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Mother Of the Male Lead Who Lives With An Ad**terous Man RAW novel - chapter (35)
불륜남과 사는 남주 엄마가 되었다 (35)화(35/151)
“어허허! 하하하! 내 죽기 전에 이런 것을 보게 될 줄은 몰랐는걸!”
“네, 네에?”
“역시 내 딸. 이래야 이 라일러스가 딸로 삼은 아이지!”
레이첼은 영문을 몰라 눈만 깜빡였다.
한참을 웃은 라일러스는 손을 휘저어 허공에 남은 카드와 찢어진 카드 조각을 없앴다. 그러고는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듯 미래를 떠올렸다.
라일러스의 머릿속에 두 개의 미래가 떠올랐다. 며칠 전과 달리 레이첼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미래는 작고 일그러져 보였고 행복하고 밝은 미래는 크고 강하게 빛났다.
‘원래의 미래가 사라지고 있어. 게다가 예니스께서 원래 예정되었던 미래를 보여주려 하지 않으신다니. 이런 경우는 대성자 티티예니스 님께도 들은 적이 없는데’
레이첼은 정말 특별한 경우였다. 미래 두 개가 동시에 보이는 예는 없었다. 그녀의 미래가 둘로 갈라지면서 주변 사람들의 미래까지 둘로 갈라졌다. 그녀와 특별히 인연이 깊은 그레이엄이 그랬다.
하지만 레이첼이 무언가 행동하고 선택할수록 미래는 점차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처음에는 가능성일 뿐이었던 미래가 선명해지며 원래의 미래를 지웠다.
성직자들이 쓰는 예지력은 예니스의 힘을 통해 정해진 미래를 볼 뿐이었다. 아무리 애써도 이미 정해진 미래를 바꿀 수는 없다. 대성자 티티예니스가 미래를 보면서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는 이유였다.
처음 라일러스가 레이첼의 소식을 듣고 미래를 봤을 때는 정반대였다. 원래의 미래가 강하고 나중의 미래가 약했다. 그때는 얼마나 놀랐는지.
어떻게든 무엇이든 해야겠다는 생각에 모든 것을 제쳐놓고 달려왔더랬다.
그런데 라일러스가 무엇을 할 틈도 없이 미래가 바뀌었다.
레이첼이 스스로 이뤄냈다.
‘대견하다는 말로는 표현이 안 돼. 위대하다고 해야 할까. 황제나 대성자도 할 수 없는 일을 레이첼이 해내고 있으니까.’
라일러스는 어쩔 줄 모르고 자신의 눈치를 보는 레이첼을 향해 웃었다.
“레이첼.”
“네……. 죄송합니다.”
“예니스 님께서 네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셨단다.”
“제, 제가요?”
“원래 예정되었던 미래 따위 네게 보여줄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시는구나.”
“아…….”
“표현이 좀 거칠어서 그렇지 특별히 위험한 것은 아니란다.”
“그렇군요.”
레이첼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번개가 내리치고 카드가 찢어지기에 천벌이라도 받은 줄 알았다.
‘원래 예정되었던 미래라면 원작 소설 속의 미래를 의미하는 거겠지? 내가 빙의해서 원작 레이첼의 미래를 바꿔버렸기 때문에 원래의 미래를 보여줄 필요가 없는 걸까?’
그렇다면 다행이었다. 노력한 대로 순조롭게 미래가 바뀌고 있다는 얘기니까. 레이첼이 자살하지 않고 그레이엄은 살인귀가 되지 않는 미래라니!
열심히 노력한 보람이 있어 레이첼은 기분 좋게 웃었다.
“예니스 님은 무척 과격한 분이시군요.”
“그럼. 괜히 내가 예니스 님의 왼손이겠느냐. 부드러운 걸 좋아하는 분이라면 나 같은 건 성직자로 삼지도 않으셨을 거다.”
“아하하. 그러고 보니 그러네요.”
즐거워하는 레이첼을 바라보며 라일러스가 말했다.
“네가 가는 길을 의심하지 말렴. 너는 흔치 않은 운명을 타고났단다. 주어진 운명을 사는 평범한 인간들과 달리 너는 네 선택에 따라 얼마든 미래를 바꿀 수가 있거든.”
