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Mother Of the Male Lead Who Lives With An Ad**terous Man RAW novel - chapter (18)
불륜남과 사는 남주 엄마가 되었다 (18)화(18/151)
제인은 온몸을 덜덜 떨었다. 레이첼에게 뺨을 얻어맞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날은 테오도르가 함께였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테, 테오도르를 돌려주세요.”
“아하하. 이거 웃기는 아가씨네. 테오도르를 뺏어간 건 너잖아. 근데 왜 나한테 돌려달라니?”
“당신이 숨겼잖아요.”
“안 숨겼는데. 내가 그딴 걸 왜 숨기겠어.”
“안 숨겼다고요? 진짜로요?”
“당연하지.”
레이첼이 눈을 곱게 접으며 웃었고, 제인의 팔뚝에 소름이 돋았다.
“숨겨주다니. 잘근잘근 밟아주려고 기다리는 중인걸.”
제인은 울고 싶어졌다.
눈치코치가 없는 제인이지만 레이첼이 화가 났다는 사실은 알았다. 웃고 있지만 즐거워서 웃는 게 아니었다. 그녀는 테오도르가 나타나면 진짜로 밟아줄 생각이었다.
테오도르는 이곳에 없다. 자신은 잘못 찾아왔다.
그렇다면 칼은 어쩌지? 엘로사 백작 가문의 재산을 빼돌렸다는 오해를 풀어야 하는데!
순간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설마 레이첼, 저 마녀가 저지른 짓일까?
당장이라도 울며 저택에서 도망치고 싶었지만 연인과 아빠를 위해서 제인은 용기를 냈다. 역시 사랑은 위대하다.
“부, 부인. 혹시 우리 아빠를 그렇게 만든 게 부인인가요?”
“아빠?”
레이첼은 시치미를 뗐다. 무슨 소리를 하냐는 표정을 지었다. 가만히 제인을 바라보던 그녀가 피식 웃었다.
“세상에. 이제는 하다 하다 남자친구 말고 아빠도 여기 와서 찾는 거야?”
울컥, 하더니 결국 제인의 눈에서 눈물이 또르르 굴러떨어졌다.
아빠가 억울하게 잡혀간 것도 서러운데 저런 말까지 들으니 참기가 어려웠다.
“부인. 무슨 말씀을 그, 그렇게 하세요…….”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딴 얘기 하러 온 거면 이만 나가줘. 꼴도 보기 싫으니까.”
“부인이 그런 게 아니에요? 우리 아빠한테 엘로사 백작 가문의 재산을 빼돌렸다는 누명을 씌운 게, 정말 부인이 아니라는 말인가요?”
“내가? 정말 그렇게 생각해?”
제인이 입을 틀어막았다.
그러고 보니 테오도르는 늘 자랑처럼 말했었다.
‘바보 같은 레이첼은 아무것도 몰라. 내가 가문의 재산을 어떻게 쓰는지 관심도 없다니까. 그러니까 이렇게 편하게 너한테 선물도 하고 그러는 거지만. 하하.’
칼은 다른 사람의 재산을 빼돌려 자신의 배를 채운 적이 없다.
레이첼은 아무것도 모른다.
테오도르는 아내 몰래 가문의 재산을 제인에게 선물했다.
칼에게 누명을 씌울 수 있는 사람은 테오도르밖에 없었다.
제인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도리질 쳤다.
아냐, 테오도르가 그런 짓을 저질렀을 리가 없어. 우리는 사랑하는 사이인걸. 사랑하는 사람의 아빠에게 누명을 씌우다니, 그가 그랬을 리 없다고.
울음이 새어 나오는 입을 틀어막고 훌쩍이는데 레이첼의 혼잣말이 들렸다.
“하, 테오도르. 하여튼 제대로 하는 게 없는 놈이었잖아. 이딴 놈을 남편이라고 믿고 살았으니…….”
제대로 하는 게 없는 놈.
그제야 테오도르에게 씌워졌던 콩깍지가 벗겨졌다.
생각해 보면 테오도르는 그런 사람이었다.
사랑한다고 말하고 재산을 빼돌려 호의호식하게 해주면서도 결혼은 절대 안 된다던 사람.
진심으로 사랑한다더니 불륜 사실을 들키자마자 어딘가로 숨어버린 겁쟁이.
‘제인, 어쩔 수 없었어. 황실 모독죄에 불륜에 탈세까지 더해지면 나 정말 큰일나. 그러니까 이해해 줘. 시간이 지나고 잠잠해지면 내가 꼭 아버님의 누명을 벗겨줄게.’
