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Mother Of the Male Lead Who Lives With An Ad**terous Man RAW novel - chapter (52)
불륜남과 사는 남주 엄마가 되었다 (52)화(52/151)
정찬실 안에 정적이 흘렀다.
돌로라사가 딱딱하게 얼어붙었고 시안은 입술을 악물었다. 베아트릭스가 눈을 질끈 감은 채 고개를 돌렸고 아트레이유가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따…… 딸? 둘리가 아빠 딸이라고요?”
“어, 아니에요. 저는 우리 아빠 딸이에요. 그렇죠, 아빠?”
“돌리…….”
시안을 올려다보는 돌로라사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일이었다. 설마 시가르가 제 입으로 돌로라사가 자기 딸이라는 것을 밝혀버릴 줄은 몰랐다. 사생아의 존재를 불편하게 여기는 줄 알았는데.
뭐라고 대답해 줘야 할지 몰라 쉽게 입이 열리지 않았다.
지켜보던 시가르가 씨익 웃었다.
“이런. 혹시나 했지만 역시 내 딸에게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은 모양이구나. 돌로라사, 너는 내 핏줄이다. 결혼도 하지 않은 시안에게 아이가 있을 리 없지 않으냐.”
믿기지 않는 말에 아트레이유가 입을 뻐끔거렸다.
“그럼 둘리가 내 동생이에요? 진짜로요?”
“그래. 네 동생이지만 시안이 워낙 아이를 예뻐해서 데려가 키우는 거다. 돌로라사에게 사실을 말해주지 않고 자기 딸인 척 키우다니, 참으로 못된 일이지.”
“으악.”
아트레이유가 경악하며 두 손으로 머리카락을 잡아 뜯었다.
시안이 눈을 꾹 감았다.
갓 태어난 돌로라사를 예뻐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시가르가 버리지 않았다면 데려와 키우지 않았을 것이다. 욕심을 냈던 게 아니라 안타깝게 여겼던 거였다.
돌로라사에게 진실을 말해주지 않은 것 역시 사실이었다. 하지만 돌로라사를 제 딸인 척 키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시가르에게 미움받거나 아이가 상처받을까 봐 그런 거였다.
언젠가 돌로라사에게 출생의 비밀을 말해줘야 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이런 식은 아니었다.
놀라서 어쩔 줄 몰라 눈만 깜빡이는 돌로라사를 보니 가슴이 욱씬 아팠다.
차마 마주 바라볼 수가 없어서 시가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시안과 눈이 마주치자 시가르는 웃었다.
“돌로라사. 얘기가 나온 김에 이제라도 황궁으로 돌아와라. 공녀로 사는 것보다 황녀로 사는 것이 훨씬 좋지 않겠느냐. 더 많은 걸 갖고, 더 많은 걸 누려야지. 내 딸이니 말이다.”
“네? 하지만 폐하. 저, 저는…….”
갑작스러운 제안에 돌로라사가 어깨를 떨었다.
반대쪽에 앉은 아트레이유가 시가르에게 보이지 않게 접시로 얼굴을 가리고 입술을 뻐끔거렸다.
‘야, 빨리 싫다고 해! 너 같은 약골은 우리 아빠한테 얻어맞으면 다 부러질걸? 세상에서 제일 멋있는 삼촌이랑 계속 살아! 거기가 천국이라고!’
다급한 조언을 알아챈 베아트릭스가 아트레이유의 허벅지를 꼬집었다. 그녀는 사생아인 돌로라사의 존재가 반갑지 않을 텐데도 시가르의 뜻에 반대하지 못했다.
아트레이유가 뭘 하건 별 관심이 없는 시가르가 느긋하게 고개를 기울였다.
“시안. 이제 돌로라사를 내게 넘겨라. 내 딸이 겨우 이딴 일로 눈물을 글썽이는 약골이라니, 구역질이 다 날 지경이군. 내가 친히 황녀로서 교육을…….”
울컥 분노가 차올랐다.
“형님.”
딱딱한 시안의 목소리에 시가르가 말을 멈췄다. 내내 즐거워 보이던 그의 눈썹이 처음으로 꿈틀했다.
“……시안 아이사 디카르시냐크. 지금 내 말을 끊은 것이냐.”
끊었다마다. 입안에 검을 밀어 넣고 닥치라고 협박하고 싶은 것을 애써 참는 중이었다.
