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Mother Of the Male Lead Who Lives With An Ad**terous Man RAW novel - chapter (144)
불륜남과 사는 남주 엄마가 되었다 (144)화(144/151)
추가 외전 3화
바짝 굳어진 유니의 머리 위에 기름을 모두 쏟아부은 레이첼이 빈 통을 바닥에 떨어트리고 손수건으로 손을 닦았다.
내리뜬 레이첼의 눈빛에 날이 바짝 섰다.
“미안해요. 내가 아주 끔찍하게 싫어하는 향이라서요.”
“아……!”
멜리타가 그제야 퍼뜩 상황을 파악하고 유니를 내보냈다. 그녀는 레이첼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생각이 짧았어요.”
“아닙니다. 다들 제가 테오도르의 내연녀에게 향유를 권유받았다는 것만 알지 그것이 어떤 향유인지는 모르니까요. 저도 그 향유 냄새를 여기서 다시 맡을 줄은 몰랐습니다.”
그때 일이 떠올라 화가 난 척했지만 실은 아니었다.
유니에게 향유를 붓기 위한 구실을 만들기 위해 화가 난 척했을 뿐이었다.
냄새를 맡자 유니와 정원에 있던 남자가 멜리타의 남편인 로렌 공작이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 향을 좋아하는 게 로렌 공작이고, 정원에서 났던 것도 이 향이었으니까.
잠시 입을 다물었던 레이첼이 말했다.
“멜리타 부인. 유니는 결혼했나요? 혹은 약혼을 했다거나.”
“아뇨. 약혼도 결혼도 하지 않았습니다만 만나는 남자는 있다고 했습니다. 이 향유도 그 사람이 추천해 준 향유라고 했어요.”
“어떤 남자인지 아시나요?”
“정확히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꽤 격식 있고 품위 있는 집안의 남자라는 말은 들었습니다. 왜 그러시는지요?”
“제가 유니의 남자를 봤거든요.”
“예? 저도 한 번도 만나지 못한 남자를 황후 폐하께서 어떻게……?”
“여기로 오는 길에 정원에서요. 그 남자와…….”
본 것을 솔직하게 털어놓을까 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유니의 상대가 진짜 로렌 공작이라면 불필요한 사실을 너무 많이 알리는 건 멜리타의 정신건강에 좋지 못할 테니까.
“……다정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거든요.”
“……세상에. 감히 황궁에서 그런 짓을 벌이다니. 용서하십시오. 황궁에 처음 들어와 보는 아이라 무엇이 문제인지 알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제가 저택에서 따끔하게 충고해 두겠습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여쭙고 싶은 것이 있는데요.”
“말씀하십시오.”
“로렌 공작은 지금 어디에 있지요?”
레이첼의 질문이 의외였는지 멜리타는 적잖이 놀란 모습이었다.
“오늘은 외출했습니다. 제가 저택에 머무르는 동안에는 늘 저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데 오늘은 제가 입궁하는 날이라 로렌 공작도 때를 맞춰 약속을 잡았다고 했습니다.”
“누구와 어디서 만나는지는 모르시는 건가요?”
“그건…… 모르겠습니다. 한 번도 알려준 적이 없고 저 역시 물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렇군요.”
고개를 끄덕이며 나무 덤불 사이로 언뜻 보였던 갈색 머리카락을 떠올렸다.
로렌 공작의 머리카락도 갈색이었다.
그날 저녁, 레이첼은 라일러스와 황궁 복도를 걸었다.
지팡이를 짚으며 레이첼과 걸음을 맞추던 라일러스가 물었다.
“고민이 있는 얼굴이구나.”
“죄송해요, 아빠. 오랜만에 만났는데 딴생각에 빠져 있었네요.”
“괜찮다. 그럴 만하지.”
라일러스의 여상한 말에 레이첼이 가볍게 웃었다.
“설마 이것도 알고 계시는 거예요?”
“예니스 님께서 이것 좀 보라며 머릿속에 자꾸 쑤셔 넣어주시니 별 수 있겠느냐.”
“예니스 님도 참.”
웃음기 띤 얼굴로 아까 멜리타와 나눈 이야기를 떠올렸다.
넌지시 유니가 불륜을 저지르는 게 아닐까 하는 추측과 로렌의 외도 가능성을 언급했더니 멜리타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럴 사람들이 아닙니다.’
