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Mother Of the Male Lead Who Lives With An Ad**terous Man RAW novel - chapter (42)
불륜남과 사는 남주 엄마가 되었다 (42)화(42/151)
며칠 전 테오도르는 영문도 모른 채 타운 하우스에서 쫓겨났다. 할 일이 있으니 자리를 비키라는 베렝겔라 때문이었다.
해가 질 즈음 돌아가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베렝겔라의 태도가 전과 달랐다.
“어미는 살길을 마련하는데 너는 대체 뭘 하는 거냐?”
그러더니 테오도르를 자꾸 집 밖으로 내몰았다. 돈을 벌든 레이첼에게 매달리든 제인에게 매달리든 뭐라도 해보라는 거였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어머니는 내가 반란 혐의로 수배 중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신 게 틀림없어!’
투덜거리면서 골목을 배회했다.
다행히 수도 경비대는 테오도르를 적극적으로 찾지 않았다. 어쩌다 마주쳐도 무심하게 지나쳐 갈 뿐이었다.
‘혹시 오해가 풀려서 반란 혐의가 사라졌나?’
희망에 부푼 테오도르는 점점 더 대담해졌다. 골목을 쏘다니던 그가 수도 중심부 큰길에 얼굴을 내비치기 시작했다.
거리에는 제인과의 추억이 가득했다. 제인과 함께 갔던 식당, 제인이 좋아하던 의상실, 제인과 입 맞추던 골목……. 그렇게 매일 과거를 떠올리며 거리를 배회했다.
‘제인이 악마라는 걸 아는데도 이렇게 그립다니. 고것이 참 대단한 악마였던 모양이야.’
그렇게 얼빠진 감상에 젖어 있던 테오도르의 눈에 레이첼과 그레이엄이 보였다.
심장이 쿵쿵 빠르게 뛰었다. 심장 박동만큼이나 걸음이 빨라졌다.
“레이첼?”
이름을 부르니 레이첼이 느리게 테오도르를 돌아보았다.
“레이첼! 이런 곳에서 만나다니, 역시 우리는 운명으로 이어진 게 틀림없어!”
소설 속 한 장면처럼 아름다운 재회였다.
* * *
“……개소리라고 하면 개에게 실례일까요?”
다가오는 테오도르를 바라보며 레이첼이 중얼거렸다.
시안이 짧게 한숨을 쉬었다.
“예.”
레이첼이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운명으로 이어졌다고? 싫다고 분명하게 말하고 아빠가 악마 어쩌고 하는 소리까지 했는데 아직도 저런 헛소리를 한단 말이야? 뇌가 없거나 귓구멍이 막힌 게 틀림없어.’
눈을 굴려 슬쩍 망토를 뒤집어쓴 시안을 살폈다.
시안이 여태 테오도르를 잡아가지 않고 두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도 이 순간 시안이 원망스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시안이 테오도르를 황제에게 끌고 갔다면 이런 상황은 오지 않았을 테니까.
한달음에 일행의 바로 앞까지 다가온 테오도르는 정말 반가운지 상기된 얼굴이었다.
“레이첼. 보고 싶었어.”
그레이엄이 바닥에 굴러다니는 막대기를 줍더니 레이첼을 지키듯 앞으로 나섰다.
“가까이 오지 마세요!”
테오도르는 그레이엄을 무시했다. 그의 눈동자가 촉촉했다.
“그때 그렇게 헤어지고 내가 얼마나 슬펐는지 알아? 당신 그런 사람 아닌데 그날 모진 소리를 해댔잖아. 후회했지?”
“후회 안 했어. 그리고 나 원래 그런 사람이야.”
“그렇게 못된 말 골라서 하지 않아도 당신 화난 거 알아. 생각해 봤는데 불륜, 당신 말대로 잘못한 일이야. 속상했을 만해. 내가 악마한테 홀려서 허튼짓을 했더라고.”
“잘못한 걸 알면 꺼져 줄래? 지금 내가 좀 바쁘거든.”
“나랑 다시 합치자, 레이첼. 나는 당신이 나를 버렸다는 사실에 마음이 찢어질 것처럼 아파. 제발. 내가 잘못했어. 응?”
당장 눈물을 쏟을 기세였다.
레이첼이 대답하지 않자 테오도르가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놀란 돌로라사가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 주변을 지나던 사람들이 구경하느라 걸음을 늦췄다.
“제발, 제발 내게 돌아와 줘. 사랑해, 레이첼!”
“사랑?”
나직이 되물은 레이첼이 코웃음 쳤다.
