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Mother Of the Male Lead Who Lives With An Ad**terous Man RAW novel - chapter (24)
불륜남과 사는 남주 엄마가 되었다 (24)화(24/151)
닉은 슬금슬금 올라가는 입꼬리를 억지로 잡아 내렸다.
모시는 상관이 시안이라는 건 이렇게 기분 좋은 일이었다.
상대방에게 예상 못 한 깜짝 선물을 전하면서 반응을 생생하게 즐길 수 있다는 것!
아, 물론 외근 수당을 두둑하게 챙겨주시는 것도 한몫했고.
닉은 차분한 목소리로 레이첼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레이디 레이첼에게 황궁 서쪽 출구 앞 대저택과 사용인 백 명을 하사하기로 하셨습니다. 저택은 황제께서, 사용인은 원로회에서 하사하는 포상입니다.”
황궁 서쪽 출구 근처는 대귀족과 부호들이 사는 초호화 저택가였다.
번화가와 가까우면서도 경비가 삼엄해서 아무나 함부로 접근하지 못했다. 제인이나 테오도르가 얼씬도 하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서쪽 출구 앞 대저택에 사용인을 백 명이나 하사하다니! 정말이지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게다가 거기는…….
“거긴 디카르시냐크 대공 저택 맞은편이 아닌가요?”
“맞습니다.”
“와아! 스승님 앞집!”
그레이엄이 소리를 질렀다.
레이첼은 따라 소리를 지르고 싶은 마음을 억눌렀다.
디카르시냐크 대공 저택 바로 앞이라니! 따로 약속을 잡을 필요도 없이 가볍게 돌로라사를 만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었다.
우리 그레이엄, 살인귀가 되어 사랑을 쟁취하는 짠한 드라마가 아니라 소꿉친구 로맨스 소설의 주인공이 되겠구나!
“저택 관리에 필요한 비용 일체는 향후 20년간 황궁에서 지원합니다. 유지 보수 및 청소를 마친 상태이니 짐을 꾸리는 대로 거처를 옮겨 생활하시면 됩니다.”
향후 20년간!
그레이엄이 돌로라사와 결혼할 때까지 무리 없이 살 수 있겠다!
집이 필요한 순간에 딱 맞춰 저택을 선물 받게 된 것이 무척 신기하고 기뻤다.
혹시 상황을 전부 아는 시안이 준비해 준 것이 아닐까 싶었으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저택은 황제가 준 보상이었다. 시안이 아무리 대단해도 황제에게 레이첼이 필요한 것을 얻어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닉은 기뻐하는 레이첼과 그레이엄을 보며 뿌듯하게 미소 지었다.
“마차를 준비해 왔으니 준비를 마치면 언제든 출발하셔도 좋습니다. 저는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닉의 모습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그레이엄이 졸랐다.
“엄마, 엄마 우리 당장 출발해요. 네? 짐도 다 싸놨잖아요!”
“그럴까? 우리 지금 당장 새 저택으로 놀러 가볼까?”
“와앗! 좋아요, 정말 좋아요!”
그레이엄과 레이첼은 미리 준비해 둔 가방을 들고 마차에 올랐다. 일꾼들은 짐이 너무 적다며 의아해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하사받은 저택은 멀리서도 눈에 띌 만큼 아름답고 으리으리했다. 엘로사 저택과 달리 높고 큰 담벼락이 있었고, 입구는 갑옷 입은 기사가 지키고 있었다.
마차에서 내리자 시안이 레이첼과 그레이엄을 반겼다.
“어서 오십시오, 레이디 레이첼. 그리고 그레이엄.”
자주 만나서인지 시안이 무척 반갑게 느껴졌다. 그를 만날 때마다 좋은 일이 생기는 것 같았다.
“대공 전하, 이런 곳에서 뵙다니 무척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스승님!”
레이첼과 그레이엄은 들뜬 모습이었다. 선물이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었다. 신경 쓴 보람이 있구나 싶어서 시안은 기분이 좋았다.
황제 시가르는 레이첼에게 보낼 하사품을 시안에게 일임했다. 그는 분명 ‘흘러넘칠 만큼’ 포상하라고 했고 시안은 명령을 따랐다.
시안은 레이첼에게 필요한 것이 돈이 아닌 집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가 준비한 저택은 수도 중심부에서 가까워 편리한 데다 안전했다. 그레이엄과 레이첼 모두가 만족할 만한 조건이었다.
게다가 ‘황제’의 이름으로 하사한 덕인지 레이첼은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저택을 받았다.
