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Mother Of the Male Lead Who Lives With An Ad**terous Man RAW novel - chapter (128)
불륜남과 사는 남주 엄마가 되었다 (128)화(128/151)
“꼬맹이 황녀님은 착하고 좋은 누나예요! 저는 황녀님 말 잘 듣는 예쁜 동생이 될 거예요!”
확신에 찬 대답에 레이첼은 순간 멍해졌다.
‘그레이엄은 이미 돌로라사를 가족으로 생각하고 있었어.’
레이첼 대신 그레이엄의 말에 반응한 건 아트레이유였다.
“이야. 그레이 너 기특한데? 합격! 만점! 너를 아기 황녀 둘리의 동생으로 인정한다!”
“와, 진짜요? 신난다!”
“아기 황녀 둘리는 내 동생이니까 그럼 너도 이제 내 동생이야! 너는 이제부터 꼬마 기사 그레이 하자!”
“꼬마 기사 그레이! 좋아요! 멋있다!”
“좋아, 좋아! 황궁에 살 때는 맨날 맨날 혼자였는데 동생도 한 명 더 생기고, 형아도 생기고, 할아버지도 생기고, 엄마도 곧 온다! 나는 가족 부자다! 신난다. 우헤헤!”
“우와아. 아트레이유 형은 좋겠다! 나는 동생 없는데!”
“엣헴! 부러우면 엄마한테 만들어 달라고 해라!”
“엄마가 만들어 주는 거예요? 엄마, 동생 만들어 주세요! 많이! 나는 동생 열 개 갖고 싶어요!”
“짜식. 동생은 열 개 아니고 열 명이라고 하는 거야.”
“열 명! 백 명! 많이!”
기분 좋아진 아트레이유가 허리에 손을 척 얹으며 잘난 체했고, 그레이엄이 눈을 빛내며 손뼉을 쳤다.
라일러스가 제자리에 굳은 듯 선 레이첼에게 다가왔다.
“놀랐니?”
“네에. 조금요. 그레이엄이 황녀님을 이미 가족으로 생각하고 있을 줄은 몰랐거든요.”
“그동안 고민하느라 고생 많았다. 네가 이 일에 얼마나 책임감을 느끼는지 알고 있어서 미처 뭐라고 조언도 못 하겠더구나.”
“제가 고민한다는 걸 알고 계셨어요?”
“그럼. 이래 봬도 내가 그 유명한 라일러스 반이란다.”
레이첼의 눈동자에 물기가 가득해졌다.
전부 알고 있으면서 재촉하거나 강요하지 않고 기다려준 라일러스의 깊은 속마음이 고마웠다.
“고마워요, 아빠…….”
“어허허. 딸에게 감사 인사를 받으니 어깨가 으쓱하고 기분도 아주 좋구나. 그럼 어디, 착한 일 한 번 더 해볼까?”
“네?”
흠흠, 헛기침한 라일러스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레이엄. 혹시 황제 폐하와 레이첼이 결혼하지 않으면 어떻겠느냐?”
“네? 스승님이랑 엄마가 결혼을 안 한다고요? 왜요?”
“삐빅! 탈락! 떼끼! 할아버지, 이상한 소리 하면 못써!”
“황제 폐하와 레이첼이 결혼하지 않으면 너와 황녀님이 결혼할 수 있거든.”
“……? 웅? 저는 꼬맹이 황녀 누나랑 결혼 안 할 건데요?”
그레이엄은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고, 아트레이유는 의자를 번쩍 들어 올리며 격렬하게 소리쳤다.
“야이 사이비 교주야아아! 누가 누구랑 결혼을 해? 안 돼! 안 된다고오오오!”
“웅?”
“우리 둘리는 안 돼! 우리 둘리는 아직 아기 황녀라고! 나는 이 결혼 반댈세!”
“어이쿠. 의자는 내려놓고 얘기해!”
“싫어! 싫어어! 아기 황녀 둘리는 내가 지켜 줄 거야! 결혼의 기역 소리만 내 봐! 의자로 다 뿌셔주겠어!”
“그래, 그래. 취소. 취소하마. 원, 녀석.”
“쒸이. 한 번만 더 그런 소리 해 봐. 내가 할아버지 지팡이로 귀 팔 거야!”
라일러스가 하하 웃으며 레이첼을 돌아보았고, 레이첼이 허탈하게 마주 웃었다.
‘내가 너무 깊게 생각했었나 봐. 당사자도 주변 사람들도 원하지 않는 아이들의 인연을 가지고 끙끙댔다니.’
마음이 깃털처럼 가벼웠다.
이제 마지막, 돌로라사의 마음만 확인하면 됐다.
