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Mother Of the Male Lead Who Lives With An Ad**terous Man RAW novel - chapter (34)
불륜남과 사는 남주 엄마가 되었다 (34)화(34/151)
닉이 화들짝 놀랐다.
“화, 화, 화, 황태자 전하! 어찌 그런 곳에!”
말까지 더듬는 닉과 달리 시안은 차분하게 인사했다.
“황태자 전하를 뵙습니다.”
아트레이유가 만족스럽다는 듯 씨익 웃었다.
“역시 숙부! 이런 일로는 놀라지 않는구나?”
“이런 일로 일일이 놀라서는 전하의 숙부로 살기 어려울 겁니다.”
“크. 완전 멋있잖아?”
“거기서 뭘 하고 계셨습니까?”
“오늘 어전회의 하는 날이잖아! 숙부 만나려고 기다렸지. 몰래 숨어서 기다려야 하는데 수풀은 재미없는 것 같아서 새로운 곳에 숨어봤어! 숨이 엄청나게 차더라!”
“……허어.”
닉은 ‘황태자가 왜 저러는지 알려달라’는 얼굴로 시안을 돌아보았다.
아트레이유와 대화를 나눠본 적이 별로 없는 닉에게는 아이의 행동이 당황스러울 것이다.
아트레이유의 저런 행동은 장난치기 좋아하는 성격에 반항심이 합쳐진 결과물이었다.
시가르가 저지르는 총애라는 이름의 학대 때문에 상처받은 아트레이유는 그것을 풀 곳이 필요했다.
‘누군가 아트레이유를 따뜻하게 보듬어 준다면 좀 덜해질지도 모르지만……. 나는 아트레이유와 만나는 것조차 시가르의 눈치를 봐야 하니.’
시안의 생각을 모르는 아트레이유는 홀딱 젖은 모습으로 눈을 빛낼 뿐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숙부가 어지간히 반가운 듯했다.
속으로 한숨을 내쉰 시안이 다시 예를 갖췄다.
“격조했습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숙부가 엄청나게 보고 싶었지! 요즘도 되게 바쁘다며?”
아트레이유가 분수대 난간에 턱을 대고 툴툴거렸다.
“숙부가 나 만나러 안 오니까 내가 이런 데서 기다려야 하잖아. 쳇. 아빠한테 숙부 좀 불러달라고 했다가 얼마나 혼났다고.”
아, 이런.
그러고 보니 아트레이유의 오른쪽 뺨이 부어 있었다.
속이 끓는 것을 느끼며 시안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짬을 내서 꼭 찾아뵙겠습니다.”
“헤헤. 기다릴게!”
시안은 닉에게 조금 떨어진 곳에서 기다리라고 시킨 뒤 분수 난간에 기대앉았다.
아트레이유는 넓은 분수대 안에서 수영하듯 발장구를 쳤다.
“숙부, 숙부. 나 숙부한테 궁금한 거 있어.”
“말씀하십시오.”
“숙부는 여자한테 인기가 많지?”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 돈도 많고 잘 생기고 예의 바르고 젊고 신분도 높아서 인기가 많다던데.”
한때는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돌로라사를 입양한 이후에 시안은 사교계에서 매장되었다.
……라는 것은 시안의 생각이었고, 사실은 아직도 사교계에서 인기가 많았다. 그를 뒤따르는 추문만큼 호의와 애정도 컸다.
드러내지 못해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시가르의 방해와 돌로라사의 존재만 아니라면 시안은 수많은 영애들의 이성적, 정치적 구애에 시달렸을 것이다.
시안이 자상한 눈길로 조카를 바라보았다.
“사교계에서의 제 평가를 확인하고 싶으셨습니까?”
“아냐! 그런 건 아니고! 인기가 많으면 여자를 많이 만나 봤을 거 아니야. 많이 만나 봤으면 여자들이 뭘 좋아하는지 잘 알 거고.”
오호라.
관심 가는 영애라도 생긴 모양이었다.
아트레이유는 황제가 될 사람이니 관심 가는 사람과는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컸지만 상관없었다. 시안은 사랑하는 조카의 첫사랑을 돕고 싶었다.
“인기는 모르겠지만 영애들이 좋아하는 것이라면 얼마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이래 봬도 길드의 수석 정보원이니까요.”
“오! 좋아, 좋아! 뭔데? 여자들은 뭘 좋아해?”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보통은 반짝이는 것을 좋아합니다. 꽃처럼 향긋하거나 과자처럼 달콤한 것도 좋아하고요.”
“반짝이는 것? 다이아몬드 같은 거 말이야?”
“다이아몬드도 좋아하지요.”
