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Mother Of the Male Lead Who Lives With An Ad**terous Man RAW novel - chapter (5)
불륜남과 사는 남주 엄마가 되었다 (5)화(5/151)
레이첼은 시안이 테오도르를 반역자로 의심한다고 생각했다. 남편이 반역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명백한 증거를 모으도록 돕는 것이 그에게 매력적인 제안인 줄 알았다.
과거에 테오도르를 반란 혐의로 의심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시안은 이미 테오도르가 반란이 아닌 불륜을 저지른다는 걸 알고 있었다.
‘불륜의 증거를 원한다고. 자신은 발 담그지 않으면서 증거를 모으고 싶다는 거로군. 필요하다면 나를 증인으로 쓰고 싶을 테고. 이 여자가 ‘진짜로’ 이혼을 원하는 거라면 말이지.’
고개를 숙이고서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겉으로는 모자란 척하며 일을 꾸미는 타입인가. 그러면 생각 이상으로 똑똑하고 치밀한 사람이라는 뜻인데. 아무래도 레이첼 엘로사가 어떤 사람인지 뭘 원하는지 더 알아볼 필요가 있겠어.’
등줄기가 짜릿했다. 이렇게까지 용의주도한 사람을 만난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시안은 어떤 방면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이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쾌감을 느꼈다. 절친한 친구이자 상단주인 스테판도, 길드장인 휘지우스도, 보좌관 닉도 그렇게 그의 사람이 되었다.
‘레이첼 엘로사라면 스테판이나 휘지우스 이상의 전략가일지 몰라. 기대되는걸.’
일단 레이첼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기로 했다. 그녀를 추적하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받아들이겠습니다. 다만 아직 당신을 온전히 믿는 건 아니에요.”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큰일 하시는 분께서 함부로 타인을 믿는 건 안 될 말이지요.”
“일단 일러준 내용을 확인하겠습니다.”
다행히 레이첼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든지요.”
“그럼 이제 내가 질문할 차례군요. 길드의 정보원을 왜 불렀던 겁니까? 길드에 요청했던 대로 남편의 선물을 구하고 싶어서였습니까? 이혼하고 싶다면 그런 선물을 준비할 필요가 없을 텐데요.”
“예리하시네요.”
정말 놀랍다는 듯 레이첼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생각하신 것이 맞습니다. 그 의뢰는 남편과 집사의 의심을 사지 않고 길드의 정보원을 부르기 위한 핑계였을 뿐입니다.”
“역시.”
“대공 전하께서 제 의뢰를 받은 척해주셨으면 합니다. 제가 감히 대공 전하께 진짜 의뢰를 드릴 수는 없겠지만 그들의 눈을 피해야 하거든요. 대금도 청구해 주셨으면 하고요.”
시안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야 어렵지 않지요. 처음부터 길드의 정보원으로 이곳에 왔던 거니까 아예 정식으로 의뢰를 받아서 가도록 하겠습니다. 길드에 서류가 남을 테니 혹시 모를 의심을 피할 수 있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결혼기념일을 축하하는 의미로 남편에게 주고 싶은 특별한 선물을 구하는 것이 맞습니까?”
레이첼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남편에게 제가 이혼 준비 중이라는 걸 들키고 싶지 않거든요. 나는 아직 당신을 사랑하고 있고, 우리의 결혼이 공고할 것을 믿는다는 의미의 선물을 하고 싶어요.”
시안은 안대로 가려진 눈을 가늘게 떴다.
역시. 본성을 숨기고 치밀하게 행동하는 타입이었다.
지금 이 말을 하는 레이첼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궁금했다. 눈을 가려도 타인의 위치와 행동을 구분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지만 표정이나 감정은 읽기 어려웠다. 아쉬운 일이었다.
“저는 사교계나 상류 귀족 사회의 생활을 잘 모릅니다. 대공 전하께서는 남성이시고 저보다 훨씬 지체 높은 귀족이시니 이럴 때 어떤 선물을 골라야 할지 잘 알고 계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부분은 시안이 조사한 내용과 같았다.
“남편의 선물을 준비해 주세요. 쉽게 구하기 어려우면서 매우 가치 있고 또한 사랑의 증표로서 손색이 없는 것으로요.”
어렵지 않은 의뢰였다.
시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적당한 물건을 찾아오지요.”
“감사합니다. 의뢰비는…… 대공 전하께는 푼돈이겠지만 부족하지 않을 만큼 치러드리겠습니다.”
“그래요. 그럼 다시 기별할 테니 기다려 주십시오. 단, 내게 말한 내용 중에 거짓이 있을 때는 군대를 마주해야 할 겁니다.”
“저는 거짓을 말한 적이 없으니 군대를 마주할 일은 없겠네요.”
그때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시안은 황급히 레이첼의 앞에 무릎을 꿇고 예를 갖췄다.
레이첼은 놀랐지만 뭐라 소리 내서 말하지는 않았다.
“마님, 칼입니다. 아직 대화 중이십니까?”
“아, 응! 이야기가 길어지네. 워낙 구하기 어려운 물건이라서.”
“……알겠습니다. 이야기가 마무리되면 불러 주십시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알았어. 슬슬 마무리 지을게.”
청각을 곤두세우자 저벅저벅 발소리가 멀어졌다. 주변이 완전히 고요해졌다는 확신이 들고서야 시안은 몸을 일으켰다.
“……집사입니까?”
“맞습니다.”
“예의를 모르는 자군요. 모시는 마님이 손님과 대화 중인데 겨우 드릴 말씀 따위로 노크를 다 하고.”
“그런 편입니다만 신경 쓰지 마세요. 곧 정리할 예정이니까요.”
“그렇다면 알겠습니다.”
