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Mother Of the Male Lead Who Lives With An Ad**terous Man RAW novel - chapter (38)
불륜남과 사는 남주 엄마가 되었다 (38)화(38/151)
“여성의 도움이라고요? 어떤 일인가요?”
“돌로라사의 드레스 맞추는 일을 도와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예상하지 못한 부탁이었다. 시안이 뭔가를 부탁한다면 정치적이거나 계략, 음모와 관련 있을 줄 알았다.
‘공녀님의 드레스를 맞추는 일이라. 확실히 쉽지 않은 일이네.’
원작 소설에 의하면 돌로라사는 미적인 기준이 높고 까다로운 사람이었다. 특유의 감각을 발휘해 야생의 그레이엄을 훤칠한 신사로 변신시키기도 했다.
그런 돌로라사라면 분명 드레스를 맞추는 과정이 무척 느리고 번거로웠을 테지. 바쁜 시안이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시안이 어색하게 웃었다.
“그동안 원단이며 모양까지 제가 함께 골라주었는데 아무래도 여성분께서 도와주시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싶어서요. 혹시 불편하시다면 거절하셔도 괜찮습니다.”
시안은 레이첼이 자신의 부탁을 부담스러워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눈치였으나 사실은 반대였다.
레이첼은 아주 신이 났다.
‘귀엽고 깜찍한 돌로라사에게 이런저런 드레스를 마음껏 입혀볼 기회라니! 이건 부탁이 아니라 포상이잖아! 착하게 산 보람이 있어!’
발을 동동 구르며 폴짝폴짝 뛰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으며 우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닙니다. 제가 사교계의 유행에 밝은 편은 아니지만 필요하다면 얼마든 도와드려야지요. 혹시 드레스를 몇 벌이나 맞춰야 하나요?”
“우선 한 벌을 맞추고 나머지는 돌로라사가 원하는 만큼 주문해 주시면 됩니다. 보통 다섯에서 열 벌 정도 맞추는 편입니다. 아, 당연한 얘기지만 비용은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되고요.”
비용을 신경 쓰지 않는 쇼핑이라니! 이보다 더 즐거운 일이 있을까!
당분간 지루할 일은 없겠다 싶어서 마음이 나풀나풀 춤을 추었다.
“맡겨주세요. 최선을 다해 도와드리겠습니다.”
시안이 부드럽게 웃었다.
“허락해 주셔서 다행입니다. 돌로라사도 무척 기뻐할 겁니다. 아이가 레이디 레이첼을 무척 좋아하거든요.”
“정말요?”
“지난번에 레이디 레이첼을 만나고 온 뒤로 자주 이야기를 한답니다. 무척 상냥한 분이셨다고요. 돌로라사가 그런 얘기를 하는 건 처음이었습니다.”
“아닙니다. 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걸요.”
사실 레이첼은 돌로라사에게 엄청난 것을 주었다.
돌로라사가 원작 여주라는 걸 알고 있는 레이첼은 아이를 애정 어린 눈길로 바라보고, 빙의자인 덕에 이 세계의 가치관에 휘둘리지 않고 편견 없이 대했다.
은근히 차별 어린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 틈에서 자란 돌로라사였다. 어리지만 눈치 빠른 아이에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애정을 표현해 주는 레이첼은 특별한 존재였다.
사실을 모르는 레이첼은 정말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눈을 깜빡이는 레이첼을 보며 시안이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산들바람처럼 간지러운 감정이 시안의 가슴을 가득 채웠다.
* * *
“……뭐?”
시가르에게 보고하던 시종이 화들짝 놀라 입을 다물었다.
이전에 일하던 시종의 목이 잘린 것이 겨우 이틀 전의 일이었다. 시가르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내용의 보고를 했다는 이유에서였다.
다행히 시가르는 새로온 시종의 목을 자르지 않았다. 그는 입술을 비틀며 삐딱하게 미소 지었다.
“다시 한번 말해봐라.”
“예, 예에. 시안 아이사 디카르시냐크 대공 전하가 파티를 연다는 소식입니다.”