“돌로라사는 제국법과 여신 예니스가 인정한 제 딸입니다. 그것을 위해 친히 법까지 바꾸지 않으셨습니까.”
“그깟 법이야 또 바꾸면 그만이 아니냐.”
자신이 만든 법을 또 바꾸겠다고? 이렇게 경솔할 데가.
시안은 식기를 내려놓고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늘은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이야기는 다음에 다시 듣지요.”
접시로 얼굴을 가린 아트레이유가 주먹을 불끈 쥐며 소리 없이 ‘잘한다, 우리 삼촌!’을 외쳤다.
시가르의 표정도 굳어졌다.
“건방지구나. 감히 내가 일어나기 전에 자리에서 일어서다니.”
“계속 앉아 있다가는 좋지 못한 꼴을 보일 것 같습니다. 제 생일을 축하하는 자리이니 제게 생일 선물을 준다고 생각하고 너그럽게 용서하십시오.”
“시안!”
“그럼.”
시안이 돌로라사를 일으켜 품에 안았다. 아이의 눈물 어린 얼굴을 제품에 꾹 눌러 붙인 그가 정찬실을 나섰다.
탁, 가볍게 문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서 시안의 자리에 놓여 있었던 스테이크와 접시, 식탁보와 탁자가 좌우로 쩌억 갈라졌다. 씩 웃음 짓던 시가르가 흠칫 놀라 포크를 떨어트렸다.
잠깐의 정적 뒤에 시가르가 이를 갈았다.
“젠장.”
분명 시안과 돌로라사의 놀란 얼굴을 봤는데 왜인지 진 듯한 기분이었다.
돌로라사와 시안이 마차에 올랐다.
눈치 빠른 마부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닫고 마차를 돌렸다. 마차는 황궁 서쪽 출구에서 가장 가까운 시안의 저택으로 곧장 향하지 않고 멀리 수도 주변을 돌았다.
돌로라사가 물었다.
“아빠. 황제 폐하께서 하신 말씀이 사실인가요?”
당장이라도 울음이 터질 듯한 돌로라사의 얼굴을 보며 시안은 울컥 넘어오는 속상함을 억지로 삼켰다. 너는 내 딸이라고 말하며 아이를 안아주고 싶었다.
자신의 힘으로 어찌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는 걸 알면서도, 자신이 돌로라사의 진짜 아빠가 아니라는 사실에 마음이 아팠다.
“……그래. 너는 내가 아니라 폐하의 딸이란다.”
“아…….”
돌로라사가 고개를 숙이자 아이의 눈에서 눈물이 뚝 떨어졌다.
말없이 눈물 흘리던 돌로라사가 드레스를 꼭 쥐며 입을 열었다. 아이의 목소리가 바들바들 떨렸다.
“왜, 왜 저를 키우신 거예요? 아빠는 결혼도 하지 않았다면서요.”
“그때는 그래야 했어.”
“얘기해 주세요. 왜 황제 폐하가 아니라 아빠가 저를 키우신 건지.”
그렇게 물으며 돌로라사가 고개를 들었다. 시안과 같은 황금색 눈동자가 물기에 잠겨 어른어른 흔들렸다.
시안이 입안의 살을 씹으며 눈을 감았다.
아직 일곱 살. 사실을 알고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이른 나이 같았으나 이제 와서 거짓말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너는 베아트릭스 황후 폐하가 아니라 황제 폐하의 총애를 받던 릴리라는 시녀가 낳은 아이란다. 그때 네가 태어났다는 것을 알게 된 폐하께서 내게 너를…… 죽이라 하셨어.”
“주, 죽이라고요? 저를요?”
“그래. 네가 너무 크게 울어 시끄럽다고 하셨었지.”
“아…….”
돌로라사의 얼굴이 희게 질렸다.
차마 돌로라사의 얼굴을 마주 바라보지 못한 채 시안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나는 갓 태어난 너를 죽이지 못했어. 살려달라는 듯 울음을 터트리는 네가 무척 사랑스러웠으니까. 너를 데려와 내 딸로 키우겠다고 말씀드렸단다.”
“고, 고마워요, 아빠. 아니, 아빠가 아니라, 저기…….”
“돌리.”
