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Mother Of the Male Lead Who Lives With An Ad**terous Man RAW novel - chapter (17)
불륜남과 사는 남주 엄마가 되었다 (17)화(17/151)
“테오도르의 의사와 상관없이 강제로 이혼할 방법이라니요? 그런 방법이 있나요?”
알았으면 왜 여태 안 알려줬냐는 듯한 어투였다.
매달리고 애원하는 말투에 시안의 입꼬리가 매끄럽게 호선을 그렸다.
신청하는 귀족이 없어 젊은 귀족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법이었다. 황가에서 제국법을 꼼꼼하게 배운 시안만 알고 있는 방법이었다.
“귀족 원로회와 신전에 결혼 무효 신청서를 접수하십시오.”
“결혼…… 무효 신청이라고요?”
레이첼이 눈을 크게 떴다.
결혼이란 여신과 황제의 이름 아래 맺어진 약속이었다.
결혼 무효는 결혼과 마찬가지로 귀족 원로회와 신전 양쪽이 허락해야 했다. 그만큼 절차도 까다롭고, 조건도 엄격했다.
법이 있는데도 귀족들이 결혼 무효가 아닌 이혼을 선택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명예와 체면 때문이었다.
결혼 무효는 한쪽이 굉장한 문제를 저질렀다는 의미였다. 그건 잘못을 저지른 가문에도, 그런 가문과 결혼한 상대 가문에도 굴욕적인 일이었다.
명예에 흠집이 나는 걸 싫어하는 귀족들은 잘못과 문제를 덮고 쉬쉬하며 결혼 무효가 아닌 이혼을 선택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결혼 무효를 신청하는 경우는 적어졌고, 이제는 존재조차 희미해졌다.
테오도르는 이미 요란법석 하게 잘못을 저지른 터라 따로 결혼 무효 조건을 따질 필요도 없었다.
레이첼은 명예를 챙길 친정이 없었고, 테오도르의 명예에 흠집이 나는 걸 주의할 필요도 없었다.
딱, 그녀를 위한 법이었다.
레이첼은 얼떨떨한 얼굴이었다.
“결혼…… 무효라니. 저는 들어본 적도 없어요.”
“못 믿겠다면 원로회나 신전에 찾아가 법을 확인해 보셔도 좋습니다.”
“아뇨, 아니. 믿어요. 대공 전하께서 말씀해 주신 거니까요.”
레이첼은 두 손으로 뺨을 감쌌다.
세상에, 결혼 무효라니!
그보다 더 좋은 게 없었다. 테오도르 같은 놈과 이혼한 것보다는 테오도르 같은 놈과 결혼한 적 없는 게 훨씬 나았다. 상황이야 크게 다르지 않겠지만, 기분이 그랬다.
시안이 조용히 미소 지었다.
“준비를 마치는 대로 결혼 무효 검토를 신청하세요. 준비해야 할 서류가 많고 절차가 복잡하지만 당신에게는 어렵지 않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일단 서류가 접수되면 부인께서 원하는 시기에 결혼 무효 신청을 통과시켜드리겠습니다.”
레이첼이 시안과 눈을 맞췄다. 아름다운 금색 눈동자가 요요히 빛났다.
선언이었다. 레이첼이 원하는 바를 들어주겠다는 유혹이었다. 자신이라면 할 수 있다는 자신이었다.
시안 디카르시냐크.
첫 만남이 의뢰인과 길드의 정보원이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가 내내 자신을 낮추기 때문일까. 까마득한 신분 차이가 잘 느껴지지 않는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시안은 모두가 차기 황제로 추대하고자 했던 현명하고 용맹한 황가의 남자였다.
욕심 많은 형에게 황좌를 내주고 자진하여 궁 밖으로 나온 황제의 동생이면서, 여전히 수많은 귀족의 정점에 선 제국의 유일무이한 대공이었다.
그레이엄은 대단한 사람의 딸과 연애했던 거구나.
이런 사람이 미래에 자신의 사돈이 되는 거구나.
감사보다 먼저 찾아온 것은 두려움이었다.
“……조언 감사합니다.”
“조언이 마음에 들지 않으십니까?”
“아뇨. 무척 마음에 들어요.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기도 하고요. 정말 감사드립니다.”
“감사하는 표정이 아닌데요. 안색이 어둡습니다.”
“음…….”
말해도 괜찮을까,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상대는 시안이었다.
