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Mother Of the Male Lead Who Lives With An Ad**terous Man RAW novel - chapter (29)
불륜남과 사는 남주 엄마가 되었다 (29)화(29/151)
디카르시냐크 대공 저택으로 돌아온 돌로라사는 곧장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저택 입구 계단에 앉았다. 몸을 웅크리고서 오래도록 레이첼의 품을 떠올렸다.
‘말랑말랑, 푹신푹신, 부들부들, 달콤한 향기, 다정한 목소리, 상냥한 말투. 아빠도 이랬나?’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비교해보고 싶었다. 얼른 시안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엄마 같은 거 없어도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레이엄이 부러워. 엄마랑 아빠는 왜 다른 걸까? 나는 왜 엄마가 없지?’
일곱 살 어린이의 머리가 김이 날 만큼 열심히 굴러갔다.
‘그레이엄은 아빠가 없다고 했는데, 엄마가 생기면 아빠가 사라져야 하는 걸까? 아냐, 하지만 엄마랑 아빠가 다 있는 애들도 많잖아.’
돌로라사는 한 번도 원해본 적 없는 것을 소원했다.
‘나도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어. 그레이엄처럼 매일 부드러운 엄마 품에 뺨을 비비면 정말 행복할 것 같아. 아빠한테 말해 볼까? 아빠는 내가 원하는 건 뭐든 들어주셨으니까. 응, 그래야겠어.’
돌로라사가 결심을 굳혔을 무렵 시안이 저택으로 돌아왔다. 아름다운 예복을 차려입고 마차에서 내린 그는 계단에 앉은 딸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돌리?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아빠! 기다렸어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돌로라사가 달려가 시안에게 안겼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달려 나와 안기는 딸은 꽃보다 사랑스러웠다. 시안이 눈을 접으며 맑게 웃었다. 허리에 매달리는 딸을 높이 들어 올렸다가 품에 꼬옥 안았다.
돌로라사는 꺄르륵 웃으며 아빠의 목에 매달렸다.
좋았다. 아빠가 세상에서 제일 좋았다. 자상하게 웃어주는 것도, 가끔 혼낸 뒤에 다정하게 달래주는 것도, 힘차게 안아주는 것도 전부 좋았다.
‘하지만…… 달라. 레이디 레이첼의 목이랑 어깨는 이렇게 단단하지 않았어. 아빠한테서는 나무 냄새 같은 게 나는데 레이디 레이첼한테서는 달콤한 설탕 과자 냄새가 나.’
울적한 마음에 아빠의 목을 평소보다 더 꼬옥 안았다.
눈치 빠른 시안이 돌로라사의 등을 토닥였다.
“돌리, 무슨 일 있니? 낮에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어?”
“……아빠.”
“응.”
“돌리는 앵두를 좋아해요.”
“…….”
시안과 돌로라사만의 암호였다. 비밀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귀여운 약속이었다.
시안은 조용히 마차와 사용인을 물리고 돌로라사와 정원으로 갔다. 노을 지는 정원 가운데 자리를 잡고 앉은 그는 목에 매달려서 떨어지지 않는 딸에게 조용히 말했다.
“시안은 산딸기를 좋아해.”
“있잖아요, 아빠.”
“얘기하렴.”
“나는 왜 엄마가 없어요?”
“…….”
대답해 줄 말이 없었다.
너희 엄마는 황제 폐하를 모시던 시녀였고 너를 낳자마자 도망쳤다는 걸 어떻게 얘기할 수 있을까.
시안은 시녀가 죽었는지 살았는지조차 몰랐다. 시가르라면 살려두지 않았을 가능성이 컸다. 알고 싶지 않아서 알아보지 않았다.
갑자기 엄마는 왜 찾는 걸까.
엄마의 존재를 궁금해하지 않던 아이였는데…….
‘돌리는 아빠가 제일 좋아요! 아빠만 있으면 돼!’
시안은 좋은 아빠였다. 돌로라사에게 최선을 다했고, 다정했고, 사랑을 퍼부어 주었다.