“언제는 제인이 진짜 사랑이라며? 구구절절 썼던 연애편지는 다 잊어버린 모양이지?”
“아냐. 그 여자는 악마였어. 내가 잘못 알았던 거라고!”
애절한 목소리였다.
원작 소설을 몰랐다면 테오도르의 말을 믿었을지도 모른다. 레이첼 자신이 절절한 후회물의 여주인공이라고 착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레이첼은 알고 있었다.
‘레이첼이 죽고 나서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던 주제에 사랑 타령을 해?’
레이첼이 주먹을 꽉 쥐었다. 치가 떨렸다. 너무 화가 나면 목이 메고 눈가가 뜨끈해지기도 한다는 걸 처음 알았다.
“웃기지 마. 사랑은커녕 나를 동정한 적조차 없으면서.”
차갑게 내뱉고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시안의 망토 뒤에 숨은 돌로라사에게 상냥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놀라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가게로 갈까요?”
내버려 둘 테오도르가 아니었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레이첼의 손목을 움켜쥐고 억지로 잡아당겼다.
“기다려! 사람이 얘기하는데 어딜 가는 거야!”
“아윽! 아파! 놔, 이거 놓으라고……!”
“싫어! 난 절대 당신 안 놓을 거야! 다시는 헤어지지 않을……!”
뭐라 소리치려던 테오도르의 목소리가 쏙 들어갔다.
시안과 그레이엄이 테오도르의 앞을 막아선 탓이었다. 시안이 뽑은 날카로운 검이 테오도르의 목을, 그레이엄이 뻗은 굵은 나뭇가지가 테오도르의 중요한 곳을 겨눴다.
시안의 입에서 서늘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더러운 손 치워.”
그레이엄도 목소리를 높였다.
“맞아요! 엄마 놔주지 않으면 아빠 중요한 곳을 나뭇가지로 뭉개버릴 거라고요!”
테오도르는 레이첼을 붙잡은 채 벌벌 떨면서 겨우 목소리를 냈다.
“이, 이것들이 대체 뭐 하는 짓이야! 왜 남의 결혼사에 끼어드는 거냐고!”
“무효가 된 지 몇 주나 지난 결혼에 역사가 존재하는 건가. 결혼 생활 내내 바람을 피웠던 제 죄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모양이지.”
“그, 그건 악마에게 홀려서……!”
“악마에게 홀렸든 여자에게 홀렸든. 결혼 생활 내내 레이첼을 혼자 두고 외롭게 했던 건 당신이야. 당신은 당신이 저지른 짓의 대가를 치러야 하고.”
나직이 이어지는 시안의 말을 듣던 레이첼의 가슴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아무도…… 없었는데.’
테오도르의 불륜이 밝혀진 뒤 모두가 입을 모아 말했다. 테오도르는 벌을 받아 마땅하다고.
하지만 레이첼이 테오도르와 사는 내내 외로웠다는 걸 알아준 사람은 없었다.
가장 가까이서 둘을 지켜보던 저택의 사용인들부터 테오도르의 모친인 베렝겔라까지. 누구도 레이첼의 외로움을 알아주지 않았다.
케이티는 못된 남편에게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할 일을 척척 해나가는 레이첼을 존경한다고 말한 적도 있었다.
‘외로운 걸 들키지 않으려고 그랬어. 한가하면 자꾸 화가 나고 슬플 뿐이니까 일부러 일을 벌여야 했던 거라고.’
망토를 뒤집어쓴 시안의 커다란 등에 코끝이 찡했다.
시안이 앞으로 한 걸음 걸어 나가며 테오도르의 목에 더 깊이 검을 들이댔다. 곁에서 스승을 지켜보던 그레이엄도 앞으로 걸어나가 중요한 곳을 막대기로 지그시 눌렀다.
“거기 무슨 일 있습니까?”
갑작스러운 소란에 지나가던 경비병 둘이 이쪽을 기웃거렸다.
깜짝 놀란 테오도르가 내팽개치듯 레이첼의 손목을 놓았다. 수배가 풀렸는지 아닌지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경비병을 마주치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젠장! 망할 놈들! 두고 봐! 난 절대 레이첼을 포기하지 않아!”
큰소리친 테오도르는 휙 몸을 돌려 골목으로 사라졌다.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레이첼이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돌로라사와 그레이엄이 재빨리 달려와 그녀를 부축했다.
“레이디 레이첼, 괜찮으세요?”
“엄마! 내가 나쁜 아빠 쫓아냈어! 이제 괜찮을 거야!”