‘아까 반응을 생각하면 이미 확인한 거나 다름없지만…… 그래도 확실히 해두는 게 좋으니까.’
* * *
다음날, 레이첼은 황궁으로 돌로라사를 찾아갔다.
때마침 돌로라사도 레이첼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며 거리로 나가자고 했고, 두 사람은 마차를 타고 거리로 나왔다.
수도 번화가의 아이스크림 가게 쪽으로 걷는 동안 레이첼은 돌로라사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아이는 행복하다는 듯 수줍게 웃었다.
레이첼의 가슴이 찡 울렸다.
‘그래. 황녀님은 나를 좋아하셨어. 처음 만났을 때부터.’
늘 고마워하던 돌로라사의 호의였지만 오늘은 평소보다 더 기꺼웠다. 아이의 호의가 자신과 시안의 결혼을 기꺼이 허락해 줄 것 같아서였다.
레이첼이 가볍게 말을 붙였다.
“기분이 무척 좋아 보이세요.”
“으응. 사실 아침까지는 좀 슬펐는데 지금은 좋아요.”
“슬프셨어요? 아, 혹시.”
어제 일 때문인가요, 하고 물으려다가 얼른 입을 다물었다.
돌로라사의 황금색 눈동자가 순수한 기쁨의 빛을 띠어서였다.
“레이첼 백작이랑 아이스크림 가게에 꼭 가보고 싶었거든요. 전에 그레이엄이 레이첼 백작이랑 둘이 다녀왔다고 자랑해서 부러웠어요.”
“그러셨군요.”
“게다가 레이첼 백작이 저한테 할 얘기가 있다고 했으니까요. 마침 저도 레이첼 백작에게 할 얘기가 있었는데. 마음이 통해서 신기하고 놀라웠어요.”
돌로라사가 하고 싶은 얘기는 무엇일까.
파혼의 이유를 물으려는 걸까? 아니면 파혼하지 말라고 부탁하려는 걸까.
아이스크림 가게에 도착하면 돌로라사가 제일 좋아하는 겨울 한정판 눈꽃 아이스크림을 시켜놓고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타악!
골목에서 웬 남자가 빠르게 뛰쳐나오더니 돌로라사와 부딪혔다.
“아앗!”
자그마한 몸이 휘청이며 레이첼 쪽으로 넘어졌고, 레이첼은 얼른 몸을 낮춰 아이를 품에 안아주었다.
“괜찮으세요?”
“네, 괘, 괜찮아요.”
돌로라사가 무사한 것을 확인한 레이첼은 고개를 들고 튀어나온 남자에게 뭐라 쏘아붙이려 했다.
그러나 남자는 사과는커녕 망설임도 없이 레이첼과 돌로라사가 걸어온 방향 쪽으로 달아났다.
“이봐요! 거기서! 미안하다는 말 정도는 하고 가야지!”
레이첼이 소리쳤지만 남자는 흘끔 뒤를 돌아볼 뿐 멈춰 서지 않았다.
“뭐 저런 사람이 다 있담!”
“으으, 그러게요……. 앗, 브로치가!”
“브로치요?”
자세히 보니 돌로라사의 겉옷을 여미던 브로치가 뜯겨 있었다.
외출할 때 쓰는 물건인 만큼 아주 값비싸지는 않았지만 황녀의 물건이라 아주 저렴하지도 않았다.
남자는 골목에 숨어서 기다리다가 일부러 상대와 부딪혀 물건을 빼앗아 가는 좀도둑이었던 것이다.
“맙소사. 거기 서!”
레이첼이 얼른 도둑을 쫓아가려고 했지만 품에 안긴 돌로라사가 쉽게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놀라서 다리에 힘이 풀어진 모양이었다.
레이첼 대신 수수하게 차려입고 돌로라사를 호위하던 기사 몇이 남자의 뒤를 쫓았다.
그러나 남자는 이미 익숙하다는 듯 사람들 사이를 지나치며 꽤 멀리까지 달아난 뒤였다.
어쩔 줄 모르고 멀어지는 남자를 바라만 보는데, 순간 남자가 휘청이더니 앞으로 고꾸라졌다.
레이첼과 돌로라사의 눈이 동그래졌다.
“어……?”
곧이어 근처 건물 위에서 누군가가 훌쩍 뛰어내렸다. 그는 넘어진 남자의 멱살을 우악스레 붙잡고 레이첼과 돌로라사 쪽으로 걸어왔다.
가까워지는 사람의 외형을 확인한 돌로라사가 활짝 웃었다.
“휘지우스!”
“레이첼 백작님과 작은 주인님을 뵙습니다.”
기절한 좀도둑을 레이첼과 돌로라사의 앞에 아무렇게나 내팽개친 휘지우스가 정중하게 무릎을 꿇었다.
