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Mother Of the Male Lead Who Lives With An Ad**terous Man RAW novel - chapter (55)
불륜남과 사는 남주 엄마가 되었다 (55)화(55/151)
아트레이유가 디카르시냐크 대공 가문의 마차 위에서 잠든 건 한 시간 전의 일이었다.
돌로라사를 만나러 디카르시냐크 저택에 찾아갔는데 시안과 돌로라사가 외출 준비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오면 만나려고 마차 위에 누워서 기다리는 중이었는데 그만 깜빡 잠이 들어버린 것이다.
주변을 둘러보니 별로 놀라지 않은 얼굴의 시안과 깜짝 놀란 얼굴의 레이첼, 그레이엄, 그리고 돌로라사가 보였다.
아트레이유가 손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헤헤. 잠들어 버렸네.”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담백한 인사에 아트레이유가 씩 웃었다.
시가르였다면 뺨에 불이 날 정도로 호되게 혼냈을 일도 시안은 차분하게 대처했다. 아트레이유는 숙부의 이런 침착함과 관대함이 좋았다.
“안녕, 숙부! 레이첼 백작도 안녕! 둘리랑 그레이도 안녕!”
“오랜만에 뵙습니다, 황태자 전하.”
레이첼과 그레이엄, 돌로라사가 차례로 무릎을 굽혀 인사했다.
정중하게 인사하는 자그마한 돌로라사를 보자 아트레이유의 마음이 무거워졌다.
‘둘리……. 내 동생.’
아트레이유는 10살 평생 동생이라고는 꿈도 꿔보지 못했다.
어려도 알 건 다 아는 나이였다.
사이가 좋지 않은 아빠 시가르와 엄마 베아트릭스는 아트레이유가 태어난 뒤 단 한 번도 침실을 함께 쓰지 않았다.
동생이 태어나면 황실과 귀족 원로회가 분열될지도 몰랐으니 어찌 보면 다행이었다.
유능한 동생인 시안이 한때 황제 후보였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시가르가 그 사실을 얼마나 분해하는지 역시 무척 잘 알았다.
알면서도 동생이 있었으면 했다. 혼자서 공부나 하며 지내기에 황궁은 너무 넓고 외롭고 따분했다.
말도 안 되는 욕심인 걸 알기에 숙부인 시안을 형처럼 여기며 만족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랬는데.
‘나한테도…… 동생이 있었어.’
돌로라사는 자신의 출생이 밝혀진 것이 부끄러운지 전처럼 아트레이유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무척 안쓰러웠다.
원래도 귀여워했던 돌로라사였지만 지금은 전과 달리, 전보다 더 애틋하게 느껴졌다.
‘내 동생이니까 내가 지켜줘야 해. 내가 잘해줄 거야.’
주머니에 손을 넣어 가져온 상자를 꽉 쥐었다.
마차에서 훌쩍 뛰어내린 아트레이유가 돌로라사의 맞은편에 섰다. 손가락으로 괜히 코 밑을 슥슥 문질렀다.
“그, 뭐냐. 자, 잘 지냈냐? 아기 공녀 둘리야.”
돌로라사가 곁에 선 그레이엄의 손을 꼬옥 붙잡으며 눈을 깜빡였다.
“전 아기가 아니에요. 둘리가 아니라 돌로라사고요.”
“야, 우리 사이에 그냥 대충 불러.”
“우리 사이라니……. 우리 아무 사이도 아니잖아요.”
아무 사이도 아니라니! 우리는 남매잖아! 오빠와 여동생이라고! 세상에서 제일 귀엽고 깜찍한 여동생과 세상에서 제일 멋있는 오빠!
소리치고 싶은 마음을 꾹 참았다. 혹시 돌로라사가 곤란해할지도 모르니까 소리치고 싶어도 참아야 했다.
시안과 돌로라사만 있다면 모르겠지만 여기는 레이첼과 그레이엄도 함께였다.
“그, 그거참, 서운한 소리 하네!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이거나 받아! 오다가 주웠어!”
