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Mother Of the Male Lead Who Lives With An Ad**terous Man RAW novel - chapter (138)
불륜남과 사는 남주 엄마가 되었다 (138)화(138/151)
외전 7화
늦은 밤, 황궁 집무실 앞에 선 레이첼이 깊게 심호흡했다.
문틈으로 옅게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바쁜데 괜히 온 걸까? 아냐. 시안이라면 분명 기뻐할 거야.’
늘 업무가 끝난 뒤 프람 저택을 찾아오던 시안이 오늘은 일이 많다며 찾아오기 어렵겠다는 전언을 보내왔다.
그토록 레이첼을 좋아하고 보고 싶어 하던 그가 찾아오지 못할 정도라니, 대체 얼마나 바쁜 걸까 싶어서 마음이 쓰였다.
뭔가 도울 일이 없을까 생각하다가 예전에 시안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당신이 잠깐이라도 나를 만나러 와 주면 이렇게까지 무리하지 않아도 될 텐데, 당신은 정말이지 단 한 번도 찾아오지 않더군요.’
레이첼이 시안을 찾아간다면, 그가 레이첼을 찾아오는 것보다 시간을 덜 쓰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더불어 레이첼 자신 역시 시안이 못 견디게 보고 싶기도 했다.
‘방해하면 안 되니까 잠깐 얼굴만 비추고 돌아가자.’
그렇게 다짐한 레이첼이 집무실 앞을 지키고 서 있던 기사에게 눈짓을 한 뒤 문을 두드렸다.
똑똑—
잠시 정적이 흐른 뒤 시안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냐.”
“시안, 저예요, 레이첼. 잠깐 들어가도 될까요?”
“레이첼? 어서 들어와요.”
허락이 떨어지자 기사가 절도 있는 동작으로 문을 열어 주었다.
시안이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문 쪽으로 걸어오려 하기에 레이첼이 얼른 손사래 쳤다.
“아, 괜찮아요. 금방 갈 거니까 일어나지 마세요.”
시안이 멍한 얼굴로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레이첼. 이 시간에 여기까지 어쩐 일입니까? 혼자 온 건 아니겠지요?”
“물론이죠. 휘지우스랑 기사 몇 분이 이 앞까지 호위해 줬어요.”
“다행입니다. 휘지우스가 일을 잘 하고 있군요.”
“그럼요.”
시안의 책상 가까이 다가가던 레이첼이 가볍게 웃음을 터트렸다. 눈을 깜빡이며 자신을 올려다보는 시안 때문이었다.
“왜 그렇게 보세요? 제가 여기 온 게 이상한가요?”
“……솔직히 놀랐습니다. 당신이 여기 올 줄은 몰랐어요.”
“아무 때나 다녀가라고 직접 출입증까지 주셨잖아요.”
“그거야 그렇지만.”
“그렇게 저만 보지 말고 일하세요. 바쁘다고 하셔서 잠깐 들른 거예요.”
서류로 잠시 시선을 돌린 시안은 일을 시작하기는커녕 아예 들고 있던 깃펜을 내려놓았다.
“당신이 나를 찾아왔는데 일 따위가 뭐 그리 대수겠습니까.”
“앗. 이러면 안 되는데. 방해하고 싶지 않단 말이에요.”
“레이첼.”
시안은 레이첼이 뭐라고 하든 아랑곳하지 않고 두 팔을 벌리며 레이첼의 애정을 갈구했다.
책상 옆에 서서 손끝으로 책상 모서리를 문지르던 레이첼이 슬쩍 뺨을 붉히며 시안의 바로 앞까지 걸어갔다.
그가 두 팔로 가까워진 레이첼의 허리를 끌어안고 그녀의 가슴에 뺨을 댔다.
“기쁩니다.”
“기뻐 보여서 저도 기뻐요. 여기까지 찾아온 보람이 있었어요.”
레이첼이 자신의 품에 안긴 시안의 까만 머리카락을 빤히 바라보았다.
키가 큰 시안의 정수리를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이 무척 낯설었다.
‘나를 안아 주던 시안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따뜻하고 사랑스러워.’
몸을 숙여 시안의 정수리에 키스할까, 생각하는데 시안이 고개를 들고 레이첼과 눈을 맞췄다.
