서신을 넘겼다.
이번에도 아는 사람에게 온 서신이었다.
“마샤? 우와, 정말 오랜만이다.”
“마샤……? 예전에 그레이엄 도련님의 유모였던 사람 말인가요?”
“응. 내가 테오도르랑 헤어질 때 제일 먼저 저택에서 내보낸 사람이었어. 마샤까지 서신을 보내줄 줄 몰랐는데, 반갑네.”
서신 안에는 제인이 보낸 것처럼 레이첼의 건강에 대한 염려와 예비 황후가 된 것을 축하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케이티는 마샤가 그 뒤에 덧붙인 내용을 보더니 헛웃음을 지었다.
도와주신 덕분에 마을이 훨씬 살기 좋아졌습니다.
이 지역을 다스리는 영주님도 버린 시골 마을을 이렇게까지 돌봐주시다니……. 저를 비롯해 마을 사람들 모두가 백작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백작님. 언제 이런 일을 하셨어요? 병원, 학교, 보육원까지 세우셨다고요? 심지어 저 모르게?”
“케이티는 바빴잖아. 제인 도와주는 걸 싫어했으니까 마샤 도와주는 것도 싫어할 것 같았고. 싫어할 일에 손 벌릴 수는 없었어.”
“……황제 폐하가 작은 것도 신경 써서 대단하다고 하시더니 백작님도 마찬가지시네요.”
“그런가?”
마샤가 사는 마을은 무척 작았다. 병원이며 학교, 보육원 같은 기본적인 시설이 없었고,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빠져나가 더 살기 힘들어지는 악순환을 겪었다.
레이첼은 그곳에 꼭 필요한 시설들을 세워주었다. 적지 않은 투자였지만 덕분에 동네는 활기를 띠었다.
살기 좋아진 마을에는 사람이 몰릴 테고, 장기적으로는 기관을 세운 레이첼에게도 이득이 될 것이다.
케이티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다음에는 혼자 하지 마시고 꼭 제게 말씀하세요. 이러니까 피로가 쌓이셨죠.”
“으응.”
“게다가 개인적인 감정과 상관없이 저는 백작님께 도움을 드려야 하는 사람이에요. 제 직업의식을 무시하지 말아 주세요.”
“그건…… 내가 잘못했네. 미안. 사과할게.”
레이첼은 풀 죽은 아이 같은 모습으로 남은 서신을 확인했다.
그리고 모든 서신의 마지막에, 레이첼이 오래도록 기다리던 소식이 나타났다.
[제임스월드 프람과 라일리 프람 부부의 묘지 이장 완료]짧은 글귀를 읽은 레이첼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케이티! 드디어, 드디어 이장이 끝났대!”
“오래 기다리셨죠? 중간에 날씨가 추워져서 땅이 어는 바람에 늦어졌대요.”
“아, 그랬겠네. 케이티도 중간에서 고생 많았어. 고마워, 정말 고마워, 케이티.”
“감사는……. 나중에 받을게요.”
“응? 왜?”
“그게, 사정이 조금 있는데 지금은 말씀드릴 수가 없어서요.”
“뭔지는 모르겠지만 알았어.”
레이첼이 눈 쌓인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제 아트레이유는 아예 눈으로 온몸을 덮은 채 얼굴만 내놓고 있었다.
“눈이 녹으면 바로 다녀와야겠어. 준비해 줄래? 아빠랑 같이 다녀올게.”
“알겠습니다. 혹시 모르니 의사에게도 전달해 두겠습니다.”
“고마워.”
* * *
묘지 이장이 마무리되었다는 소식이 도착한 뒤 기다렸다는 듯 눈이 그치고 날이 포근해졌다.
길을 덮었던 눈이 사라지자마자 레이첼은 라일러스와 마차를 타고 프람 성으로 향했다. 지난번과 달리 시녀들과 의사가 탄 마차가 프람 가문의 마차를 뒤따랐다.
프람 영지 시내로 들어서자 라일러스가 창밖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많이 변했구나. 여러모로.”
“그러게요.”
“레이첼 너를 만나러 가는 길에 여기 잠시 들렀었단다.”
“여기에요?”
“여기는 제임스월드와 내가 나고 자란 곳이니까.”
“아, 그러고 보니 아빠도 여기서 자라셨겠네요. 왠지 아빠는 지금 이 모습 그대로 하늘에서 뚝 떨어지셨을 것 같았어요.”
라일러스가 피식 웃었다.
