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Mother Of the Male Lead Who Lives With An Ad**terous Man RAW novel - chapter (44)
불륜남과 사는 남주 엄마가 되었다 (44)화(44/151)
“이전에 그대와 살던 전 엘로사 백작은 황태자의 연회에서 추잡한 짓을 저지르다가 발각되었지. 그런 자에게 선물을 한다면 무엇을 보내겠나.”
시가르의 질문을 받았을 때 레이첼은 무척 기분이 나빴다.
‘테오도르한테 선물을 보내라고? 미쳤어? 걔한테는 개똥도 독약도 아까워.’
하지만 황제에게 미쳤냐고 대답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레이첼은 잠시 생각하다가 벌술이라고 답했다.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한참을 웃던 시가르가 얼굴을 굳히고 근엄하게 말했다.
“레이디 레이첼. 아무래도 그대는 작위를 받을 자격이 없는 것 같다. 황실 행사를 모욕하고 반역을 꾸민 놈에게 감히 술을 선물하겠다니, 그대의 충성심이 의심스러워.”
“…….”
무슨 선물을 할지 묻더니 갑자기 왜 충성심을 의심하는 걸까.
‘……잘못 걸렸네.’
시가르의 방금 질문은 모든 답이 오답으로 설정된 함정이었다.
아마 레이첼이 선물을 하지 않겠다고 답했어도 감히 황제의 질문에 제대로 된 답을 내놓지 않았다며 충성심을 운운했을 것이다.
그게 아니고서는 이토록 뚱딴지같은 대답이 나올 수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테오도르 때도 그랬지. 불륜의 증거 외에는 발견된 게 없는데 반란이라고 결론 짓더니 처벌했어. 시안은 테오도르가 반란을 꾸미지 않았다는 걸 알면서도 작위를 빼앗아야 했고.’
전형적인 ‘답은 내가 정해 놨으니 네 놈은 알았다고 대답만 해’였다.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사람이 황제라고? 원작에서 돌로라사가 황궁을 떠난 게 설마 이 사람 때문인가?’
작위를 받을 자격 운운하는 시가르의 말에는 겁조차 나지 않았다. 만약 오늘 레이첼의 작위 수여가 취소된다면 라일러스가 미리 알려주었을 테니까.
평정을 잃지 않는 레이첼을 바라보던 시가르가 입술을 깨물었다.
“……레이디 레이첼. 말이 없군. 당황한 모양이지?”
아무래도 시가르는 레이첼이 당황하기를 기대한 모양이었다.
“아닙니다. 폐하께서 아무것도 묻지 않으시기에 말을 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내가 묻지 않았다고?”
“왜 벌술을 보내기로 했는지 묻지 않으셨으니까요.”
“어…….”
입술을 달싹이던 시가르가 내키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그래. 한번 말해봐라. 왜 술을 보내겠다고 답했지?”
“테오도르의 어머니 베렝겔라는 알코올 중독자입니다. 그녀는 자신에게 찾아온 달콤한 술을 거부하지 못할 겁니다. 게다가 정력에 좋은 벌술이라니 테오도르도 못 이기는 척 받겠지요.”
“어쨌든 반역을 꾸민 놈에게 술을 선물한 건 변함 없지 않으냐.”
“하지만 벌술이 정력에 좋은 건 딱 한 잔까지입니다.”
“……뭐라?”
“두 잔째부터는 벌침의 성분 때문에 독이나 다름없습니다. 온몸이 가렵고 숨도 쉬기 어렵지요. 테오도르가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저는 모릅니다.”
벌술이 어떤 술인지 몰랐는지 시가르의 얼굴이 굳어졌다.
값비싼 와인을 마시는 황제가 벌을 넣고 증류주를 부어 만든 벌술을 알 리가 없기는 했다. 아마 테오도르와 베렝겔라도 크게 다르지 않을 테다.
레이첼이 말을 이었다.
“테오도르에게 선물 같은 건 하고 싶지 않지만 꼭 해야 한다면 그런 걸 보내겠습니다. 제가 보낸 선물이 약이 될지 독이 될지 신의 뜻에 맡기는 거지요.”
침묵이 흘렀다.
시가르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얼굴을 굳힌 채 입을 열지 않았다. 대답에서 오점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침묵을 깬 것은 라일러스의 옆에 앉아 있던 노인이었다. 은발에 은빛 눈동자 덕분에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 대성자 티티예니스였다.