왠지 불순한 생각을 들킨 것 같아 레이첼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왜, 왜요?”
“그냥. 보고 싶었습니다.”
그냥 보고 싶었다기에는 시안의 금빛 눈동자가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익숙한 눈빛이었다.
레이첼에게 입을 맞추기 전, 레이첼의 드레스를 묶은 끈을 풀어 내리기 전, 자신의 셔츠를 벗기 전에 그가 늘 보여 주던 눈빛이었으니까.
그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시안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입을 열어 조용조용 말을 이을 뿐이었다.
“레이첼, 오늘 당신의 하루는 어땠습니까.”
“저는…… 케이티와 결혼식에 쓸 꽃장식을 확인하고 왔어요. 오후에는 아빠와 차를 마셨고, 저녁에는 황궁으로 들어올 때 가져올 짐을 챙겼고요. 당신은요?”
“일, 일, 일. 일에 파묻힌 하루였습니다.”
예상했던 대답이었다.
안쓰러운 마음에 괜히 시안의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빗었다. 사락사락, 결 좋은 머리카락이 손가락 사이를 간지럽혔다.
“고생 많으셨어요.”
“당신을 생각하고 당신을 안을 시간이 부족하다는 걸 빼면, 괜찮습니다.”
“당신도 참.”
레이첼의 웃음을 따라 몸이 흔들렸고, 덩달아 시안의 머리카락도 좌우로 흩어졌다.
흔들리는 머리카락 사이에서 레이첼을 바라보는 시안의 금빛 눈동자만이 고정된 듯 움직이지 않았다.
가슴이 가볍게 쿵쿵 울렸다.
‘매일 보는 사람인데. 괜히 낯설게 느껴져.’
“매일 보는 당신인데, 괜히 낯설게 느껴지는군요. 아래에서 올려다봐서인지.”
레이첼은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말하는 시안에게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거 방금 제가 하던 생각이에요.”
“그랬습니까? 신기하네요.”
시안의 눈꼬리가 부드럽게 휘어졌다.
“내 품에 안기던 당신은 매번 이런 기분이었을까 싶기도 했습니다.”
“……저도 그 생각했어요. 나를 안아 주던 당신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싶더라고요.”
“이런 걸 천생연분이라고 하는 걸까요.”
속삭인 시안이 안고 있던 레이첼의 허리를 천천히 제 쪽으로 당겼다.
시안이 앉은 의자 쪽으로 비스듬히 서 있던 레이첼은 몸이 더 기울어지자 손으로 그의 어깨를 짚었고, 곧 한쪽 무릎을 의자 위에 올렸다.
반쯤 시안의 위에 올라탄 모양새였다.
시안은 자세가 퍽 마음에 드는 듯했다.
“가끔은 이런 것도 나쁘지 않네요.”
“마음에 드세요?”
“마음에 듭니다. 당신이 입술을 내려 주면 더 마음에 들 것도 같고.”
살며시 고개를 내려 시안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입술에 입 맞춰 주기를 기다렸는지 시안이 눈을 가늘게 떴다가 그대로 레이첼의 긴 목덜미에 입술을 묻었다.
목덜미에서 아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 잠깐만요, 시안. 거기 그렇게 입을 맞추면, 아……!”
“압니다.”
“으.”
따끔한 느낌과 달리 시안의 입술이 닿았던 자리에는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았다.
“목덜미에 멍이 든 채로 결혼식을 올릴 수는 없으니까요.”
“으응. 고마워요.”
“꼭 자국을 남겨야 한다면 결혼식 드레스를 입어도 보이지 않을 곳에 남겨야죠.”
“네?”
시안은 반사적으로 튀어 나간 레이첼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그저 씩 웃었다.
레이첼이 허둥댔다.
“시, 시안. 잠깐만요. 여기는 당신이 일하는……!”
레이첼의 말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몸을 감싼 드레스가 헐렁해지며 아래로 흘러내린 탓이었다.
시안의 긴 손가락이 익숙하게 레이첼의 드레스를 풀어 버린 것이다.
그는 손가락에 드레스 끈을 잔뜩 엮은 채 레이첼의 몸을 의자 위로 끌어 올렸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을 안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어요.”
