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Mother Of the Male Lead Who Lives With An Ad**terous Man RAW novel - chapter (23)
불륜남과 사는 남주 엄마가 되었다 (23)화(23/151)
돌로라사는 시가르의 딸이었다.
릴리라는 이름의 황궁 시녀가 시가르의 승은을 입고 낳은 사생아였다.
이미 시가르에게는 황태자 아트레이유가 있는 상황이었다. 황비 베아트릭스도, 황제 시가르도, 돌로라사를 반기지 않았다.
시녀는 겁을 먹고 아이를 내버려 둔 채 도망쳐 버렸다.
아무도 아이를 지켜주지 않았다.
태어난 지 이제 겨우 열흘. 시가르는 배가 고파 울어대는 어린 돌로라사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시안, 죽여라.’
시안은 아이를 죽이지 못했다. 아이는 죄가 없었다. 그저 태어났을 뿐이었다.
그때 시안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시가르의 명령을 거부했다.
‘죽일 수 없습니다.’
‘그럼 네가 죽을 테냐?’
‘제가…… 키우게 해주십시오.’
열아홉. 성인이 갓 넘은 나이일 때였다. 시안은 결혼은커녕 사랑도 해보지 못하고서 덜컥 아이를 키우겠다고 해버렸다.
안 된다고 할 줄 알았으나 시가르는 의외로 흔쾌히 허락했다.
얼마나 흔쾌했느냐 하면, 돌로라사가 시안의 온전한 자식이 되도록 법까지 바꿔주었을 정도였다.
‘지금 제국법은 입양아를 자식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어떠냐, 아우야. 내가 그 아이를 온전한 너의 자식으로 만들어 주마. 그 아이에게 네 재산과 작위를 물려주고 싶다면 엎드려 빌어라.’
‘은혜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렇게 제국법이 바뀌었다.
입양했더라도, 사생아여도 원한다면 아이를 입적하여 귀족 명부에 이름을 올릴 수 있게 되었다. 작위와 재산 또한 물려줄 수 있었다.
레이첼이 미련 없이 테오도르와의 결혼을 무효화하기로 한 것도 이 법 덕분이었다. 미혼이더라도 귀족 명부에 그레이엄을 자식으로 등록할 수 있었으니까!
시안은 시가르가 자신의 혼삿길을 막으려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교계에서 시안은 누구보다 매력적인 신랑감이었다. 잘생긴 외모에 무력과 권력, 명예와 부를 두루 갖춘 그는 전략적으로도 인간적으로도 인기가 많았다.
그러나 법이 바뀌고 시안이 돌로라사를 입양한 순간 그는 결혼 시장에서 사라졌다.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아이를 키우며 말을 아끼는 대공은 사교계에서 좋은 먹잇감이 되었다. 숨겨둔 여자, 문란한 사생활, 더러운 취향, 근거 없는 소문이 그의 주변을 맴돌았다.
상관없었다.
상관이 있어도 어쩔 수 없었다.
그 작은 아이를 홀로 둘 수가 없었으므로.
‘돌리는 앵두가 좋아! 그러니까 비밀 암호로 할래!’
‘그럼 아빠는 산딸기를 좋아하니까, 산딸기를 암호로 할게.’
‘좋아! 역시 돌리 아빠가 최고야!’
환하게 웃는 딸의 얼굴이 떠올랐다.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위로 치솟으려 했다.
시가르 앞에서 히죽댈 것만 같아 시안은 고개를 더 조아리며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돌로라사는 건강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가. 다음번에는 내게도 데리고 와라. 어떻게 자랐는지 궁금하니.”
들어줄 생각이 없는 부탁이었다.
시안은 돌로라사가 시가르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자유롭게 살기를 바랐다.
원작의 돌로라사가 그레이엄을 만난 것은 이런 시안의 바람 때문이었다.
시안은 돌로라사가 성인이 되자마자 먼 길을 떠나보냈고, 아이는 그렇게 오른 여행길에서 살인귀가 된 용병 그레이엄을 만났다.
