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Mother Of the Male Lead Who Lives With An Ad**terous Man RAW novel - chapter (32)
불륜남과 사는 남주 엄마가 되었다 (32)화(32/151)
당황한 시안의 표정을 본 라일러스가 껄껄 웃었다.
“이런, 늙은이가 젊은이들 따라 한답시고 엉뚱한 말을 해서 대공 전하를 놀라게 해드렸군요.”
“아닙니다. 무슨 의미인지 알아듣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라일러스는 입덕 부정이 무엇인지 설명해주는 대신 잔잔하게 미소 지었다.
“대공 전하께서는 그 무엇보다 공녀님의 안전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지요.”
“……그렇습니다.”
“대공 전하를 위해 예니스 님께서 주신 예지력을 아낌없이 사용하겠다고 약속드리겠습니다. 대공 전하께서 원하는 바를 이루시는 데 분명 도움이 될 것입니다.”
예니스 교의 주교가 자신을 위해 아낌없이 예지력을 써주겠다는 것은 엄청난 제안이었다. 보통의 성직자들은 능력을 쓰지 않거나 쓰면서도 티를 내지 않았다.
잠시 고민하던 시안이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원하는 걸 얘기해 보십시오.”
“돌로라사 공녀님께 위험이 닥치면 곧장 알려드리겠습니다. 대신 대공 전하께서도 제게 힘을 빌려주십시오.”
돌로라사에게 닥칠 위험을 라일러스가 직접 알려주겠다니,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내게 소중한 자들에게 해를 끼치는 일을 부탁하지 않는다면 돕겠습니다.”
“충분합니다. 감사합니다, 대공 전하.”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시안이 마차에 올랐다.
마부가 나타나 마차를 끌고 사라지는 모습을 보며 라일러스는 미소를 지웠다.
라일러스는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았다.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를 올리자 그의 머릿속에 두 개의 미래가 보였다.
하나는 레이첼이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목숨을 끊는 끔찍한 미래였고, 다른 하나는 그녀가 아들 그레이엄과 함께 웃으며 정원을 거니는 미래였다.
눈을 뜨고 손을 내렸다.
‘레이첼이 사라지는 미래가 오도록 내버려 둬서는 안 돼.’
라일러스가 레이첼을 찾아와 대부가 되겠다고 한 이유였다.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레이첼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미래가 오지 않도록 막을 작정이었다.
시안 디카르시냐크라는 조력자를 더 강하게 붙잡아 두는 것이 시작이었다.
* * *
“우아악! 으아아악! 어어어엉!”
좁은 타운 하우스에 며칠째 비명 같은 울음이 끊이지 않았다. 테오도르였다.
시녀 피넛이 식음을 전폐한 테오도르의 방 앞에서 어쩔 줄 모르고 쩔쩔맸다.
베렝겔라 역시 마찬가지였다. 와인을 들고서 아들의 방 앞을 서성였다. 이로 물어뜯은 손톱이 울퉁불퉁 흉한 모양이 되었다.
“테오! 대체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생각이냐! 이제 뭘 좀 먹어야 하지 않겠어!”
“어머니나 맘껏 드십시오! 그 좋아하는 술이나 드실 것이지 왜 자꾸 저를 귀찮게 하시는 겁니까!”
“정신 바짝 차리란 말이다! 너는 엘로사 가문의 3대 독자야!”
“그놈의 3대 독자! 그것 때문에 레이첼과 억지로 약혼하는 바람에 그녀의 사랑을 여태 눈치채지 못한 게 아닙니까!”
“아니. 이놈이 지금 뭐라는 거야?”
“우리 결혼이 정략 결혼만 아니었어도 저는 좀 더 빨리 레이첼을 향한 마음을 깨달았을 겁니다! 제인 따위를 만나며 시간 낭비를 하지 않았을 거라고요!”
“일은 제가 벌려 놓고, 어미 탓을 하다니, 아이고. 이걸 아들이라고.”
“어머님은 저리 가십시오! 어어엉! 어머님이 제 마음을 아십니까!”
