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Mother Of the Male Lead Who Lives With An Ad**terous Man RAW novel - chapter (48)
불륜남과 사는 남주 엄마가 되었다 (48)화(48/151)
스테판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마주 속삭였다.
“지금?”
“네. 지금 당장요. 저대로 대공 전하께서 말벌술을 드시게 둘 수는 없으니까요.”
“아아. 이해했어. 미안한데 나한테 화이트 와인 좀 뿌려 줄래? 술 냄새가 풍겨야 하니까.”
스테판은 탁자에 놓여 있던 와인 한 잔을 들이켜더니 곧바로 비틀거리며 쓰러졌다.
“각…… 각하!”
레이첼이 크게 소리치며 팔을 휘둘러 근처 탁자에 놓여 있던 와인 잔 몇 개를 바닥에 떨어트렸다. 챙그랑! 요란한 소리가 났고 술 냄새가 진동했다.
시안에게 술을 권하던 시가르의 얼굴에 분노가 어렸다.
“스테판!”
베아트릭스가 소리치며 달려오려 했으나 시가르와 눈이 마주치자 제 자리에 굳어 버렸다. 그녀는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 온몸을 푸들푸들 떨며 어찌할 줄을 몰랐다.
주변 귀족들의 시선이 스테판에게 쏠렸다.
“어억. 어어어, 좋다. 술맛 조오타!”
“고, 공작 각하. 괜찮으십니까?”
걱정하는 레이첼의 말에 스테판이 씩 웃었다.
“으음. 이 미녀는 누구신가. 레이디 세르히?”
“세상에, 이 술 냄새. 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취하신 건가요?”
“그대 마음에 풍덩 빠진 뒤부터지. 하루하루가 와인처럼 달콤해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거든. 어때, 레이디 세르히. 나하고 결혼하자. 응?”
“전 레이디 세르히가 아니라 레이첼 백작입니다. 정신 차리세요, 공작 각하.”
“레이디 세르히 아냐? 레이디 세르히 데려와! 레이디 세르히 데려오라고오오!”
스테판의 만취 연기는 환상적이었다.
시안이 한숨을 쉬고 시가르에게 예를 갖췄다.
“아무래도 스테판 공작이 술에 취한 모양입니다. 이대로는 파티가 엉망이 될 것 같으니 제가 추슬러서 빈방에 재워두고 오겠습니다.”
시가르가 못마땅한 듯 고개를 저었다.
“파티에 주최자가 빠져서야 쓰나. 사용인들에게 치우게 해라.”
“싫어어어! 술 더 갖고 와, 술! 아주 맛있고 달큰한 술로 갖고 오라고! 레이디 세르히도 데려와!”
스테판은 바닥에 드러누운 채 떼쓰는 어린아이처럼 허우적대서 다가오는 사용인을 물리쳤다. 힘이 어찌나 좋은지 몇몇 사용인은 얻어맞고 신음하기까지 했다.
사용인과 근처 귀족들이 어쩌면 좋냐는 얼굴로 시안과 시가르를 바라보았다.
조금 떨어진 곳에 서서 스테판을 바라보던 레이첼이 속으로 손뼉을 쳤다.
‘우와, 방금 딱 한 잔 마신 게 안 믿길 만큼 엄청난 연기네. 몰랐으면 나도 깜빡 속았겠어.’
시안이 스테판을 돌아보고 다시 말했다.
“폐하. 아무래도 제가 직접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공작도 제법 검을 다루는 편이라 힘이 좋아서 저대로 두었다가는 파티장이…….”
“안 돼! 안 된다고! 네 놈 주둥이에 말벌술을 처넣기 전에 네 놈은 여기서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어!”
“…….”
“우어억.”
만취 연기에 빠진 스테판을 제외한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베아트릭스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제자리에 주저앉아 덜덜 떨었다.
너무도 선명한 악의였고 억지였다. 모여선 자들 중 시가르가 시안을 해치고 싶어 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자가 없었다.
제국에 충성하는 자를 향한 황제의 개인적이고 이유 없는 분노는 귀족들을 긴장시켰다.
