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Mother Of the Male Lead Who Lives With An Ad**terous Man RAW novel - chapter (57)
불륜남과 사는 남주 엄마가 되었다 (57)화(57/151)
“사고를 조사하는 중에 석연치 않은 점이 발견되었습니다. 한겨울 눈길도, 사고가 자주 나는 지역도 아니었는데 마차가 언덕 아래로 미끄러져 떨어졌더군요.”
“그랬군.”
“하지만 조사 결과 마차에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혹시나 하고 말과 마부도 조사해 보았습니다.”
“어땠지?”
“정확한 건 아직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사고가 난 당일 말과 마부가 전부 죽어서요. 다만 가족들의 말에 따르면 당시 마부의 상태가 이상했다고 합니다.”
“상태가 이상하다고?”
“마부는 말을 돌보는 사람인 만큼 체력도 좋고 건강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고가 일어나기 1년 전부터 갑작스레 잠이 늘고 피로를 호소했다고 하더군요.”
이야기를 듣는 시안의 눈이 가늘어졌다.
“……익숙한 증상이군.”
“예. 제지우스 폐하께서도 돌아가시기 2년 전부터 부쩍 잠이 늘고 피곤해하셨지요.”
시안이 생각에 잠겼다.
‘아버지의 죽음과 프람 가문의 마차 사고 사이에 연결고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건 과한 추측일까. 시가르가 변방 귀족의 마부에게 일부러 독을 썼다고 생각하긴 어려운데.’
사실 시가르가 제지우스에게 독을 썼다는 건 심증일 뿐이었다. 시안을 비롯한 누구도 시가르를 조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일단은 마차 사고 조사를 계속하자. 섣부른 짐작은 금물이야.’
심각한 얼굴로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뜬 시안이 입을 열었다.
“당시 마부가 어떤 상태였는지, 뭘 먹거나 다른 이상 행동을 보이지는 않았는지 확인해야겠다. 닉, 부탁하지.”
“알겠습니다.”
“레이첼 백작에게 넘기기 전에 성과 영지도 살펴봐야겠어.”
“제가 다녀올까요? 아니면 직접 다녀오시겠습니까?”
닉에게 다녀오라고 하려다가 말을 멈췄다.
레이첼이 태어나고 자란 곳이었다. 혹시 남아 있을지도 모를 그녀의 흔적을 한 번쯤 눈에 담고 싶었다.
“내가 직접 다녀오지.”
“다른 일정에 차질이 없도록 준비하겠습니다.”
“매번 고맙다.”
“별말씀을.”
짧게 대답한 닉이 집무실을 나갔다.
홀로 남은 시안은 눈을 감았다. 잠이 늘었다던 마부의 상태 때문일까. 7년 넘게 잊고 살았던 제지우스의 죽음이 갑자기 눈앞으로 다가왔다.
‘아버지.’
마음이 요동쳤다.
* * *
같은 시각, 집무실에 앉은 레이첼이 눈을 반짝였다. 프람 성과 영지를 사러 간 케이티가 지금 막 저택으로 돌아온 참이었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린 뒤 케이티가 집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다녀왔습니다, 레이첼 백작님.”
“어서 와, 케이티! 기다렸어. 갔던 일은 어떻게 됐어?”
“그게…….”
케이티는 답지 않게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죄송합니다. 프람 성과 영지를 사지 못했습니다.”
“못 샀다고? 왜? 돈이 부족하지는 않았을 텐데.”
테오도르가 프람 성과 영지를 팔고 받은 금액의 두 배를 준비했다.
놈이 워낙 싸게 팔았기 때문이기도 했고, 지금의 주인이 성과 영지를 마음에 들어 하면 웃돈을 얹어서 사와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케이티가 고개를 푹 숙였다.
“주인이 최근 다른 사람에게 팔았다고 합니다. 그것도 꽤 비싼 가격에요.”
“팔았다고?”
이상한 일이었다.
프람 성과 영지는 테오도르가 팔기 전과 후 몇 년간 전혀 거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누군가 일부러 사고팔 만큼 매력적인 땅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런 곳을 이렇게 타이밍 좋게, 그것도 꽤 비싼 가격에 산 사람이 있다니.
레이첼이 미간을 좁혔다.
“으음. 공교롭네. 하필 우리가 사려는 시점에 다른 사람이 사들이다니.”
“면목 없습니다. 제가 조금 더 빨리 움직였다면 살 수 있었을 거예요.”
“자책하지 마. 최근에 샀다는 건 이보다 훨씬 전부터 사려고 준비했다는 의미니까. 며칠 빨리 움직이는 정도로는 사지 못했을 거야.”
“전부터 사려고 준비를 했다니. 비싼 값에 샀다는 얘기를 듣고 당연히 충동구매인 줄 알았습니다.”
“거긴 충동구매를 할 만한 가치가 없어. 팔려고 내놓은 곳도 아니었잖아. 일부러 찾아가서 샀다는 건 뭔가 목적이 있었다는 뜻이야.”
“하긴…….”
“너무 속상해하지 마. 다른 사람이 샀다고 우리가 영영 못 사는 건 아니니까. 새 주인한테 사면 돼.”
“팔까요? 사들인 목적이 있을 거라고 말씀하셨잖아요.”
“그러니까.”
레이첼이 깍지 낀 손 위에 턱을 올리며 씩 웃었다.
“목적이 분명하면 오히려 쉬워. 그 사람이 목적한 걸 이루게 도와주면 돼.”
“그렇군요.”
“그러니까 케이티. 앞으로도 잘 부탁해.”
케이티가 깜짝 놀라 말을 더듬었다.
