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Mother Of the Male Lead Who Lives With An Ad**terous Man RAW novel - chapter (31)
불륜남과 사는 남주 엄마가 되었다 (31)화(31/151)
레이첼은 귀를 의심했다.
“……네? 아저씨,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네 아빠가 되고 싶다고 했단다.”
당황스러워서 눈을 깜빡였다.
원작에서 레이첼은 비중이 적은 조연이었고 당연히 주교인 라일러스와의 인연 같은 건 나오지 않았다. 이런 상황은 상상도 해보지 못했다.
레이첼을 이해한다는 듯 라일러스가 자상한 목소리로 말했다.
“갑작스러운 제안을 해서 놀랐겠지만 내 마음이라 생각해 주련. 너를 돕고 싶어서 결정한 일이란다.”
“아저씨…….”
“나는 성직자라 결혼해서 아이를 낳을 수가 없었단다. 그런 내게 제임스가 낳은 너는 내 딸이나 다름없었어. 처음 제임스월드가 자그마한 너를 보여주었을 때 얼마나 감동했는지 모른다.”
레이첼은 그레이엄을 떠올렸다. 작고 사랑스러운 존재. 라일러스의 마음이 이해됐다.
“새로운 생명의 존재는 놀라웠고 나는 처음으로 신의 존재를 실감했단다. 예지력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되는 생생함이었어. 너를 내 딸처럼 여기며 사랑해 주겠다고 몇 번이나 다짐했지.”
라일러스가 씁쓸하게 웃었다.
“하지만 나는 부족한 인간이었다. 내게 ‘자라나는 딸’이란 무척 어려운 존재였지. 사춘기를 지나는 너를 보며 네게서 멀어지는 게 너를 위한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단다.”
아무래도 레이첼은 흑역사로 가득한 사춘기를 보낸 모양이었다.
“온 집 안을 테오도르 엘로사의 물건과 초상화로 채우고 매일 그를 보러 가게 해달라며 떼를 썼지. 못생긴 아저씨는 저리 가라고 난리였어. 나도 제임스도 어찌나 고생했는지 모른다.”
“……테오도르의 초상화라고요?”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세상에. 흑역사 정도가 아니잖아. 테오도르 덕질이라니…….
원작 레이첼은 정말 테오도르를 엄청나게 좋아했구나. 그랬으니 그의 불륜이 그토록 뼈아팠겠지만.
“네가 테오도르와 결혼하는 걸 보고 안심했단다. 원하던 것을 이뤘으니 이제 나는 필요 없겠구나 싶었지. 못생긴 아저씨는 조용히 사라져서 기도나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거기까지 말한 라일러스의 검은색 눈동자가 날카롭게 번뜩였다. 성직자 같지 않은 섬뜩한 눈빛이었다.
“테오도르 놈이 네게 저지른 일을 알고 나서 내가 잘못 생각했다는 걸 깨달았단다. 누구보다 무엇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서 너를 지켜야겠다고 결심했지.”
결심과 간절함이 느껴졌다.
이게 아버지의 마음이라는 걸까?
누군가 자신을 지켜주려 한다는 사실이 감동적이라 레이첼은 가슴이 찡했다.
“지금의 나는 대성자 티티예니스 님도, 여신 예니스 님도 막지 못할 거다. 알고 있으니 두 분 다 나를 내버려 두시는 거겠지. 혹시 아버지가 싫다면 그림자라도 되게 해다오. 눈에 띄지 않으마.”
“아니에요. 그림자라니, 아저씨가 왜 그림자가 되셔야 해요.”
“내가 성직자라 계보가 없어 너를 입적할 수는 없지만 대신 종교적 아버지는 되어줄 수 있단다. 너는 내 딸이자 예니스 님의 딸이 되는 거지. 네가 작위를 얻는 데 아무런 영향도 없을 거다.”
종교적 아버지라니. 후견인이나 대부가 되어주겠다는 얘기였다. 게다가 작위를 얻는 데 아무런 영향도 없다는데 라일러스의 부탁과 애정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레이첼이 뺨을 붉혔다.
“제가 이런 제안을 받아도 될지 모르겠네요.”
“네가 아니면 누구도 받을 수 없는 제안이란다. 부디 허락해주렴.”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부끄럽지만 잘 부탁드릴게요. 아저…… 아버지.”
기다렸다는 듯 라일러스가 활짝 웃었다.
