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Mother Of the Male Lead Who Lives With An Ad**terous Man RAW novel - chapter (26)
불륜남과 사는 남주 엄마가 되었다 (26)화(26/151)
“엘로사 가문을 농락한 것이 여기까지 기어들어 왔단 말이냐!”
베렝겔라의 호통에 제인이 겁도 없이 맞섰다.
“노, 농락한 거 아니에요! 농락당한 건 저란 말이에요!”
챙그랑!
술잔이 베렝겔라의 발치에 떨어졌다.
술에 취한 베렝겔라가 비틀거리며 제인에게로 다가갔다.
바삭바삭, 깨진 유리 조각이 실내화 밑에서 잘게 가루가 되었다. 조각조각 깨져 다시는 이어붙일 수 없게 된 제인의 신세처럼.
베렝겔라가 제인에게 다가가자 테오도르는 급히 뒤로 물러서며 길을 비켜주었다.
“……테오?”
“어머니가 너랑 얘기하고 싶으신가 봐.”
제인을 보는 테오도르는 귀찮은 여자를 보는 듯 탐탁지 않은 눈빛이었다.
아주 잘 아는 눈빛이었다. 모를 수가 없었다. 제인과 함께 할 때 테오도르가 레이첼을 보던 눈빛 그대로였으니까.
‘맙소사. 지금…….’
깊게 생각할 틈이 없었다. 베렝겔라가 제인의 머리카락을 틀어쥔 탓이었다.
“악!”
“손톱을 바짝 다듬어 둔 보람이 있구나! 망할 것의 머리채를 휘어잡을 수 있게 되었으니!”
“놔, 놔아! 이거 놔요!”
제인이 허우적거리다가 베렝겔라의 드레스와 머리 장식을 붙잡았다. 트드득, 값비싼 드레스가 찢어지고 희끗희끗한 머리를 휘감았던 장식이 풀어졌다.
베렝겔라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천한 것이 감히! 이게 얼마나 귀한 것인 줄 알고!”
“그쪽이 먼저, 아악! 그쪽이 먼저 잡았잖아!”
“감히 어디다 대고 그쪽 타령을 하는 것이냐!”
“뭐 어때서! 이제 작위도 없다면서! 내가 오는 길에 다 들었어! 엘로사 가문 작위 박탈당해서 이제 평민이라던데! 다들 그 얘기 떠들면서 얼마나 웃는지 알아! 아아악!”
“크으윽! 조용히 해! 동네방네 우리가 여기 산다는 걸 다 떠벌릴 셈이냐!”
“그래, 떠벌릴 거야! 동네 사람들! 여기 테오도르와 베렝겔라가 살아요! 아악! 내 머리!”
화가 나서 얼굴이 벌게진 베렝겔라는 제인을 끌고 집 안으로 들어와 바닥에 패대기쳤다.
파삭! 제인은 깨진 술잔 조각 위로 넘어졌다. 바닥을 짚은 손바닥에 자그마한 유리 조각들이 촘촘히 박혀 피가 배어 나왔다.
“아악! 아파!”
“으윽.”
갑자기 너무 격렬하게 움직인 탓에 현기증을 느낀 베렝겔라는 벽을 짚고 심호흡했다.
강 건너 불구경하듯 서 있던 테오도르가 재빠르게 문을 닫았다.
얄미웠다. 그렇게나 사랑을 속삭이더니! 제 엄마를 말릴 생각도 안 하고, 다친 걸 걱정하기는커녕 문이나 닫다니!
제인의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테오! 당신이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그……. 미안해, 제인. 이런저런 사건을 겪으면서 내가 잘못했다는 걸 깨달았거든.”
“자, 잘못이요?”
“내가 밑지는 사랑이었어. 나는 백작이고 너는 평민이었잖아. 신분 차이부터 말이 안 됐어. 나는 매번 너한테 돈이며 선물 바치는데 너는 나한테 뭐 해준 게 없더라고.”
“와, 지금 그걸 말이라고……!”
“그에 비하면 레이첼은 내 불륜을 용서해 주었어. 모든 걸 알면서 나를 지키려고 해줬다고! 너처럼 바락바락 따지고 드는 게 아니라!”
테오도르는 안타깝다는 듯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가 고개를 저었다.
“제인, 나는 깨달았어. 이런 희생과 헌신이야말로 진짜 사랑이라는 걸. 나는 레이첼에게로 돌아가서 그녀와 새롭게 시작할 거야.”