“대체 그까짓 평민 계집들이 뭐가 그리 중요하다고 네 몸을 이렇게까지 혹사하는 것이야! 네가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우리 가문은 끝이나 마찬가진데!”
“그놈의 가문, 가문, 가문 소리 좀 그만두십시오! 저는 그런 것보다 레이첼에게 버림받았다는 사실이 더 충격이란 말입니다!”
“아이고, 아이고오! 저 망할 놈을 아들이라고.”
라일러스가 제인의 편지를 불태운 뒤, 테오도르는 제인을 악마라고 믿었다. 라일러스가 말한 악마가 자신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
테오도르는 악마에게 홀려 진짜 사랑인 레이첼을 오래도록 알아보지 못했다는 것을 자책했다. 영원히 자신만 바라볼 줄 알았던 그녀가 자신을 버렸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레이첼은! 레이첼만은 내가 무슨 짓을 저질러도 나를 사랑해 줄 줄 알았는데!”
베렝겔라가 이를 갈았다.
“레이첼, 내 이것을 그냥.”
처음에 베렝겔라는 아들을 나무랐다. 그러길래 왜 평민 계집하고 불륜을 저질렀느냐며 화를 냈다.
그것이 잘못한 일이라서가 아니었다. 불륜 때문에 창피를 당한 것이 화가 나서였다. 이토록 수치스럽게 들키지 않았다면 나무라지 않았을 일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화는 레이첼에게 옮겨갔다. 레이첼만 아니었다면 일이 이렇게 커지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살다 보면 실수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남편의 실수를 이해해 줄 수는 없었나.
겨우 바람을 좀 피웠다고 결혼을 무효로 만들고 위자료와 양육비를 그토록 많이 챙겨야 했었나.
황제께 반란이 아니라 불륜이었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알릴 수는 없었나. 이의를 제기하기는커녕 황제의 동정을 사서 저만 배부르게 먹고사는 것이 괘씸했다.
레이첼이 더 너그러웠다면. 레이첼의 이해심이 더 넓었더라면. 레이첼의 사랑이 더 깊었더라면.
일이 이렇게까지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화내야 할 대상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못났어도 아들은 아들이었다. 아들의 잘못을 탓하는 것보다 남이 된 레이첼의 잘못을 탓하기가 더 쉬웠다.
“덕망 있는 가문의 여식이라 그동안 부족한 점이 있어도 내버려 두었건만. 역시 부족한 것을 알아보았을 때 내쳤어야 했어.”
아들이 충격으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체면, 가문, 아들, 그리고 자신을 위해서 무언가 해야만 했다.
베렝겔라는 병에 든 와인을 한꺼번에 쭉 들이켜고서 손등으로 입가를 닦았다.
“피넛. 종이와 펜을 가져오너라. 레이첼에게 서신을 써야겠어.”
베렝겔라 엘로사. 끈기와 집착으로 힘없고 작은 엘로사 백작 가문을 수도에 진출시킨 사람이었다. 그녀는 지금이 자신의 저력을 보여줄 순간이라고 생각했다.
* * *
레이첼은 산더미처럼 쌓인 서신을 살피느라 정신이 없었다.
케이티가 레이첼의 책상에 쌓인 서신 정리를 도와주며 혀를 찼다.
“칸나 이 사람은 또 이런 식이네요. 제발 용서해 달라는 서신만 몇 번째인지.”
“어쩔 수 없지. 칸나가 내야 할 배상금이 제일 많으니까. 솔직히 그거 평생 일해도 다 갚기 어려운 돈이잖아.”
“아무리 그래도 배상금을 깎아줄 생각은 마셔야 합니다. 지난번에도 제게 내연녀를 도와주라는 얼토당토않은 것을 부탁하시더니……. 이번에는 정말 안 봐 드릴 겁니다.”
“안 깎아줄게. 걱정하지 마.”
서신의 양이 많아지기 시작한 건 며칠 전부터였다. 엘로사 저택에서 일하던 사용인들의 배상금이 도착하기 시작한 것이다.