“네가 허락해 줄 줄 알았다. 모든 준비를 마쳐두었으니 이제 수도 관리청과 교단에 알리기만 하면 되겠구나. 잘 부탁한다, 레이첼.”
“준비가 필요한가요?”
“세상에는 서류라는 귀찮은 것이 잔뜩 존재하니까.”
아아.
레이첼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귀찮은 서류 문제는 결혼 무효를 준비해 본 그녀도 잘 아는 것이었다.
잠시 망설이며 우물쭈물하던 라일러스가 레이첼의 눈치를 살피며 어렵게 입을 열었다.
“음……. 그런데 레이첼. 미안하지만 내가 너의 아버지가 되려면 네가 해줘야 할 것이 하나 있단다.”
“제가 해야 할 것이요? 어려운 건가요?”
“아냐! 어려운 것은 아니란다. 하지만 꼭 필요한 일이지.”
“제가 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 할게요. 말씀하세요.”
라일러스는 기분이 좋은 듯 어린아이처럼 헤헤 웃었다.
“네가 나를 아빠라고 불러주어야 한단다.”
라일러스는 테오도르 때문에 다친 레이첼의 손목을 치료해 주었다.
여신 예니스가 성직자에게 내린 예지력은 주로 미래를 보는 데 쓰는 힘이지만, 아까처럼 은빛 불꽃을 일으키거나 간단한 상처 치료를 하기도 한다고 라일러스가 설명해주었다.
마법을 처음 보는 레이첼은 신기해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때마침 검술 훈련을 마친 시안과 그레이엄이 응접실로 돌아왔다.
레이첼이 자리에서 일어나 시안을 맞았다.
“대공 전하를 뵙습니다. 오늘 검술 연습은 마무리된 건가요?”
“예. 오늘도 그레이엄은 훌륭했습니다. 이쪽은…….”
“라일러스 반 주교님이십니다.”
레이첼이 라일러스에게 시안과 그레이엄을 소개했다.
“아빠, 이쪽은 그레이엄의 검술 지도를 도와주시는 시안 디카르시냐크 대공 전하세요. 저 아이가 제 아들 그레이엄이고요.”
라일러스가 고개를 숙이며 시안에게 인사했다.
“대공 전하를 뵙습니다. 레이첼의 ‘아빠’인 라일러스 반 주교입니다.”
왜인지 라일러스는 아빠라는 호칭에 매우 집착했다. 그냥 아버지라고 부르면 안 되냐는 말에 그는 풀죽은 토끼처럼 어깨를 늘어트리며 슬퍼했다.
결국 레이첼은 라일러스의 지도 아래 ‘아빠’를 연습했다. 불러 본 적 없는 호칭이라 매우 낯설었다. 빙의하기 전에도 아빠는 늘 ‘그 자식’ 아니면 ‘그놈’이라고 불렀으니까.
그렇게나 연습했는데, 보람도 없이 아빠라는 단어를 말하는 순간 입술이 부들부들 떨렸다. 라일러스가 실망하는 기색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레이첼은 깨닫지 못했지만 사실 라일러스는 무척 기뻤다.
그렇게 불편하고 어려워하면서도 자신을 아빠라고 부르려고 노력해 주었으니까!
낯선 사람의 등장에 그레이엄이 바짝 긴장했다.
“아빠라고요? 우리 엄마는 아빠가 없는데?”
라일러스가 눈에서 애정을 뿜으며 그레이엄에게 다가갔다.
“어이쿠, 네가 그레이엄이구나! 이름만 들어봤지 얼굴 보는 건 처음인데 엄마를 아주 쏙 빼닮았어! 잘 부탁한다, 그레이엄. 오늘부터 네 할아버지가 될 라일러스란다.”
그레이엄은 엄마를 닮았다는 말에 기분이 좋아져 슬쩍 웃었다.
보통 사람들은 머리카락과 눈동자 색을 먼저 확인하기 때문에 쉽게 듣기 어려운 말이었다.
“저 엄마 닮았어요?”
“그럼! 닮았다마다. 네 엄마 어렸을 때 얼굴이랑 아주 똑같아서 레이첼이 어려진 줄 알았단다. 여기 보렴. 코끝이 반듯하고 동그란 것이 네 엄마를 쏙 닮지 않았니.”
“와!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할아버지는 눈이 아주 좋으시네요!”