미래에 일어날 일을 알 턱이 없는 시안은 이 순간 형의 관심이 돌로라사에게서 멀어지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 * *
그레이엄과 레이첼은 오후의 햇볕이 따스하게 내려앉은 응접실에서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건 그레이엄의 생각이었고, 레이첼의 얼굴에는 근심과 걱정이 가득했다.
“그레이엄. 검술 훈련이 너무 고된 것 아니니? 엄마가 대공 전하께 다시 말씀드려 볼까?”
“전혀요! 얼마나 재미있는데요. 매일매일 세지는 게 느껴져요!”
“하지만…… 매일 이렇게 몸이 붓고 다치니 엄마는 너무 걱정돼.”
그도 그럴 것이 그레이엄의 몸은 며칠 새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멍든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긁히거나 넘어져 피가 난 곳도 많았다. 아침저녁으로 몸이 퉁퉁 붓고 근육이 뭉치기도 했다.
처음에는 자그마한 아이에게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어 시안을 원망했다.
그러나 그레이엄은 시안이 찾아오지 않는 날도 자발적으로 정원을 뛰고 검을 휘둘렀다. 다치고 넘어지고 아파도 울지 않았다.
이제 저녁 시간에 응접실에 앉아 그레이엄의 몸을 마사지해주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레이첼이 그레이엄의 발바닥을 꾹꾹 눌러주었다. 간지러운지 아이는 까르륵 웃음을 터트렸다.
“아하하, 엄마. 간지러워요!”
“간지러워도 참아. 종일 뛰어다녔잖아. 내일 퉁퉁 붓지 않으려면 마사지를 잘 해줘야 해.”
“이히히히! 그래도 간지러워요!”
결국 그레이엄은 레이첼의 손에서 발을 쏙 뺐다. 날래게 몸을 돌린 아이는 레이첼의 무릎에 머리를 대고 누웠다. 며칠 훈련했다고 몸놀림이 무척이나 재빨라졌다.
“엄마, 저 행복해요.”
“정말?”
“응! 아빠도 없고, 유모나 다른 사람이 아니라 엄마랑 매일매일 같이 놀잖아요! 저 세지는 중이니까 이제 누가 와도 걱정 없고요.”
“그레이엄이 행복하다고 하니까 엄마도 행복하다.”
“에헤헤. 저는 엄마를 행복하게 하는 사람이에요. 그렇죠?”
“그럼, 당연하지.”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요.”
“엄마도 그레이엄을 세상에서 제일 사랑해.”
엄마의 고백에 헤헤 웃던 그레이엄이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엄마. 우리 여행 가기로 했잖아요. 그건 언제 가요? 짐은 다 싸놨는데 출발을 안 하니까 아쉬워요.”
“아……. 여행, 가야지.”
레이첼 역시 얼른 엘로사 저택을 나가고 싶었으나 어쩔 수 없었다. 이곳을 나가서 지낼 적당한 집을 구하지 못한 탓이었다.
아직 사용인들에게 청구한 배상금도, 테오도르의 위자료도, 시안의 보상금도 받지 못했다.
이런저런 일이 벌어지기는 했지만 사용인과 테오도르를 집에서 쫓아낸 것 말고는 소득이 없었다.
수중에 남은 돈으로 집을 구하려고 했으나 금액이 너무 적었다.
레이첼이 가진 돈으로 구할 수 있는 곳은 도시 외곽의 집 정도였는데, 그곳의 집은 관리가 안 되어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거나 이미 무너졌거나 둘 중 하나였다.
마음 같아서는 돌로라사와 그레이엄이 만나기 쉽도록 수도 중심부나 귀족 저택가에서 살고 싶었지만 너무 비쌌다. 레이첼이 가진 돈으로는 저택에 딸린 방 한 칸을 빌리기도 어려웠다.
‘현실에서도 집값 때문에 고생했는데 여기 와서도 이래야 한다니! 나도 기왕 빙의할 거 돈 많은 악역 영애로 빙의할걸!’
툴툴 대봐야 소용없는 일이었다.
레이첼의 부모님인 전 프람 백작 부부가 썼던 저택도 알아봤으나 테오도르가 팔아치워 새로운 주인이 살고 있었다.