“감히 작은 주인님의 물건에 손을 대다니 간이 부었지요. 하지만 혹시 싫어하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죽이지는 않았습니다.”
“정말 고마워, 휘지우스.”
돌로라사는 휘지우스가 내미는 브로치를 두 손으로 받아 품에 꼭 안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레이첼의 기분이 미묘했다.
‘뭐지? 황녀님의 표정……. 도둑을 잡고 브로치를 찾아서 기뻐한다기에는 뭔가…….’
휘지우스는 부복한 채 고개도 들지 않고 말했다.
“이 자는 어떻게 처리할까요. 레이첼 백작님과 작은 주인님께서 원하시는 방향으로 정리하겠습니다.”
“으음. 어떻게 하지? 이럴 때는 어떻게 하는 게 좋아요?”
돌로라사가 레이첼과 휘지우스를 번갈아 보았다.
레이첼은 어깨를 으쓱했고, 곁눈질로 레이첼의 반응을 살핀 휘지우스가 대신 답했다.
“죽이는 것이 가장 간편하지요. 혹시 그것이 싫으시다면 차선은 놈을 수도 경비대에 넘기는 것입니다. 다시 도둑질을 저지르지는 못할 테니까요.”
“으응. 그럼 그렇게 해요. 레이첼 백작은 어때요?”
“저도 괜찮습니다. 휘지우스, 도둑을 수도 경비대에 넘겨주세요.”
“명을 따르겠습니다.”
짧게 답한 휘지우스가 도둑을 가볍게 어깨에 들쳐 메고 건물 사이로 사라졌다.
돌로라사는 레이첼의 옷자락을 꼭 잡은 채 한참이나 휘지우스가 사라진 골목을 바라보았다.
주문한 아이스크림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내내 돌로라사는 발을 동동 구르며 즐거워했다.
원래도 기분이 좋던 돌로라사였지만 휘지우스를 만난 뒤에는 훨씬 더 즐거워 보였다.
‘역시 뭔가 이상해.’
레이첼이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돌로라사에게 말을 건넸다.
“황녀님.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응? 뭔데요? 아, 맞다. 레이첼 백작이 저를 찾아온 건 할 얘기가 있어서라고 했었죠.”
자신과 레이첼이 이야기를 나누려고 밖에 나왔다는 것도 잊을 만큼 기분 좋은 일.
레이첼은 휘지우스가 나타났을 때부터 느껴지던 이상한 기분의 정체가 눈앞으로 성큼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황녀님은…… 휘지우스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휘지우스요?”
휘지우스의 이름에 돌로라사의 얼굴이 다시 꽃처럼 환하게 피었고, 레이첼의 팔뚝에는 오소소 소름이 돋아났다.
‘그래. 이거였어. 위화감의 정체.’
돌로라사가 반짝반짝 빛나는 얼굴로 수줍게 입을 열었다.
“저는 휘지우스가 좋아요.”
“휘지우스를…… 좋아하신다고요?”
“아! 그게, 이상한 의미는 아니에요!”
얼른 두 팔을 뻗어 휘저은 돌로라사가 덧붙였다.
“그게 그러니까, 레이첼 백작을 좋아하는 것처럼 좋아해요. 레이첼 백작은 상냥하고 부드럽고 달콤하잖아요. 그런데 휘지우스는 정반대라서, 그래서 좋아해요.”
“정반대라서 좋다는 말씀은.”
“날카롭고, 무뚝뚝하고, 무섭잖아요. 그런 점이 정말 정말 좋아요.”
맙소사.
참새처럼 재잘거리는 돌로라사를 보며 레이첼은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느꼈다.
“저는 휘지우스 같은 사람이 좋더라고요. 얼마 전에도 휘지우스가 휘지우스랑 닮은 사람을 소개해 줬는데 어찌나 무섭고 멋졌는지 몰라요!”
“황녀님은 휘지우스처럼 서늘한 사람을…… 좋아하시는군요.”
“응! 그런 친구들에게 둘러싸여서 살면 정말 행복할 거예요. 길드에는 그런 사람이 많다고 해서 나중에 저도 길드에 가볼까 생각 중이에요. 좀…… 이상한가요?”
아니.
이상하지 않다.
오히려 자연스러웠다.
‘아름다운 공녀였던 원작 돌로라사가 그 많은 남자들을 다 뿌리치고 하필이면 살인귀 그레이엄과 사랑에 빠졌던 이유가 바로 이거였어.’
차가운 남자를 좋아하는 대쪽 같은 취향 때문이었다.
그중에서 가장 강하고 가장 냉정하고 가장 잘생긴 그레이엄이 그녀의 짝이 되었던 것이다.
놀라운 일관성에 레이첼은 아연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