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Mother Of the Male Lead Who Lives With An Ad**terous Man RAW novel - chapter (147)
불륜남과 사는 남주 엄마가 되었다 (147)화(147/151)
추가 외전 6화
레이첼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다른 곳도 아닌 황궁 연회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구역질이라니.
그나마 다행인 건 주변이 고요해진 데다가, 어디선가 상큼한 향이 풍겨와 메스꺼운 속이 조금은 가라앉았다는 것이었다.
“마셔봐요.”
시안이 레이첼의 머리를 제 가슴에 기대게 하며 칵테일 잔을 내밀었다.
거품이 보글거리는 물 위에 얇은 레몬 몇 조각이 동동 떠 있었다.
전부 마시지는 못했지만 입을 축인 것만으로도 기운이 났다.
자신이 기댄 시안의 품이 따뜻하고 단단하다는 것과 놀란 눈을 한 귀족들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천천히 인식했다.
두 내연녀는 여전히 서로를 붙잡은 채 식식거리고 있었다.
얼굴이 하얘진 멜리타가 레이첼에게 다가왔다.
“황후 폐하, 괜찮으십니까?”
“괜찮아졌어요. 미안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나까지 신경 쓰게 만들었네요.”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죄송하지요.”
레이첼이 들고 있던 잔을 근처 탁자에 내려놓은 뒤 몸을 바로 했다.
기운이 없어서 다리가 후들거리긴 했지만 아까처럼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 레이첼을 조용히 기다리던 멜리타가 몸을 굽혔다.
“황후 폐하께서 편찮으신 지금 이런 말씀을 드리게 되어 무척 송구스럽습니다만,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부인.”
“저는 오늘부로 사교계의 꽃이라는 이름을 내려놓으려고 합니다.”
“예? 이렇게 갑자기?”
“허락해 주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곧 그렇게 될 테니까요.”
몸을 떠는 멜리타를 보며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챘다.
레이첼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 주었고, 그런 레이첼의 뜻을 이해한 멜리타가 깊이 몸을 숙였다.
“헤아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몸을 일으켜 바로 선 멜리타가 드레스와 자세, 표정을 차례로 정리했다.
마지막으로 마음을 정리하듯 크게 숨을 내쉰 멜리타가 몸을 돌렸다.
몸을 돌리는 멜리타의 눈가가 새빨갰다.
멜리타는 허리를 곧게 편 우아한 자세로 두 내연녀에게 다가갔다. 그녀가 걸을 때마다 또각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모두가 숨을 죽인 채 멜리타를 지켜보았다.
마침내 멜리타가 내연녀들 앞에서 걸음을 멈췄을 때, 가장 먼저 로렌의 첫 번째 내연녀가 입꼬리를 비틀며 입을 열었다.
“반가워요, 부인. 좋으시겠어요. 돈도, 가문도 있는 분이라 로렌 공작의 공식적인 여자로 인정받을 수 있었…….”
짜악!
멜리타가 여자의 뺨을 내리쳤다.
“닥쳐. 괜히 나불거려서 매 벌지 말고.”
조용히 읊조린 멜리타가 유니를 돌아보았다.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황후 폐하께서, 내 아들 스테판이 그토록 언질을 주었는데도 그럴 리가 없다며 듣지 않으려고 애썼어.”
“듣지 그러셨어요. 제가 언제 그러지 마시라고 한 적이 있었나요?”
유니는 엉망이 된 얼굴로 표독스럽게 쏘아붙였다.
“우스웠어요. 사교계의 꽃이라며 그토록 자랑하시더니, 본인에게 벌어진 일은 의심조차 못 하더라고요. 이런 멜리타 부인이 우두머리인 사교계란 곳은 참 별 볼일 없겠구나 싶기도 했고.”
“……우스웠다고.”
“네, 우스웠어요. 좋았어요. 사교계의 꽃인 부인이 내 손아귀에서 놀아난다는 느낌도, 그런 부인을 속이고 조종하는 것도요. 세상에 나보다 나은 존재가 없는 것만 같았어요.”
