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Mother Of the Male Lead Who Lives With An Ad**terous Man RAW novel - chapter (30)
불륜남과 사는 남주 엄마가 되었다 (30)화(30/151)
“으악! 아뜨뜨! 뜨거워!”
“뭐, 반란이 아니라 불륜? 미안하지만 나한테는 반란보다 불륜이 더 큰 죄야. 머리에 헛것이 들은 거 같아서 확실히 말하는데 난 너랑 다시 잘해볼 생각 없어.”
“레, 레이첼. 그게 무슨 소리야!”
“머리에 든 생각 지우고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는 소리야.”
뜨거운 찻물이 뿌려진 테오도르의 머리에서 펄펄 김이 올랐다.
“다시 찾아오지 말라니 어떻게 나한테 그런 소리를 해? 나 사랑하는 거 아니었어? 나 사랑하니까 내가 저지른 일 칼한테 덮어씌운 거 아니냐고!”
“무슨 헛소리야? 귓구멍이 막혔니? 너랑 제인 이간질하려고 그랬던 거라고 분명 얘기했잖아. 나는 너 사랑한 적 없어.”
“이, 이간질이라고? 어떻게 그런 흉측한 짓을…….”
“너야말로 흉측해. 결혼 전부터 제인이랑 연애했잖아. 그 편지들 전부 읽어봤어. 가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결혼하는 거라고 구구절절 써놓더니 이제야 매달리는 거, 진짜 구질구질해.”
희망이 박살 난 테오도르는 참담한 얼굴이었다.
테오도르가 자신을 한순간도 사랑하지 않았다는 걸 알았을 때 레이첼이 저런 얼굴이었을까?
지금 테오도르의 모습을 원작 레이첼이 본다면 어떨까?
의미 없는 가정이었다.
레이첼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앞으로는 찾아오지 마. 감히 허락도 없이 황제 폐하께서 내려주신 저택에 침입한 죄를 물을 테니까. 아니면 귀족 원로회에 네가 사는 타운 하우스 주소를 보내도 되고.”
“레이첼. 잠깐 기다려!”
아직도 할 얘기가 남았는지 테오도르가 헐레벌떡 레이첼을 따라왔다. 이 와중에 편지가 든 바구니를 챙겨 드는 것이 우스웠다.
레이첼이 안 되니까 다시 제인에게 돌아가려는 속셈인 걸까?
얼른 몸을 돌려 멀어지려는데 테오도르가 달려와 레이첼의 손목을 꽉 움켜쥐었다.
“레이첼 엘로사! 기다리라니까!”
“난 엘로사가 아니야!”
엘로사는 멸문해서 이제 명부에 흔적도 남아 있지 않은 성이었다. 벌써 몇 주나 지난 일인데 테오도르는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한 모양이었다.
레이첼은 자신을 붙잡은 테오도르의 손을 거칠게 뿌리치고 빠른 걸음으로 건물 모퉁이를 돌았다.
테오도르가 급히 뒤를 쫓았지만 레이첼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레이첼! 돌아와, 레이첼! 젠장.”
시안이 준비해 준 저택의 위치는 수도 중심부였다. 처음 수도가 만들어지고 황궁이 세워질 때부터 존재했던 저택이라는 뜻이었다.
저택은 오래된 만큼 비밀 통로나 은밀한 공간이 많았다. 레이첼은 테오도르를 떼어내자마자 보이지 않는 손잡이를 밀고 벽에 붙은 작은 방으로 들어가 숨었다.
“레이첼!”
끈질긴 테오도르는 벌써 몇 분째 저택 담벼락 근처를 서성이며 레이첼을 찾았다.
붙잡힐까 봐 저택 안으로는 들어가지 못했고, 그렇다고 타운 하우스로 돌아가지도 않았다.
레이첼이 들어간 방은 잠시 몸을 피할 용도로 만들어진 곳이라 좁고 불편했다. 시야도 좁았다. 작은 틈으로 밖을 서성이는 테오도르의 모습이 보이는 정도가 전부였다.
‘조금만 참자. 곧 그분이 도착하실 시간이니까. 아, 그나저나 되게 아프네.’
아까 테오도르에게 잡혔던 손목이 욱신거렸다.