선택에 따라 얼마든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말.
레이첼에게 그보다 더 희망찬 말은 없었다. 미래를 예지하는 예니스의 왼손이 해준 말이라 더욱 믿음직스러웠다.
라일러스가 가볍고 장난스러워 보이지만 거짓말을 하거나 에둘러 빈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점도 한몫했다.
“네가 원하는 것을 선택하고 행동하렴. 예니스 님은 기도 따위를 들어주는 분은 아니지만 때때로 행동하는 자의 앞에는 행운을 선물하곤 하시거든.”
“용기 주셔서 감사합니다. 흔들리지 않을게요.”
“기특하구나.”
20대 중반, 기특하다는 얘기를 들을 나이는 아니었지만 따지지 않고 즐겼다.
하늘이 높고 맑은 오후였다.
* * *
시안은 최근 며칠간 집무실에 틀어박혀서 나올 줄 몰랐다. 원래도 바쁘던 그였지만 요즘은 정말이지 눈코 뜰 새가 없었다.
레이첼 때문이었다.
곁에서 일을 거들던 닉이 말했다.
“말씀드렸다시피 영지와 성을 되찾기가 가장 쉽습니다. 주인에게 물으니 값을 후하게 쳐준다면 언제든 팔 의사가 있다고 하더군요.”
시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했던 일이었다.
“사들인 지 겨우 5년 된 영지와 성이니 아직 정도 들지 않았을 거다. 게다가 테오도르가 헐값에 넘겼으니……. 싸게 사서 5년 만에 비싸게 판다면 그들에게는 그보다 남는 장사가 없겠지.”
“맞습니다. 문제는 무덤입니다. 수소문하고 있지만 찾기가 어려워요. 대체 어디에 묻어둔 건지. 테오도르가 남긴 저택의 기록을 샅샅이 뒤졌지만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테오도르 놈.
속으로 이를 갈았다.
시안과 닉은 얼마 전부터 돌아가신 레이첼의 부모님이 남긴 흔적을 찾았다. 레이첼에게 특별한 선물을 해주고 싶어 고민한 결과였다.
아트레이유를 대신해 레이첼이 좋아할 만한 선물을 찾는다는 핑계를 댔다. 황태자가 부탁하기 전부터 선물을 고민했다는 사실은 닉과 시안 누구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순수하게 기뻐하는 모습이 보고 싶다.’
그토록 희귀한 분홍색 다이아몬드가 달린 커프스단추에도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던 레이첼이었다. 그녀라면 웬만한 선물에 감동조차 하지 않을 것이 뻔했다. 부담스러워하지나 않으면 다행이었다.
뭘 줘야 기뻐할까 고민했다.
아무나 줄 수 없는 것을, 레이첼이 거부할 수 없는 것을 선물하고 싶었다.
긴 고민 끝에 찾은 답이 이것이었다. 레이첼의 부모님이 살던 성, 그들이 다스리던 영지, 그들이 묻힌 무덤과 흔적을 찾아주고 싶었다.
성과 영지처럼 눈에 보이는 것은 찾기 쉬웠다. 웃돈을 좀 얹어 주는 것만으로도 어렵지 않게 되찾을 수 있었다.
문제는 두 사람이 묻힌 무덤의 위치와 사고 원인을 찾는 것이었다.
5년이나 지난 사고의 원인을 밝히는 일은 어려운 것이 당연했으나 두 사람의 무덤을 찾는 일까지 이토록 어려울 줄은 몰랐다.
테오도르는 장례를 치른 후 위로금만 받아 챙기고 마무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어디에 묘지를 마련했는지 주변에 알리지 않았다.
‘반란을 꾸몄다는 누명을 쓴 것이 가여웠는데 이젠 그럴 가치조차 느껴지지 않는군. 레이첼만 아니라면 당장 시가르에게 놈이 숨은 곳을 알려 목을 치고 싶은 심정이야.’
닉은 시안의 화가 누그러지기를 기다렸다가 슬쩍 물었다.
“어떻게 할까요?”
