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Mother Of the Male Lead Who Lives With An Ad**terous Man RAW novel - chapter (51)
불륜남과 사는 남주 엄마가 되었다 (51)화(51/151)
안경 너머로 케이티의 눈이 반짝였다.
“원래 프람 가문이 관리하던 성과 영지 말씀이시군요.”
“맞아. 그동안 돈을 모아둔 건 여기에 쓰고 싶어서였어.”
사실 빙의자인 레이첼에게 프람 백작 가문의 성과 영지는 추억도, 의미도 없는 곳이었다.
하지만 되찾고 싶었다. 이제는 자신이 된 불쌍한 레이첼을 위해 선물을 하고 싶었다.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는 현실의 아빠 때문에 엄마가 잃어야 했던 것들을 이렇게라도 보상하고 싶었다.
‘할 수 없다면 모르겠지만 지금 나는 할 수 있어. 돈도, 도와줄 사람도 있으니까.’
케이티가 고개를 끄덕였다.
“맡겨주세요. 바로 준비해서 다녀오겠습니다.”
“고마워, 케이티.”
오래 계획한 일을 실행한다는 생각에 레이첼의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 * *
생일을 며칠 앞두고서 시안이 황태후의 궁에 들렀다. 황궁에서도 가장 안쪽에 위치한 궁이라 평소에는 자주 드나들지 못하는 곳이었다.
볕이 잘 드는 커다란 창문을 커튼으로 가린 침실에 황태후 벨윈더가 앉아 있었다. 그녀는 방에 들어와 의자에 앉는 시안을 바라보았다.
“왔구나. 또 네가 태어난 날이 돌아온 모양이지.”
목소리가 지나치게 작았다.
시안은 벨윈더와 가까운 의자로 자리를 옮기며 차분히 입을 열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몸은 좀 어떠신지요.”
“여전하다. 나는 그날에서 시간이 멈춘 것만 같아.”
그날은 벨윈더의 남편이자 시안의 아버지인 전 황제 제지우스 아이사가 사망한 날이었다. 벌써 10년이나 지난 일인데 그녀는 아직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어머니가 이렇게 지내시면 아버지께서도 마음이 편치 않으실 겁니다.”
“여전히 나를 어머니라고 불러주는구나.”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를 낳아주신 분이니 어머니라 부르는 게 당연하지요.”
“미안하구나. 너를 지키기 위해서였다지만, 너를 궁에서 내쫓는 꼴이 되고 말았어.”
“제가 선택한 일입니다. 후회하지도 않고요. 그러니 미안해하지 마십시오.”
제지우스가 죽자마자 벨윈더가 한 일은 시안을 붙잡고 애원하는 것이었다.
‘제지우스의 죽음에 의문을 품지 말아다오. 절대 시가르의 눈 밖에 날 행동을 해서는 안 돼. 제발, 제발 살아남으렴. 죽은 제지우스도 그걸 바랄 테니.’
시가르가 제지우스에게 독을 먹인 것이 분명했지만 시안은 따지지 못했다. 처음에는 어머니의 부탁을 외면하지 못해서였고, 나중에는 돌로라사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벨윈더가 느리게 눈을 깜빡이다가 손을 들어 올렸다. 망설이듯 허공에서 주춤거리던 손이 시안 쪽으로 움직였다.
시안이 벨윈더 쪽으로 몸을 내밀어주었고, 벨윈더는 장성한 아들의 뺨에 손을 얹었다.
“내 아들. 어렸을 때도 어여뻤지만 나이가 드니 훨씬 더 아름답구나.”
“사람들은 그런 걸 제 눈에 안경이라고 합니다.”
가벼운 농담에 벨윈더가 웃었다.
“어미가 10년이나 궁에 갇혀 지냈지만 네가 어여쁘다는 것 정도는 안다. 너는 젊었을 적 네 아버지를 똑 닮았거든. 그때 온 제국이 네 아버지의 아름다움을 칭송했었지.”
“그렇습니까.”