“네?”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작은 상자를 꺼내 불쑥 돌로라사에게 건넸다. 레이첼에게 주고 싶어서 시안에게 구해 달라고 했던 다이아몬드 목걸이였다.
곁에 서 있던 시안이 당황했다.
“황태자 전하. 그것은.”
“숙부, 쉿! 쉿!”
아트레이유는 검지 손가락을 세우며 시안에게 조용히 해달라고 손짓했다.
눈치 빠른 시안이 아트레이유의 마음을 눈치채고 피식 웃었다.
* * *
시안과 아트레이유, 그레이엄이 검술 연습을 하러 가고 레이첼과 돌로라사는 언제나처럼 응접실에서 드레스를 주문했다.
벌써 몇 주째 진행하는 드레스 주문이었지만 오늘은 평소와 달랐다. 돌로라사는 어울리지 않는 장식을 고르거나 방금 골랐던 장식을 알아보지 못했다.
캐롤이 눈치를 살피며 말수를 줄였다.
안타까웠다.
‘대공 전하와는 화해한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충격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닐 테니까. 이해해. 아직 일곱 살인걸. 일상으로 돌아가려면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거야.’
잘그락―
돌로라사가 원단 위에 고른 장식을 올리자 캐롤이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주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공녀님께서 주문해주신 가을 시즌 드레스는 모두 여덟 벌입니다. 드레스와 청구서는 제작이 끝나는 대로 저택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응. 고생 많았어, 캐롤.”
캐롤과 의상실 직원들은 공손히 예를 갖추고 신속하게 사라졌다. 이런 분위기 속에 오래 있어 봐야 좋은 것이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자들이었다.
돌로라사는 시안을 기다리는 내내 멍했다.
레이첼이 말을 걸면 웃으며 대답하는 모습에 더 마음이 아팠다.
‘……해주고 싶어. 주제넘은 일인지도 모르지만.’
가만히 곁을 지키던 레이첼이 의자에서 내려왔다. 그녀는 무릎을 굽히고 몸을 낮추며 돌로라사와 눈을 맞췄다.
“공녀님.”
“……아, 네. 레이첼 백작.”
“실례가 아니라면 제가 공녀님을 안아드려도 될까요?”
“……갑자기요?”
“네, 갑자기. 아무 이유도 없이. 제가 감히 그래도 될지 모르겠지만 허락하신다면 안아드리고 싶어요.”
“어…….”
황금처럼 곱게 반짝이던 눈이 느리게 깜빡였다.
깜빡, 깜빡, 눈이 감았다 뜨일 때마다 눈가에 물기가 어렸다.
단단한 척하려 애쓰던 일곱 살 아이의 마음이 조금씩 풀어졌다.
투욱, 눈물이 떨어져 뽀얀 뺨을 적시자 레이첼은 더 기다리지 않고 두 팔을 뻗었다.
자그마한 돌로라사는 종이 인형처럼 힘없이 끌려와 레이첼의 품에 안겼다. 드레스 앞섶은 금세 눅눅해졌고 아이의 몸은 바르르 떨렸다.
“레이, 레이첼 백작. 저어…….”
“천천히 말씀하세요, 공녀님.”
“백작도 다 들었죠? 다 알고 있는 거죠?”
“네. 죄송해요.”
이미 사교계에 소문이 쫙 퍼진 뒤였다. 레이첼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귀족이 돌로라사의 비밀을 알고 있었다.
돌로라사의 몸이 바르르 떨렸다.
“저, 저는 이제 어떻게 하죠? 사람들이 갑자기 너무 친절해져서 무서워요. 제가 황제 폐하의 딸이라서 그런가 봐요. 전 그냥 아빠 딸인데. 흑.”
“맞아요. 공녀님은 누가 뭐래도 대공 전하의 하나뿐인 따님이세요. 제국법에도 그렇게 쓰여 있는걸요.”
“아빠한테 너무 미안해요. 아빠는 맨날 괜찮다고 하고, 저만 있으면 된대요. 저도, 저도 아빠처럼 괜찮아지고 싶은데, 근데 자꾸 눈물이 날 것 같아요.”
“우셔도 괜찮아요.”
