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Mother Of the Male Lead Who Lives With An Ad**terous Man RAW novel - chapter (45)
불륜남과 사는 남주 엄마가 되었다 (45)화(45/151)
시안이 레이첼의 반응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폐하께서 참석하시는 것 때문에 레이첼 백작의 계획에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닙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계획을 조금 수정해야겠지만요. 폐하께서 언제쯤 도착하실지 미리 알 방법은 없을까요?”
“도착할 시각은 알기 어렵지만 출발 시각이라면 알 수 있지요. 필요하십니까?”
“네, 그게 있다면 베렝겔라를 더 깜짝 놀라게 할 수 있을 거예요.”
시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하겠습니다.”
사무적인 대답에 레이첼이 웃음을 터트렸다.
“대공 전하께서 그렇게 대답하시니 무척 신기하네요.”
“신기하다고요?”
“준비하겠다는 말을 무척 자연스럽게 하셨어요. 준비하겠다고 답하는 것보다 준비하겠다는 답을 듣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분이신데 말이에요.”
시안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깍듯하게 존댓말을 썼다.
처음에야 백작 부인과 길드원이라 그랬다지만 신분이 밝혀진 뒤에도, 레이첼이 평민이 되었을 때도 시안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지나가듯 그편이 긴장을 늦추지 않을 수 있어서라고 했었다.
‘가족룩 일도 그렇지만 역시 시안은 보통이 아니야. 알리아스로 잠행하는 것도 그렇고 평범한 귀족이었다면 자존심 때문에 못 할 일인데……. 뭔가 사정이 있는 걸까?’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제국에서 하나뿐인 대공이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할 까닭이 무엇인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눈앞에 선 아름다운 남자는 레이첼의 고민을 아는지 모르는지 빙긋 웃었다.
“어색하지 않았다니 다행입니다. 제가 황제 폐하와 레이첼 백작 외의 사람에게는 이런 말을 해본 적이 없어서요.”
“……네?”
예상치 못한 대답에 레이첼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시안은 레이첼의 반응에 대꾸하는 대신 다른 얘기를 했다.
“그리고 전에 말씀하신 파티 당일 연락 말입니다만. 제 친구 스테판을 이용할까 합니다.”
“아, 스테판이라면…… 스테판 이아콥스 공작 각하 말씀이신가요?”
“똑똑하고 눈치가 빨라 일이 틀어졌을 때 임기응변으로 대처를 잘할 겁니다. 제가 믿고 의지하는 몇 안 되는 친구라 작전이 새어나갈 염려도 없고요.”
믿고 의지하는 친구라는 표현이 인상적이었다.
사람은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외롭다던데 다행히 시안에게는 좋은 친구가 몇 있는 모양이었다. 그가 좋은 사람이라서일까.
레이첼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공 전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저도 괜찮습니다.”
* * *
그날 저녁, 식사를 마친 스테판과 시안이 마주 앉았다.
가만히 시안의 파티 계획을 듣던 스테판은 어이가 없다는 듯 입가를 비틀었다.
“그러니까, 네 파티에서 나보고 연락책 노릇을 하라는 거야?”
“그래. 기왕이면 레이첼 백작이 파티에서 주목받을 수 있도록 네가 에스코트까지 해줬으면 좋겠어. 오랜만에 수도에 나타난 이아콥스 공작은 눈에 띌 테니까.”
공작이라는 신분, 이아콥스 상단으로 벌어들이는 돈, 시원시원한 이목구비와 건장한 체격, 결혼 적령기의 스테판은 사교계 영애들을 달구기에 충분하고도 남을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새롭게 작위를 수여 받은 백작과 함께 나타난다면 둘은 분명 주목받을 것이다.
하지만 귀찮은 걸 싫어하는 스테판은 주변의 관심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20년 지기 친구인 시안이 그걸 모를 리 없었다.
알면서도 이런 부탁이라니. 시안답지 않았다.
