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Mother Of the Male Lead Who Lives With An Ad**terous Man RAW novel - chapter (4)
불륜남과 사는 남주 엄마가 되었다 (4)화(4/151)
왜?
왜 지금 여기서 알리아스가 등장하는 거지?
레이첼은 후드 아래 드러난 알리아스의 얼굴을 살피려고 했지만 허사였다. 그는 검은 안대를 써서 얼굴과 눈동자 색을 감추고 있었다.
알리아스. 원작 소설 여자 주인공인 돌로라사의 아빠이자 제국의 유일한 대공 시안 아이사 디카르시냐크 대공의 가명.
레이첼은 정보원에게 필요한 정보를 적당히 빼내겠다는 계획을 수정하기로 했다.
알리아스는 아들의 미래 여자친구의 아빠, 그러니까 레이첼의 사돈 될 사람이었다. 이렇게 먼저 눈앞에 나타나 줬는데 스쳐 가게 둘 수는 없었다.
알리아스가 고개를 갸웃했다.
“백작 부인?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미안해요. 아는 사람과 이름이 같아서 순간 놀랐습니다. 아무래도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으니 다른 응접실에서 기다려 주시겠어요? 먼저 나누던 대화를 마무리하고 곧바로 찾아가겠습니다.”
“대신 기다린 시간만큼 비용을 쳐주셔야 합니다.”
“당연하지요.”
흔쾌한 대답에 알리아스가 응접실을 나섰다.
제국에서 손꼽히는 부자가 이렇게 꼼꼼하게 수당을 계산하다니! 몰랐다면 깜빡 속아 넘어갈 훌륭한 연기였다.
얼른 알리아스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몸이 달았다. 그러려면 우선 마샤의 일을 마무리해야 했고.
차분히 흥분을 가라앉힌 레이첼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자, 이제 방해꾼이 사라졌으니 다시 이야기를 나눠볼까?”
“마, 마님…….”
“나는 분명 기회를 줬고, 제 발로 기회를 차버린 마샤에게 자비는 없어. 너무 서운하게 생각하지 마.”
차분하게 두 손을 모으고서 생각해 뒀던 처벌을 내렸다.
“우선 마샤는 지금 이 순간부터 엘로사 가문의 유모가 아니야. 가문의 사용인으로서 누리던 모든 혜택을 회수하겠어. 마샤의 가족에게 보내주던 지원금도 마찬가지고.”
“그걸 끊으시면 제 가족은……!”
“말 끊지 마. 나 아직 얘기 안 끝났어. 지금 입는 옷을 비롯해 그동안 제공해준 모든 물품을 반납해. 장부에 적힌 내용과 달리 헤지거나 못쓰게 된 물건이 있다면 변상해야 할 거야.”
마샤의 고개가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직 멀었는데 벌써 이러면 곤란하지.
“그동안 몰래 도둑질한 물건을 모두 돌려놓아 줘. 당연하지만 없어진 물건이 있다면 변상해야 해. 식기가 사라진 날짜를 따져 사용료를 청구할 거고, 위로회를 연 날짜와 가져간 음식의 양을 따져서 그 금액도 청구할 거야.”
“제게는…… 그런 돈이…….”
“또한 자리를 비우면서 부당하게 받아 간 급료도 되돌려 줘야겠어. 거짓말과 업무 태만으로 나와 그레이엄이 받은 정신적인 피해에 대한 보상도 청구할 거야. 그레이엄이 워낙 착한 아이라 마샤를 제대로 험담할지 모르겠지만.”
폭포수처럼 말을 쏟아놓은 레이첼이 크게 숨을 내쉬었다.
“금액과 지급 기한을 정리해서 마샤의 가족들이 사는 시골로 보낼게. 마샤가 사라지면 가족들이 부담해야 하니 도망갈 생각은 하지 말아.”
“흑, 으흐흑.”
마샤는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아들의 나이 든 유모가 바닥을 긁으며 우는 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레이첼은 몸을 돌렸다.
사실 아직 더 남았는데, 우는 모습에 괜히 마음이 약해져서 마지막 처벌은 내리지 못했다.