시안이 준비한 저택인 걸 알았다면 부담스러워하며 거절했을지도 몰랐다. 초호화 저택에 사용인 백 명이라니, 유지비가 웬만한 소도시의 예산과 맞먹는 수준이었으니까.
시안을 따라 저택 안으로 들어가자 거대한 홀에 사용인들이 죽 늘어서 있었다.
시안이 사용인 무리의 가장 앞에 선 사람을 소개했다. 갈색 머리카락에 갈색 눈동자, 두꺼운 안경을 낀 날카로운 인상의 여성이었다.
“이쪽은 시녀장이자 비서인 케이티입니다. 저택 관리와 생활 전반을 도와줄 겁니다.”
“안녕하십니까, 레이디 레이첼. 케이티입니다. 대공 전하의 명을 받들어 저택의 살림과 생활을 책임지게 되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말씀 편하게 하십시오. 손님께서 오셨으니 우선 응접실로 안내하겠습니다.”
레이첼과 시안을 응접실로 안내한 케이티는 안으로 따라 들어가려는 그레이엄의 어깨를 부드럽게 붙잡았다.
“그레이엄 도련님은 저를 따라오십시오. 저택에 도련님이 좋아하실 만한 훈련장과 놀이방, 서재가 있거든요. 안내하겠습니다.”
“앗, 저, 저요? 하지만 저어…….”
그레이엄이 레이첼을 돌아보았다. 낯선 곳이라 엄마와 떨어지고 싶지 않은 듯했다.
얼른 그레이엄을 데리고 있겠다고 말하려는데 아이가 소리쳤다.
“조, 좋아요. 저 저택 구경시켜주세요!”
“그레이엄? 괜찮겠니?”
“그럼요! 제가 먼저 저택 구경하고 나중에 엄마한테 소개해 드릴래요! 그래도 되죠?”
예상 못 한 씩씩한 반응에 레이첼이 당황해서 눈을 깜빡였다.
그레이엄은 레이첼에게 씨익 웃어주고 시안과 눈을 맞췄다.
‘엄마를 부탁드려요, 스승님!’
시안이 마주 웃었다.
‘그래.’
뭐가 그리 좋은지 그레이엄은 케이티와 시녀들의 손을 잡고 복도를 걸어가며 까르륵 웃음을 터트렸다.
사용인 몇이 드나들며 탁자에 다과를 차렸다. 시안이 익숙한 듯 차를 마시더니 먼저 말을 건넸다.
“자, 그럼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요. 궁금한 게 많으실 것 같습니다.”
역시 시안은 눈치가 빨랐다.
레이첼은 고개를 끄덕이고 얼른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갑자기 저택을 하사받아 기쁘긴 하지만 얼떨떨하기도 합니다. 정말 받아도 될까요?”
“비어 있던 저택입니다. 안 될 이유가 없지요. 곧 작위를 받으실 테니 자격도 충분하고요. 여긴 이제부터 프람 백작 저택으로 불릴 겁니다.”
“빈 엘로사 저택의 처분은 어떻게 진행되나요?”
“그쪽은 약간 복잡합니다.”
역시. 그럴 것 같았다.
“우선 칼과 제인이 빼돌린 돈을 찾아와야 합니다. 엘로사 백작의 재산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해야 빼돌린 세금을 책정할 수 있거든요. 저택의 처분과 위자료 지급은 그다음이 될 겁니다.”
“얼마나 걸릴까요?”
대답하기 싫은 질문이었다.
귀족 원로회는 느긋한 귀족들로 구성된 단체였다. 그들에게 일이란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하는 것이었다. 힘없는 백작 가문의 일이 빠르게 처리될 리 없었다.
레이첼에게 저택을 하사하는 문제도 시안이 직접 손을 쓰지 않았다면 몇 년 후에나 처리됐을 것이다.
다행히 레이첼은 급하지 않았다.
“저 때문에 서두르실 필요 없습니다. 저택을 하사해 주셨으니 당장 돈이 급하지도 않고요. 다만 한 가지 걱정되는 것이 있습니다.”
“걱정되는 것이요?”
잠시 고민하던 레이첼이 느닷없이 엉뚱한 이야기를 했다.
“대공 전하. 혹시 지금 알리아스의 신분으로 제 의뢰를 받아주실 수 있을까요?”
“그야 당연히.”
들어주겠다고 말하려던 시안이 급히 입을 다물었다. 그는 제가 하려던 말에 제가 놀랐다.
‘내가 왜 이러지?’
어떤 인재든 영입할 때는 늘 최선을 다했지만 이상하게 레이첼의 일에는 더 관대하고 더 조급했다.