“원래도 아름답던 얼굴이지만 오늘은 특히 더 빛이 나는 것 같아. 아무래도 내 아들이 사랑에 빠진 모양이야.”
느닷없는 말에 시안이 입을 다물었다.
한때 황후였던 자의 통찰력일까, 아니면 아들을 향한 어머니의 깊은 사랑일까.
대답이 없는 시안을 보며 벨윈더가 잔잔하게 미소 지었다.
“돌리 외의 사람에게는 열리지 않았던 내 아들의 마음을 이토록 활짝 열다니. 고마워서 인사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구나.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련.”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똑똑하고 단단해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상처를 품은.”
“얘기를 들으니 더 궁금해지는걸. 내게도 소개해주겠니?”
“거절하겠습니다. 요즘 사교계는 혼인을 약속한 뒤에야 서로를 집안에 인사시키는 것이 유행이라서요.”
“혼인을 약속해야 볼 수 있다니, 너무 늦는걸. 정말 그전에 보여주면 안 되는 게냐?”
“큰일 날 말씀을 하시는군요. 요즘 그리했다가는 자식에게 미움받습니다.”
“으음. 나는 네게 더 미움받고 싶지 않으니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마.”
시안이 가볍게 웃었다.
시안은 벨윈더를 미워하지 않았다. 그는 황제의 자리를 포기하라고 권한 정도로 낳아준 어머니를 미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평생 죄책감에 시달릴 벨윈더를 안타깝게 여겼다. 치기 어렸던 자신을 말려 목숨을 구해준 점에 감사했다.
벨윈더가 아니었다면 시안은 돌로라사를 구하지도, 아이를 딸로 삼지도 못했을 테니까.
벨윈더와 인사를 마친 뒤에는 시안의 생일을 축하하는 정찬이 열렸다. 황실 직계 가족만 참석하는 조촐한 모임이었다.
돌로라사와 함께 먼저 자리에 앉아 있던 시안은 베아트릭스와 정찬장으로 들어오던 아트레이유와 눈이 마주쳤다. 아이가 장난스럽게 한쪽 눈을 찡끗해 보였다.
정찬장에 들어오기 직전, 아트레이유에게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건네주었다. 레이첼에게 주고 싶다며 구해달라고 부탁했던 물건이었다.
베아트릭스의 눈을 피해 은밀히 건네주었더니 비밀 작전 같다며 무척 즐거워했다.
모두가 자리에 앉은 뒤 시가르가 정찬실로 들어왔다. 나란히 앉은 시안과 돌로라사를 바라보던 그가 입술을 비틀며 웃었다.
“요즘 자주 만나는구나, 아우야.”
싸늘한 목소리에 베아트릭스가 흠칫 몸을 떨었다.
제 발로 시안의 저택에서 열리는 파티에 참석해 놓고 자주 만난 것이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시안은 며칠 전 라일러스가 보내준 편지를 떠올리며 바짝 긴장했다.
위험할 것 같아 돌로라사를 데려오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시가르는 몇 번이나 전갈을 보내 반드시 돌로라사를 데려오라 요구했다.
‘대체 왜.’
분노가 끓었다. 황궁에 검을 차고 들어올 수 없다는 사실이 한탄스러웠다. 시안은 식탁에 놓인 식사용 나이프를 꽉 쥐었다.
정적이 감도는 가운데 식사가 시작됐다. 입을 여는 것은 질문하는 시가르와 대답하는 시안뿐이었다.
“내 아우가 벌써 스물여섯 번째 생일을 맞다니 시간이 참 빠르구나. 눈을 똑바로 뜨고 나를 바라보던 열다섯 꼬맹이일 적이 엊그제 같은데 말이지.”
“예. 시간이 무척 빠릅니다.”
“길드의 정보원 노릇은 어떠냐. 즐거운가?”
“나쁘지 않습니다.”
“그렇겠지. 네 놈에게는 남의 뒤처리를 하는 길드의 허드렛일이 아주 잘 어울리거든.”
평소에도 시안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시가르였지만 오늘따라 더 공격적이었다.