“너 이런 사람 아니었잖아. 나한테 연락책도 모자라 파티 에스코트를 시키다니……. 시안 아이사 디카르시냐크 대공 전하 이렇게 변해도 돼?”
“돼.”
“쩝.”
할 말이 없어진 스테판이 머리를 긁적였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시안의 부탁을 거절할 생각은 없었다. 스테판에게 시안은 친구이자 은인이었고, 무엇보다 시안의 작전은 재미있어 보였으니까.
“그래서, 구체적으로 내가 할 일은 뭔데?”
“내가 말해준 내용을 레이첼에게 전해주는 게 전부야. 숨어서 기다리다가 황궁에서 신호가 오면 레이첼 백작을 에스코트해서 파티장으로 내려오면 되고.”
“신호는 누가 보내는데?”
“아트레이유 황태자 전하께서 도와주실 거야.”
“아아, 그 꼬맹이? 야, 이거 진짜 재미있게 돌아가네. 그럼 넌 뭘 하는데?”
“나는 허수아비. 파티장 구석에 앉아 있다가 베렝겔라가 찾아오면 적당히 대꾸해서 그 여자의 꿍꿍이를 밝히는 역할이야.”
“뭘 한다고?”
스테판이 혀를 내둘렀다.
‘좋아하는 여자 괴롭히는 사람 혼내주겠다고 평생 안 열던 파티를 연다고 할 때도 놀라웠는데. 뭐? 허수아비처럼 서 있다가 꿍꿍이를 밝히겠다고? 아주 간이고 쓸개고 다 빼주지 그래.’
시안이 얼굴을 굳혔다.
“대답은?”
“할 거야. 할 건데. 좀 놀라워서.”
“제국 곳곳에서 기상천외한 짓을 벌이고 다니는 놈이 누군데 이런 걸로 놀라? 테마파크인지 뭔지 세운다고 코끼리 떼 몰고 다닐 때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나야 매번 그런 짓 하던 놈이니까 괜찮아. 근데 넌 아니잖아? 안 하던 놈이 이상한 짓 하면 더 놀라운 법이라고.”
“……대체 어디서부터 반박해야 할지.”
시안이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스테판은 그런 친구의 반응이 재미있어서 입꼬리를 씰룩였다.
시안은 다정하지 않지만 차갑지도 않은 사람이었다. 정이 많고 너그럽지만 합리적이고 적당히 선을 지키면서 제 할 일을 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선이라는 것 없이 온몸과 마음을 다하고 있었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긴 뒤 완전히 변해버린 친구의 모습이 신기하고 놀라웠다.
‘아악! 놀리고 싶어! 어쩌지? 참을까? 말까?’
고민하던 스테판은 결국 본능을 이기지 못하고 말을 꺼내버렸다.
“그런 귀찮은 일을 아무 대가도 없이 시킬 건 아니지?”
“당연하지. 필요한 게 있으면 뭐든 얘기해. 상단 투자금이든, 아니면 새로운 코끼리 사업이든 힘닿는 데까지 지원해 줄 테니까.”
“그런 건 필요 없어.”
“그럼?”
“레이첼 백작 말이야. 예뻐?”
짧은 물음에 시안이 입을 딱 다물었다. 주변 공기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스테판은 등줄기가 찌릿할 만큼 섬뜩하면서도 미친 듯이 즐거웠다.
‘저 자식 지금 열받은 거 맞지? 그거 봐, 레이첼이라는 여자 좋아한다니까!’
히죽거리는 스테판을 보며 시안이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
“……예뻐.”
“좋네! 나 에스코트하는 김에 그 여자랑 잘 해봐도 돼? 슬슬 장사하면서 돌아다니는 거 접고 결혼해서 수도에 정착할까 싶거든. 똑똑하고 예쁘다니 내 짝으로 딱…….”
“스테판.”
시안의 나직한 목소리에 스테판의 머리카락이 쭈뼛했다.