“테오도르! 이 나쁜 자식! 나는 내 청춘을 다 당신한테 바쳤다고!”
“뻔뻔하네. 내가 언제 그래 달랬어? 너도 좋았던 주제에. 내가 준 돈으로 그동안 배부르고 등 따뜻하게 잘 지냈잖아? 평민 주제에 그런 호의호식을 언제 해보겠어.”
“아악!”
악에 받친 제인이 테오도르에게 달려들었다. 테오도르가 팔을 뻗어 제인의 어깨를 밀었고 팔다리가 짧은 제인은 그에게 주먹질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했다.
식식거리던 제인은 결국 방향을 바꿔 베렝겔라에게 달려들었다.
안 그래도 현기증 때문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베렝겔라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뒤로 벌러덩 넘어져 의식을 잃었다.
“……!”
“어, 어머니! 이 비겁한 여자!”
구석에서 어쩔 줄 모르고 쩔쩔매던 시녀가 얼른 베렝겔라를 둘러업고 2층으로 올라갔다.
테오도르가 소리쳤다.
“꺼져! 당장 내 눈앞에서 꺼지라고! 우린 이제 끝났어! 그만 질척대고 꺼지란 말이야!”
질척대지 말라고? 모든 걸 빼앗고 아빠한테 죄까지 뒤집어씌웠으면서 어떻게 그런 소리를 해!
고함치고 싶었지만 제인은 입을 다물었다. 아빠 생각이 났기 때문이었다. 이러려고 찾아온 게 아니었다. 테오도르에게 물벼락을 뿌리고서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제인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애원했다.
“알았어요. 제가 잘못했어요. 꺼질게요. 뭐든 시키는 대로 할 테니까, 제발 아빠만 풀어주세요!”
“칼을 풀어달라고?”
“길드에서 살던 집이며 돈 될 만한 물건은 전부 가져가 버려서 빈털터리가 되어버렸어요. 아빠가 한 일, 당신이 시켜서 한 거라고 솔직하게 말해줘요. 제발…….”
테오도르는 고개를 저었다.
생각할 것도 없었다.
겨우 레이첼이 손을 써줘서 죄를 벗었는데 제 발로 자백할 이유가 없었다. 레이첼이 준 사랑의 증거를 어그러트리기도 싫었다.
칼은 어차피 잡혀들어갔다. 레이첼과 미래를 함께 하려면 죄는 하나라도 덜 가진 것이 좋았다.
제인은 결국 눈물을 터트렸다.
“아아아, 테오도르, 나쁜 사람. 당신은 정말 나쁜 사람이야……!”
“볼일 끝났으면 나가 봐. 수도 경비대를 부르기 전에.”
그러나 제인은 바닥에 엎드린 채 부들부들 떨기만 할 뿐 일어나지 않았다.
“제인?”
“모, 못가요. 저는 못 간다고요. 먹을 것도 없고, 갈 곳도 없단 말이에요.”
“……하아.”
한심한 여자. 기껏 찾아온 이유가 돈이 없어서였어?
테오도르는 마음이 떠난 여자에게 자비를 베풀 만큼 상냥한 사람이 아니었다.
“네가 갈 곳이 있든 없든, 굶었든 말든, 내 알 바 아니야.”
그러고는 베렝겔라가 술을 마시던 탁자에 놓인 치즈 몇 조각을 주워 제인에게 건넸다.
“자, 이거 줄 테니 이제 가. 수도 경비대를 부르기 전에 내가 베푸는 마지막 자비야.”
“…….”
제인은 테오도르가 내민 치즈 조각들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베렝겔라가 베어 먹었던 흔적이 남은 치즈였다. 어떤 치즈에는 흘린 와인 몇 방울이 떨어져 있기도 했다.
자존심이 상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런 치즈는 휴지통에 버렸는데. 지금은 체면 불고하고 달려들어 먹고 싶을 만큼 배가 고팠다.
피투성이가 된 손으로 치즈를 받자 테오도르가 문을 열어주었다.
제인은 느린 걸음으로 집을 나섰고 테오도르는 인사도 없이 문을 닫았다.
철커덕, 문 잠그는 소리에 가슴이 철렁하며 다시 눈물이 쏟아졌다.
“흑, 흐윽. 흐으윽!”
엉망이 된 치즈 위로 제인의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멀리 떨어진 지붕 위에서 제인을 지켜보던 시안이 조용히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 * *
새로운 저택에서의 일상은 여유롭고 평화로웠다. 사용인은 친절했으며 저택은 구석구석까지 청결하고 생활은 편안했다.
