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Mother Of the Male Lead Who Lives With An Ad**terous Man RAW novel - chapter (46)
불륜남과 사는 남주 엄마가 되었다 (46)화(46/151)
레이첼이 영문을 몰라 눈을 깜빡였다.
“재미있는 얘기……라고요?”
“응.”
짧게 대답한 스테판이 걷었던 커튼을 닫으며 자그마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 오늘 죽을지도 몰라. 시안이 나 죽여버리겠다고 했거든.”
“죽여버린다고요? 대공 전하께서 공작 각하께 그런 얘기를 하셨단 말이에요?”
“당신이 생각해도 이상하지? 안 그렇게 생겨서 인류애가 넘치는 녀석이 이십년지기 친구한테 죽여버린다고 했다니까.”
“대체 왜…….”
“전부 당신 때문이야. 난 그래서 당신이 마음에 들어.”
“네?”
스테판은 뭐가 재미있는지 또 혼자 웃었다.
“그 자식, 아니라고 우기더니 이제 깨달았나 봐.”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하나도 없었다.
시안의 평가대로 똑똑하거나 믿을 만한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스테판은 레이첼이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나 꼬부랑 할아버지 될 때까지 사는 게 꿈이야. 시안한테 밉보여서 죽고 싶지 않다는 얘기지. 그러니까 부탁 좀 하자. 절대 내 몸에 손가락 하나 대지 마. 알았지?”
레이첼은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제가 먼저 공작 각하께 손을 대는 일은 절대 없도록 유의하겠습니다.”
“좋아.”
시원스레 고개를 끄덕인 스테판이 창틀에 기대앉으며 황홀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내 말이 이해가 안 되겠지만 조금만 참아. 당신도 곧 알게 될 거거든. 아아. 앞으로 그 자식이 저지를 짓들이 기대돼서 미치겠어.”
여전히 의미를 알 수 없었다.
* * *
“이 그림은 꽃에 둘러싸인 여인을 표현한 작품으로, 잘 아시겠지만…….”
베렝겔라는 사용인들과 같은 옷을 차려입고 기둥 뒤에 숨어 있었다. 귀족 무리를 이끌고 다니며 작품 설명을 잇는 시안을 훔쳐보는 중이었다.
‘젠장. 무슨 대공이 이렇게 말이 많아?’
시안이 준비한 미술품은 한두 작품이 아니었다. 홀부터 파티가 열리는 무도회장까지 전부 미술품으로 꾸며져 있었다.
시안은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자신이 소장한 작품을 자랑했다.
처음에는 흥미롭게 설명을 듣던 귀족들이 하나둘 지루해하기 시작했다. 귀부인들은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하품을 했다.
혼자 있는 시안에게 다가가 자신의 계획을 실행하려던 베렝겔라도 슬슬 지쳐가는 참이었다.
‘다리도 저리고 배도 고파.’
파티장 탁자에 죽 늘어놓은 와인이 자꾸만 눈에 들어왔다. 배도 고프고 목도 말라서 기다리는 동안 몇 잔을 훔쳐 마셨다.
눈이 풀어지고 얼굴이 빨개졌지만 술기운에 기분이 좋아진 베렝겔라는 신경 쓰지 않았다.
무도회장을 한 바퀴 빙 돌고서야 시안이 말을 멈췄다.
“자, 이제 절반 정도 설명을 끝낸 것 같군요. 목이 아파서 잠시 쉬었다가 나머지 설명을 이어서 해드릴까 하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큼큼. 목이 아프시다니 큰일이군요! 아무래도 잠시 쉬시는 게 좋겠습니다. 설명하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파티를 즐기고 계시면 잠시 쉬었다가 곧 돌아가겠습니다.”
귀족들은 시안이 다시 작품 설명을 시작할까 두렵다는 듯 얼른 몸을 돌려 멀어졌다. 시안은 홀로 파티장 구석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베렝겔라의 심장이 쿵쿵, 격렬하게 뛰었다.
‘지금이다.’
마시던 와인잔을 탁자 위에 아무렇게나 내팽개친 베렝겔라가 시안에게 다가갔다.