시안이 빨갛게 손자국이 남은 레이첼의 손목을 보더니 혀를 찼다.
“오늘은 이만 저택으로 돌아가는 게 좋겠습니다.”
“저는 괜찮아요.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가기로 했잖아요.”
“아이스크림은 다음에. 손목을 치료하는 게 먼저입니다.”
“하지만…….”
곁에서 돌로라사와 그레이엄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아이스크림보다 레이디 레이첼이 더 중요하다고요.”
“아이스크림 같은 거 필요 없어! 안 먹어도 돼요!”
아이들까지 괜찮다고 하니 더 고집을 피울 수가 없었다.
레이첼은 저택으로 돌아가겠다고 했고, 시안이 마차를 불러주었다.
* * *
그날 밤. 저택으로 돌아온 시안은 늦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집무실 창틀에 기대앉은 그는 분홍색 다이아몬드가 달린 커프스단추를 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웃기지 마. 사랑은커녕 나를 동정한 적조차 없잖아.’
눈을 가리고 있어서 그 말을 하던 레이첼의 표정이 어땠는지는 보지 못했다. 다만 그녀의 목소리에 물기가 잔뜩 어려 있다는 건 알았다.
누군가 망치로 심장을 부수는 것 같았다.
당장 레이첼을 품에 끌어안고 싶어서 미치는 줄 알았다.
‘아파! 놔, 이거 놓으라고……!’
레이첼의 비명을 들었을 때, 망가진 심장 조각들에 한꺼번에 불이 붙었다. 그토록 거칠고 그토록 격렬하게 분노한 것이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시가르가 돌로라사를 죽이려고 하던 때 이후로 처음인가.”
늘 침착하고 이성적으로 지내려고 애썼고 그렇게 살아왔는데 한순간에 무너져버렸다.
검을 빼 들어 테오도르에게 겨누는 동안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당장 놈을 베고 싶다는 충동을 참느라 온 힘을 다해야 했다.
검날에 테오도르 놈의 살이 닿는 느낌이 나고서야 퍼뜩 정신이 들었다. 라일러스가 왜 눈을 가리고 신분을 감추라고 했는지 깨달았다.
“신분이 드러난 채 테오도르를 죽여서는 안 되니까. 시가르는 분명 자기 허락도 없이 반란 주모자를 죽였다고 꼬투리를 잡았을 거야.”
다행히 신분을 감췄고 테오도르도 죽이지 않았다.
죽여버리고 싶었는데, 죽이지 않았다.
레이첼 때문이었다.
혹시 레이첼이 살인 현장을 보고 충격받거나 슬퍼할까 봐 두려웠다.
혹시 테오도르를 죽인 자신을 미워하거나 원망할까 봐 두려웠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정신 나간 놈처럼 심장이 마구잡이로 뛰었다.
스테판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그 여자가 특별하니까 그러는 거 아니야?’
그때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인정해야 했다. 시안에게 레이첼은 특별한 사람이었다.
분명 처음에는 훌륭한 인재를 곁에 두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는데 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을까.
아마도 돌로라사가 레이첼에게 호감을 보이기 시작하던 날부터. 자신의 하나뿐인 딸이 그녀를 인정하던 순간부터 마음의 고삐가 풀려버렸다.
라일러스가 말한 중요한 일이 설마 이걸 얘기하는 거였을까. 시안이 레이첼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깨닫는 것.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평생 느끼지 못할 줄 알았던 감정이었다.
뜨겁고 강렬해서 이성 따위 순식간에 녹아버렸다.
테오도르가 레이첼의 앞에 무릎을 꿇고 사랑을 속삭이는 순간, 그럴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불안했다. 레이첼이 마음을 돌려 놈에게 돌아갈 것만 같았다.
놈의 품에 안겨서 사랑이 가득 담긴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는 레이첼을 상상하자 숨이 막혔다. 갈 곳 없는 분노가 끓었다.
“……그렇게 내버려 두지 않겠다. 레이첼이 흔들리게 내버려 두지 않겠어.”
황금빛 눈동자가 번뜩였다.
“어이쿠. 눈에서 광선 나가겠네.”
“아.”
갑자기 들린 목소리에 시안이 얼른 감정을 갈무리하고 얼굴을 감싼 손을 내렸다.
아직 심장이 두근거렸지만 겉으로는 평온한 척했다.
“너는 이 시간에 왜 또 왔어?”
집무실 문가에 서 있던 스테판이 씨익 웃었다.
“왜긴. 부탁할 게 있으니까 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