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Mother Of the Male Lead Who Lives With An Ad**terous Man RAW novel - chapter (28)
불륜남과 사는 남주 엄마가 되었다 (28)화(28/151)
돌로라사가 예를 갖추는 모습을 보며 레이첼도 얼른 정신을 차리고 예를 갖췄다.
“화, 황태자 전하를 뵙습니다.”
황태자라는 말에 당황한 그레이엄이 뒤를 돌아보았다. 아이는 레이첼의 품에 꼭 안긴 돌로라사를 보더니 얼굴에 핏기가 가셨다.
“엄마!”
소리친 그레이엄은 달려와서 레이첼과 돌로라사 사이를 파고들었다.
“야, 꼬맹이! 우리 엄마는 내 거라고! 저리가!”
레이첼이 그레이엄을 안아주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테오도르에게 화를 낼 때를 빼고 그레이엄이 이렇게 목소리를 높이는 건 처음이었다.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동시에 겁이 나기도 했다. 감히 공녀에게 이런 말버릇이라니!
“그레이엄, 공녀님을 꼬맹이라고 부르면 어떻게 해. 얼른 사과드려.”
얼결에 그레이엄에게 밀려 레이첼의 품을 벗어난 돌로라사가 무안한 듯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레이디 레이첼. 제가 잘못했는걸요. 미안해, 그레이엄. 그……. 실수였어.”
“아니에요, 공녀님은 잘못하신 게 없어요. 사과하지 마세요.”
“어, 엄마?”
“그레이엄. 얼른 공녀님께 사과하렴. 예의 없는 행동이었잖니.”
그레이엄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차올랐다.
“엄마가…… 나를 혼냈어.”
“당연하지. 잘못하면 혼내고 바르게 행동하는 법을 알려줘야 해. 엄마잖아.”
“엄마는 나를 미워하는 거예요?”
“미워서가 아니라 사랑해서 그러는 거야. 그레이엄이 못된 어른으로 자라면 안 되니까. 자, 얼른. 사과해야지.”
“으……. 흐으. 미안해요, 고, 공녀님…….”
반쯤 울음 섞인 사과에 어쩔 줄 모르고 쩔쩔매던 돌로라사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응, 사과했으니까 됐어. 레이디 레이첼도 그만 혼내요.”
“알겠습니다.”
“엄마가 나를 혼냈어…….”
혼났다는 게 무척이나 충격적이었는지 그레이엄은 자리에 쪼그려 앉아 훌쩍였다.
돌로라사가 곁에 함께 쪼그려 앉아 조그마한 손으로 그레이엄의 등을 토닥였다.
“괜찮아. 우리 아빠도 나 혼낼 때 있는걸.”
“흑. 거짓말.”
“진짜야. 아빠 서재에서 중요한 종이로 종이접기 접다가 혼난 적 있어. 얼마나 무서운지 알아? 나는 귀신보다 무서운 건 처음 봤어. 눈에서 불 쏘는 거 같다니까!”
“스승님이 화낼 리가 없어. 얼마나 멋진 사람인데.”
“멋져도 화를 낸다고. 너희 엄마도 멋진 사람이지만 화내잖아. 아까 못 들었니? 다 우리를 사랑해서 그러시는 거야.”
“히잉.”
“속상했지? 이해해.”
엄청나게 흐뭇한 광경이었다.
역시 여주인공이었다. 이것이 살인귀 그레이엄을 녹인 돌로라사의 위력이구나 싶었다. 아직 일곱 살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그레이엄을 달래주는 솜씨가 수준급이었다.
뒤에서 지켜보던 아트레이유가 눈을 반짝였다.
“이게 혼난다는 거구나. 신기하네! 나도 숙부한테 혼나보고 싶어! 숙부는 멋있으니까 혼내는 것도 세상에서 제일 멋지겠지?”
돌로라사가 한숨을 푹 쉬었다. ‘돌봐야 할 애가 둘이나 있다니’하는 얼굴이었다.
“아빠는 황태자 전하를 혼내지 않으실 거예요. 황태자 전하시니까요. 저희랑은 다르다고요.”
“쳇. 시시해. 하긴 우리 아빠는 나 혼낸 사람 모가지를 전부 뎅겅 했으니까 숙부가 나 혼내면 숙부 목도 뎅겅 할 거야. 자기는 맨날 나 혼내면서, 자기 목은 안 뎅겅 하고.”
……모가지 뎅겅이라니.