“대공 전하.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뭐지?”
짧게 대답한 시안이 창밖을 살폈다. 별이 수 놓인 까만 밤하늘을 바라본 그가 덧붙였다.
“천천히 말해보도록.”
“황태자 전하의 생신 연회에서 만났던 레이첼 엘로사 백작 부인을 기억하시는지요? 그 여자와 관련 있는 일입니다.”
나른하던 시안의 눈동자가 날카롭게 빛났다.
“얘기해라.”
베렝겔라는 저도 모르게 몸을 움찔 떨었지만 용기를 냈다. 몇 잔 마신 와인이 도움이 되었다.
“저는, 어…… 그러니까. 저는 엘로사 백작의 어미입니다. 그날 대공 전하께서 가져가신 제 아들의 물건을 돌려받기 위해 여기까지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엘로사 백작의 작위는 반란 혐의 때문에 박탈당했다. 황제 폐하께서 아직 그대의 아들을 찾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설마 죽고 싶어서 여기 숨어든 건가?”
“아니, 아닙니다. 저는 아들의 행방을 모릅니다. 게다가 저는 아들과 달리 반란 혐의를 받지 않았어요. 저를 함부로 붙잡아 가실 수는 없습니다.”
시가르가 테오도르의 가족인 베렝겔라를 붙잡아 오라고 하지 않은 건 사실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반란죄를 받은 자의 가족이라는 것을 함부로 밝히는 건 위험했다. 잡혀가서 테오도르의 정보를 내놓으라고 고문을 당할지도 모르니까.
베렝겔라도 자신이 테오도르의 엄마라는 것을 밝힐 생각은 없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레이첼의 심부름꾼이라고 얘기할 작정이었다.
하지만 베렝겔라는 기다리는 동안 마신 술에 취해버렸다. 자신이 무슨 말을 주절거리는지 자신조차도 몰랐다.
“중요한 것은 제 아들의 죄 따위가 아닙니다. 대공 전하께서 제 아들의 물건을 돌려주지 않으셨다는 것이 중요하지요. 저희 며느리에게 아주 특별한 물건을 말입니다.”
“며느리……. 레이디 레이첼을 얘기하는 건가.”
“사정상 결혼이 무효가 되기는 했지만 그 아이는 참으로 일편단심 제 아들을 사랑하거든요. 결혼하기 전부터 자기 방을 제 아들의 초상화로 도배해 둘 정도였지요.”
뿌득, 시안이 쥔 의자의 팔걸이가 괴상한 소리를 내며 부러졌다.
시안이 무심한 얼굴로 망가진 의자를 내려다보았다.
“이런. 의자가 낡았나.”
“크흠. 아무튼, 그런 며느리가 제 아들에게 준 사랑의 증표를 대공 전하께서 가져가 버리셨지 뭡니까. 소심한 아이라 말도 하지 못하고 애를 끓인답니다.”
“사랑의 증표라. 이걸 말하는 거겠군.”
주머니에 손을 넣었던 시안이 분홍색 커프스단추를 꺼내 보였다.
베렝겔라의 눈에 탐욕이 어렸다.
“예! 맞습니다! 그것이 바로 제 노후 자금……. 아니, 제 며느리가 제 아들에게 준 사랑의 증표입니다!”
“레이첼이 이걸 돌려받고 싶어 한다는 말이지? 반란을 꾸민 자에게 주었던 물건을 말이야.”
“물론입니다. 레이첼은 아직도 테오도르를 사랑하니까요. 억울하게 반란이라는 누명을 쓰고 숨어 사는 전남편에게 자신의 마음을 돌려주고 싶어 합니다.”
“알겠지만 이건 내가 무척 갖고 싶었던 물건이다.”
“예에, 그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대공 전하라도 남의 물건에 함부로 손을 대면 안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귀하고 값비싼 물건이라면 더더욱이요.”
“하하. 내가 남의 물건에 손을 댔단 말이지.”