그러나 시안이 혼자라서 해주지 못하는 것도 많았다. 몸이 두 개라도 부족할 만큼 바쁘니 어쩔 수 없었다. 쇼핑, 드레스 고르기, 티타임 즐기기 같은 사소하지만 중요한 활동을 매번 함께해 주지 못했다.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몰라서 입술을 달싹이다가 어렵게 물었다.
“갑자기 엄마는 왜 묻는 거니?”
“오늘 낮에 레이디 레이첼을 만났거든요.”
……레이첼이라고?
왜 여기서 레이첼의 이름이 나오는 걸까.
쿵쿵쿵쿵 거칠어진 심장 박동을 억제하려고 애쓰며 돌로라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어쩌다가 품에 안겼는데 달콤한 냄새가 나고 푹신푹신하고 기분이 아주 좋더라고요. 그레이엄은 맨날 아빠보다 엄마가 더 좋다고 자랑하고……. 그래서 궁금해졌어요.”
“그랬구나.”
“아빠, 나도 엄마가 갖고 싶어요. 엄마 만들어 주세요.”
명확한 요구에 시안은 씁쓸하게 웃었다.
“미안해서 어쩌지? 엄마를 만들어 주는 건 어려워.”
“왜요?”
“음……. 돌로라사의 엄마가 되려면 아빠와 결혼해야 하는데 아빠는 결혼할 수가 없거든.”
“결혼을 못 한다고요? 왜요?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누구나 결혼할 수 있어요!”
“그러니?”
시안의 앞길은 시가르가 철저히 가로막고 있었다. 그는 결혼이라는 협약으로 시안이 세력을 확장하는 것을 내버려 둘 사람이 아니었다.
어쩌면 시골의 이름 없는 귀족이나 평민과 짝지어줄 고민을 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시안은 딸에게 모든 사정을 솔직하게 털어 놓지는 않았다.
“아빠가 얼른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서 우리 돌리 엄마 만들어 줄 수 있도록 노력해 볼게.”
“와아, 정말이죠? 고마워요! 역시 아빠가 최고야!”
순수하게 기뻐하는 돌로라사를 품에 꼬옥 안아주었다.
시안은 저녁 식사 후 돌로라사를 재우고 집무실로 들어왔다. 그는 분홍색 다이아몬드가 달린 커프스단추를 만지며 한참이나 생각에 잠겼다.
‘나도 엄마가 갖고 싶어요.’
돌로라사를 자유롭게 키우는 시안이었지만 아이가 혼자 저택을 나선 건 처음이었다. 아마 바로 건너편 저택이라 용기를 냈던 모양이었다.
말 잘 듣고 착하던 돌로라사가 혼자 저택을 벗어나서 만나러 간 사람이 하필 레이첼이었다. 그녀를 만나고 와서는 한 번도 한 적 없던 엄마 얘기를 하기까지 했다.
‘몇 번 만나지도 않은 레이첼 때문에 엄마 얘기를 한단 말인가. 그 사려 깊은 아이가.’
이제야 아이답게 응석을 부리는구나 싶어서 기쁘면서도 씁쓸했다. 돌로라사를 아이답게 만들어 주는 것이 시안 자신이 아닌 레이첼이라서였다.
레이첼.
만날수록, 생각할수록 이상한 사람이었다.
만나기 전에는 아름답지만 생각하는 힘이 부족한 사람 정도로 평가했었다.
직접 얘기를 나눠본 뒤에는 알아본 것과 달리 똑똑해서 흥미가 일었다.
레이첼은 시안이 만났던 인재 중에서도 손에 꼽을 만한 전략가였다.
손에 넣고 싶었다.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고 싶어서 의도적으로 접근했다.
만남을 거듭하니 똑똑한 처사 뒤에 의외로 여린 면이 감춰져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남편의 불륜을 목격하고 놀라던 모습이나 자신의 행복보다 목적을 우선하는 모습이 그랬다.
남편의 도움 없이 아이를 바르게 키우려고 노력하는 모습도 알게 되었다. 얼마나 고된 일인지 알기에 마음이 쓰였다.
그저 곁에 두고 함께 일하고 싶다던 소망이 점차 크기를 불렸다. 안쓰러웠다. 지켜주고 싶었고, 돕고 싶었다.
이러는 것이 자신답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레이첼과 관련된 모든 일에 발 벗고 나섰다.