수도 중심부의 다른 저택이나 원래 프람 가문이 쓰던 저택이 아니라 지금의 저택을 준비한 것도 그랬다. 굳이 자신의 앞집에 레이첼을 데려다 놓을 필요는 없었다.
레이첼과 자주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기분이 좋다는 생각을 한 건 닉과 마차가 출발한 뒤였다.
시안은 숨을 크게 내쉬어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혔다.
“알리아스의 신분으로 듣겠습니다. 어떤 의뢰를 원하십니까?”
“제인이 테오도르에게 받은 돈을 빼돌리지 않게 해주세요.”
돈을 빼돌린다고.
듣고 보니 제인이라면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순순히 돌려줄 사람이라면 처음부터 테오도르에게 돈을 받지도 않았을 것이다.
시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제인이 받은 엘로사 가문의 재산을 되찾아 오겠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말씀하십시오.”
“제인의 집에 서신 한 통을 보내주세요.”
* * *
한밤중, 제인은 촛불 하나만 겨우 켜놓은 집 안에서 분주히 움직였다.
사랑도 가족도 떠나버렸다. 사무치게 외로웠고 고통스러웠고 또 미웠다.
“나쁜 테오도르 자식!”
불같이 화를 냈지만 이내 후회가 밀려왔다.
테오도르의 바짓가랑이에 매달려서 고발을 취소해달라고 빌었어야 하는 거 아닐까?
고발을 취소하지 않았으니 곧 길드의 채권 추심원이 올지도 몰랐다. 돈을 빌린 것도 아닌데 채권 추심원을 만나야 한다니,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빼돌린 게 아니라 테오도르가 선물해 준 돈이었다. 누명을 쓴 것도 억울한데 돈까지 전부 빼앗겨야 한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제인은 아직도 사태 파악을 하지 못했다.
불안한 마음에 몇 번이나 엘로사 저택을 찾아갔지만 테오도르는 보이지 않았다. 차마 안으로 들어가서 테오도르가 돌아왔느냐고 묻지도 못했다. 레이첼이 무서워서였다.
이런 상황에서 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한 가지뿐이었다.
‘난 역시 똑똑해.’
제가 생각해 낸 방법에 만족하며 히죽 웃을 때였다.
똑똑똑,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도둑질하다가 들킨 사람처럼 가슴이 철렁했다.
제인은 벌렁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조심스레 현관으로 나갔다.
“누구, 누구세요……?”
“…….”
“테오도르?”
애석하게도 문 앞에 선 것은 테오도르가 아니었다. 검은 망토를 쓴 덩치 큰 남자 다섯 명이었다.
안대를 쓰고 무리의 가장 앞에 선 시안이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길드의 채권 추심원입니다. 칼이 엘로사 백작 가문에서 빼돌린 돈을 받으러 왔습니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미리 수를 써두기를 잘했다! 이 얼마나 대단한 선견지명인지!
“아버지는 돈을 빼돌린 적 없어요! 누명이라고요!”
“열지 않으면 문을 부수고 들어가겠습니다.”
“으으.”
어쩔 수 없는 척하며 문을 열어주었다.
채권 추심원들이 집 안으로 들어왔다. 커다란 신발이 집 안 곳곳을 엉망으로 밟아댔다.
시안 역시 안으로 들어와 천천히 주변을 살폈다.
제인은 억울하다는 목소리로 애원했다.
“아버지는 정말 돈을 빼돌린 적이 없어요. 보세요, 이 초라한 살림을. 비싼 물건은 하나도 없잖아요.”
“제인.”
뚜벅뚜벅 조그마한 응접실을 걷던 시안이 양탄자 위에 섰다.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제인이 눈을 들어 마주 선 자를 보았다. 안대를 쓰고 있어 눈을 맞추지는 못했지만 왜인지 소름 끼칠 만큼 두려웠다.
“어설픈 거짓말을 지껄일 거라면 차라리 입을 다무는 게 낫습니다.”
“어, 어설픈 거짓말이라니요?”
설마 눈치챘나? 아냐, 그럴 리가 없다. 완벽하게 숨겨두었는데…….
끼익, 시안의 발아래서 낡은 나무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시안이 허리에 찼던 검을 꺼내 들었다.
제 목을 치는 줄 알고 깜짝 놀란 제인은 뒤로 물러서며 손으로 목을 가렸다.
그러나 시안이 내리친 것은 제인의 목이 아니라 양탄자로 가려진 바닥이었다. 얇은 바닥이 우지끈 소리를 내며 쪼개졌다.
“악! 어, 어떻게……!”
제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시안은 미소 지었다.
‘제인이 테오도르에게 받은 돈을 빼돌리지 않게 해주세요.’
의뢰는 성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