유니와 로렌이 자신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몰라서 그런 말을 하는 거냐는 답변도 뒤따랐다.
아직 유니의 상대가 로렌 공작이라는 확실한 증거는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유니와 로렌 공작을 이대로 내버려 둘 수도 없는 일이었다.
라일러스가 커다란 손으로 레이첼의 등을 토닥였다.
“그냥 내버려 두면 될 일에 왜 나서려는 게냐.”
“남 일 같지 않아서요. 그때, 누군가 테오도르와 제인의 이야기를 제게 해준 사람이 있었다면 그런 자식과 그토록 오래 살지 않았을지도 모르잖아요.”
하지만 중년을 지나 노년으로 접어드는 나이에 새로운 사랑을 만나 행복하다던 멜리타가 크게 상처받지 않았으면 싶기도 했다.
한숨을 푹 내쉬는데 열린 복도 창문을 통해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렸다.
“……허허. 어쩐지 백작께서 얼굴이 좋으시다, 했습니다.”
“우리에게 부인이란 그저 협력자에 불과한 것 아니겠습니까. 진정한 사랑을 찾는 여정을 죽을 때까지 멈추지 않아야 진짜 사내라 할 수 있지요.”
“부인이란 것들은 어째 하나 같이 어여쁘지 않으니까요.”
“그러게나 말입니다. 밖에 나가면 그렇게나 예쁜 것들이 많은데 말입니다.”
어이가 없는 표현에 레이첼이 걸음을 멈추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정수리가 반질반질한 중년의 귀족 셋이 모여 저급한 수다를 떨고 있었다.
“부인과는 공을, 여인과는 사를 나누니 생활이 참으로 윤택하기 그지 않습니다. 이게 공사 구분이지요. 밖에서 사랑을 찾으라 권하신 이유를 이제야 알겠습니다.”
“그것 보십시오. 이제 까쉬 백작께서는 공과 사 모두를 아우를 일만 남으셨습니다. 허허허!”
라일러스가 쯧 혀를 차며 사내들에게 뭐라 말하려 했으나 레이첼이 그를 저지하며 창틀에 팔을 기댔다.
“재미있네요.”
“……!”
“화, 황후 폐하……!”
“어이쿠, 황후 폐하를 뵙습니다!”
허둥거리는 세 사람을 내려다보던 레이첼이 생긋 웃으며 고개를 기울였다.
“계속해보세요. 공사 구분 이야기.”
“예에?”
세 사람이 저들끼리 눈치를 살피다가 약속한 듯 고개를 조아렸다.
새로운 사랑을 만나 행복하다던 까쉬 백작이 말했다.
“송구스럽습니다만 저희는 아무 이야기도 나누지 않았습니다.”
“그래요? 제가 듣기에는 아니던데. 까쉬 백작이 아내인 달리아나 부인과는 사업을 함께 하고 밖에서 새로 만난 여자분과는 사랑을 나누겠다던 얘기였잖아요.”
“그, 그것이…….”
“이번에 제국에 새로 들여오는 고급 직물을 까쉬 백작 가문의 상단이 독점 판매하기로 했지요? 직물 보는 눈이 까다로운 달리아나 부인의 안목 덕분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맞습니다. 예에.”
“생각해 보니 그 건, 달리아나 부인의 친정에서 진행하면 어떨까 싶어요.”
“예? 황후 폐하!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씀이십니까!”
“달리아나 부인의 친정 식구들은 모두 달리아나 부인 만큼 직물 보는 안목이 까다로우니까요. 앞으로 사업을 확장하려면 더 많은 인재가 있는 쪽이 낫지 않을까 싶어서요.”
레이첼이 생긋 미소 지었다.
“사업은 사업이니까요. 공과 사가 확실해야죠. 안 그런가요?”
달리아나 부인은 일을 잘하는 만큼 똑 부러지는 사람이었다. 남편의 외도를 알게 되는 즉시 남편의 뺨을 후려치고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을 만큼.
만약 달리아나 부인의 친정에서 사업을 진행하다가 이혼을 한다면 까쉬 백작은 빈털터리가 된다.
그러니까 까쉬 백작은 들키기 전에 외도를 정리하든가 빈털터리가 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턱을 덜그럭거리다가 겨우 예를 갖추고 물러나는 세 명의 사내를 보며 레이첼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내 아닌 여자를 만나는 게 그렇게나 좋은 걸까요? 서로에게 권하고 공공장소에서 떠들기까지 하다니, 정말 이해가 안 돼요.”