한마디로 친구의 입을 다물게 한 시안이 나른하게 고개를 기울였다.
“레이첼 백작은 손가락 하나 건드리지 마. ……나는 너를 죽여버리고 싶지 않아.”
스테판은 검에 찔리기라도 한 듯 몸을 떨었다.
‘미친.’
손바닥에 땀이 배어 나왔다.
‘시안 이 자식, 장난이 아니구나.’
놀리고 싶던 마음이 쑥 들어갔다. 헛기침하고서 얼른 딴청을 부렸다.
“야, 야. 농담이야. 뭘 그렇게 정색하고 그래? 나 당분간 여기서 신세 지기로 했으니까 따로 뭐 안 해줘도 돼. 정 고마우면 다음에 나랑 대련이나 해주든지.”
“좋아. 그런 거라면 얼마든.”
시안의 눈동자에 어렸던 위협적인 기색이 사라졌다.
분위기가 부드럽게 풀어지자 그제야 스테판도 바짝 긴장했던 어깨를 내렸다.
‘와우. 장사고 뭐고 당분간 수도에서 지내야겠는걸. 우리 대공 전하의 이런저런 모습을 구경할 절호의 기회를 내가 놓칠 수는 없지!’
벌써부터 기대감으로 몸이 달았다.
* * *
디카르시냐크 대공 저택에서 파티가 열리는 날.
대공 저택 입구는 해가 저물기 시작할 즈음부터 마차로 북적였다.
화려하게 차려입은 수많은 사람이 저택 안으로 들어왔다. 작위 수여식에서 스치듯 만났던 귀족들의 모습도 보였다.
창밖으로 저택 입구를 바라보던 레이첼이 고개를 돌려 건물 옆에 난 쪽문을 바라보았다. 사용인과 일꾼들이 음식과 술, 장식품을 나르느라 분주했다.
‘베렝겔라는 저쪽으로 들어오겠지. 어쩌면 이미 들어왔을지도 몰라.’
레이첼은 디카르시냐크 대공 저택 3층의 빈방에 홀로 앉아 있었다. 불을 끄고 커튼을 내려 모습을 감춘 뒤 시안이 말해준 때가 오기를 기다렸다.
똑똑, 누군가 문을 두드린 뒤 안으로 들어왔다.
레이첼이 자리에서 일어나 손님을 맞았다.
“처음 뵙겠습니다. 레이첼 프람 백작입니다.”
“만나서 반가워. 알겠지만 나는 스테판 이아콥스야.”
“잘 부탁드립니다, 스테판 공작 각하.”
“시안이 베렝겔라라는 여자가 지금 막 파티장 안으로 들어왔다고 전해달래.”
“그렇군요. 전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스테판이 레이첼 곁으로 다가왔다. 그는 레이첼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더니 웃음을 터트렸다.
“얘기를 많이 들어서 그런지 실제로 보니 더 반갑네.”
“제 이야기를 들으셨다고요?”
혹시 소문이 날까 봐 일부러 조용히 지냈는데 어디서 이야기를 들었다는 걸까?
놀라서 굳어진 레이첼을 보며 스테판이 손을 내저었다.
“밖에서 들은 게 아니라 시안에게 들은 거야. 이상한 얘기는 없었으니 안심해도 좋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오오. 시안이 이상한 얘기 안 했다는 말, 의심 안 하네?”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시안은 레이첼이 피해를 보거나 불리할 얘기를 함부로 할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스테판이 웃으며 커튼을 걷었다. 그는 뭐가 재미있는지 키득키득 웃더니 바깥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레이첼도 커튼 틈으로 빼꼼 밖을 내다보았다. 손님을 마중하던 시안이 굳은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밖에 선 시안을 향해 어깨를 으쓱해 보인 스테판이 고개를 돌려 레이첼과 눈을 맞췄다. 검은색 눈동자가 호기심으로 반짝반짝 빛났다.
“있지, 레이첼 백작. 내가 재미있는 얘기 해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