“그럼 대공 전하, 귀한 걸음해주셔서 영광이었습니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시안의 귀에 부드러운 천이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선이 가느다란 여인이 예를 갖추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앞이 보이지 않는 상대에게까지 이렇게까지 공손히 예를 갖출 필요는 없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피식 새어 나오는 웃음을 감추지는 못했다.
엘로사 저택을 나서는 시안의 발걸음이 가벼웠다.
시안이 돌아간 뒤 레이첼은 응접실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손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닌 척했지만 사실 무척 긴장했었다.
‘대공이라는 것만 알았지, 어떤 사람인지 정확히 몰랐으니까.’
원작에서 돌로라사가 입이 닳도록 칭찬한 얘기들로 미루어 나쁜 사람은 아니지 않을까, 짐작했을 뿐이었다.
다행히 시안은 예상보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람이었다. 대화가 통하지 않는 상대였다면 곤란한 일을 당했을지도 몰랐다.
칼이 노크했을 때를 떠올렸다. 소리가 들렸을 때 시안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무릎을 꿇었다.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서열로 치면 황제 다음가는 대공이 어떻게 그렇게 쉽게 무릎을 꿇지? 게다가 신분을 들키고도 말을 낮추지 않았어. 거북해하거나 어색해하지도 않았고.’
시안 대공이 대단하다더니, 과연 검과 지략만으로 유명한 건 아니구나 싶었다.
‘그 돌로라사 공녀의 아버지이니 생긴 것도 엄청 잘생겼을 거야. 안대 아래로 드러난 턱선이나 입술도 엄청 단정했으니까.’
돌로라사는 원작 주인공답게 무척 아름답다는 설정이었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살인귀 그레이엄마저 한 번 이상 돌아보게 만들 정도였다.
그런 돌로라사의 아버지이니 분명 엄청나게 아름다운 사람일 것이다.
‘목소리나 말투도 차분했고. 신분을 숨기고 모습을 감췄는데도 우아하고 기품이 넘쳤어. 테오도르하고는, 정말이지 천지 차이야.’
한숨 돌리며 생각이 잠겨 있으니 칼이 응접실로 들어왔다.
“이야기는 잘 마치셨습니까?”
“응. 곧 다시 기별 주기로 했어. 덕분이야. 불러줘서 고마워, 칼.”
“어떤 물건을 구해달라 의뢰하셨는지요.”
“음.”
고민하는 척하며 레이첼이 눈을 깜빡였다.
“사실 어떤 물건을 구해달라고 구체적으로 지정하지는 못했어.”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나는 상류 사교계의 유행은 잘 모르니까. 정보원에게 적당한 물건을 골라달라고 했거든. 찾아보겠대.”
“그런 일을 맡겨도 됩니까? 혹시 엉뚱한 선물을 구해올지도 모르는데요.”
“무슨 소리야. 괜히 길드의 정보원이겠어? 뭐, 설사 엉뚱한 선물 구해온대도 상관없어. 거기 길드장이 무척 엄격한 사람이잖아. 이름이 휘……. 뭐였는데.”
“휘지우스입니다.”
아는데 모른 척한 거거든?
레이첼은 입술을 삐죽이는 대신 웃었다.
“맞아, 휘지우스. 엉뚱한 선물을 구해오면 그 사람이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까. 난 믿어.”
“알겠습니다.”
“그런데 칼. 하고 싶다던 얘기는 뭐야?”
느린 걸음으로 레이첼에게 가까이 다가온 칼이 들고 온 종이를 내밀었다. 마샤의 해고 통지서였다.
“마샤를 해고하셨더군요. 저에게 한 마디 상의도 없이.”
“그러면 안 돼? 나는 엘로사 백작 가문의 안주인이고 살림을 돌보는 사용인들의 고용을 책임지는 사람인걸.”
원래의 레이첼이 워낙 저택 살림 돌보는 데 관심이 없어서 그동안 칼이 대신해오기는 했지만.
잠시 뜸을 들이던 칼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마님이 그 어떤 귀족보다 선량한 분이라는 건 저희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료가 해고된 데다 길드에서 낯선 사람이 방문한 탓에 모두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어떤 귀족보다 선량한 분이 아니라 어떤 귀족보다 다루기 쉬운 호구겠지.
따지고 싶었으나 칼의 말은 무척 예의 바르고 공손했다. 일리도 있었다.
사용인들에게는 분명 불편한 일이었다. 어제까지 아무 문제 없이 일하던 마샤의 해고도, 검은 후드에 안대를 쓴 정보원의 방문도. 어쩌면 다음 차례가 자신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벌벌 떨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건 겉으로 드러나는 일리일 뿐이고 칼의 속뜻은 전혀 달랐다.
레이첼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역시 칼, 바보 같은 테오도르가 오래도록 불륜을 저지르도록 도운 남자야.’
칼은 똑똑하고 현명한 사람이었다.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너 무슨 일 꾸미고 있지? 의심스러워. 혹시 불륜을 눈치채고 테오도르에게 사람을 붙인 거 아니야?’라고 얘기하지 않았다. 반격당하거나 속뜻을 들키지 않게 그럴싸한 말로 포장했다.
지금 칼은 ‘다시는 길드의 정보원과 접촉하지 않을게.’라는 말을 끌어내려고 은근히 레이첼을 압박하는 거였다.
예전의 레이첼이라면 아차 하며 칼이 기대하는 대로 말했을 것이다. 이렇게.
“아, 내가 걱정을 끼쳤구나. 정말 미안해, 칼.”
그러나 레이첼은 예전의 레이첼과 달리 순순히 칼의 전략에 놀아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어쩌지? 사실 분위기가 나빠지길 바라고 일부러 한 일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