“좋아! 그럼 다이아몬드로 하자! 다이아몬드는 어디서 사? 나 많이 갖고 싶어!”
“많이…… 는 부담스러울 테고 좋은 것 하나로도 충분합니다. 선물하실 생각이십니까?”
아트레이유는 맑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응! 레이첼 주려고!”
레이첼?
지금 아트레이유가 레이첼이라고 했나?
시안은 당황스러운 마음을 감추고 차분히 물었다.
“지난번 황태자 전하의 생일 연회를 망쳤던 테오도르의 전 부인 레이첼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응! 레이첼한테 다이아몬드를 주고 싶어. 많이 줄래!”
왜 아트레이유가 레이첼에게 다이아몬드를 선물하겠다는 거지?
아트레이유는 개구지고 행동을 예측하기 어려운 아이였지만 모르는 사람에게 값비싼 선물을 하고 싶어 할 만큼 분별없지는 않았다.
“뜬금없이 왜 레이첼에게 다이아몬드를 주고 싶으시다는 겁니까?”
“친하게 지내고 싶어서.”
아트레이유는 우물쭈물하더니 답지 않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레이첼은 엄청 신기한 사람이더라. 이렇게 꼭 안아주기도 하고, 혼낼 때 때리지도 않았어! 조용조용히 혼내는데도 말을 잘 듣고 싶어지더라고. 나는 그런 건 처음이었거든.”
“……그러셨습니까.”
시가르는 차기 황제인 아트레이유에게 자신의 방식을 가르쳤다.
황제는 잔인해야 한다.
잘못했으면 빼앗기거나 맞거나 죽는 것이 당연하다.
황제와 황태자는 무슨 짓을 저질러도 괜찮지만 다른 사람은 용서하지 않는다.
삐뚤어진 방식으로 세상을 배우던 아트레이유에게 레이첼은 확실히 신선했을 것이다. 그녀라면 화를 내야 하는 상황에서도 조곤조곤 상냥했을 테니까.
레이첼은 테오도르와 제인에게는 혼이 빠질 정도로 자비 없이 굴면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설탕 과자보다 더 달콤하고 상냥했다. 바보 같아 보일 만큼 너그럽고 관대했다.
이런 성향 때문에 그동안 레이첼의 현명함이 보이지 않았던 걸까 싶었다.
‘레이첼…….’
작고 소중한 조카에게 따스함을 전해준 레이첼이 고마웠고 동시에 묘하게 질투도 났다. 가슴이 쿵쿵쿵쿵 둔탁한 소리를 내며 뛰었다.
“레이첼 백작을 만나신 모양이군요. 황궁을 빠져나가셨던 겁니까?”
“…….”
짧게 침묵했던 아트레이유는 얼른 목소리를 높이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니! 아니! 아니! 그런 적 없는데!”
“거짓말이 서툰 건 여전하시군요. 폐하 앞에서는 레이첼 백작의 이야기를 하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화를 내실 테니.”
“헤헤. 그거야 당연하지. 숙부도 비밀 지켜줘야 해?”
아트레이유는 똑똑하고 눈치가 빠른 훌륭한 황태자였다. 역사, 문화, 사회, 법률 같은 어려운 과목을 모두 성실하게 공부했다.
하지만 아무리 똑똑해도 열 살은 열 살이었다. 아이는 자신을 감시하는 시가르가 없는 곳에서는 한없이 풀어졌다. 지금처럼.
시안은 아트레이유의 숨구멍이 되어주고 싶었다.
“비밀은 제 목숨을 걸고 지키겠습니다.”
“좋아, 좋아. 덤으로 다이아몬드도 사다 줘!”
“맡겨주십시오. 아주 훌륭한 것으로 구해오겠습니다. 괜찮으시다면 레이첼 백작이 좋아할 만한 다른 것도 알아보겠습니다.”
“역시 숙부가 최고라니까!”
아트레이유는 환하게 웃으며 품에서 종이를 꺼내 내밀었다. 물에 젖어 흐물흐물해진 황실의 종이였다. 글씨는 물에 섞여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았다.
“자! 오늘도 내 부탁 들어줬으니까 소원 쿠폰 줄게!”
“이 소원 쿠폰, 벌써 백 개째라는 걸 아십니까?”
“황태자 아트레이유의 소원 쿠폰을 백 개나 모으다니 숙부는 좋겠네! 다음에 소원 빌어. 알았지?”
이렇게 작은 아이에게 소원을 빌 일이 있을까?
시안은 가볍게 웃었다.
* * *
“이번에도 할아버지가 져야 해요! 알았죠? 가위, 바위, 보!”