“그레이엄에게 검술 가르쳐 주겠다고 하신 것도 그렇고, 여러모로 지나친 호의를 베풀어 주셔서요. 솔직히 조금 두렵습니다.”
시안의 가슴이 눈 폭탄을 맞은 듯 서늘해졌다.
부담스러워하는구나. 생각도 하지 못했다.
하긴 똑똑한 여자이니 지나친 시안의 호의에 다른 뜻이 담겨 있지는 않은지 의심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할 줄은 몰랐습니다. 겁주려는 의도는 없었어요. 미안합니다.”
“아뇨, 아니에요. 선의를 엉뚱하게 오해한 제 잘못입니다. 사과하실 필요 없어요.”
어쩐다. 정말로 다른 뜻은 없었다.
레이첼을 돕고 싶을 뿐이었다. 이유도 까닭도 없었다. 시안 자신도 자신의 마음과 욕망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하지만 시안은 레이첼이 자신의 호의를 쉽게 받아들이게 할 방법은 알고 있었다.
“다른 이야기를 먼저 할 걸 그랬습니다.”
“어떤 얘기 말씀이시죠?”
“당신을 도울 테니 당신도 나를 도와요.”
예상대로 레이첼의 눈에 빛이 돌았다.
호의보다 거래를 더 쉽게 받아들이는 사람이었다. 그 사실이 반갑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했다.
“어떤 것을 도와드리면 될까요? 힘닿는 대로 도와드리겠습니다.”
“아직은 아무것도 도와주실 필요 없습니다.”
“아직, 이라고요?”
“다만 제가 필요로 할 때 거절하지 말고 반드시 제 편에 서서 저를 도우셔야 합니다.”
의아한 얘기였지만 레이첼은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대가 없는 호의보다는 언젠가 빚을 갚을 수 있는 쪽이 편했다.
다만 자신이 시안을 도울 일이 뭐가 있을지 예상이 되지 않았다. 대공이면서 길드의 정보원이기도 한 그는 인맥, 정보력과 부, 권력과 무력, 모든 면에서 레이첼보다 월등했으니까.
‘뭐, 모든 면에서 나으니까 부족한 내 손이 필요한 순간도 있겠지.’
그렇게 결론 짓고 생각을 마무리했다.
레이첼이 생긋 웃었고, 시안 역시 미소 지었다.
“그럼 결혼 무효를 신청하시는 것으로 알고 보상을 준비해 두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가지.”
“말씀하세요.”
“알고 계시겠지만 반드시 행복해지셔야 합니다. 그게 엘로사 백작에게는 무엇보다 크고 잔인한 복수가 될 테니까요.”
행복해지라고?
생각해 본 적 없는 얘기였다. 레이첼의 목표는 테오도르와 헤어지는 것과 그레이엄을 원작대로 돌로라사와 이어주는 것뿐이었다.
시안은 지나치며 한 얘기였다는 듯 태연히 다른 화제를 꺼냈지만 레이첼의 머릿속에서는 ‘행복’이라는 단어가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았다.
* * *
레이첼이 디카르시냐크 대공 저택을 나와 결혼 무효 신청 서류를 준비할 무렵, 제인의 집으로 서류가 도착했다.
고급스러운 종이에 적힌 인장을 뜯어내 글씨를 읽는 제인의 앳된 얼굴이 희게 질렸다.
[안내문엘로사 백작 가문에서 집사로 일했던 칼이 귀 가문의 재산을 몰래 빼돌린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당사자는 모든 혐의를 자백했고, 귀족 원로회에서 수집한 증거와 자백 내용이 일치함을 확인했습니다.]
“이, 이게 무슨 소리지?”
칼은 성실하고 선량한 사람이었다. 제가 손해를 입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았다.
게다가 제인과 테오도르는 서로 사랑했고 칼 역시 이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사람이 테오도르 가문의 재산을 빼돌렸을 리가 없었다.
테오도르가 제인에게 돈이나 값비싼 물건을 챙겨준 것은 사실이었다. 몇 번은 그녀가 원해서였고, 몇 번은 테오도르가 자발적으로 보내주었다. 그게 전부였다.
제인은 이 돈과 선물이 테오도르가 빼돌린 재산이라는 걸 몰랐다.
그냥 백작이니까 돈이 많겠거니, 하며 주는 대로 받았을 뿐이었다.
“말도 안 돼.”