어쩔 줄 모르고 쩔쩔매는 돌로라사를 살며시 품에 당겨 안은 시안이 속삭였다.
“사실을 말해주지 않은 건 미안하다. 하지만 너는 내 딸이야. 한 번도 너를 내 딸이 아니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 그러니 계속 아빠라고 불러주렴.”
“하지만 저는 진짜 딸이 아닌 거잖아요.”
울음 섞인 목소리에 가슴이 미어졌다.
“예전에 아빠는 결혼을 못 한다고 했었잖아요. 저 때문이었던 거죠? 제가 있으니까 귀족 영애들이 아빠랑 결혼하기 싫어하는 거였어요.”
“그렇지 않아. 돌리 때문이 아니라 아빠가 결혼하고 싶지 않아서였어.”
“안 믿어요. 아빠는 거짓말쟁이잖아요. 돌리가 진짜 딸도 아닌데 진짜 딸이라고 했어요. 진짜 딸도 아닌데 진짜 딸처럼 잘해줬어요. 그것도 분명 거짓말일 거야.”
“돌로라사.”
“거짓말쟁이. 거짓말쟁이 아빠 미워요…….”
걷고 말하기 시작한 뒤로 제대로 떼 한 번 부리지 않던 돌로라사가 시안의 품에서 엉엉 울음을 터트렸다.
얼마나 속상할지 짐작조차 되지 않아서 아무런 위로도 해주지 못했다.
‘……소중한 나의 딸. 지켜주고 싶었는데 아프게 해서 미안해. 전부 다, 아빠가 미안해.’
시안이 두 팔로 돌로라사를 꽉 안아주었다.
* * *
다음 날, 레이첼은 홀로 마차에서 내리는 시안을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대공 전하. 공녀님은 함께 오지 않으셨나요?”
“예. 사정이 좀 있어서.”
사정이라니.
무슨 사정인지 묻고 싶었으나 시안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은 듯해서 묻지 못했다.
곁에서 그레이엄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시안을 살폈다.
“스승님 괜찮으세요? 아파 보여요.”
“괜찮다. 별일 아니니 신경 쓰지 말렴.”
레이첼이 고개를 저었다.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으세요. 오늘 검술 훈련은 쉬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닙니다. 그럴 수는…….”
시안이 레이첼의 제안을 거절하려 하자 그레이엄이 눈치 빠르게 손목을 붙잡았다.
“아야야! 스승님! 저 사실은 손목이 너무 아파요! 어제 푸딩 먹다가 손목이 부러졌나 봐요! 아무래도 손목에 붕대를 감아야겠어요! 아야아!”
후다닥 저택 안으로 달려가는 그레이엄의 뒷모습을 보며 레이첼이 쓰게 웃었다.
“그레이엄은 대공 전하가 무척 걱정되는 모양이에요.”
시안은 그레이엄의 행동이 탐탁지 않은지 딱딱하게 굳은 얼굴이었다.
“혼을 내셔야겠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거짓말은 거짓말이니까요. 게다가 저렇게 티 나는 거짓말이라니.”
“선의의 거짓말이니 용서해 주세요. 선의의 거짓말은 때로 사람의 목숨을 구하기도 하잖아요.”
“아.”
파티에서 스테판이 주정 부린 일이 생각났는지 시안이 입을 다물었다. 평소였다면 다정하게 웃으며 고마웠다고 답했을 그는 반쯤 눈을 감은 채 고개를 숙였다.
레이첼이 걱정스레 시안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정말 안색이 좋지 않으시네요. 혹시 감기에 걸리신 건가요? 바로 저택으로 돌아가시겠어요? 아니면 따뜻한 차를 준비해 드릴까요?”
잠시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던 시안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이런 얘기, 정말 하고 싶지 않지만…….”
“네?”
“돌로라사가 백작을 무척 좋아하고 따른다는 건 알고 계시겠지요.”
“……공녀님께서 저를 좋아해 주신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때로는 상냥하게, 때로는 날카롭게 빛나던 시안의 황금색 눈동자가 슬픔에 젖었다.
“레이첼 백작. 부탁입니다. 돌리를…… 도와주세요.”
도와달라는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던 레이첼이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이 문제인지는 몰라도 미래의 며느리이자 아들의 친구인 돌로라사를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간절한 시안의 눈빛 역시 거절할 수 없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