베아트릭스와 아트레이유는 물론 자세한 사정을 모르는 돌로라사까지 딱딱하게 얼어붙었다. 아이는 시가르가 왜 저렇게 날카롭게 구는지 몰라 안절부절못했다.
식사가 끝나고 불안해하는 돌로라사를 달래줘야겠다고 생각할 무렵이었다. 앞에 나눈 이야기는 모두 서두에 불과했다는 듯 시가르가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네게 레이첼 백작을 부탁했었지.”
뜬금없이 거론된 레이첼의 이름에 아트레이유와 돌로라사가 놀라 굳어졌다.
시가르가 레이첼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시안만 침착했다.
“맞습니다.”
“이제 그럴 필요 없다. 그딴 멍청하고 더러운 여자를 네 손에 맡겨 둘 수야 없지.”
레이첼을 험담하는 말투에 쭈뼛 화가 솟았다. 이럴 때일수록 침묵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시안은 입을 열었다.
“여자가 아니라 백작입니다. 폐하께서 직접 작위를 내린 귀족이며 폐하의 신하입니다.”
“그딴 작위 따위. 곧 회수할 생각이니 없는 것과 다름없다.”
제가 제 손으로 내린 작위를 그토록 쉽게 빼앗겠다니. 자신의 권력과 명령을 자기 스스로 가볍게 여기는 것이 과연 시가르다운 생각이었다.
아트레이유가 뭐라 말하려 했지만 곁에서 베아트릭스가 아이의 손을 잡아당겨 말렸다.
시안이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아트레이유가 뭔가 말했다면 시가르는 또 아들에게 손찌검했을 테니까.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아트레이유 대신 돌로라사가 바르르 떨며 입을 연 것이다.
“아, 안 됩니다, 폐하. 레이첼 백작의 작위를 빼앗아 가시면…….”
“음?”
시안의 가슴이 철렁했다.
‘안 돼, 돌리. 시가르에게 그런 말을 하면…….’
그러나 시안의 간절한 바람은 당황한 돌로라사에게는 닿지 않았다.
“레이첼 백작은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는걸요. 그런 사람의 작위를 도로 빼앗으면 안 됩니다.”
“내게 말대꾸를 하다니, 건방지구나.”
정찬장에 들어올 때부터 삐딱하던 시가르의 입술이 아예 비틀어졌다. 짜증이 나거나 화가 났다기보다는 뭔가 즐거워하는 듯했다.
시안이 손을 뻗어 돌로라사의 손을 쥐었다.
“돌리, 그만하렴.”
“하지만 아빠. 그러면 레이첼 백작이…….”
레이첼이 작위를 잃고 저택에서 쫓겨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인지 아이는 울상이 되었다.
시안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지 못하게 막으면 그만이었다. 시가르가 시안의 목을 함부로 베지 못하듯이, 레이첼 역시 시가르에게 빌미만 주지 않으면 됐다.
레이첼은 똑똑했고 그녀를 도울 시안도 곁에 있으니 걱정할 필요 없었다.
이 자리에서, 시가르가 보는 곳에서 그를 자극하지만 않으면.
그러나 시가르는 시안의 기대보다 인내심이 적은 사람이었다. 그는 돌로라사를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이것 참 서운하구나. 나는 너를 아끼는데, 너는 내가 아닌 레이첼 백작이라는 자의 편을 들다니 말이야.”
“편들다니요. 제가 어찌 감히 그런 짓을…….”
“피는 물보다 진하다더니 옛말은 전부 거짓인 게 틀림없구나.”
피?
시가르가 한 번도 입에 담은 적 없는 말이었다. 소름이 돋았다.
시안이 표정을 굳힌 채 시가르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폐하.”
“아무리 내가 아닌 시안의 밑에서 자랐다지만 어찌 이런 태도를 보일 수가 있느냐.”
아니. 안 돼.
시안은 직감적으로 지금이 라일러스가 경고해 준 순간임을 깨달았다.
시안이 뭐라 저지할 틈도 없이 시가르가 음흉하게 웃었다.
“돌로라사, 너는 내 딸인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