“그러게나 말이다.”
고개를 설레설레 저은 라일러스가 멀어지는 사내들을 향해 지팡이를 휘저었다.
반짝이는 은색의 빛이 사내들에게 스며들었고, 세 사내가 동시에 아랫도리를 붙잡으며 절룩거렸다.
놀란 레이첼이 라일러스의 지팡이를 붙잡았다.
“아빠,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설마 불능으로 만들었다거나…… 그런 건 아니죠?”
“마음 같아서는 싹 잘라버리고 싶지만 아쉽게도 생명을 만드는 기능에 권능을 쓰는 건 쉽지 않은 일이란다.”
“그럼요? 저 사람들, 갑자기 사타구니를 붙잡던데…….”
“사내의 그곳은 생명을 만드는 기능만 있는 게 아니거든.”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라일러스가 씩 웃으며 지팡이로 창틀을 두드렸다.
“거시기에 신성력으로 만든 알갱이를 잔뜩 선물해줬단다.”
요로 결석이었다.
“……첼. 레이첼?”
“아.”
찻잔을 손에 쥐고 멍하니 자리에 앉아 있던 레이첼이 시안의 부름에 퍼뜩 놀랐다.
새 찻잔에 따뜻한 차를 따라 내밀고 다 식은 찻잔을 받아 간 시안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레이첼을 들여다보았다.
“괜찮은 겁니까? 피곤하다면 오늘은 따로 잠자리에 들까요.”
“아뇨, 괜찮아요. 가지 마세요.”
레이첼이 다급히 시안의 셔츠를 붙잡았다.
아이를 낳으려면 하루라도 더 빨리, 한 번이라도 더 많이 시안과 잠자리를 함께 해야 했다.
하지만 낮에 바람난 사내들을 상대한 탓인지 머리가 아프고 기분이 영 언짢았다.
고개를 저어 생각을 털어내려 했지만 불쾌한 기분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시안이 자신을 붙잡은 레이첼의 손을 떼어내고 몸을 굽혀 레이첼과 눈을 맞췄다. 커다란 손이 레이첼의 뺨을 감쌌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겁니까. 반나절 사이에 얼굴이 상했어요.”
눈을 감고 시안의 손에 얼굴을 기댔다.
멜리타의 남편인 로렌도 시안만큼이나 다정하다고 했다.
이렇게나 포근하고 이렇게나 살갑게 굴면서 아내 아닌 여자를 사랑한다니,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그들은 어째서 신과 제국의 이름으로 맺은 결혼 서약을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어기는 걸까? 자신과 평생을 함께하기로 한 반려를 속이는 데에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 걸까?
의문스러웠지만 아쉽게도 성직자인 라일러스는 레이첼에게 시원한 답을 주지 못했다.
눈을 감은 채 조심스레 고개를 돌렸다. 시안의 손바닥 중앙에 입을 맞추고 조금씩 고개를 내려 손목 안쪽에도 입술을 댔다.
“레이첼.”
시안이 짧게 탄식하며 반대쪽 손으로 레이첼의 목덜미를 감쌌다.
커다란 존재에게 둘러싸인 기분을 느끼며 천천히 눈을 뜨고 시안을 바라보았다. 그가 기다렸다는 듯 입술을 내렸다.
달고 끈적한 입맞춤 뒤에 슬쩍 입술을 뗀 시안이 레이첼의 이마에 제 이마를 붙이며 속삭였다. 그의 긴 손가락이 레이첼의 목과 뺨을 느리게 문질렀다.
“……대체 낮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당신 같지 않아요.”
말해도 될까.
물어도 될까.
잠시 고민하던 레이첼이 망설이며 입을 열었다.
“묻고 싶은 게 있어요.”
“물으십시오. 뭐든 성실하게 답하겠습니다.”
“당신도.”
상상만으로도 목이 메는 질문이었다.
“……언젠가 나 아닌 다른 여자를 사랑하게 될까요?”
“뭐…….”
짧게 내뱉는 소리와 함께 잠시 정적이 이는 듯싶더니 곧 눈앞이 번뜩이며 숨이 막혔다.
시안이 레이첼의 목덜미를 꽉 움켜쥐고 거칠게 입술을 삼킨 탓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