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Mother Of the Male Lead Who Lives With An Ad**terous Man RAW novel - chapter (143)
불륜남과 사는 남주 엄마가 되었다 (143)화(143/151)
추가 외전 2화
지저분한 소리를 따라 향한 곳은 제국 초대 황제의 동상 뒤쪽이었다.
레이첼과 케이티, 시녀들이 잔디 밟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지자 거사를 치르던 갈색 머리카락의 사내가 화들짝 놀라 수풀 속으로 뛰어 들어가 몸을 숨겼다.
혼자 남은 여성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앗, 가, 각하……!”
“제기랄! 각하라고 부르지 말라니까!”
사내는 신경질적으로 소리 지르며 수풀 사이를 엉금엉금 기어 사라졌다.
레이첼이 동상 뒤쪽에 도착했을 때 남은 건 엉망이 된 수풀과 반쯤 헐벗은 여자뿐이었다.
여자가 레이첼을 발견하고는 황급히 머리를 숙였다.
“지, 지고하신 황후 폐하를 뵙습니다……!”
차림새를 보아하니 시녀 중 한 명인 것 같았지만 옷이 구겨진 탓에 소속을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허겁지겁 옷을 추스르는 시녀를 보며 레이첼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어디 소속이지?”
“예, 예에?”
당황한 시녀가 되물었지만 레이첼은 친절하게 두 번 말해줄 생각이 없었다.
잠자코 기다리자 시녀가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고개를 푹 숙였다.
“버, 버든 가문의 차녀 유니입니다. 그…… 정원…… 청소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버든 가문의 차녀 유니.”
기억해 두겠다는 듯 이름을 읊조린 레이첼이 유니를 쏘아보았다.
“나는 황궁에서 일하는 모든 시녀의 사생활이 깨끗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하지만 최소한 내가 거니는 정원에서, 내 정원을 정돈하는 시녀가, 아내 있는 사내와 정사를 치르는 꼴을 보고 싶지는 않은데. 내가 과한 기대를 하는 건가?”
레이첼이 겪은 불륜 사건은 황성에 사는 이라면 모를 수가 없을 만큼 떠들썩했다.
평소에는 상냥하고 너그러운 레이첼이 ‘불륜’이라는 단어 앞에서 누구보다 인정사정없어진다는 것 역시, 모르는 자가 없었다.
유니가 치맛자락을 움켜쥐며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울음기와 원망이 가득 담긴 목소리였다.
역겨운 냄새가 풍겼다.
딱딱한 표정으로 걸음을 옮기는 레이첼의 뒤를 케이티와 시녀들이 뒤따랐다.
레이첼이 이렇게까지 부정적인 감정을 내비치며 화를 내는 건 드문 일이라 다들 눈치를 보느라 진땀을 뺐다.
한참이나 복도를 걸어가던 레이첼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미안해, 케이티. 케이티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눈치를 보게 만들었네.”
“아닙니다. 그러실 만한 일이었어요. 아무리 시즌 전이라도 그렇지, 대낮에 황궁 정원에서 저런 짓거리라니 더 화내셔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이해해줘서 고마워. 정원 정리를 부탁해도 될까?”
“맡겨주세요.”
“방금 저 시녀에 대한 것도 조사해 줘. 진짜 정원 담당 시녀인지, 처음이었는지, 아니면 여러 번이었던 건지, 만난 게 ‘각하’라는 사람 하나였는지, 그게 진짜 각하였는지.”
레이첼은 고개 숙여 사과하던 유니의 모습을 떠올렸다.
입으로는 죄송하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꾹 깨문 입술, 바들바들 떨리던 어깨와 독기 서린 목소리에는 반성이나 죄책감이 엿보이지 않았다.
유니는 화가 나 보였다.
헛웃음이 터졌다.
‘화를 낸다고? 왜? 좋은 시간을 방해받아서? 어쩜 저렇게 뻔뻔할 수 있는 걸까. 뻔뻔하니까 저런 짓을 저지르는 거겠지만.’
케이티가 레이첼의 요구에 공손하게 머리를 숙였다.
“명을 따르겠습니다. 혹시나 해서 여쭙습니다만 시녀가 진짜 공작 각하와 만났던 거라면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어쩌긴 어째. 온 곳으로 보내줘야지.”
“그렇군요. 온 곳……. 예?”
여상한 대답에 레이첼의 말을 곱씹던 케이티가 검지로 조심스레 발아래를 가리켰다.
온 곳이라는 게 흙 속을 말하는 거냐고 묻는 듯해서 레이첼은 고개를 끄덕였다.
서류를 품에 꼭 끌어안은 케이티가 침음했다.
“……부부는 닮는다더니.”
황후 폐하께서 황제 폐하께 이상한 걸 배워오셨어!
소리 없는 케이티의 외침에 레이첼이 뭘 그렇게 놀라냐는 듯 생긋 미소 지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황후 폐하.”
손님 접대용 응접실에 들어서자 먼저 와 있던 멜리타가 자리에서 일어나 레이첼을 맞았다.
레이첼이 마주 예를 갖췄다.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멜리타 부인. 갈수록 더 아름다워지시는 것 같네요.”
“황후 폐하도 참. 이 나이 먹고 아름다워질 일이 뭐가 있겠어요.”
“겸손하실 필요 없어요. 사교계의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할 테니까요. 혈색도 좋아지셨고, 피부도 고와지신 데다가 웃음도 느셨어요. 아름다우세요.”
“그런가요.”
멜리타가 수줍은 듯 부채로 얼굴을 가렸다.
