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Mother Of the Male Lead Who Lives With An Ad**terous Man RAW novel - chapter (54)
불륜남과 사는 남주 엄마가 되었다 (54)화(54/151)
문이 열리는 기척에 시안이 번쩍 눈을 뜨고 고개를 들었다.
문틈으로 보이는 돌로라사의 얼굴은 눈물로 퉁퉁 부어 있었다.
“아빠…….”
불러주는 목소리에 시안이 와락 돌로라사를 끌어안았다.
“돌리, 돌로라사……!”
돌로라사가 아빠라고 불러주었다는 사실이 감격스러워서, 문을 열고 나와 준 돌로라사가 고마워서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단단한 시안의 팔 안에 갇힌 돌로라사가 밭은 숨을 쉬며 더듬거렸다.
“우, 흐아. 아, 아빠. 숨, 숨 막혀요!”
“아. 미안. 미안하다. 괜찮니?”
시안이 화들짝 놀라 돌로라사를 놓아주자 아이가 크게 숨을 내쉬었다.
“하아. 하아아. 네, 괜찮아요.”
“정말 미안하구나. 아빠가, 아니 내가, 너무 기쁜 나머지, 아니 반가워서……. 갑자기 그런 행동을 하면 안 되는 건데 허락도 없이 미안하다.”
혹시 돌로라사에게 상처 줄까 봐 말을 고르려 했지만 평소와 달리 쉽게 차분해지지 않았다.
더듬거리고 허둥대는 시안을 빤히 바라보던 돌로라사가 뺨을 빨갛게 물들이며 웃었다.
“아하하. 아빠, 말이 이상해요.”
돌로라사가 정확하게 말해주는 아빠라는 단어에 가슴이 찡했다.
‘아빠라고. 아직도 아빠라고 불러주는구나. 전부 알게 되었으면서도.’
시안은 무릎을 꿇고 앉은 채 고개를 숙였다.
돌로라사의 방문이 열린 것이 기뻐서, 예고도 없이 자신을 끌어안은 시안을 돌로라사가 나무라지 않아 주어서, 아빠라고 불러 주어서, 웃어 주어서, 기쁘고 행복했다.
고개 숙인 시안을 가만히 바라보던 돌로라사가 두 팔을 뻗었다. 아이는 시안의 머리를 자신의 자그마한 품에 꼭 안아주었다.
“미안해요, 아빠. 나 때문에 속상했죠?”
“아냐. 아빠는 하나도 안 속상했어.”
“정말요? 돌리는 거짓말 싫어해요.”
시안의 커다란 어깨가 움찔 흔들렸다.
“……미안하다. 거짓말이었어. 속상했단다. 이토록 마음이 아팠던 건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어.”
“우응. 미안해요. 돌리가 정말 미안해요. 아빠는 나를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데 돌리가 몰라줬어요.”
“괜찮아. 너만 괜찮다면 내 마음 같은 건 몰라줘도 상관없어.”
돌로라사가 안았던 시안을 놓아주었다.
시안이 고개를 들고 딸과 눈을 맞추더니 자상하게 웃었다. 아까와 달리 조심스레 돌로라사를 당겨 품에 안았다. 자그마한 돌로라사는 시안의 커다란 품에 쏘옥 들어왔다.
시야에서 돌로라사가 사라지자 문틈으로 아이의 방이 보였다. 커튼이 쳐져 어두운 방에는 시안이 건네준 레이첼의 편지가 널브러져 있었다.
어떤 내용이었길래 돌로라사를 울리고 아이가 방문을 열게 했을까.
고민하는데 돌로라사가 시안의 셔츠를 쭉쭉 잡아당겼다.
“아빠, 저 궁금한 게 있어요.”
“뭐든 물어보렴. 거짓말하지 않고 솔직하게 대답해 줄 테니.”
“아빠는 왜 작고 귀여운 걸 모아요? 조개껍데기랑 돌멩이 같은 거요.”
“작고 귀여운 걸 보면 네 생각이 나니까. 이건 우리 돌리가 좋아하겠구나, 집에 가져다 두면 돌리가 좋아하겠지, 하면서 하나둘 모으게 되었어.”
“……그럼 토끼는 왜 좋아해요?”
“돌리를 닮아서.”
“여름은요?”
“네가 내게 와준 계절이 여름이었거든.”
“파란색은 왜 좋아하는데요?”
“돌리 네가 파란색을 좋아하잖니. 바다도 좋아하고 하늘도 좋아하고.”
돌로라사가 입을 다물었다. 아이는 시안의 품에서 색색 숨을 내쉴 뿐 뭔가 더 묻거나 말하지 않았다.