“일단 당장 처리할 수 있는 일부터 처리하지. 무덤 쪽은 나중에 내가 테오도르에게 접근해서 다시 알아볼 테니까.”
“알겠습니다. 다행히 사고 원인을 조사하는 쪽은 진척이 있었습니다. 당시 프람 가문에서 사용했던 마차를 제작한 장인을 찾았거든요.”
“기대하지 않았던 성과로군.”
“지금은 은퇴하고 자식들이 가업을 이어받았다고 합니다. 어딘가 한적한 시골에서 살고 있다고 하니 곧 찾아서 보고 올리겠습니다.”
“혹시 모르니 자식들이 이어받은 마차 제작 공방도 자세히 조사해 보도록. 품질이 나쁜 마차를 만드는 곳일 가능성이 있으니까.”
“받들겠습니다.”
“일단 성과 영지를 사들이는 것부터 마무리해야겠군. 목돈이 필요한데. 상단에서 스테판의 소재에 대한 연락은 오지 않았나?”
스테판 이아콥스 공작은 황후의 조카이자 시안의 절친한 친구였다. 돈에 대한 감각이 뛰어나서 시안이 황제가 되었다면 재무 책임자로 일했을 사람이었다.
지금은 이아콥스 가문의 상단주로 일하면서 시안 대신 비밀리에 그의 상단을 운영해 자금을 불리는 일을 하고 있었다. 황궁과 저택만 오가는 시안의 금고가 마르지 않는 이유였다.
닉이 고개를 끄덕였다.
“교역 때문에 멀리 떠났다가 수도로 돌아오는 길이시라고 합니다. 워낙 떠돌기 좋아하는 분이라 상단 직원들도 위치 파악이 어려운 분인데, 운이 좋았습니다.”
“좋아. 스테판이 도착하는 대로 상단 자금을 빼서 성과 영지 매입에 사용하도록. 언제 레이첼에게 건네줄지 모르니 관리에 필요한 비용도 따로 준비해야 할 거야.”
“맡겨 주십시오.”
믿음직스러운 대답이었다.
고개를 끄덕이고서 서류 작업을 마쳤다. 너무 늦게까지 일하면 돌로라사가 속상해할 테니 남은 일은 내일로 미루기로 했다.
책상을 정돈하고 일을 마무리하는데 때마침 누군가 집무실 문을 두드렸다.
“대공 전하. 손님이 오셨습니다.”
“……손님? 이 시간에?”
밖은 이미 어둠이 내려 달과 별이 반짝이고 있었다. 저녁 만찬도 무도회도 열리지 않는 대공 저택에 이 시간에 손님이 찾아오다니 흔치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손님을 그냥 돌려보낼 수는 없었다. 시가르가 시안의 흠을 잡기 위해 귀찮은 일을 꾸미는 것일지도 몰랐으니까.
거울 앞에 서서 복장과 머리를 단정하게 매만진 시안이 집무실을 나왔다.
복도를 걸어 저택 대문이 달린 홀에 도착했을 때, 시안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고 쓰게 웃었다.
‘이기지도 못할 거면서 매번 덤빈단 말이지. 이런 점을 좋아하는 거지만.’
시안이 홀 한가운데 섰을 때, 날카로운 검이 그의 머리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검은 위에서 아래로, 강하고 빠르게 날아들었으나 시안의 몸을 스치지 못했다. 그가 슬쩍 몸을 틀어 검을 흘려버린 탓이었다.
검을 휘두른 자가 쯧, 잇소리를 냈다.
“성공할 수 있었는데.”
“전혀. 너는 적의를 숨기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고 말했잖아.”
“건방진 놈.”
시안은 어깨를 으쓱할 뿐 대꾸하지 않았다. 지난 20년간 지겹게 들은 소리였다.
대신 어두컴컴한 공간 속으로 손을 쑥 내밀었다.
“오랜만이다, 스테판. 생각보다 일찍 왔군.”
“일찍 와야지. 평생 돈 달라는 소리를 한 적이 없던 대공 전하께서 돈 필요하다는 소리를 하니까 말이야. 이유가 뭔지 궁금해서 잠도 안 자고 말을 달렸다고.”
어둠 속에 숨어 있던 스테판이 검은 망토를 벗고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