충격적인 내용이 이어졌다.
[……칼은 원로회 감옥에 150년간 갇힐 예정입니다.수감 기간이 종료될 때까지 면회 및 조문이 불가능합니다.
칼이 빼돌린 엘로사 백작 가문의 재산은 우선 세금 관리국이 환수합니다.
밀린 세금을 정산하고 차액을 엘로사 저택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수감 기간이 어떻게 150년이야? 아빠는 이제 마흔이라고! 게다가 빼돌린 적 없는 돈까지 빼앗아 간다고? 왜? 대체 왜! 왜 짓지도 않은 죄로 왜 이렇게까지 심한 벌을 받아야 해!”
연회장에서 테오도르와 저지른 짓은 제인이 생각하기에도 부끄러운 일이었다.
테오도르는 자신이 중요한 연회를 준비한다고 했다. 제인 하나를 몰래 연회장 안으로 들여보내는 건 일도 아니라며 자랑을 늘어놓았다.
시키는 대로 사용인의 옷을 입고 연회장에 숨어들었다.
적당히 일하는 척하다가 테오도르와 약속한 장소에서 만났다.
음악, 아름다운 연회장, 술, 멋진 남자친구, 모든 것이 완벽했다.
사랑이 타올랐고, 끓어 올랐고, 제인은 테오도르에게 몸을 맡겼다.
그런 모습을 사람들에게 들킬 줄은 꿈에도 몰랐다.
부끄럽고 수치스러웠다. 정상적인 관계였어도 부끄러웠을 일인데 하필 테오도르에게는 부인이 있었다.
제인은 숨어서 몇 날 며칠을 울었다. 연락이 없는 남자친구가 서운했지만 아빠는 그도 곤란한 상황일 거라며 위로해 주었다.
마음이 풀릴 때까지, 일이 잠잠해질 때까지 그렇게 지냈으면 좋으련만 아쉽게도 칼에게는 직장이 있었다.
‘잠시 다녀오마. 저택에 쌓인 급한 일을 처리하고 장기 휴가를 쓸 생각이다. 주인님이라면 이해해 주실 거야. 너를 사랑하시지 않니.’
혼자는 싫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칼은 사랑하는 사람의 집을 돌보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잠시 다녀오겠다던 칼은 돌아오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도 소식조차 없었다. 이럴 분이 아니신데, 하며 기다리던 중에 이런 날벼락이 떨어졌다.
불안한 걸음으로 집 안을 왔다 갔다 배회하던 제인은 결국 외출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테오도르를 만나야 했다. 만나서 자초지종을 물어야 했다.
제인은 엘로사 백작 저택을 싫어했다. 사랑하는 테오도르가 사는 집이기도 했지만 자신과 그를 이뤄지지 못하게 가로막는 악독한 여자가 사는 곳이기도 했다. 왕자를 가둔 마녀의 탑 같았다.
하지만 싫어도 가야 했다.
‘테오한테 무슨 일이 생긴 게 틀림없어. 마녀 때문에 나한테 오지 못하는 게 분명해.’
엘로사 저택을 찾아가 방문 신청을 했다. 마녀가 있다면 방문을 거절당하겠지만 혹시 그녀가 집을 비웠다면 테오도르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몰랐다.
다행히 방문을 거절당하지 않았다. 안도감에 가슴을 쓸며 저택으로 들어섰다.
오랜만에 연인을 만난다는 생각에 마음이 들떴다. 서럽고 속상하고 무서웠던 감정들이 울컥 차올랐다.
끼익―
그러나 거대한 문이 열리고 모습을 드러낸 것은 마녀였다.
“안녕, 제인. 우리 이럴 사이 아닌데, 자주 만나네.”
당당하게 팔짱을 낀 레이첼의 모습에 제인은 덜컥 겁을 먹었다.
‘자리를 비운 거 아니었어? 테오도르는? 테오도르는 어디 있는 거지?’
주변을 둘러보았으나 테오도르는 보이지 않았다.
도망치고 싶었다.
안 돼. 테오도르를 구하려면 용기를 내야 했다.
“……안녕하세요, 부인. 테오도르 엘로사 백작을 뵙고 싶어 찾아왔습니다.”
레이첼이 웃었다.
“당신 남자친구를 왜 여기 와서 찾아?”
순간 제인은 깨달았다. 제가 호랑이 아가리 속으로 걸어 들어 왔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