“왜 아니겠습니까. 그것은 사랑의 증표입니다. 제 며느리의 사랑이 아직 굳건한데 대공 전하께서 가져가 버리시면 안 되지요.”
고민하듯 고개를 기울이던 시안의 시선이 다시 창밖에 닿았다.
때마침 파앙, 은빛 폭죽이 까만 밤하늘을 수놓았다.
귀족들이 탄성을 내뱉으며 창가로 모여들었다.
“어머, 웬 폭죽인가요?”
“아름다워라!”
시안의 입가에 서늘한 미소가 어렸다.
베렝겔라는 그것이 제 계획의 성공을 예견하는 축포인 줄 알고 덩달아 신이 났다.
“너그러우신 대공 전하, 부디 며느리가 제 아들에게 선물한 사랑의 증표를 돌려주십시오. 돌려만 주신다면 평생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겠습니다.”
“내가 이걸 넘기면 평생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겠다고? 레이첼도 같은 마음인가?”
“당연하지요.”
“아니라면 어떻게 할 셈이지?”
“아니라니요. 그럴 리가 없습니다. 여기 도착하기 직전에도 분명 확인하고 왔는걸요. 레이첼은 제게 매달려 제발 그 커프스단추를 찾아다 달라고 울부짖었답니다.”
“여기 도착하기 전에 레이첼을 만났다고.”
“하도 애원하기에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도 이렇게 변장까지 하고 대공 전하를 찾아뵈러 온 것이지요. 며느리를 생각하는 제 마음이 이렇게나 깊답니다.”
“……그렇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예?”
난데없는 존댓말에 베렝겔라가 당황하여 눈을 크게 떴다.
또각또각 단정한 발소리가 들리더니 곱고 단호한 목소리가 질문에 답했다.
“전부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저는 테오도르를 사랑하지 않고, 커프스단추도 원하지 않습니다. 이곳에 오기 전 저와 만났다는 말 역시 거짓입니다.”
베렝겔라가 화들짝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레, 레이첼 엘로사……!”
손을 잡지 않은 채 레이첼의 곁에 나란히 서서 그녀를 에스코트하던 스테판이 미간을 찌푸렸다.
“레이첼 엘로사? 감히 내 파트너를 이딴 식으로 부르다니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왔군.”
“무례를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공작 각하.”
“됐어. 당신 잘못도 아니잖아.”
“고, 공작 각하라고? 레이첼 네가 어떻게……!”
레이첼은 베렝겔라를 무시한 채 시안에게 공손히 예를 갖췄다.
“대공 전하를 뵙습니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레이첼 프람 백작입니다.”
“기다렸습니다, 레이첼 백작. 다시 만나니 반갑군요.”
다정한 인사에 레이첼이 살포시 웃었다.
베렝겔라의 얼굴이 희게 질렸다.
“배, 백작? 게다가 프람이라니……. 너, 네가 어떻게 감히 그 성을 이름 뒤에 붙이는 거냐!”
“너?”
레이첼이 싸늘하게 답했다.
“말조심해. 지난번에 만났을 때는 아직 작위 수여 전이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거든.”
“말도 안 돼! 프람 가문은, 그 가문의 작위는 테오도르가 분명……!”
“원래 내 이름이었어야 할 프람이고, 내가 이어받아야 했던 작위야. 당신들이 없애서 영원히 사라져 버렸을 줄 알았어?”
폭죽이 터진 바깥을 바라보던 귀족들의 시선이 하나, 둘 이쪽을 향했다.
“갑자기 무슨 소란이죠?”
“저 여자는 누구지? 어디서 본 것 같기도 한데.”
“얘기를 나누는 사람은 며칠 전에 새로 작위를 받은 레이첼 백작인 것 같은데요.”
“레이첼 백작이라고요? 지금 저 사용인이 백작을 너라고 부른 건가요?”
“방금 성과 작위를 없애버렸다고 하지 않았어요? 세상에, 그런 짓이 가능한 건가요?”
웅성거리는 소리에 베렝겔라가 딱딱하게 굳어졌다.
귀족들의 이목이 집중된 순간. 레이첼이 기다리던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