그녀의 마음을 얻어 자신의 휘하에 두기 위해서라고 하기에는 과한 친절을 베풀었다.
곁에 놓인 라일러스 주교의 편지를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레이첼의 소식을 들은 라일러스가 그녀를 위해서 뭔가 해주고 싶다며 시안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굳이 돕지 않아도 될 일이었으나 시안은 이번에도 여지없이 나섰다.
‘자꾸 왜 이러는 걸까.’
머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욕구, 이성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마음이 처음이라 혼란스러웠다.
‘레이첼을 멀리하는 게 좋을까.’
의문을 제기한 건 머리였으나 대답한 건 마음이었다.
‘멀리…… 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는 것을, 시안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는 그토록 똑똑한 사람을 그대로 놔줄 수 있을 만큼 관대하지 않았다.
감정에 휩쓸리면서도 레이첼을 놓고 싶지 않았다.
왜일까.
아직 시안은 답을 알지 못했다.
* * *
테오도르는 거대한 담벼락 그림자 밑에 숨어 저택을 훔쳐보았다. 과연 길드의 정보원이 말한 대로 경비가 삼엄했다.
‘조금만 더 있으면 정오지?’
베렝겔라에게 얻어맞아 퉁퉁 부은 다리로 웅크리고 있는 건 고역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레이첼만 다시 만나면 다 나을 테니까!
12시가 되자 기사들이 교대를 시작했고 담벼락 밑 구멍을 지키는 사람이 사라졌다. 레이첼과 시안이 일부러 뚫어 놓은 곳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테오도르는 허겁지겁 바닥을 기어 담벼락을 통과했다. 옷이 흙투성이가 되었다.
저택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레이첼이 보였다. 그녀는 아름다운 정원에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테오도르는 홀린 듯 레이첼에게로 다가갔다.
“레, 레이첼. 보고 싶었어.”
레이첼은 테오도르를 돌아보지 않고 조용히 차만 마셨다.
‘다시 만나면 눈물을 흘리며 반가워할 줄 알았는데.’
자신을 투명인간 취급하는 레이첼이 낯설어서 테오도르는 어쩔 줄 모르고 쩔쩔맸다.
“레이첼. 내가 너무 늦게 와서 화난 거야? 어쩔 수가 없었어. 당신이 이런 곳으로 이사를 오는 바람에 찾기가 어려웠거든.”
“…….”
“아! 혹시 내가 반란을 저질렀다는 소문 때문에 나 모른 척하는 거야? 그거 전부 가짜야. 오해라고! 나는 불륜을 저질렀지 반란을 저지른 게 아니야. 증명할게!”
“……증명?”
내내 침묵하던 레이첼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녀는 싸늘한 눈으로 테오도르를 돌아보았다.
“당신이 불륜을 저질렀다는 걸 어떻게 증명할 건데?”
어이가 없어서 물었다는 것도 모르고 테오도르는 활짝 웃었다.
“엘로사 저택에 제인이 써준 편지가 있거든. 내가 밤에 외출했던 거나 돈 쓴 게 반란이 아니라 불륜이었다는 증거가 될 거야!”
“이거 말하는 거야?”
레이첼이 의자 옆에 내려두었던 바구니를 올렸다. 바구니 안에는 수백 통의 서신이 들어 있었다. 저택을 떠나면서 챙겨두었던 테오도르와 제인의 연애편지였다.
[사랑하는 테오 오라버니우리가 연인이 된 지도 벌써 100일이 넘었네요.
우리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너무 많아요. 신분, 나이 차이 같은 것들이요. 하지만 그래도 저는 언제까지나 오라버니를 사랑하겠다고 맹세하겠습니다.
오라버니는 곧 제가 아닌 여자와 결혼하겠지만…….]
테오도르가 편지를 확인하더니 펄쩍 뛰며 기뻐했다.
“그래! 바로 이거야! 결혼 전에 받은 것도 무사하군! 이제 이것만 있으면 내 불륜은 확실해져!”
“불륜이 확실해져서, 좋아?”
“그야 당연하지!”
어이가 없다는 듯 한쪽 입꼬리를 올려 웃은 레이첼이 쥐고 있던 찻잔의 찻물을 테오도르에게 뿌려버렸다.
촤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