테오도르의 재산 정리가 다 끝나지 않아 엘로사 저택을 쓸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테오도르의 흔적이 남은 저택은 기분이 나빴지만 편리하고 익숙하고 컸다.
기분 좋은지 노래를 흥얼거리는 그레이엄을 쓰다듬어 주었다.
“엄마도 얼른 그레이엄이랑 여행 가고 싶은데, 어디로 갈지 못 정했어. 어디로 갈지 결정될 때까지는 집에 있어야 할 것 같아.”
“알겠어요. 저 기다릴 수 있어요. 매일 오늘 같으면 놀러 안 가도 괜찮아요.”
레이첼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안 될 말이었다.
늦어지더라도 엘로사 저택은 꼭, 벗어나야 했다.
“그보다 그레이엄. 집에서 나가면 어디 가고 싶은 곳 있어?”
“있어요! 저 가고 싶은 곳 많아요! 열 군데 백 군데 있어요!”
“정말? 가고 싶은 곳이 많구나. 몰랐네. 어디 가고 싶은데?”
“큰 빵집이요! 거기서 달콤한 빵을 잔뜩 먹고 싶어요. 그리고 또, 장난감이 많은 가게랑 진짜 검을 파는 가게도 가고 싶어요! 아이스크림 가게도요!”
수도 중심부의 가게들이었다.
인생의 묘미는 역시 쇼핑이지. 그레이엄이 뭘 좀 아는구나.
‘그래. 역시 수도 중심부에 살아야 해. 당장 여기서 나가야 하는 것도 아니니까 느긋하게 생각하자.’
배상금과 위자료, 보상금을 전부 합치면 수도 중심부의 작은 집 정도는 마련할 수 있을 테니까.
그때 현관에서 찌이잉!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그레이엄과 레이첼이 눈을 맞추며 고개를 갸웃했다. 찾아올 손님이 없었다.
“누구지? 그레이엄, 엄마 다녀올 테니까 누워서 쉬고 있어.”
“같이 갈게요. 혹시 나쁜 사람일 수도 있잖아요.”
괜찮다는 말에도 그레이엄은 극구 엄마를 따라 현관으로 나왔다.
레이첼은 문고리를 잡은 채 목소리를 높였다.
“누구시죠?”
“저는 시안 아이사 디카르시냐크 대공 전하의 보좌관 닉이라고 합니다. 레이디 레이첼께 전해드릴 것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대공 전하의 보좌관이라고요?”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보상이 도착한 모양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얼른 문을 열었다.
현관에 선 닉은 화려한 예복을 입고 있었고, 그의 뒤로 거대한 팔두마차가 네 대나 서 있었다.
세상에, 팔두마차라니!
당황해서 눈이 동그래진 레이첼을 보며 닉이 말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레이디 레이첼. 말씀드렸듯이 전해드릴 것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네, 말씀하세요.”
큼큼, 목을 가다듬은 닉이 근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황제 폐하의 전언입니다. 폐하께서는 황실을 모독하고 반란을 저지른 테오도르를 돕지 않고 지조를 지킨 레이디 레이첼에게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
황제가 감명을 받았다니, 생각도 못 한 일이었다.
닉의 말이 이어지자 몇 남지 않은 사용인들이 근처에 모여 상황을 구경했다.
“또한 귀족 원로회는 남편의 정보를 숨김없이 제공해 준 레이디 레이첼의 충성심에 감동했다고 전하셨습니다. 저는 황제 폐하와 원로회의 대표, 시안 대공 전하의 이름으로 레이디 레이첼에게 보상을 전달하려 합니다.”
레이첼은 바르게 서서 고개를 끄덕였다.
시안이 먼저 보상하겠다고 한 일이었다. 그가 쪼잔하게 적은 금액을 줄 리는 없어 은근히 기대됐다. 얼마나 줄까? 5천 골드? 아니면 1만 골드?
두근두근 떨리는 마음으로 닉이 말해줄 금액과 수도 중심부의 집값을 계산했다. 그리고 닉이 보상을 전해 준 순간, 레이첼은 깜짝 놀라 머리가 텅 비어버리고 말았다.
“……네? 보좌관님, 죄송하지만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