“거부하지 못할 물건을 선물하고 결과를 신의 뜻에 맡긴다니, 흥미롭군요. 예니스 님은 깜짝 이벤트를 사랑하는 분이시지요. 독약 같은 흉흉한 물건을 보내는 것보다 훨씬 마음에 들어 하시겠어요.”
선이 고운 현악기가 노래하는 듯한 목소리였다. 티티예니스가 옆에 앉은 라일러스를 돌아보았다.
“저는 대답이 무척 마음이 듭니다만 주교께서는 어떠신지요.”
“허허. 저야 레이첼이 무엇을 대답해도 마음에 쏙 들지요.”
“대녀를 두시더니 딸바보가 다 되셨군요.”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시가르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딸……? 레이디 레이첼이 주교의 딸입니까?”
“예, 얼마 전에 제가 레이첼의 대부가 되었습니다.”
“젠장.”
시가르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입술을 씹었다.
티티예니스는 들고 있던 기다란 막대기로 바닥을 가볍게 두드렸고, 곧 하늘에서 은빛 폭죽이 터졌다.
“자, 황제. 시험이 끝났다면 이제 작위 수여를 마무리하는 게 좋겠습니다.”
예니스의 양손이 마음에 들어 한 데다 빈틈을 찾아내지도 못한 대답이었다. 시가르에게는 레이첼에게 내리기로 했던 작위 수여를 취소할 방법이 없었다.
취소는커녕, ‘황제의 시험을 거쳐 내려진 작위’라는 정당성만 더해졌다.
티티예니스와 라일러스를 차례로 돌아본 시가르가 말없이 레이첼에게 귀족 명패와 작위 문서, 땅문서를 차례로 내밀었다.
“질문에 적절한 답을 찾은 레이디 레이첼에게 황제의 이름으로…… 백작의 작위를 수여하겠다.”
시가르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 * *
작위 수여식이 끝나고 집무실로 돌아온 시가르는 책상 위에 놓인 온갖 집기들을 깨부쉈다. 와장창! 큰소리가 나고 시종과 대신들이 달려왔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레이첼이 멍청한 여자라고 보고한 놈을 당장 내 앞에 끌고 와! 주둥이를 갈기갈기 찢어서 시궁창에 버려야겠으니까!”
레이첼은 당황하지 않았다. 놀라지도 않았다. 겁먹고 벌벌 떨지도 않았다. 침착했고, 짧은 순간 제법 그럴싸한 대답도 내놓았다.
고개를 조아리고 차분하게 대답하는 레이첼의 모습에 시안이 겹쳐 보였다.
시가르는 식식대며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멍청한 여자가 아니었어! 게다가 주교의 딸이라니!”
똑똑하고 예니스의 왼손에게 보호받는 여자.
하마터면 그런 여자를 시안의 짝으로 이어줄 뻔했다.
현명한 아내를 만나 신의 사랑을 받으며 행복하게 사는 시안을 떠올리자 식은땀이 흘렀다.
생각을 거부하듯 비명을 질렀다.
“안 돼! 젠장! 죽어! 죽어버려! 시안 디카르시냐크!”
한참을 소리치던 시가르가 번쩍 고개를 들고 소리쳤다.
“하악! 하아, 하아! 거기! 거기 누구 없나!”
“예, 예에, 황제 폐하……!”
시종 하나가 벌벌 떨며 다가와 바닥에 엎드렸다.
“당장 벌술을 구해와라! 말벌술이 좋겠어! 아주 독하고 진한 술로 구해와라! 대공에게 친히 선물로 보내야겠다!”
망할 신의 뜻이라는 것에 시안의 목숨을 맡겨 볼 생각이었다.
신이 시가르의 편이라면 시안은 거품을 물고 추하게 쓰러지겠지!
“흐흐흐. 하하하!”
고통스러워하는 시안을 떠올리며 시가르가 크게 소리 내어 웃었다.
* * *
파앙!
시원한 소리와 함께 거품 섞인 분홍색 샴페인이 하늘로 치솟았다.
“축하드립니다.”
“축하드려요, 레이첼 백작님!”
“엄마 축하해요!”
“우리 딸, 원래도 멋졌지만 오늘은 한층 더 멋지구나!”
검술 연습을 마친 그레이엄과 시안, 드레스를 맞춘 돌로라사와 레이첼, 자리를 준비한 케이티와 라일러스가 정원에 모였다.