엄청난 아트레이유의 말에 레이첼의 팔뚝에 소름이 돋았다.
아트레이유가 들고 있던 나뭇가지로 머리를 긁적였다.
“부럽다, 둘리! 나도 숙부가 화내는 거 보고 싶다! 나도 숙부한테 사랑받고 싶어!”
“둘리가 아니라 돌리예요. 그리고 전하는 황제 폐하께서 사랑해 주시잖아요.”
“우웩. 너 가질래?”
현명한 돌로라사는 ‘싫어요’라고 대답하는 대신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돌로라사는 한참이나 그레이엄과 아트레이유를 달래주었다. ‘어른들은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혼내기도 하고, 서운하게도 한다’는 내용이었다.
네 살 그레이엄도, 열 살 아트레이유도 고개를 끄덕이며 돌로라사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둘의 수준이 비슷한 모양이었다.
그레이엄은 곧 평소대로 기분이 좋아졌다.
“엄마, 서운해해서 미안해요. 엄마가 나 키우느라 고생이 많았는데 내가 몰라줬어요.”
“으응. 아니야. 서운할 수도 있지. 엄마도 혼내서 미안해.”
“그리고 공녀님도 미안해요. 이제 꼬맹이라고 안 부를게요.”
“괜찮아. 난 그런 거 신경 안 써.”
레이첼이 돌로라사를 보며 빙긋 웃었다.
“멋지시네요, 공녀님. 어쩜 이렇게 어른스러우실까요.”
“원래 그런 편이에요.”
맙소사.
까마득히 신분이 높은 공녀의 귀엽고 사랑스러운 대답에 레이첼은 다시 후후 소리 내서 웃었다.
그런 레이첼을 빤히 바라보던 돌로라사가 뺨을 붉혔다.
‘레이디 레이첼의 품은 정말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워. 잘못했을 때 화내는 것도, 상냥하게 웃어주는 것도, 안겼을 때 느낌도 아빠랑은 전혀 달라.’
가슴이 두근거렸다. 갑자기 그레이엄이 부러웠다.
돌로라사 주변에 성인 여성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모두 ‘공녀’ 대하듯 깍듯했다. 묘하게 거리를 두는 듯도 했다.
유모나 시녀들이 돌로라사에게 거리를 두는 건 아이의 출신 때문이었다. 결혼도 하지 않은 시안이 어딘가에서 데려와 공녀로 만든 아이였으니까. 챙겨주면서도 낮게 보는 것이 사실이었다.
자세한 사정을 모르는 돌로라사는 ‘아빠 외의 사람들은 다 이상해’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그런 돌로라사를 지키듯 포근하게 안아준 건 레이첼이 처음이었다. 그레이엄이 들으면 싫어하겠지만 다시 안기고 싶었다.
아빠 이외의 사람에게 스스럼없이 안긴 게 놀라웠고, 아빠와는 다른 느낌에 또 놀라웠다.
레이첼과 더 가까워지고 싶었다. 그녀가 자신을 남들처럼 ‘공녀’라고 부르며 거리를 벌리는 게 싫었다. 그녀가 자신을 ‘돌리’라는 애칭으로 불러주길 바랐다.
일곱 살 평생 아빠에게만 허락했던 이름이었다.
‘언젠가 레이디 레이첼도 나를 돌리라고 불러줬으면 좋겠어. 그럼 기분이 무척 좋을 거야.’
아트레이유가 고개를 갸웃했다.
“둘리? 갑자기 무슨 생각해? 둘리? 둘리야아?”
“…….”
아트레이유는 허락도 안 한 이름을 제 맘대로 바꿔서 마구 불러댔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나저나 둘리라고 부르지 마시라니까요.”
“아, 왜애. 나만 이름 줄여서 부르는 게 싫어서 그래? 그럼 너도 줄여서 불러! 아유라고 하면 되겠네!”
“전하 애칭이 아유예요?”
돌로라사의 물음에 아트레이유가 고개를 저었다.
“애칭? 나 그런 거 없어. 그냥 아유가 재밌잖아! 선생들이 나 보면 맨날 아휴, 이러거든. 그러니까 아유, 하고 부르면 좋을 거 같아서.”
“……그렇군요. 아유 전하.”
“오오, 좋아 좋아. 레이디 레이첼도 불러줘! 아유우.”
어쩔 줄 모르고 쩔쩔매던 레이첼이 어색하게 웃었다.