두 사람은 첫 만남부터 죽이 잘 맞았다. 레이첼의 미모와 그레이엄의 미모를 비교하며 한참이나 떠들었다.
레이첼은 두 사람을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문득 시안의 존재를 깨달았다. 그는 다정한 눈길로 라일러스와 그레이엄을 바라보고 있었다.
레이첼의 시선을 느낀 시안이 고개를 들었다. 눈과 입가에 상냥한 미소가 걸린 채였다.
“왜 그렇게 보십니까?”
“아, 아뇨. 제가 라일러스 주교님을 아빠라고 불렀는데 놀라지 않으셔서요.”
“알고 있었습니다. 라일러스 주교님께서 레이디 레이첼의 후견인이 되고 싶다고 하셔서 제가 몇 가지 도움을 드렸거든요.”
정말 시안에게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여러모로 도움을 받는구나 싶었다.
때마침 그레이엄과 인사를 마친 라일러스가 몸을 가다듬고 시안을 향해 예를 갖췄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황제와 예니스 님이 모두 인정하는 공식적인 레이첼의 아빠가 될 수 있어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아닙니다. 예니스 님의 왼손께 도움을 드릴 수 있어 제가 영광이었지요.”
“예니스 님께서 오른손잡이셔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왼손은 할 일이 별로 없거든요.”
시안의 배웅은 라일러스가 맡았다. 레이첼이 직접 하겠다고 했지만 라일러스가 따로 할 얘기가 있다고 하자 수긍하며 자리를 비켜주었다.
마차 앞에서 라일러스는 다시 한번 정중하게 예를 갖췄다.
“아까 인사드렸지만 예니스의 이름으로 다시 감사드립니다. 폐하께서 도와주시지 않았다면 레이첼이 허락했더라도 아이의 그림자밖에는 될 수 없었을 겁니다.”
시안이 씁쓸하게 웃었다.
라일러스를 도운 게 아니라 레이첼을 도운 것이었다. 그녀의 일이라면 두 손 두 발 다 걷어붙이고 나서는 게 당연해져 버렸다.
그보다 다른 것이 문제였다.
“제발 그 폐하라는 호칭 좀 거둬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누가 들을까 두렵습니다. 제국에서 폐하라는 호칭을 붙일 수 있는 것은 시가르 황제 폐하와 황후 폐하 두 분뿐이란 말입니다.”
“시가르인지 새가르인지 그딴 놈은 모릅니다. 제 예지력으로 본 미래에는 시안 대공께서 황제의 자리에 앉아 계셨습니다.”
시가르가 듣는다면 그 자리에서 목을 치고도 남을 망언이었다. 라일러스와 시안뿐만 아니라 돌로라사까지 위험해질지도 몰랐다.
시안은 고개를 저었다.
“저는 황제의 자리를 포기했습니다. 지금의 황제는 시가르 형님이에요. 예니스 교에서도 인정하지 않았습니까.”
“티티예니스 님께서 인정하신 것이지 예니스 교 전체가 인정한 것은 아닙니다. 망할 노인네……가 아니라 티티예니스 님은 미래를 보고도 못 본 척할 때가 많거든요.”
라일러스의 거친 발언에 시안은 어쩔 줄을 몰랐다.
“저는 황제가 되고 싶은 욕심이 없습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제 딸이 성인이 될 때까지 안전하게 지내는 것뿐이에요. 그런 얘기를 폐하께서 알게 되면 아이가 위험해질 겁니다.”
“폐하께서 원하신다면 그만두도록 하겠습니다.”
“호칭도.”
“대공 전하께서 원하신다면 호칭도 주의하도록 하지요.”
확답을 받고서야 시안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레이디 레이첼을 부탁드립니다.”
“참 힘드실 것 같습니다.”
힘들 것 같다고. 시안의 처지를 아는 사람들이 모두 입을 모아 하는 얘기였다. 예정되었던 자리에 앉지 못하고 누려야 할 것을 누리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시안은 힘들지 않았다. 그는 돌로라사와 함께 사는 지금이 좋았다.
그래서 늘 하던 대로 대답했다.
“아니요. 저는 괜찮습니다. 지금도 무척 만족스러워요.”
“제가 얘기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아니라고요?”
“제 딸이지만 레이첼은 무척 매력적인 아이이지요.”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입덕 부정을 겪느라 고생이 많으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입덕…… 부정?
낯선 단어에 시안은 고개를 갸웃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