누군가 배상금을 보내면 레이첼은 받아야 할 돈과 받은 돈을 비교한 다음 배상금을 모두 받았다는 서류를 써서 보내주었다.
배상금과 이자를 계산하고 서류를 작성하는 일은 생각보다 품이 많이 들었고 레이첼은 결국 꼼꼼한 케이티의 손을 빌렸다.
기대한 대로 케이티는 아주 꼼꼼하게 일을 처리했다. 숨김없고 화끈한 성격도 꽤 도움이 됐다.
정신이 없어 미뤄뒀던 제인의 일도 금세 정리할 수 있었다. 칼에게 약속했던 ‘자비’를 베푸는 일이었다.
“배상금이 괜히 배상금인가요? 다 그동안 손해 본 비용이란 말이에요. 처음에 레이디 레이첼께서 배상금을 깎아주려 하시는 걸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답니다.”
“아하하. 놀라게 해서 미안해.”
배상금 다음으로 도착한 것은 배상금을 깎아달라고 빌거나 용서를 구하는 서신이었다. 지정한 날짜까지 돈을 구하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레이첼도 배상금을 깎아주거나 용서해줄 생각은 없었다. 다만 돈이 아닌 다른 것으로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궁리를 했을 뿐이었다.
황제와 원로회에서 마련해 준 저택 덕분에 생활하는 데 불편함이 없었다. 사교 생활을 즐기지 않으니 딱히 돈이 들어갈 일도 없었다.
다만 레이첼은 하고 싶은 일이 있었다.
‘꼭 필요한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건 꼭 하고 싶어.’
그것을 하려면 돈이 필요했지만 돈 말고 다른 것도 필요했다. 정보, 사람, 아군 같은 것. 구체적으로 무엇이 얼마나 필요할지 계산해보느라 며칠을 고민했다.
그것이 케이티에게는 배상금을 전부 깎아줘야 하나 고민하는 모습으로 보였다. 그녀는 레이첼에게 배상금을 깎아주지 말라고 설득했다.
결국 레이첼이 항복했다.
‘정보나 사람은 나중에 돈으로 살 수도 있으니까. 일단 케이티의 말대로 배상금을 받는 데만 집중하자. 지금은 배상금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게 사실이잖아.’
레이첼이 케이티를 향해 빙긋 웃었다.
“안 그래도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나중에 꼭 보상할게.”
“이게 제 일인걸요. 이미 대공 전하께 어마어마한 보수를 받고 있으니 레이디 레이첼께서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된답니다.”
담백하게 거절하는 케이티를 보며 레이첼은 웃었다. 그녀가 그렇다고 한다면 정말 그런 것이다.
배상금을 깎아달라는 편지와 용서를 구하는 서신에 답을 썼다. 지정한 날짜까지 배상금을 보내지 않았으니 이자를 더 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렇게 십여 통의 서신을 정리하고 마지막 서신을 집어 들었다. 다른 서신과 달리 보내는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지 않았다. 레이첼의 이름이 거친 필체로 적혀 있을 뿐이었다.
“……뭐지?”
예감이 좋지 않았다.
지칼로 봉투를 뜯고 안에 든 서신을 꺼냈다.
[레이첼 엘로사.결혼 무효를 취소하고 당장 우리에게 돌아오십시오.
서신을 받는 즉시 돌아와 무릎을 꿇고 사과한다면 못난 며느리를 용서하겠습니다. 나는 그대의 자비로운 어머니니까요.
베렝겔라 엘로사 보냄]
……무릎을 꿇고 사과? 자비로운 어머니?
뒤통수가 쭈뼛할 만큼 화가 났다.
갑자기 차가워진 레이첼의 표정에 케이티가 화들짝 놀랐다.
“레이디 레이첼? 무슨 서신이길래 그러시나요?”
레이첼은 눈을 동그랗게 뜬 케이티에게 서신을 보여주었다. 케이티의 얼굴 역시 딱딱하게 굳어졌다.
“……미친 사람이군요.”
“그러게.”
짧게 한숨을 내쉰 레이첼은 베렝겔라의 서신 위쪽을 양손으로 붙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