시안이 고개를 내렸으나 돌로라사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아이의 눈치를 살피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대답이 마음에 안 들어?”
“아뇨! 마음에 들어요! 엄청 마음에 들어요!”
항변하듯 고개를 들고 목소리를 높이는 돌로라사가 사랑스러웠다.
“말이 없길래 궁금해서 물어봤단다.”
“아빠가 저 때문에 그런 걸 좋아하시는 줄은 정말이지 꿈에도 몰랐어요.”
시무룩하게 대답하는 돌로라사를 보며 시안이 웃음을 터트렸다.
성숙해 보여도 아이는 아이였다. 레이첼은 듣는 순간 바로 눈치채던데, 그토록 애정을 보여주는데도 그게 자신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구나.
“아빠는 세상에서 돌리를 제일 사랑해. 돌리를 사랑하니까 돌리가 사랑하는 것들도 전부 좋아하게 되더라.”
“몰라줘서 미안해요.”
돌로라사가 짧은 팔을 시안의 허리에 감으며 안겼다. 자그마한 팔은 시안의 허리를 제대로 다 감지 못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시안은 충만해졌다.
“레이첼 백작이 편지에 써줬어요. 아빠가 좋아하는 것들은 다 저 때문에 좋아하게 된 거래요. 전 정말 몰랐거든요. 그냥, 아빠가 굉장히 귀여운 사람인 줄 알았어요.”
“그런 편지를 써주다니 레이첼 백작에게 감사 인사를 해야겠구나.”
“아빠가 저한테 거짓말을 해서 정말 깜짝 놀랐거든요. 그래서, 아빠가 거짓말쟁이인 줄 알고, 저를 예뻐하거나 좋아했던 게 다 거짓말이면 어쩌지, 하고 무서웠어요.”
“아빠가 돌리를 무섭게 해버렸네.”
시안의 품 안에서 돌로라사가 고개를 휙휙 저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이제 알아요. 어쩔 수 없었던 거잖아요. 돌리가 아직 어려서 제대로 말해주기 어려웠던 거죠?”
“그래. 아빠 눈에는 돌리가 아직 아기처럼 보이거든.”
“진짜 아빠라고 거짓말을 했지만, 그거 말고는 전부 다 진짜였던 거죠? 돌리가 제일 예쁘다는 거랑 돌리를 제일 사랑한다는 거랑 돌리랑 노는 걸 제일 좋아한다는 것도.”
“맞아.”
“히잉. 아빠아! 저도, 저도요! 저는 아빠를 정말 좋아해요! 아빠가 진짜 아빠가 아니어도 좋아해요! 황제 폐하한테는 안 갈 거예요! 돌리는 계속 아빠 딸 할 거예요!”
돌로라사가 울음을 터트렸다. 무서워서, 화가 나서, 서운해서, 속상해서가 아니라 안심해서, 기뻐서, 고마워서, 미안해서 터진 울음이었다.
시안은 돌로라사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아이를 품에 꼭 안아주었다.
* * *
레이첼과 그레이엄은 아까부터 저택 앞을 서성였다.
오늘은 레이첼과 돌로라사와 그레이엄이 함께 꾸민 케이크를 시안에게 전달해야 하는 날, 그러니까 시안의 생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레이엄이 발을 동동 굴렀다.
“공녀님이 오늘도 안 오시면 어쩌죠?”
“그러게. 다 같이 케이크를 전해야 대공 전하께서도 더 기뻐하실 텐데.”
“으으, 공녀님이 왜 안 오시는 걸까요?”
그레이엄에게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았다. 아이가 불안해하는 것이 안쓰러웠지만 사정을 설명하는 건 레이첼이 아니라 당사자인 시안과 돌로라사의 몫이었다.
똑똑하고 생각과 마음이 깊은 돌로라사였다. 레이첼의 편지를 읽었다면 쓸데없이 고집 피우지 않고 시안의 마음을 알아채 화해했을 것이다.
알면서도 불안했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건, 생각과 다르게 움직이는 경우도 많으니까.
검술 연습할 시간이 되자 저 멀리 정원 너머로 마차가 모습을 드러냈다. 고급스럽고 아름다운 디카르시냐크 가문의 마차였다.
마차가 저택 입구에 멈춰서자 마부가 자리에서 내려와 문을 열었다.
언제나처럼 단정한 훈련복을 갖춰 입은 시안이 마차에서 내렸다. 그는 레이첼과 스치듯 눈이 마주치자 전처럼 상냥하게 웃어주었다.
레이첼의 마음에 안도가 스몄다.
‘다행이다. 잘 해결됐나 봐.’