“이유는?”
“그것이…… 상단을 통해 새롭게 구한 미술품을 선보이는 자리라고 합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시가르는 느긋하게 자신의 턱을 문지르며 혼잣말을 했다.
권력의 정점에 선 시가르는 남의 눈치를 보지 않았고 자신의 속마음을 숨기지도 않았다.
“시안 녀석이 그딴 시시껄렁한 이유로 저택을 개방하다니 말도 안 돼. 본인 생일에도, 돌로라사의 생일에도 다과회조차 열지 않던 놈이 대체 무슨 꿍꿍이지?”
시종은 대답하지 않았다.
현명한 대처였다. 시가르의 혼잣말에 생각 없이 대답했다가 비위를 거슬러 목이 잘린 시종이 올해만 벌써 두 명이었다.
“늙어 죽을 때까지 시키는 일이나 하며 쥐 죽은 듯 살 줄 알았는데.”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라 아주 흥미로웠다.
시가르가 물었다.
“귀족들의 반응은 어떻지?”
“대, 대부분 환영하는 분위기입니다. 참석자 명단이 따로 없고 초대장만 지참하면 누구든 파티에 참석할 수 있다고 합니다. 다들 앞다투어 초대장을 구하려고 난리예요.”
“초대장만 지참하면 참석할 수 있는 파티. 들을수록 더욱 놈답지 않군. 초대장은 어떻게 구하지?”
“이아콥스 상단 고객들에게 나눠주었다고 합니다. 수량이 많지 않고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 비싼 값에 초대장을 교환하는 자들도 있다는 소문입니다.”
“비싼 값?”
“그게…… 정해진 가격이 없어서 경매하듯 더 비싼 값을 부르는 쪽이 가져간답니다. 최근에 거래된 초대장은 한 장에 오천 골드를 받았다고…….”
“오천 골드? 하하하!”
결국 시가르는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오천 골드는 수도 중심부의 조그마한 건물 한 채 가격이었다.
“시안의 집에 들어가 쓸모도 없는 미술품을 좀 구경하는 데 그렇게나 많은 돈을 낸다는 말이지.”
“무, 물론 거래는 비밀리에…….”
“시안의 파티라. 목적이 뭘까.”
고민해 봐야 답은 나오지 않았다.
시안에 대한 정보도, 그의 생각을 꿰뚫어 볼 통찰력도 없는 시가르가 파티의 목적을 추리하는 일은 불가능했다.
다만 시가르는 황제였다. 시안을 아주 불편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었고, 그가 불편해하는 것을 무척이나 즐거워하는 사람이었다.
시가르가 고개를 비스듬하게 기울였다.
“동생이 파티를 여는데 형이 빠질 수야 없지. 그 초대장이라는 것을 한번 구해와 봐라. 비용은 얼마가 들어도 좋다.”
“예! 아, 알겠습니다!”
“베아트릭스와 아트레이유도 함께 가려면 세 장은 필요하겠군.”
“황명을 받들겠습니다!”
분명 뭔가를 꾸미기 위해 여는 파티일 것이다.
거기에 시가르가 나타난다면 시안은 어떤 얼굴을 할까.
벌써 기대가 됐다.
* * *
“레이디 레이첼!”
마차가 멈추자마자 폴짝 뛰어내린 돌로라사가 맑게 웃었다.
뒤이어 내리는 시안과 눈인사를 한 레이첼이 맑은 목소리로 돌로라사를 맞아 주었다.
“어서 오세요, 돌로라사 공녀님.”
레이첼이 자상하게 마주 웃어주자 그레이엄이 뚱하게 볼을 부풀렸다.
하지만 예전처럼 크게 티 내는 대신 마음을 추스르고 씩씩하게 인사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스승님. 그리고 오랜만에 뵙습니다, 공녀님.”
레이첼과 돌로라사가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머, 그레이엄. 너 저번에 봤을 때랑 다른 사람 같아.”
“그러게. 우리 그레이엄이 전보다 더 의젓해진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네.”