테오도르의 비굴한 변명이 들리는 듯했다.
그럴듯했다. 테오도르라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제인은 달려가 레이첼의 발밑에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부인! 제발 저 좀 도와주세요!”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애원했다.
“맞아요, 저 돈 받았어요. 테오가 저한테 돈 보내줬어요! 물건도, 집도 사줬어요!”
“지금 자랑하는 거야?”
“전부 돌려드릴게요. 돌려드릴 테니까 제발 우리 아빠 좀 도와주세요! 부인은 하실 수 있잖아요. 백작 부인이잖아요!”
“대체 무슨 헛소리야?”
“나쁜 테오도르 자식이 저랑 아빠를 함정에 빠트렸어요. 제가 잘못했어요. 한 번만, 딱 한 번만 도와주시면 저, 다시는 테오랑 만나지 않을게요. 그러니 제발 자비를 베풀어주세요!”
정말 간절하게 빌었다.
칼은 하나뿐인 가족이었다. 늘 자신의 행복을 빌어주는 자상한 아빠였다. 그런 사람이 누명을 쓰고 감옥에서 썩어가게 둘 수는 없었다.
나쁜 테오도르. 사랑한다더니. 사랑한다더니!
엉엉 우는 제인을 바라보던 레이첼은 불쾌하다는 듯 드레스 자락을 당겼다.
“돌아가. 염치가 없어도 유분수지. 나한테 남편 내연녀를 도우라고? 당신하고 테오도르 놈 사이의 일은 둘이서 처리해.”
“아아, 제발. 부인! 백작 부인, 제발 도와주세요!”
그러나 레이첼은 미련 한 자락 남기지 않고 뒤돌아 홀을 벗어났다.
제인은 오래도록 홀에서 울부짖다가 사용인들에게 떠밀려 저택에서 쫓겨났다.
* * *
제인을 뒤로하고 방으로 들어온 레이첼은 짐 정리를 시작했다.
꼭 필요한 물건을 몇 가지 챙기고 서재에서 찾은 테오도르의 서신도 챙겼다. 제인과 주고받은 연애편지였는데 당장 태워버리려다가 언젠가 쓸데가 있겠지 싶어 버리지 않았다.
의도한 대로 제인이 테오도르를 오해하게 하는 데 성공했다. 칼과 레이첼의 합작품이었다.
사실 레이첼은 칼이 완전히 죄를 뒤집어쓰게 만들 생각은 없었다.
제인과 테오도르 사이를 이간질하다가 적당히 칼의 혐의를 테오도르에게 돌릴 생각이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칼은 자진해서 세금 관리국으로 걸어 들어갔다.
‘제가 자진해서 뒤집어쓰겠습니다. 부디 제인에게는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그게 내게 매력적인 제안이라 생각해?’
‘예. 제가 자수하면 백작 부인께서는 저와 지저분한 진흙탕 싸움을 하실 필요가 없어지니까요.’
‘…….’
틀린 말이 아니었다.
칼은 용의주도하고 똑똑한 사람이었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 레이첼을 귀찮게 할 수 있었다.
그런 사람이 제인에게 자비를 베푸는 대가로 조용히 사라져 주겠다는 건 반가워해야 할 제안이었다.
레이첼은 칼의 제안을 수락했다.
이제 어떻게 되려나. 일단 제인은 테오도르를 만나자마자 뺨을 한 대 올려붙이겠지.
테오도르는 영문도 모른 채 같이 화를 낼까? 아니면 사랑의 힘으로 오해를 풀려고 노력할까?
기왕이면 같이 화내가다 망해버렸으면 좋겠다. 그래야 권선징악, 해피엔딩, 자업자득이 완성될 테니까.
아무튼 시안의 조언대로 결혼 무효 신청 서류도 전부 준비했고, 이제 남은 건 테오도르에게 이혼을 선언하는 것뿐이었다. 그 뒤에는 모든 걸 정리하고 훌훌 저택을 떠나기만 하면 됐다.
필요한 것만 챙겨 넣은 가방을 탁, 닫고서 한숨을 쉬었다.
“하아. 진짜 홀가분하네.”
이렇게 홀가분할 줄 알았으면 복수고 뭐고 적당히 떠나버릴 걸 그랬다. 모든 걸 끝내고 가는 거라 더 홀가분한 거겠지만.