유니의 목소리에서 숨길 수 없는 우월감이 묻어났다.
짜악!
“건방진 것.”
“건방지다고요? 아직도 저를 부인의 아랫것이라고 생각하시나 봐요. 아뇨. 우리는 전부 똑같아요. 공작을 차지하기 위해 싸웠던 여자들일 뿐이라고요.”
짜아악!
지난 몇 개월간 아끼고 의지하던 시녀의 뺨을 올려붙인 멜리타의 눈에서 눈물이 굴러떨어졌다.
분노, 수치심, 실망, 후회, 원망 같은 감정들로 범벅이 된 멜리타는 사교계의 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유니의 뺨을 때리고 또 때렸다.
머리카락이 엉망으로 헝클어졌고 드레스 장식이 찢어져 바닥에 떨어졌다.
사교계의 규율을 지키는 꽃으로써 한평생 지켜오던 우아하고 고상한 모습을 내려놓은 멜리타는 사랑을 배신당한 한 사람, 비참함에 무너진 여인일 뿐이었다.
* * *
연회장을 정리하고 서재로 올라온 시안이 의자에 앉아 이마를 짚었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했었나? 유니만 들여보내도 됐을 것 같은데.”
시안이 일하는 책상에 엉덩이를 대고 앉아 있던 스테판이 쓰게 웃으며 들여다보던 서류를 내렸다.
“어머니, 충격받으셨지?”
“그래. 지금 레이첼이 따라갔어. 몸이 안 좋아 보여서 그냥 쉬라고 했는데 이 상황에서 멜리타 부인을 위로할 수 있는 건 자기밖에 없을 거라면서 말도 안 듣고.”
스테판이 쓰게 웃으며 허벅지 위에 손을 올렸다. 양손 손끝을 마주 댄 스테판이 그답지 않게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하다. 이런 일을 도와달라고 해서.”
“나는 상관없어. 멜리타 부인이 충격을 많이 받았을 것 같고, 그것 때문에 레이첼이 같이 힘들어할까 봐 그게 걱정인 거지.”
“어머니가 도통 믿질 않으셨어.”
다시 생각해도 어이가 없다는 듯 스테판이 헛웃음을 지었다.
“여기저기 수상한 점투성이인데, 로렌이 그럴 리가 없다며 그 새끼를 두둔하셨지.”
“로렌 공작이 멜리타 부인에게 워낙 잘했으니까.”
“외도 중이라는 걸 의심 못 하게 막으려고 일부러 연기한 거였지만. 얼마나 여자를 만나댔는지 연기가 자연스럽기 그지없었어. 어떨 땐 어머니를 정말 사랑하는 것 같았거든.”
“혹시 내연녀가 둘 말고 더 있었나?”
“놀랍게도 그래. 별장이 있는 지방마다 한 명 이상씩 있더라.”
시안에게 자기 말고 다른 여자를 사랑할 거냐고 묻던 레이첼이 떠올랐다.
담담하려고 애쓰는 것 같았지만 마음 안쪽 어딘가에 남은 상흔이 그대로 엿보이는 얼굴이었다.
전남편 테오도르부터 로렌까지. 주변에 이런 사내들이 널려 있으니 그런 의심을 할 수밖에 없었겠지.
눈치가 빠른 편이라 다른 부인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 고통받진 않았을 거다.
레이첼이 받았을 상처를 생각하자 그날 홧김에 거칠게 입을 맞췄던 것이 떠올라 마음이 아팠다.
그러지 말걸.
안 그래도 몸 상태가 좋지 않았던 레이첼이었는데. 아까 연회장에서도 구역질을 하지 않았던가.
……구역질이라.
핼쑥하던 레이첼의 얼굴을 보자 버리려고 했던 욕심이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고개를 저어 생각을 털어냈다.
오늘은 더 다정하게 안아주리라. 늘 최선을 다해 사랑했지만 오늘은 더욱 성심성의껏 그녀를 사랑해주리라 다짐하는데 누군가 벌컥 서재 문을 열었다.