“이 정도는 기본이죠.”
그레이엄이 자그마한 몸을 곧게 세웠고 시안이 미소 지었다.
“그래. 이제 제법 기사다운 눈을 하게 되었구나. 검술 실력만 늘어난 게 아니었어.”
“스승님 덕분이에요.”
의연한 대답에 레이첼이 웃음을 터트렸다.
시안이 그레이엄을 가르치는 동안 레이첼은 돌로라사가 드레스를 맞추는 일을 돕기로 했다.
몇 주간 이어질 일정에 레이첼은 무척 들떴다. 신체 치수를 재기 위해 단정하게 머리를 묶은 돌로라사 때문이었다.
‘엄청나게 공들여 꾸미지 않았는데도 정말 예뻐. 어쩜 이렇게 인형 같을까.’
돌로라사는 밤하늘처럼 까만 머리카락에 금빛으로 반짝이는 눈동자, 뽀얀 얼굴과 다홍색 입술이 완벽하게 조화로운 얼굴이었다.
또래답지 않게 상냥한 미소를 머금고 당당하게 서 있었지만 볼은 오동통한 것이 깨물어주고 싶었다. 드레스 아래로 빼꼼 보이는 단정한 구두코는 또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그레이엄도 귀엽지만 공녀님의 귀여움은 종류가 달라. 이래서 아들딸 골고루 낳으라고 하는 건가 봐. 공녀님 같은 딸 하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레이첼은 가슴 앞에서 두 손을 꼭 마주 쥐었다.
‘예쁜 옷을 잔뜩 입혀야지! 리본도 장식도 색깔 별로 달아줄 거야! 같이 신발도 고르고 장갑도 고를래. 얼마나 예쁠까? 지갑 생각 안 하는 쇼핑이라니 정말 신난다.’
그러고 보니 레이첼은 빙의 후 제대로 된 쇼핑을 해본 적이 없었다.
엘로사 가문의 문제를 해결하고 결혼을 무효로 만드는 데 열중한 탓이었다.
‘필요가 없기도 했고. 사교 모임에 나갈 일이 없었으니까.’
다행히 원래 레이첼이 사교적이지 않았던 탓에 이런저런 일로 레이첼이 저택에 틀어박혀도 의심하는 사람이 없었다.
‘쇼핑 같은 건 일이 전부 마무리된 다음에 느긋하게 즐겨도 되니까.’
레이첼이 돌로라사를 향해 생긋 웃었다.
“그럼 공녀님, 안으로 들어가실까요? 의상실 마차가 곧 도착할 거예요.”
“좋아요!”
“저는 스승님이랑 검술 연습하러 갈게요! 스승님, 저 연습 많이 했어요. 보여드릴게요.”
그때 디카르시냐크 대공 가문의 마차 뒤쪽으로 다른 마차가 나타났다. 당연히 시안이 불러준 의상실 마차겠거니, 생각하는데 마차의 크기와 모양이 심상치 않았다.
황실의 마차였다.
“황실 마차가 여기 무슨 일이지?”
레이첼의 혼잣말에 시안과 아이들이 뒤를 돌아 마차를 보았다.
마차는 속도를 줄이더니 디카르시냐크 대공 가문의 마차 뒤에 멈춰 섰다. 번쩍이는 황금 장식이 달린 옷을 입은 남자 여럿이 마차에서 내리더니 좌우로 길게 늘어섰다.
그 중앙에 선 남자가 금빛 두루마리를 펼치며 목소리를 높였다.
“황명이오! 레이디 레이첼은 나와 황명을 받으시오!”
느닷없이 황명이라니?
레이첼은 어리둥절해하면서도 급히 예를 갖췄다.
남자는 레이첼과 시안, 아이들이 예를 갖추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말을 이었다.
“은혜로우신 황제께서는 사라졌던 레이디 레이첼의 가문과 작위를 되살리기로 하셨소! 열흘 뒤에 열리는 작위 수여식에서 작위와 귀족 명패가 수여될 예정이오!”
아, 드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