자신을 향한 귀족들의 경계 어린 시선을 눈치챈 시가르가 낮게 욕설을 지껄였다.
“……젠장.”
“다녀오겠습니다.”
스테판에게 다가간 시안이 친구의 멱살을 잡고 들어 올렸다.
“야이 망할 시안 놈아! 싸우자! 나랑 대결해! 대결하자고! 내가 너 완전 묵사발을……!”
“시끄러워.”
팍, 시안의 손날이 스테판의 목덜미를 가볍게 때렸다. 스테판이 기절하자 파티장이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
커다란 스테판을 가볍게 둘러업은 시안은 무시무시한 기세로 자신을 노려보는 시가르를 뒤로 한 채 파티장을 벗어났다.
레이첼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다행이다. 큰일 날 뻔했어.’
제자리에 서서 부들부들 떨던 시가르는 말도 없이 파티장을 나가버렸다. 그가 서 있던 자리에 커다란 말벌술 병이 버려져 있었다.
‘그나저나 황제가 대공을 미워하는 줄은 몰랐네. 이렇게 노골적으로 말벌술을 가져와서 먹이려 하다니.’
시안은 권력에 욕심이 없는 데다가 충성심도 강한 사람이었다. 설마하니 황제와 사이가 나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제야 시안이 신분을 감추고 자신을 낮추며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던 이유를 깨달았다. 전부 황제에게 흠 잡히지 않으려는 노력이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데다가 충성심 강한 동생을 미워하는 황제라니, 폭군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아무래도 원작의 돌로라사가 성인이 된 후에 수도를 떠나 여행길에 오른 건 시가르 때문이 맞는 모양이었다.
* * *
파티는 싱겁게 끝났다.
기절한 척한 스테판을 방에 데려다 놓은 시안이 다시 파티장으로 돌아갔을 때는 파티가 반쯤 정리된 뒤였다.
귀족들을 모두 돌려보내고 침실로 들어온 시안이 제일 처음 한 일은 말벌술을 버리는 것이었다. 술병을 벽난로에 던져 깨트리자 꺼지려는 듯 희미하던 불길이 강하게 타올랐다.
안에 들었던 독이 얼마나 강한지 보여주는 것 같았다.
괜히 목이 따끔거리는 기분이라 손으로 목을 쓸며 커다란 의자에 쓰러지듯 앉았다. 목을 조이던 단추를 풀고 크게 숨을 내쉬었다.
“하아. 정말이지 두 번은 못 할 일이군.”
이토록 성대한 파티라니. 레이첼이 아니었다면 시작도 하지 않았을 일이기는 했다.
“원래 목적대로 베렝겔라를 처리했으니 그나마 다행이야.”
끌려가는 베렝겔라를 시가르에게 보여주자는 건 레이첼의 의견이었다.
레이첼은 아직 시가르가 얼마나 음흉한 사람인지 몰랐다. 그녀는 시가르를 만난 베렝겔라가 다시는 수도에 얼씬도 못 할 만큼 수치스러워하겠거니, 생각할 뿐이었다.
하지만 시가르는 제 기분이 나쁘다는 이유로 시종의 목을 베는 자였다. 시안의 저택에서 시가르의 눈에 띈 베렝겔라가 온전히 살아남을 가능성은 없었다.
레이첼에게 베렝겔라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리는 게 좋을까,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녀가 죄책감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았다.
시안에게는 레이첼만이 중요했다.
레이첼이 괜찮으면 다른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감다가 미간을 찌푸렸다. 베렝겔라가 했던 망언이 떠올라 버린 탓이었다.
‘레이첼은 아직도 테오도르를 사랑하니까요.’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그 말에 머리꼭지가 펑 터져버리는 것 같았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내뱉는 베렝겔라도, 대상인 테오도르도 전부 없애버려야 속이 시원해질 것 같았다.
‘놈이 어떤 사람인지 모를 때는, 잠시 마음을 품은 적도 있었지.’
레이첼이 그 말을 할 때는 가슴이 통째로 뭉개지는 것 같았다.