어찌나 세게 잡았는지 잠깐이었는데도 멍이 든 모양이었다.
‘매달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했지만 설마 이렇게까지 우악스러울 줄은 몰랐어.’
아픈 손목을 붙잡고 끙끙거리는데 갑자기 바깥에서 익숙하지 않은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악귀야, 물럿거라!”
레이첼이 기다리던 사람이 도착한 모양이었다. 예상과는 조금 다른 등장이었다.
테오도르가 비명을 지르며 바구니를 바닥에 내던졌다.
“으아악! 이, 이게 뭐야!”
틈으로 밖을 내다보니 테오도르가 들고 있던 바구니에서 활활 불이 타고 있었다. 놀라운 것은 바구니에서 타는 불이 붉은색이 아니라 반짝이는 은색이라는 점이었다.
곧 낯선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은빛 머리카락에 눈동자가 검은 중년 남성. 예니스 교의 하나뿐인 주교이자 레이첼의 아버지인 제임스월드 백작의 친구, 라일러스 반이었다.
오늘 이 시간 즈음 도착한다고 알려왔기에 일부러 이 시간에 테오도르를 불러들인 거였다. 테오도르의 항문에 일침을 날려주겠다던 사람이니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이런 식으로 은빛 불꽃을 일으키는 방법일 줄은 몰랐지만.
라일러스는 들고 있던 긴 막대기로 바구니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비켜서시오! 여기 든 것은 악마의 편지요!”
“악마의 편지라고? 무슨 헛소리야! 이건 내 연인이 내게 써준 편지라고!”
“그대야말로 헛소리 마시오! 그대에게는 연인이 없지 않소!”
“뭐, 뭐야?”
레이첼은 웃음이 터지려는 걸 참아야 했다.
그러고 보니 그랬다. 테오도르에게는 이제 아내도, 연인도 없었다.
은색 불꽃이 바구니 안의 편지를 모두 태우고 사라지자 라일러스가 차분히 말했다.
“이제 악마의 증거는 사라졌소. 안심하시오.”
“당신 뭔데 남의 연애편지를 태워 없애고 난리야! 마지막 남은 사랑의 증표였는데!”
“인사가 늦었습니다. 여신 예니스 님의 종, 라일러스 반 주교입니다. 그대는 한때 엘로사 백작 가문의 가주였던 테오도르 님이군요.”
“어……. 예니스라고요? 그러고 보니 은색 머리카락이네……?”
“알아보시는군요.”
“여기는 왜…….”
라일러스는 주름진 얼굴로 싱긋 웃었다.
“주교가 여기에 왜 왔겠습니까. 악마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예니스 님의 이름으로 악마를 퇴치하러 왔지요. 방금 악마의 증거를 하나 없앴으니 안심하십시오.”
예니스와 주교라는 이름, 은색 머리카락과 은색 불꽃의 의미를 곱씹은 테오도르가 눈을 크게 떴다. 그는 그제야 악마 어쩌고 하는 말을 믿는 모양이었다.
“그……. 진짜 이 편지에 악마가 있었습니까?”
“아닙니다. 악마가 아니라 악마의 증거가 있었지요.”
“그럼 저는 악마에 홀렸던 겁니까? 어쩐지 요새 이상한 일이 많이 일어난다 했습니다. 그럼 편지가 사라졌는데도 변화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 제 착각이겠지요?”
“변화가 느껴지지 않습니까? 이런, 큰일이군요.”
가만히 테오도르를 바라보던 라일러스는 들고 있던 막대로 테오도르의 머리를 강하게 내리쳤다.
빠악!
“아악! 주, 주, 주, 주교님! 대체 뭘 하시는 겁니까!”
“악마는 원래 두들겨 맞아야 정신을 차리는 법이니 이제 좀 달라질 겁니다. 참고로 이건 성스러운 예니스 교의 지팡이입니다.”
“어……. 그, 그런가요?”
테오도르는 머리를 긁적였고 라일러스는 정중하게 예를 취했다.
“인제 그만 돌아가 보십시오. 여기 계속 계시면 안 됩니다.”
“아! 그렇겠군요. 하마터면 악마의 흔적이 남은 곳에서 서성일 뻔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주교님.”