그레이엄은 방 청소를 하지 않고 검술 훈련을 할 수 있다며 아주 즐거워했다.
레이첼이 여유롭게 오후의 차를 마시며 선물 받은 저택과 사용인의 정보를 확인하고 있을 때였다. 케이티가 다가왔다.
“실례합니다, 레이디 레이첼. 보고드릴 것이 있습니다.”
케이티는 딱딱하고 사무적이었지만 일 처리가 완벽했다. 시키지 않은 일까지 대비해서 척척 해주는 것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시안이 추천해 준 사람다웠다.
레이첼이 서류를 내려놓았다.
“무슨 일이야?”
“레이디 레이첼을 감시하는 자가 있습니다.”
“감시한다고? 나를?”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던 레이첼은 이내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삐딱하게 웃었다.
“테오도르인 모양이네.”
“길드에 레이디 레이첼의 소식을 수소문해 달라고 의뢰한 모양입니다. 시안 대공께서 레이디 레이첼께 보고하고 지시를 따르라 하셨습니다.”
수석 정보원이라 미리 문제를 파악한 모양이었다. 이럴 때 시안의 존재가 무척 든든했다.
“알려줘서 고마워. 예상은 했지만 직접 겪으니 기분이 별로네.”
“시안 대공께서 레이디 레이첼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하셔서 일단은 저택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자를 내버려 두고 있습니다. 어떻게 처리할까요?”
“음…….”
마음 같아서는 당장 저택을 어슬렁거리는 자를 붙잡아 쫓아내고 싶었다. 감히 황제가 하사한 저택을 염탐한 죄를 물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려고 안전한 곳으로 옮겨온 것이니까.
레이첼은 마지막으로 보았던 테오도르를 떠올렸다. 그는 이혼과 결혼 무효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냥 내버려 두면 두고두고 귀찮게 굴 거야. 다시는 얼씬거리지 못하게 처리해야 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처리하지 마. 그들이 뭘 하든 신경 쓰지 말고 내버려 둬.”
“내버려…… 두라고요?”
“응. 이쪽에서 뭘 알고 있다는 낌새도 내비치지 말고.”
“……알겠습니다.”
케이티는 깍듯하게 대답하고 예를 갖췄지만 못마땅했다.
‘작위를 박탈당하고 결혼 무효까지 된 사이잖아? 그런 자의 심부름꾼이 저택에 얼쩡거리는 걸 내버려 둬야 한다니. 내가 관리하는 저택에 벌레가 꼬이는 건 싫은데.’
인사를 마친 케이티가 돌아가지 않고 자리에 서 있자 레이첼이 고개를 갸웃했다.
“케이티? 뭐 할 말 있어?”
“……솔직하게 말씀드려도 될까요? 무례한 소리가 될지도 모르니 거절하셔도 됩니다.”
레이첼은 케이티의 이런 점이 마음에 들었다. 그녀는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쌓아두지 않는 사람이었고, 대신 뒤끝이 없었다.
“응. 뭔데?”
“집에 벌레가 드나드는 걸 알면서도 내버려 두고 싶지 않습니다.”
“벌레? 아하하.”
재미있는 표현이었다.
그러고 보니 완벽주의자인 케이티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겠구나 싶었다. 저택의 보안과 경비를 맡은 그녀에게 침입자가 있는 걸 알면서도 잡지 않는 건 자존심이 상하는 일일 것이다.
“미안해, 케이티. 내가 생각이 짧았어.”
레이첼의 말에 케이티의 얼굴이 환해졌다.
“저택을 감시하는 놈을 붙잡아도 될까요?”
“아니, 그건 안 돼.”
“…….”
단번에 실망한 얼굴이 되기에 솔직하게 작전을 털어놓기로 했다.
“덫을 놓을 거야. 여기에 달콤한 꿀이 있다는 걸 알아야 벌레가 제 발로 날아 들어오지 않겠어?”
“덫이라고요?”
“응.”
지금 테오도르에게 최고의 꿀은 레이첼이었다. 의지할 곳을 잃은 채 숨어 사는 그에게 갑자기 호화 저택에 사는 레이첼은 구원자로 비칠 테지.
지난번 태도를 보니 아직 미련도 버리지 못한 것 같았고.
달콤한 꿀인 줄 알고 찾아오면 콱 깨물어 혼쭐을 내줄 생각이었다.
“그러니까 케이티, 길드의 정보원을 쫓아내지 말고 우리가 아주 잘살고 있다는 걸 보여줘. 알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