“나도 예전엔 성직자가 아니라 그냥 버릇없는 자작 가문의 꼬맹이일 뿐이었어. 우리 가문은 프람 백작 가문을 모시는 봉신 가문 중 하나였지.”
“그랬군요.”
“제임스월드와 나는 나이가 같다는 이유로 함께 교육을 받게 되었단다. 그게 계기였어.”
마차 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아련한 얼굴로 바라보며 라일러스가 말을 이었다.
“누구에게나 자상하던 제임스월드와 누구에게나 스스럼없던 나는 곧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고, 우리는 프람 영지 곳곳을 탐험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지.”
“즐거우셨나 봐요.”
“그럼. 엄청나게 즐거웠단다. 덕분에 제임스월드가 죽은 뒤에는 여기 와볼 수가 없었어. 녀석은 없는데 어딜 봐도 추억뿐이라 마음 둘 곳이 없을 것 같았거든.”
그러더니 갑자기 입꼬리를 올렸다.
“그러다가 오랜만에 영지에 와봤는데 웬걸. 예전 프람 영지의 모습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더구나. 이름도 리니어 백작 영지인가 뭔가로 바뀌었고 말이다.”
“네. 테오도르가 리니어 백작에게 싸게 팔아서 그렇대요.”
영지 없이 작위만 가지고 있던 리니어 백작은 싸게 나온 프람 영지를 발견하고 냉큼 사들였다.
그는 영역 표시하듯 도시 이름이며 도시 전체의 구조를 바꿔 프람 영지의 흔적을 전부 지워 버렸었다.
“그런데 참 신기하지. 지금은 예전 프람 영지의 분위기가 풍겨.”
확실히.
겨우 계절 하나가 바뀌었을 뿐인데 영지의 분위기가 전과 달랐다.
영지에 살던 사람들이 제임스월드가 다스릴 때 쓰던 물건과 장식을 하나씩 꺼내기 시작한 덕분이었다. 영지는 묘하게 포근하면서도 온기가 감돌았다.
라일러스가 인자하게 웃으며 레이첼을 돌아보았다.
“고맙구나, 레이첼. 전부 네 덕분이야.”
“무슨 말씀이세요. 전부 예전 영지를 잊지 않아 준 영지민들 덕분이죠.”
“겸손한 녀석.”
마차가 시내를 지나 프람 성안으로 들어섰다.
정원에서 일하던 사용인들이 프람 가문의 마차를 보자 몸을 굽혀 예를 갖췄다.
성은 지난번에 방문했을 때와 달리 레이첼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는 듯 그녀의 취향으로 꾸며져 있었다. 입구도, 정원도, 묘지를 모셔둔 성 뒤편으로 가는 길까지도.
창밖으로 변한 성의 모습을 흐뭇하게 구경하던 레이첼은 묘지 입구에 마차가 멈춰서자 미간을 좁혔다.
묘지 입구에 웬 말 한 마리가 서 있었고, 입구 문도 열려 있었다.
“말?”
“먼저 온 사람이 있는 모양이구나.”
“먼저 온 사람이라니……. 아빠랑 저 말고 여기 올 사람이 또 있나요?”
라일러스가 빙긋 웃으며 마차 문을 열었다.
“있고말고.”
겉옷을 걸쳐 입고 돌길을 따라 묘지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새롭게 꾸민 묘지는 구석구석 신경 써서 만든 티가 났다. 심어 놓은 나무며 울타리 하나까지 허투루 매만지거나 대충 가져다 놓은 것이 없었다.
단정하고 아름다운데 과하지 않고 차분한 것이 절로 경건한 마음이 들었다.
‘신경 써 달라고 부탁하긴 했지만 이 정도로 신경 썼을 줄은 몰랐네. 나중에 케이티한테 고맙다고 해야겠는걸.’
그렇게 묘가 보이는 곳까지 걸어갔을 때.
레이첼은 우뚝 걸음을 멈췄다.
“……어…….”
멈추지 않고 제임스월드와 라일리의 묘 앞까지 다가간 라일러스가 먼저 와 있던 사람에게 예를 갖췄다.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오셨군요, 주교님.”
“친우의 묘에 예를 갖춰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약혼자의 부모님입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에요.”
레이첼이 입술을 달싹였다.
“시, 시안. 당신이 어떻게 여기…….”
“레이첼.”
뒤를 돌아보며 레이첼을 향해 부드럽게 미소 짓는 남자.
시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