“별말씀을요. 부디 불행하시기를 기원하겠습니다.”
“예?”
잘못 들었나 싶은 테오도르가 고개를 갸웃했으나 라일러스는 사람 좋게 웃을 뿐이었다.
석연치 않은 기분에 테오도르는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며 북쪽 벽의 구멍 난 쪽으로 향했다. 그는 주변에 경비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라일러스를 한 번 더 돌아보고 나서야 구멍을 빠져나가 사라졌다.
테오도르가 완전히 사라진 뒤, 라일러스가 말했다.
“이제 나오너라, 레이첼.”
툭툭, 막대기가 가볍게 벽을 두드리자 숨겨진 문이 열리고 레이첼이 모습을 드러냈다.
레이첼은 어색하게 웃으며 예를 갖췄다.
“안녕하세요, 라일러스 반 주교님. 레이첼입니다.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응접실에 레이첼과 라일러스가 마주 보고 앉았다.
라일러스는 아까 테오도르를 상대하던 때와 달리 아주 차분하고 점잖고 진지했다.
어색한 침묵을 견디지 못한 레이첼이 먼저 입을 열었다.
“오신다고 하셨지만 정말 오실 줄 몰랐습니다. 바쁘실 텐데 저 때문에 괜히 귀한 걸음 하신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아까는 테오도르보고 악마라고 돌려 말씀하신 건가요?”
“그래, 맞다. 우리 레이첼을 괴롭힌 놈이 악마가 아니면 누가 악마겠느냐. 고얀 놈 같으니.”
“정말 감사합니다. 아주 즐겁게 구경했어요.”
“레이첼.”
“예, 주교님.”
“예전처럼 아저씨라고 불러 다오.”
아, 레이첼은 라일러스를 아저씨라고 불렀던 모양이다.
어려운 일도 아니라 레이첼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아저씨.”
“네 결혼식 이후로 처음이니 6년 만이구나. 네가 네 부모님의 장례식에 왔다면 5년 만일 테지.”
5년 전 마차 사고로 레이첼의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테오도르는 자기가 전부 알아서 하겠다며 레이첼이 부모님의 장례식에 가지 못하게 막았다.
정말이지 나쁜 놈이었다. 부모님과 마지막 인사도 하지 못하게 하고 재산을 가로채다니.
“죄송해요. 그때 갔어야 하는데.”
“아니다. 나야말로 네가 오지 않는 걸 보고 눈치챘어야 하는데 나이를 허투루 먹었어.”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네가 장례식에 오지 않아 의아하기는 했지만, 사정이 있겠거니 했다. 제임스월드 대신 내가 너를 제대로 살폈어야 했는데 내 슬픔에만 빠져 그러질 못했어. 정말 미안하구나. 내 사과를 받아주렴.”
“아저씨는 잘못하신 게 없어요. 사과하지 마세요.”
“앞으로는 내가 너를 돌봐주마. 너를 위해 망할 예니스 님이 주신 힘을 아낌없이 사용할 생각이야.”
“……무슨 예니스 님이요? 그런 얘기 하셔도 돼요?”
지난번 편지도 그렇고 아까 테오도르를 대할 때도 그렇고 라일러스는 근엄한 모습과 달리 무척…… 자유분방한 사람이었다.
라일러스가 슬쩍 미소 지었다.
“예니스 님은 관대하시니 괜찮다. 그동안 너를 행복하게 해달라는 내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셨으니 이 정도 욕은 각오하셨을 거야. 싫으면, 뭐. 예지력 다시 거둬가시겠지.”
그러고는 어디 가져갈 테면 가져가 보라는 듯 눈을 감고 두 팔을 벌렸다.
“아하하.”
레이첼이 소리 내서 웃었고 라일러스는 그런 레이첼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웃으니 참 어여쁘다. 앞으로는 많이 웃으렴.”
“예, 노력할게요.”
“레이첼. 사실 내가 여기까지 찾아온 건 네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란다.”
“말씀하세요.”
라일러스는 농담할 때와는 달리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예니스의 표식이 그려진 기다린 막대를 무릎 위에 놓고 두 손을 모아 경건하게 예를 취했다.
“여신 예니스의 이름으로 부탁하마. 나를 너의 새로운 아버지로 받아들여 주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