그레이엄이 큰 소리로 말하고는 주먹을 내밀었다. 하하 웃던 라일러스가 동시에 가위를 내밀었다.
“와앗! 이겼다! 또 이겼어요!”
“요 녀석. 할아버지 이기니까 좋으냐?”
“네! 엄청 좋아요! 할아버지랑 가위바위보 하면 할 때마다 이길 수 있어서 좋아요!”
레이첼은 그레이엄과 라일러스가 앉은 정원 벤치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아주 흐뭇하고 즐거운 광경이라 방해하지 못했다.
“또 해요! 할아버지, 우리 가위바위보 또 해요!”
라일러스가 저택에 찾아온 뒤 그레이엄은 매일 즐거워했다. 레이첼의 앞에서는 의젓해 보이려고 노력하던 아이가 또래 아이처럼 웃고 떠들었다.
라일러스는 그레이엄을 위해 아낌없이 예지력을 썼다. 가위바위보에서 지는 역할을 맡았고 불꽃으로 신기한 묘기를 보여주기도 했다.
평화롭고 아름다운 일상이었다.
다시 한번 가위바위보에서 승리한 그레이엄이 만세를 부르며 웃다가 뒤쪽에 선 레이첼을 발견했다.
“어, 엄마다! 엄마!”
벤치에서 폴짝 뛰어내린 그레이엄이 레이첼에게 달려와 폭 안겼다.
“엄마, 할아버지랑 가위바위보 하면서 놀았어요!”
“재미있었어?”
“네! 재미있었어요! 할아버지는 정말 신기하고 재미있어요!”
“정말? 그렇게 재미있으면 엄마가 대공 전하께 검술 연습 시간 미뤄 달라고 말씀드릴까?”
“괜찮아요! 다녀와서 또 놀면 되니까요.”
기특하게 대답한 그레이엄은 벤치에 앉은 라일러스를 향해 크게 손을 흔들었다.
“할아버지, 저 검술 연습 다녀올게요!”
“오냐. 다녀오거라.”
그레이엄은 폴짝폴짝 정원을 가로질러 연무장 쪽으로 달렸다.
아이를 지켜보는 레이첼과 라일러스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감사해요. 요즘 그레이엄이 얼마나 밝아졌는지 몰라요.”
“그래 보이는구나. 나도 예니스 님이 주신 능력이 이렇게 쓸모가 많은 줄 몰랐지 뭐냐.”
“예니스 님도 모르셨을 거예요.”
설마 신의 권능을 가위바위보나 불꽃놀이 하는 데 쓸 줄은.
레이첼이 웃으며 라일러스의 곁에 앉았다. 햇살에 데워진 의자가 따끈따끈했다.
“그런데 예지력을 이렇게 써도 정말 괜찮은 건가요? 원래 예지력이라는 게…….”
“뭐 어떠냐. 주어진 것을 어떻게 쓰든 내 마음이란다. 두 발로 걸을 수 있는 것이 아깝다며 매일 기어 다닐 수는 없지 않니.”
“그런 수준인가요?”
“그럼. 예지력은 내 수족이나 마찬가지니까.”
언제나처럼 가벼운 말에 레이첼이 후후 웃었다.
그런 레이첼을 기특하게 바라보던 라일러스가 말했다.
“그러고 보니 네게는 예지력을 써준 적이 없구나. 혹시 서운하지는 않으냐?”
“서운하다니요. 저는 괜찮아요. 조금 궁금하기는 하지만요.”
어떤 미래가 보일지 궁금했다. 원작의 미래가 보일까? 그도 아니면 다른 미래가 보일까?
“흐음.”
잠시 고민한 라일러스가 두 손을 펼쳐 앞으로 내밀었다. 그의 손끝에서 찬란한 은색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허공에 기이한 문양의 카드 세 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와, 정말 신기하네요.”
“네 과거와 현재, 미래를 보여주는 카드란다. 한 번 뒤집어 보련.”
“음…….”
레이첼은 고민하지 않고 미래를 나타내는 가장 오른쪽 카드를 붙잡아 뒤집었다.
그리고 번쩍!
맑은 하늘에서 번개가 내리치더니 레이첼이 붙잡은 카드가 갈기갈기 찢어졌다.
“어…….”
당황한 레이첼은 카드를 뒤집은 동작 그대로 굳어졌다. 그녀의 손에는 붙잡았던 카드의 모서리가 조금 남아 있을 뿐이었다.
슬쩍 눈을 굴려 라일러스의 눈치를 보았다.
“죄송해요. 혹시 제가 망가트린 건가요?”
“이야.”
라일러스의 반응은 예상외였다. 그는 뭐가 재미있는지 배를 부여잡고 껄껄 웃어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