케이티가 레이첼에게 커다란 꽃다발을 내밀었다.
“작위 수여를 축하드립니다, 레이첼 백작님.”
“축하 고마워요. 영지 관리 때문에 더 바빠질 텐데, 괜찮겠어요?”
“당연히 괜찮지요. 신나서 춤이라도 추고 싶은 심정이랍니다.”
일하기 좋아하는 케이티의 대답에 모인 사람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돌로라사가 주스가 든 잔을 들고 레이첼의 곁으로 다가왔다.
“드디어 레이첼 백작이라고 불러드릴 수 있게 되었네요. 무척 기다렸어요.”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는 티 파티에도 함께 갈 수 있겠어요. 제가 얼마나 기대 중인지 모르실 거예요.”
돌로라사는 드레스를 맞추는 일 때문에 늘 단정하게 꾸미고 레이첼을 찾아왔다. 그러나 오늘은 레이첼을 축하해주고 싶다며 화려한 드레스와 장식을 따로 챙겨왔다.
옷을 갈아입은 돌로라사는 눈부시게 귀여웠다.
레이스가 잔뜩 달린 풍성한 드레스, 흑단 같은 머리카락을 묶은 커다랗고 고운 리본, 입술에 살짝 바른 연지까지 사랑스럽지 않은 것이 없었다.
인형 같은 돌로라사를 넋 놓고 바라보는데 아이가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축하 파티가 조촐해서 서운하지는 않은가요?”
“그럴 리가요. 이보다 더 큰 파티였다면 아마 정신이 없었을 거예요. 이렇게 공녀님과 마주 보고 이야기도 나눌 수 있고, 얼마나 좋은가요.”
돌로라사의 얼굴이 환해졌다.
“와 맞아요! 저도 그래서 큰 모임보다 작은 모임을 더 좋아하거든요. 레이첼 백작도 같은 생각이라니 무척 반갑네요.”
레이첼이 빙긋 웃었다.
사실 성대한 축하 파티를 열지 않은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테오도르와 베렝겔라 때문이었다.
며칠 후에 디카르시냐크 저택에서 파티가 열릴 예정이었다. 그전까지 베렝겔라는 레이첼이 작위를 받았다는 사실을 몰라야 했다.
‘베렝겔라나 테오도르라면 작위 수여와 내 작전을 연결 짓지 못할 가능성이 크지만. 확실히 성공하려면 혹시 모를 틈은 남겨두지 않는 게 좋으니까.’
혼자서 고개를 끄덕이는데 곁으로 다가온 시안이 말을 걸었다.
“작위 수여를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대공 전하.”
“작위 수여식은 깜짝 놀랐습니다. 황제 폐하께서 백작을 시험하실 줄은 몰랐거든요. 저였다면 당황했을 겁니다.”
“무슨 말씀이세요. 대공 전하께서는 저보다 더 훌륭하게 대처하셨을 거예요.”
“침착하게 대답하시던데, 폐하께서 시험을 준비했다는 걸 알고 계셨습니까?”
“그렇지는 않아요. 하지만 어떤 대답을 하든 작위를 받는다는 건 알고 있었거든요. 저한테는 아빠가 있잖아요.”
“그렇군요.”
담백하게 대답한 시안이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언제나 상냥하게 웃던 시안이었지만 오늘은 왜인지 더 따뜻하게 느껴졌다.
‘작위를 받아서인가……?’
레이첼의 곁을 맴돌던 돌로라사는 어느새 라일러스의 예지력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레이엄과 케이티까지 모여서 가위바위보를 하고 불꽃놀이도 했다.
시안이 탄성과 웃음을 번갈아 터트리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며칠 뒤 디카르시냐크 저택에서 열릴 파티에 황제 폐하께서도 참석하실 예정입니다.”
“황제 폐하께서요?”
“며칠 전 폐하의 시종이 파티 초대장을 구해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제가 파티를 여는 게 흔한 일이 아니라서. 아마 늦더라도 반드시 참석하실 겁니다.”
“그렇군요.”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시안의 말대로 자주 파티를 열지 않는 동생이 모처럼 여는 파티였으니까. 그런 곳에 형이 참석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레이첼은 황제가 파티에 참석하면 실행하려고 마음먹었던 플랜B를 떠올리며 씩 미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