“하지만.”
“설마 여기까지 찾아와서 정말 얼굴만 보고 돌아갈 생각은 아니었겠죠.”
“…….”
정말 얼굴만 보고 돌아갈 생각이었던 레이첼이 움찔 놀라며 몸을 굳혔다.
시안이 눈을 흘기며 굳어진 레이첼의 허리를 천천히 쓸어내렸다.
“정말 그럴 생각이었다니, 서운한데요.”
“미안해요. 일하는 걸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그랬어요.”
“미안하면 선물을 주십시오.”
“선물이요? 피로 회복에 좋은 차를 준비해 왔는데, 타 드릴까요?”
“그런 건 황궁에도 많습니다.”
“그럼……?”
“뭐든, 당신이 주는 거라면 기껍게 받겠습니다.”
준비해 온 차는 거절하면서 뭐든 달라니, 대체 뭘 줘야 하는 걸까.
어째야 하나 고민하는 동안 시안은 선물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기대 가득한 눈으로 레이첼을 올려다보았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레이첼이 무언가를 떠올리고 마음을 굳혔다.
‘……그거라면 시안이 기뻐하지 않을까?’
부끄러운 마음에 잠시 망설이다가 시안의 귓가에 생각한 선물을 속삭였다.
시안의 금빛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났다.
“그 말, 후회하기 없습니다.”
“후회 안 해요.”
레이첼의 대답에 씩 미소 지은 시안이 레이첼의 머리를 붙잡아 내리며 짙게 입을 맞췄다.
‘힘들고 부끄러워도 괜찮으니까, 오늘은 당신이 원하는 만큼 깊고 거칠게 안아 주세요.’
시안은 레이첼의 선물을 아주 기껍게 받아 주었다.
* * *
벨윈더가 준비한 연회 당일. 겨울을 맞아 조용했던 수도가 오랜만에 활기를 띠었다.
끊임없이 밀려오는 마차들로 황궁 입구가 북적였고, 사교계의 꽃인 멜리타와 황태후인 벨윈더가 제국 각지에서 올라온 신진 귀족들을 맞았다.
대부분의 귀족들이 도착하고 인사가 마무리될 즈음, 멜리타가 벨윈더에게 다가왔다.
“황태후 전하. 연회가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직전인데 예비 황후 폐하께서 도착하지 않으셨습니다. 혹시 따로 연락을 받으셨는지요?”
“조금 늦을 테니 놀라지 말라는 전언을 받았습니다.”
“놀라지 말라고요?”
특이한 전언에 멜리타가 고개를 갸웃하며 몸을 돌리는 순간, 연회장의 문이 열렸다.
멜리타의 눈이 커졌다.
“……! 대체 저게 무슨……!”
홀로 연회장으로 들어온 건 레이첼이었다. 그녀는 테오도르와 헤어지기 전에 입었던 유행이 지나고 낡은 여름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허름한 차림에 신진 귀족들이 삼삼오오 모여 수군거리기 시작했고, 벨윈더는 가볍게 웃음을 터트렸다.
“우리 새아가가 또 뭘 하고 싶어서 저런 모습으로 나타났을까.”
메페르타 후작 부인이 불쾌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곁에 선 메페르타 후작에게 말했다.
“저 사람도 이번에 수도로 불려온 귀족인가요? 아무리 재력보다 능력을 우선 고려해서 귀족을 불러 모았다지만 저렇게 다 낡아빠진 드레스 차림이라니. 격 떨어지네요.”
메페르타 후작 부인의 말을 다 들었을 텐데도 레이첼은 아랑곳하지 않고 벨윈더와 멜리타에게 다가가 예를 갖췄다.
“황태후 전하와 사교계의 꽃을 뵙습니다.”
“어서 와요, 예비 황후. 연회장에서 만나는 건 오랜만이군요. 얼른 만나고 싶어서 언제쯤 오려나, 목 빠지게 기다렸답니다.”
살가운 벨윈더의 인사에 수군거리던 귀족들이 바짝 긴장했다.
옷차림을 흉보던 메페르타 후작 부인이 특히 뻣뻣하게 굳어졌고, 레이첼은 그런 그녀를 보며 씩 미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