바닥에 내려선 시안이 마차 안으로 손을 내밀었다. 하얗고 앙증맞은 손이 문틈으로 쏙 빠져나오더니 시안의 손바닥 위에 놓였다. 돌로라사였다.
그레이엄이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듯 입술을 일그러트렸다.
“고으, 공녀님이다아.”
레이첼이 무릎을 굽히며 돌로라사와 시안을 맞았다.
“와주셔서 무척 기쁩니다, 대공 전하. 그리고 공녀님.”
돌로라사가 레이첼과 그레이엄을 보며 수줍게 웃었다.
“안녕하세요, 레이첼 백작, 그리고 그레이엄. 이렇게 나와서 기다려 주시다니 무척 부끄럽네요.”
“당연히 기다려야지요. 기분은 어떠신가요?”
“무척 좋습니다. 레이첼 백작 덕분이에요. 보내주신 편지 덕분에 아빠의 마음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걸 알았어요. 정말 고맙습니다.”
두 손을 포개 모은 돌로라사가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저는 정말이지 상상도 못 했답니다. 레이첼 백작은 아빠가 저 때문에 그 많은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는 걸 어떻게 아셨어요?”
정말 궁금하다는 투라서 레이첼이 눈을 깜빡이며 시안을 바라보았다. 사실대로 얘기해도 되겠냐는 물음이었다. 시안은 고개를 슬쩍 기울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제국 제일가는 디카르시냐크 대공 전하께서 좋아하신다기에는 지나치게 깜찍한 것들이었거든요.”
“정말요?”
“대공 전하께서 조개껍데기를 모으고 토끼를 좋아한다는 얘기를 들으면 원로회 귀족분들 모두가 깜짝 놀라실걸요?”
“말도 안 돼요! 아빠가 토끼랑 얼마나 잘 어울리는데!”
동의를 구하듯 돌로라사가 시안을 돌아보았다.
시안이 어깨를 으쓱했다.
“아빠가 저택 집무실에서 토끼 신발을 신는 걸 알게 되면 다이어 후작께서 놀라 쓰러지실지도 모르겠구나.”
“우와아.”
돌로라사는 시안이 밖에서 어떤 모습으로 어떤 일을 하는지 잘 몰랐던 모양인지 몇 번이나 깊은 감탄을 터트렸다.
“제가 아빠를 세상에서 제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봐요. 와아. 앞으로 아빠를 더 잘 알아가야겠어요! 아빠, 잘 부탁드립니다.”
“나야말로 잘 부탁한다, 돌리.”
“에헤헤. 아빠는 이제 그레이엄 검술 가르쳐 주러 가실 거죠? 저는 레이첼 백작이랑 드레스 맞추러…….”
얘기하던 돌로라사가 그레이엄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레이엄? 너 얼굴이 왜 그래?”
눈가가 빨개진 채 어깨를 들썩이던 그레이엄은 돌로라사의 부름에 결국 와앙 울음을 터트렸다.
“으앙! 공녀님이 나 미워하는 줄 알았어요! 그래서 이제 우리 집에 놀러 안 오는 줄 알았다고요! 흐아앙!”
“어머, 세상에. 그레이엄. 내가 너를 미워할 리가 없잖아. 이렇게 귀여운 아가인데 너를 왜 미워하니?”
“그치만, 그치만, 우리 집에 놀러 안 오니까! 보고 싶은데 안 와서 슬펐다고요!”
“그랬구나. 미안해.”
아가인 돌로라사는 더 아가인 그레이엄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어주었다.
“뚝, 그만 울어. 나는 그레이엄 안 미워해. 그레이엄이 얼마나 귀여운데 미워하겠어. 안 좋은 일이 있어서 잠깐 집에서 쉬었던 거야.”
“히잉. 정말이죠?”
“그럼, 정말이지.”
“공녀니임!”
“그래, 그래.”
돌로라사가 작은 팔로 그레이엄을 꼭 안아주자 그레이엄이 더 작은 팔로 돌로라사를 마주 안았다.
귀엽고 깜찍한 아이들의 모습을 배경으로 괴상한 소리가 들린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크헉. 크허헙.”
그레이엄과 돌로라사가 깜짝 놀랐는지 서로를 더 꼬옥 끌어안았고 시안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레이첼이 고개를 들고 소리가 들린 디카르시냐크 대공 가문의 마차 위를 바라보았다.
“하으아암. 아오, 시끄러워. 잠 다 깼네……. 근데 여기가 어디야?”
곧이어 마차 지붕 너머로 자그마한 머리통이 쑥 나타났다.
“어라? 여러분 안녕?”
아트레이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