시안과 스테판이 미간을 찌푸리며 문을 연 자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지?”
“폐하, 그게, 큰일 났습니다!”
“큰일?”
“유니라는 여자가 사라졌습니다. 지키던 기사의 단검을 훔쳐서요!”
* * *
레이첼은 멜리타를 손님용 휴게실로 안내했다.
시안은 몸이 좋지 않은 것 같으니 일단 쉬는 게 어떻겠냐 물었지만 레이첼은 고개를 저었다.
멜리타를 위로해주고 싶기도 했고, 아직 마무리하지 못한 일이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찢어진 드레스를 갈아입은 멜리타가 자리에 앉았다. 눈물과 콧물, 번진 화장 때문에 온 얼굴이 엉망이었다.
“……편찮으신 황후 폐하께 추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용서하십시오.”
“추하다고도, 잘못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차분한 레이첼의 대답에 멜리타가 다시 울음을 터트렸다.
“그동안 사교계에서 벌어지는 온갖 끔찍한 음모와 계략을 지켜보았습니다. 이제는 어떤 일이 벌어져도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저도 나이를 먹었나 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부인은 그저 온 힘을 다해 남편을 사랑했을 뿐이에요.”
“사랑…….”
레이첼이 내뱉은 단어를 따라 읊조린 멜리타가 눈물진 얼굴로 헛웃음을 지었다.
“평생 사랑 같은 건 하지 않을 줄 알았습니다. 나이 오십에 첫사랑에 빠진 것도 우스운데, 그 사랑이라는 것 때문에 이토록 멍청한 짓을 저지를 줄이야.”
“멜리타 부인.”
“사교계의 아가씨들이 사랑 때문에 바보짓을 저지를 때마다 그러지 말아야 한다고 나무랐던 주제에 한심하지요.”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부인은 귀한 경험을 하신 겁니다. 사랑하는 법을 배우셨고 사랑 안에서 현명하고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법 역시 배우셨잖아요.”
“과연 그럴까요. 지금은 그저 웃음거리가 되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습니다.”
“믿기 어려우시다면 저를 믿으세요. 이건 겪어본 제가 누구보다 잘 아니까요.”
다른 누구도 할 수 없는, 오직 레이첼만 할 수 있는 위로였다.
레이첼이 멜리타의 작고 주름진 손 위에 제 손을 얹었다.
“다음에는 진짜로 부인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시면 돼요. 사랑하며 사는 삶이 행복하다는 거, 이제 아시잖아요.”
“황후 폐하…….”
멜리타가 다시 아이처럼 울음을 터트리려 할 때였다.
복도가 소란스러워지는가 싶더니 누군가 벌컥 문을 열고 뛰쳐 들어왔다.
손에 단검을 꼬나쥔 유니였다. 그녀는 반쯤 돌아버린 눈으로 휴게실을 훑어보더니 망설임 없는 걸음으로 걸어 들어왔다.
“죽어!”
유니가 소리치며 단검을 내리 찔렀다.
“처음부터 이렇게 하고 싶었어! 얄미운 노인네, 돈 많고 작위가 높다는 이유만으로 나를 하대하고 공작 각하를 빼앗아 간 마녀 같은 여자! 당신을 죽이고 나도 죽겠어……!”
멜리타를 향한 원망을 쏟아내던 유니의 눈에 번쩍 이성이 돌아왔다.
“……어?”
볼록 튀어나온 휴게실 침대 이불에 칼질을 해대던 유니는 이불에서 피가 배어 나오지 않는다는 것과 제 주변에 흰 솜털이 날린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색이 된 멜리타가 자리에서 일어나 뒤로 주춤거리며 물러섰다.
“이, 이게 대체 무슨……!”
휴게실 침대 속에 찢어진 멜리타의 드레스와 베개를 넣어두고 사용인의 옷을 입은 채 멀리 떨어진 의자에 앉아 있던 레이첼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어쩌면 이런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정말 벌어지고 말았네요. 슬프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