남편이었던 이아콥스 공작이 사망한 뒤 내내 혼자였던 멜리타는 지난해 가을, 제국의 다섯 공작 중 하나인 로렌 스티그마 공작과 재혼했다.
재혼 이후 멜리타는 공작인 스테판 이아콥스의 어머니인 동시에 로렌 스티그마 공작부인이 되었고, 사교계의 꽃인 자신의 영향력을 더욱 공고히 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좋은 소식은 재혼 이후 멜리타가 눈에 띄게 행복해한다는 사실이었다.
이것이 사랑의 힘이라고, 사교계 모두가 입을 모아 떠들었다.
“로렌 공작께서 무척 잘해주시는 모양이에요.”
공작이라는 단어에 순간 정원에서 본 시녀가 떠올랐으나 얼른 고개를 저어 생각을 털어냈다. 멜리타의 반응 때문이었다.
멜리타는 사교계를 호령하는 꽃이 아니라 열여섯 순진한 소녀처럼 맑게 웃었다.
“참 다정한 사람입니다. 이 나이에 이런 생활을 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해보지 못했는데……. 정말이지 꿈만 같습니다.”
“사랑하고 행복을 나누는데 나이가 무슨 상관이겠어요.”
“황후 폐하께서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안심이 됩니다.”
“오래오래 행복하세요. 제가 뒤따를 수 있도록.”
진심이었다.
레이첼은 멜리타처럼 나이가 지긋해질 때까지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하게 살고 싶었고, 노년으로 접어드는 나이에 새로운 짝을 만나 행복해하는 멜리타가 진심으로 멋져 보였다.
둘은 한동안 근황을 전하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로 로렌이 얼마나 다정한가, 에 대한 이야기였다.
레이첼은 로렌 공작의 다정함에 놀라고, 때로는 즐거워하면서 멜리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멜리타의 시녀가 차 심부름을 오기 전까지.
똑똑, 두 번의 노크 후 응접실 문이 열리고 익숙한 얼굴의 시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멜리타 부인, 말씀하신 향유를 가져왔…….”
우아하고 둥근 향유 병이 놓인 은쟁반을 들고 나타난 유니가 레이첼을 발견하고 입술을 꾹 깨물었다.
“화, 황후 폐하…….”
“네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레이첼이 미간을 찌푸렸고 멜리타가 반색했다.
“어머, 황후 폐하. 이 아이와 안면이 있으십니까?”
“안면이 있다고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처음 만난 사이는 아닙니다.”
“그렇군요. 사교계가 좁지 않은데 참 신기하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속으로 생각하는데 멜리타가 시녀를 소개했다.
“제 전속 시녀 유니입니다.”
“전속 시녀라고요?”
아까 유니는 자신을 정원 청소 담당 시녀로 소개했다. 정원 청소 담당이 정원에 머무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멜리타의 전속 시녀라니.
자신이 모시는 부인을 떠나 황궁 정원에 들어섰다는 사실을 비난받고 싶지 않아 거짓말을 지어냈다는 뜻이었고, 동시에 멜리타가 찾아온 것이 황후인 레이첼이라는 걸 몰랐다는 뜻이었다.
전속 시녀이면서도.
멜리타가 자랑스럽다는 듯 소개를 이었다.
“스티그마 저택에서 일하던 아이인데 지난 사교 시즌이 끝난 뒤 로렌 공작께서 제게 붙여주셨지요.”
“……로렌 공작이 붙여준 아이라고요?”
“예. 손재주가 좋고 아는 것도 많아서 아주 도움이 되는 아이입니다. 특히 스티그마 저택과 가문에 대해 아는 것이 많아 큰 도움이 되었답니다. 요즘 이 아이 없이는 외출도 하지 않아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스티그마 저택에서 일하던 아이.
로렌 공작이 붙여준 시녀.
‘각하’를 부르던 목소리.
레이첼은 자신의 예감이 틀렸길 바랐다.
유니가 레이첼의 눈치를 살피며 머뭇거리자 멜리타가 웃으며 유니의 은쟁반을 건네받아 탁자 위에 놓았다.
“얼마 전에 유니에게 소개받은 향유입니다. 황후 폐하께 선물해 드리고 싶어서 가지고 오라고 했던 참인데 때를 잘 맞췄네요.”
“제게 이 향유를요?”
멜리타가 레이첼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목소리를 낮췄다.
“이게 요즘 사교계의 어린 숙녀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향유랍니다. 사내를 단숨에 휘어잡을 수 있는 향유라는데, 로렌 공작께서도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 하시더군요.”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한 설명이었다.
“황후 폐하께서는 워낙 황제 폐하와 사이가 좋으시니 이런 향유 따위 필요 없으시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요. 하나 선물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레이첼은 멜리타가 건네주는 향유를 받아 뚜껑을 열고 냄새를 맡았다.
씁쓸했다.
멜리타는 오랜 시간 사교계의 꽃으로서 수많은 부인과 아가씨들의 위에 군림해왔다.
그러나 그 거대하고 음흉하고 은밀한 세계를 다스려온 멜리타조차 ‘사랑’이라는 이름 앞에서는 평범한 소녀와 다를 바 없었다.
원작의 레이첼이 테오도르에게 빠졌던 것처럼.
레이첼은 무심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유니의 정수리에 향유를 부었다. 끈적한 기름이 유니의 머리카락과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 푸, 푸읍!”
“맙소사, 황후 폐하! 이게 대체 무슨……!
응접실 안에 역겨운 냄새가 진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