“아유 황태자 전하.”
“오, 오오, 오오오오! 신선한데?”
뭐가 그렇게 좋은지 아트레이유가 키득키득 웃었다.
그레이엄이 볼을 부풀렸다.
“엄마, 공녀님이랑 황태자 전하랑만 놀지 말고 저랑도 놀아주세요!”
“앗. 엄마가 공녀님이랑 황태자 전하랑만 얘기해서 서운했구나?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그레이엄, 이리 오렴.”
“와아아!”
그레이엄은 팔짝 뛰며 레이첼의 품으로 뛰어들어 안겼다.
돌로라사가 부럽다는 듯 그레이엄과 레이첼을 바라보았고, 아트레이유는 헤헤 웃으며 손가락으로 코 밑을 쓱 훔치다가 들고 있던 나뭇가지에 찔려 코피를 쏟았다.
아트레이유의 코피를 정리하고 아이들과 응접실에 모여 앉았다. 황태자 전하의 코에서 코피라니! 순간 황제에게 목이 뎅겅 잘리는 줄 알았다.
“괜찮아. 자주 이러거든!”
아트레이유는 별거 아니라는 듯 낄낄 웃으며 다리를 들어 보였다. 다리에 붕대가 칭칭 감겨 있었다.
황궁 응접실에서 시안이 약을 발라 줄 때를 떠올렸다. 그는 ‘황태자가 자주 다쳐서 응급실마다 약을 비치해둔다’고 했었다. 그냥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진짜였던 모양이었다.
달콤한 음료를 한 잔 마신 뒤 돌로라사가 아트레이유에게 물었다.
“황태자 전하는 다리도 아프면서 여기까지 어떻게 오셨어요?”
“중간까지 선생이 업어줬고 그다음엔 기어 왔지!”
“……여전히 대단하시네요.”
“그럼. 나 엄청나다고. 재빠르고 숨는 것도 잘해!”
어설퍼 보여도 재채기가 아니었으면 못 알아챘을 위장이기는 했다.
“이 저택이 한참 비어 있었잖아. 근데 레이디 레이첼이 이사 왔다고 하더라고! 내 연회 망친 테오도르랑 결혼했었다며?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서 참을 수가 있어야지.”
자신의 열 번째 생일 연회를 망쳤는데도 아트레이유는 전혀 화가 나 보이지 않았다. 정말 궁금하다는 듯 레이첼을 향해 눈을 빛낼 뿐이었다.
“그냥 궁금해서 와본 거였는데 레이디 레이첼이 예쁘고 재미있는 사람이라서 기분이 아주 좋아.”
“기분이 좋으시다니 다행이에요.”
“근데 나 여기 온 거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돼! 나 아빠한테 걸리면 뺨 맞는다고.”
뺨을 맞는다고?
아무리 황제라지만 자기 아들 뺨을 때리나?
레이첼은 깜짝 놀랐지만 아트레이유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했다.
“얘들은 꼬맹이라 무슨 얘기를 해도 안 믿어 주겠지만 레이디 레이첼은 어른이잖아. 어른이 하는 얘기는 아빠가 믿을지도 몰라.”
황제에게 황태자와 만난 얘기를 할 일 같은 건 없을 것 같았지만 그래도 고개를 끄덕였다.
“황태자 전하의 부탁인데 당연히 들어드려야지요.”
“좋아, 좋아.”
그러더니 아트레이유는 품을 뒤져서 반듯하게 접힌 종이를 꺼냈다.
“비밀을 지켜준다니까 내가 선물 줄게. 자, 내 부탁 들어주는 사람한테만 주는 특별한 선물이야.”
무척 고급스러운 종이였다. 얇고, 부드럽고, 매끄럽고, 반듯했으며 겉에는 황실의 문장이 금으로 섬세하게 그려져 있었다.
“감사합니다, 황태자 전하.”
“그래, 그래.”
대체 무슨 선물일까.
반으로 곱게 접힌 종이를 조심스럽게 펼쳤다. 종이에는 엉망진창 삐뚤삐뚤한 글씨로 다음 글귀가 적혀 있었다.
[소원 쿠폰아트레이유가 소원 들어줌]
“…….”
레이첼은 할 말을 잃었고 아트레이유는 자랑스럽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이때는 몰랐다. 장난스러운 글씨로 적은 쪽지가 다친 아트레이유의 마음을 치료하는 결정적인 물건이 될 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