가방 위에 턱을 대고서 왼손을 들어올렸다. 테오도르와 나눠 낀 결혼 반지가 아직 왼손 약지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그동안은 테오도르를 속이느라 내내 끼고 다녔다.
“이 반지도 곧 던져 버릴 수 있겠어.”
혼잣말을 중얼거리다가 입술을 쭉 내밀었다.
“그런데…… 어디로 가지?”
레이첼에게는 친정도 친구도 없었다. 엘로사 가문을 나와 갈 곳이 마땅치 않았다. 원작에서 레이첼이 테오도르에게 지나칠 정도로 매달린 건 이 탓도 컸다.
의지할 곳이 없을까 싶어 무작정 레이첼의 편지와 일기를 뒤졌다. 거기서 얻은 정보는 단편적이고 쓸쓸한 것뿐이었다.
‘백작 가문의 영애였으나 불의의 사고로 가문과 가족을 잃은 여자.’
본래 레이첼의 친정은 깐깐한 베렝겔라가 정략결혼 상대로 점찍었을 만큼 덕망 높고 풍족했었다.
아버지인 프람 백작은 현명했으며 어머니인 프람 백작 부인은 인자하고 자상했다.
가문에 딱 하나 있는 아이인 레이첼은 넘치도록 사랑받았다. 너무 사랑받은 나머지 세상 물정을 몰랐고, 부모님이 마차 사고로 돌아가셨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넋을 놓아버렸다.
결혼하고 1년이 지났을 때였다.
‘레이첼, 너무 슬퍼하지 마. 내가 있잖아.’
레이첼은 테오도르의 그딴 위로에도 껌뻑 넘어갈 만큼 바보였다. 그녀는 남편에게 부모님의 장례와 프람 가문의 재산, 저택, 가문의 뒤처리를 모두 맡겨버렸다.
테오도르는 프람 가문의 재산을 정리해 제인에게 선물했고, 프람 백작 가문의 이름을 귀족 명부에서 지워버렸다.
“생각할수록 개자식이란 말이지. 작위를 없애는 거야 이어받을 사람이 없으니 그렇다고 쳐도 어떻게 장인의 재산을 갈취해서 여자친구한테 줄 수가 있어? 나쁜 놈.”
결혼 무효 신청 서류를 준비하면서 그 내용까지 함께 정리했다.
결혼이 무효가 되면 지참금으로 가져왔던 돈과 프람 가문의 재산, 작위까지 모두를 돌려받을 것이다.
‘나중에 전부 그레이엄에게 물려줘야지. 돌로라사와 연애할 때 도움이 될지도 몰라.’
침대에 풀썩 누운 레이첼은 앞으로 그레이엄과 어떤 생활을 꾸려 나갈지 생각하다가 잠에 빠져들었다.
* * *
레이첼은 꿈을 꿨다.
꿈속에서 레이첼은 레이첼이 아니었다. 대한민국에 사는 평범한 스무 살 여대생이었다.
“엄마, 엄마. 정신 차려요!”
“하아. 하아. 우욱.”
긴 부부 싸움 끝에 엄마에게 손찌검한 아빠는 엄마가 쓰러지자 도망쳐 버렸다.
119에 전화해 구급차를 부르고 나서 엄마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러게 왜 이혼 안 했냐고! 이혼하면 아빠 얼굴 안 보고 살아도 되잖아! 멍청이처럼 왜 이렇게 맞고 사는 거야!”
“너, 너한테 아빠가 있어야…….”
“시끄러워! 왜 내 핑계를 대? 이러면 내가 고마워할 줄 알았어? 웃기지 마!”
엄마가 그렇게 돌아가실 줄은 몰랐다.
잠에서 깬 레이첼은 눈을 번쩍 뜨고 숨을 몰아쉬었다. 그녀는 침대 옆 탁자 위에 올려둔 이혼 서류와 결혼 무효 신청 서류를 노려보았다.
“……그래. 이혼할 수 있을 때 빨리해야 해. 한 번 겪어 봤잖아.”
잘했어. 잘했어. 이보다 더 빨리 이혼할 수는 없었을 거야.
입술을 꾹 물고 다시 눈을 감으니 갑자기 시안의 목소리가 들렸다.
‘반드시 행복해지셔야 합니다.’
그래, 그것도 해야 한다.
이혼은 끝이 아닌 시작일 뿐이다.
행복해져야 한다. 테오도르에게 더 완벽하게 복수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레이엄과 레이첼 자신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