그딴 놈을 마음에 품었었단 말인가. 그럼 레이첼은 마음에 품었던 사람이 다른 여자를 사랑하는 것을 지켜봐야 했단 말인가. 이렇게 모질어질 만큼 상처받아야 했단 말인가.
끌려가는 베렝겔라를 바라보던 레이첼의 뒷모습을 떠올리자 가슴이 아릿했다. 품에 안고 눈을 가려 주고 싶었다.
“죽었냐?”
느닷없이 들린 목소리에 시안이 눈을 뜨고 문 쪽을 살폈다.
스테판이 팔짱을 낀 채 침실 문에 기대어 서 있었다.
“안 죽었네.”
“안 마셨잖아. 죽긴 왜 죽어. 그나저나 이 시간에 여기는 왜 온 거야? 방까지 업어다 줬으면 얌전히 잠이나 잘 것이지.”
“여기 있으면 안 돼?”
“여기 내 침실이야.”
“알아. 그래서, 뭐. 우리 사이에 이 정도도 못 해? 내가 너 말벌술 못 마시게 하려고 황제 앞에서 진상짓 한 거 잊었어? 이거 나한테 빚진 거다.”
맞다. 스테판이 아니었다면 시가르가 건네주는 잔을 거절하지 못했을 것이다.
순순히 인정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빚은 언제든 갚을 테니 말만 해.”
“뭐, 반은 내가 아니라 레이첼 백작한테 빚진 거지만. 나중에 레이첼 백작한테도 고맙다고 해.”
“……레이첼 백작?”
“그래. 나한테 쓰러져서 진상짓 하라고 말해준 게 레이첼 백작이었거든. 백작 아니었으면 너, 말벌술 마셨을걸.”
스테판이 눈짓으로 벽난로 안에 깨진 말벌술 병을 가리켰다.
시안이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가 짧게 내뱉었다.
레이첼.
레이첼이 구해준 거였구나.
시안의 생각을 모르는 스테판은 키득키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네가 나한테 처음 레이첼 백작 얘기 할 때 말이야. 정말 탐나는 인재라서 잘 해주고 싶다고 했었잖아.”
“그랬지.”
“아, 근데 솔직히 똑똑해봐야 뭐 얼마나 똑똑하겠어, 했는데 예상 이상이긴 하더라.”
“왜?”
“상대는 황제였잖아. 황제가 나타나서 대공한테 말벌술을 마시라고 하는 상황이면 보통은 놀라거나 겁먹어서 얼어붙는다고.”
그건 그렇지.
당황하면 머리가 하얗게 된다는 표현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니까.
“근데 날 보면서 당장 쓰러지라고 하더라고. 그때 레이첼 백작이 얼마나 침착했는지 알아? 자기한테 다 생각이 있다는 듯이 말하는데, 와, 좀 멋지더라.”
“그렇다고 했잖아.”
“미리 짠 것도 아닌데 척척 움직이는 거 하며. 네가 탐낼 만해. 인정한다. 수도에 이런 사람이 숨어 있을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네.”
그러고는 덧붙이듯 중얼거렸다.
“혹시 내가 연기를 허술하게 하거나 본인이 실수하면 그대로 들켜서 큰일 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 그런 위험을 감수할 만큼 너를 구하고 싶었다는 말 아니겠어?”
마지막 말에 시안이 주먹을 꽉 쥐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무심하게 스테판 쪽으로 걸어갔다.
문에 비스듬하게 기대 있던 스테판이 팔짱을 풀고 몸을 바로 세웠다. 곧게 선 두 남자가 문 앞에서 마주 섰다.
스테판은 갑작스러운 시안의 행동이 당황스러운지 뒤로 조금 물러섰다.
“뭐, 뭐야. 갑자기 왜 오는데?”
시안은 대답 없이 덥석 스테판의 목덜미를 붙잡았다.
스테판이 깜짝 놀라 딱딱하게 굳어졌다.
“야, 야! 시안! 야! 대공 전하! 살려줘!”
“시끄러워.”
“야이……!”
다급히 외치는 스테판의 말을 무시한 채 시안이 고개를 기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