‘원래는 도둑질하다가 쫓겨났다는 소문까지 낼 생각이었는데 그것까지는 못하겠네. 그러면 다시는 유모 일을 못 할 텐데.’
아쉽지만 마샤는 지금까지 내린 금전적인 문제만으로도 충분히 고통받을 테니 여기서 마무리 짓기로 했다.
레이첼은 곧바로 알리아스가 기다리는 또 다른 응접실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알리아스가 레이첼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안대와 후드로 가리고 있어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텐데 용케 방향을 잘 맞췄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요.”
“괜찮습니다. 말씀드렸듯이 기다린 시간은 계산해서 비용에 청구하겠습니다.”
“그러세요.”
해가 드는 창가에 의자가 놓여 있었으나 알리아스는 굳이 그림자 쪽에 서 있었다.
의자에 앉는 대신 레이첼도 그늘로 들어가 섰다. 알리아스는 앞이 보이는 사람처럼 시선을 붙였다.
“들으셨겠지만 제가 구하고 싶은 것이 있어서요. 원래는 제가 길드로 방문했어야 하는데, 남편과 집사가 저를 워낙 아끼는 탓에 번거롭게 걸음 하게 해드렸습니다.”
“상관없습니다.”
“정식으로 의뢰 내용을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하고 싶은 얘기가 있는데 해도 될까요?”
“의뢰 시간이 길어진 만큼 비용을 치르신다면 얼마든 가능합니다.”
“좋아요.”
레이첼은 검은 망토와 안대를 뒤집어쓴 알리아스를 향해 정중히 예를 갖췄다.
“시안 아이사 디카르시냐크 대공 전하를 뵙습니다.”
“뭐…….”
당황한 알리아스가 바짝 긴장하는 것이 느껴졌다.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군요. 저는 길드의 정보원인 알리아스입니다.”
“아마 가명이겠지요.”
“…….”
알리아스, 아니 시안은 레이첼의 기척을 살피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목소리에 날이 섰다.
“어떻게 알았습니까.”
흥미를 끄는 데 성공했다.
레이첼은 태연한 목소리로 준비한 거짓말을 읊었다.
“어렵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눈과 머리카락을 철저하게 가리셨지만 오히려 그 점이 수상했지요.”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니.
은밀하게 의뢰를 수행하는 길드의 정보원이 모습을 감추는 건 흔한 일이었다.
물론 시안처럼 눈과 머리카락까지 완벽하게 감추는 경우가 드물기는 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정보를 수집하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니까.
“겨우 그것만으로 내가 대공이라는 사실을 눈치챘다는 겁니까.”
“목소리 역시 숨기지 않으셨으니까요. 비록 공식 석상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으시지만 목소리가 워낙 좋으셔서 들으면 잊기 어렵답니다.”
의미 있는 추리였으나 이것 역시 시안을 완전히 설득하지는 못했다. 보통 인간의 청각은 후각처럼 예민하거나 시각처럼 많은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몇 번 들어보지도 못했을, 심지어 가까이 들어본 적도 없었을 시안의 목소리를 기억한다는 건 쉽게 믿기 어려웠다.
레이첼은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그리고 대공 전하께서 여기 오실 만한 이유도 있었으니까요.”
이게 가장 확실한 이유였다.
원작에서 제인에 빠진 테오도르가 무너지고 그레이엄이 작위와 성을 잃은 채 용병 생활을 해야 했던 가장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했다.
“귀족 원로회가 제 남편 테오도르의 반란을 의심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대공 전하께서 늘 귀족 원로회를 대표해서 잠행하러 다니신다는 것도요. 이 정도면 대충 추리해 볼 만하지 않나요?”
그렇다.
시안이 귀족 원로회를 대표하고 때때로 길드를 통해 잠행한다는 사실은 공공연하게 알려진 사실이었다. 그게 알리아스라는 사실만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었다.
문제는.
“귀족 원로회가 테오도르 엘로사의 반란을 의심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습니까? 그건 원로회 중에서도 고위 귀족들만 알고 있는 정보일 텐데요.”