“싫어. 싫어요. 내가 울면 아빠가 속상해한단 말이에요……. 흐윽.”
돌로라사는 어깨를 들썩이며 눈물을 쏟았다.
갑자기 변해버린 사람들의 태도와 상황에 얼마나 무서웠을까. 어른도 쉽게 견디기 어려웠을 것을 이렇게 작은 아이가 겪어야 한다니 안타까웠다.
울고 싶지만 아빠가 속상할까 봐 마음껏 울지 못하는 성숙함도 슬펐다.
“대공 전하 앞에서 울지 못하실 땐 언제든 저를 찾아오세요. 실컷 울고 돌아가서 평소처럼 예쁘게 웃어주세요. 제가 공녀님의 대나무숲이 되어드릴게요.”
“흑. 흐윽. 미안, 미안해요. 레이첼 백작이랑은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인데…….”
“제가 안아드리고 싶어서 안아드리는 거예요. 이렇게 예쁜 공녀님을 품에 꼭 안을 수 있으니 오히려 저는 영광이죠.”
“그레이엄한테도 미안해요. 제가 백작에게 안기는 거 싫어하잖아요.”
“그레이엄도 이해할 거예요. 어리지만 똑똑하고 이해심이 깊은 아이이니까.”
결국 돌로라사는 와앙, 큰소리로 울음을 터트렸다.
“고마워요. 안아줘서, 다 알고서도 전처럼 다정하게 대해줘서…….”
품에 안긴 돌로라사의 등을 천천히 토닥여 주었다.
‘……나중에 나는 시어머니라는 불편한 존재가 되겠지만 지금은 아직 아니니까. 두 아이가 이어지기 전까지만, 공녀님에게 친한 동네 이모가 되어주자.’
“언제든 놀러 오세요. 드레스 제작은 끝났지만 그런 볼일이 없어도 언제든, 심심하거나 좋은 일이 있거나 슬픈 일이 있다면 언제든 달려와 얘기해 주세요. 기다리겠습니다.”
그레이엄과 돌로라사가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속셈 없는 순수한 초대였다.
레이첼은 두 아이의 미래와 상관없이 돌로라사를 집에 초대하고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돌로라사가 고개를 들고 레이첼과 눈을 맞췄다.
“그, 그래도 되나요?”
“그럼요. 오지 않으신다면 섭섭할 거예요.”
“응! 레이첼 백작이 섭섭하지 않게, 정말 자주 놀러 올게요!”
역시 원작 여주인공.
눈물에 젖어 퉁퉁 부은 얼굴도 사랑스러웠다.
검술 연습과 드레스 주문이 끝난 뒤 다섯 사람이 프람 저택 응접실에 모였다.
돌로라사의 퉁퉁 부은 얼굴을 발견한 시안과 아트레이유, 그레이엄은 깜짝 놀랐다.
돌로라사는 드레스 주문이 끝난 것이 아쉬워서 울었다고 변명했다. 그 말을 믿는 사람은 없었지만, 캐물어 아이를 곤란하게 하는 사람도 없었다.
모두가 돌로라사를 소중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지금은 시안과 아트레이유가 갑자기 사라져 버린 그레이엄과 돌로라사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아트레이유가 의자 팔걸이에 걸터앉아 시안과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와, 그럼 숙부랑 둘리는 올 때마다 매번 여기서 놀다 간 거야? 나 빼고?”
“아뇨. 검술 훈련이 끝나고 응접실에 초대받은 건 저도 처음입니다. 오늘은 돌리가 같이 놀다 가도 괜찮다고 허락해 주어서요.”
“그래? 왜 그러지? 이제 혼자 노는 거 지루해졌나?”
“글쎄요. 여기서 뭘 하고 놀았는지도 말해주지 않더군요. 곧 알려 주겠다고 했으니 일단은 기다려 볼 생각입니다.”
이유를 아는 레이첼이 빙긋 웃었고, 때마침 응접실 문이 열렸다.
“왔다! 요 꼬맹이들, 대체 어디서 뭘 하다가 이제야 오는……. 오잉?”
아트레이유와 시안의 황금빛 눈동자가 동그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