“테오도르는 밤 중에 저택 밖에서 자주 서성이고, 으슥한 골목을 오갑니다. 가문의 재정 상태는 묘하게 구멍이 난 상태이고요. 저라도 반란을 의심했을 겁니다.”
안대 아래 감춰진 시안의 눈이 가늘어졌다.
레이첼의 말은 전부 사실이었다. 시안의 정체부터 반란 혐의까지 전부 다.
지난해 엘로사 가문의 테오도르 엘로사 백작의 거동이 수상하다는 보고를 받았다. 황제를 보좌하는 귀족 원로회에서 혹시 테오도르가 반란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겠느냐는 의견이 나왔다.
그 후로 시안은 테오도르를 미행했다. 반란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찾아낸 건 불륜의 증거들뿐이었다.
문제는 겁이 많은 황제가 의심을 풀지 않는다는 거였다. 어쩔 수 없이 엘로사 백작 저택 주변을 주시해야 했다.
오늘도 엘로사 저택에서 길드의 정보원을 찾는다는 소식에 원로회 귀족들이 얼른 가보라고 성화를 해서 들렀을 뿐이었다. 의뢰를 받고, 적당히 저택을 살피다가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레이첼은 시안의 정체를 꿰뚫어 보았다. 원로회의 생각과 의심도 읽어냈다.
테오도르를 조사하는 동안 알게 된 레이첼은 이런 여자가 아니었다. 좋게 말하면 순수, 나쁘게 말하면 아둔한 사람이었다. 몇 년이 지나도록 남편의 바람을 눈치채지 못하는 여자였다.
그랬는데.
레이첼은 시안이 말이 없자 설득하듯 입을 열었다.
“테오도르는 그저 저와 사람들의 눈을 피해 몰래 내연녀를 만날 뿐입니다. 아마 가문에서 빼돌린 돈은 군대가 아니라 그 여자의 뱃속으로 들어갔을 거예요. 제가 그 증거를 모을 수 있도록 도와드리겠습니다.”
남편의 바람을 알고도 모른 척하는 거였다니.
대체 이 여자의 정체는 뭐지?
자신의 조사가 이렇게까지 틀렸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호기심이 일었다.
시안은 레이첼을 도발했다.
“웃기는군요. 남편의 반역을 숨기려는 수작을 부리는 것 아닙니까. 당신의 얘기는 믿지 않을 겁니다.”
“믿지 않으실 테니 하는 이야기입니다. 의심스러우신 만큼, 의심이 풀릴 때까지, 반란이 아니라 불륜이라는 확신이 들 때까지 테오도르를 추적해 주세요.”
이건 무슨 소리인지.
시안이 가만히 기다리자 레이첼이 말을 이었다.
“로튼 스트리트에 연노란 꽃이 그려진 잡화점이 있어요. 그 건물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가서 건물 두 개를 지나면 빨간 지붕 이층집이 나올 거예요. 그 집을 주시하세요. 테오도르가 저지르는 일이 무엇인지 명확해질 거예요.”
그곳이 어디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 테오도르의 내연녀 제인의 집이었다.
레이첼이 그저 남편의 불륜을 의심하는 정도가 아니라 전체적인 정황을 모두 파악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 집을 살펴보시고 정말 테오도르가 반란이 아닌 불륜이라는 걸 확신하게 되면 다시 저를 찾아와 주세요.”
“……보상을 받겠다는 겁니까?”
“아뇨.”
아까부터 내내 참으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레이첼은 웃어버렸다.
“대공 전하께서 모으신 확실한 불륜의 증거들을 원해요. 저는 테오도르와 확실하고 안전하게 이혼하고 싶으니까요.”
시안을 이용하는 건 테오도르에게 의심받지 않으면서 확실하게 불륜의 증거를 얻어낼 방법이었다. 게다가 다시 한번 시안을 만날 핑곗거리도 생겼다.
레이첼의 입장에서 이건 이혼도 하고 사돈도 얻는 완벽 플랜이었다.
이제 남은 건 시안이 그래 주겠다고 대답하는 일뿐이었다.
안대 아래로 드러난 시안의 반듯한 입술이 달싹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