“아,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니……. 저를 용서해 주시는 건가요?”
“용서하고 말고 할 게 어디 있어? 그냥 운이 나빴을 뿐이라고 했잖아.”
감동했는지 케이티의 눈동자가 떨렸다. 그녀는 입을 꾹 다물었다가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믿고 다시 기회를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일단 성과 영지를 사들인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봐야겠어요. 이번에는 실패하지 않겠습니다.”
“고마워. 이래야 케이티답지.”
시원한 대답에 케이티가 뺨을 조금 붉혔다.
“레이첼 백작님께서 제 롤모델이라는 말, 제가 했던가요?”
서류를 뒤적이던 레이첼이 케이티의 말에 웃음을 터트렸다.
“롤모델? 내가?”
“나쁜 짓을 저지른 놈들에게 마냥 당하지 않는 모습도 그렇고, 다른 사람이었다면 감정적으로 대처했을 일을 침착하게 해결하시는 모습도 그렇고요.”
“아하하, 부끄럽네. 칭찬 고마워.”
“일에 실패해도 여유롭게 웃으며 다음을 준비하는 모습이 참 존경스럽습니다.”
“그야, 당장은 안 좋은 일처럼 보여도 나중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니까. 성하고 영지를 못 산 건 아쉽지만…… 혹시 아니? 지금 못 산 게 나중에 엄청난 행운이 될지.”
“역시 멀리 보고 길게 생각하시는군요.”
“그렇게 칭찬받을 만한 일은 아니야.”
“그렇다면 제인에게 저를 보내신 것도 전부 계획이 있어서 그러셨던 건가요? 저였다면 제 전남편과 바람피운 여자에게 그렇게 못할 것 같거든요.”
“아, 그거?”
레이첼이 싱긋 미소 지었다.
* * *
“자! 이게 마지막이다! 이것도 싫다고 내팽개치면 그때는!”
커다란 몸집의 여자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때는?”
“다, 다른 걸 가져오겠다.”
여자가 씩 웃으며 테오도르가 내민 병을 받아들었다.
테오도르가 속으로 툴툴거렸다.
‘젠장. 대체 이게 몇 번째야?’
제인이 어디로 이사 갔는지 알려주겠다던 로튼 스트리트의 여자에게 물건을 가져다주고 퇴짜 맞은 횟수가 벌써 네 번이었다.
레이스 달린 손수건, 낡은 은식기, 베렝겔라가 그린 그림, 하얀 양산까지. 돈은 안 되지만 베렝겔라가 아끼던 것들이라 여자도 좋아할 줄 알았는데 오산이었다.
결국 테오도르는 베렝겔라가 먹다 남긴 술을 가져오기에 이르렀다. 마시던 술인 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물을 채우고 새것처럼 마개도 닫았다.
‘제발, 제발. 들키지 마라, 제발!’
속으로 간절히 비는데 여자가 병을 열고 냄새를 맡더니 킬킬 웃었다.
“이제야 마음에 드네. 그깟 손수건이며 쥐똥만 한 숟가락을 어디에 쓰라고 가져오나 했어.”
“마, 마음에 들었다니 다행이군. 이제 제인이 어디로 이사 갔는지 얘기해라.”
“저어기 수도 남쪽 외곽 숲에 오두막을 얻어서 산다고 하더이다. 약초꾼 말을 들으니 마당에서 개도 키우고 밭도 일구면서 지내는 거 같더라고.”
“오두막이라고?”
테오도르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역시! 제인은 돈이 남은 게 틀림없어. 외곽이라지만 마당에 밭도 일구고 개도 키울 정도면 꽤 여유롭다는 뜻이잖아.’
테오도르가 7년 동안 제인에게 준 돈을 다 합치면 제법 금액이 컸다. 그걸 전부 받아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들떴다.
월세가 밀린 데다 엉망이 된 타운 하우스를 떠올렸다. 제인에게 돈을 받아 더러운 타운 하우스를 벗어날 계획을 세웠다. 시녀도 고용하고, 길드에도 가고, 레이첼도 만나고…….
즐거운 상상을 이어가는데 여자가 몸을 돌렸다.
“그럼 잘 가시오.”
“엇, 자, 잠깐!”
상념에서 깨어난 테오도르가 여자를 붙잡았다.
“구체적으로 어디에 사는지도 알려줘야지! 수도 남쪽 숲이 얼마나 넓은데 이렇게만 말해주고 가는 거냐!”
“그것까지는 나도 모르지. 내가 가본 것도 아니고 그런 걸 어찌 알겠어? 나머지는 알아서 찾으쇼.”
“이봐. 이봐!”
팔을 휘둘러 테오도르를 떼어낸 여자가 골목으로 사라졌다.
“젠장.”
욕을 지껄인 테오도르가 걸음을 서둘러 수도 남쪽으로 향했다. 너른 숲을 헤맬 생각에 벌써 진저리가 났다.
테오도르가 사라진 뒤 골목으로 들어갔던 여자가 건물 뒤에서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에잇, 더러운 놈. 먹다 남은 술을 주다니.”
여자는 테오도르에게 받은 술병을 쓰레기더미에 내팽개치고 퉤퉤 침을 뱉었다.
“좋다고 따라다닐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저러고 다니나 몰라.”
골목에 오래 산 사람들은 대체로 이웃에 누가 사는지 잘 알았다. 여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제인의 집에 테오도르가 뻔질나게 드나들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여자는 금화가 든 주머니를 꺼내 짤랑거리며 씩 웃었다. 주머니에는 프람 백작 가문의 인장이 금실로 수놓아져 있었다.
여리여리하게 생긴 레이첼 프람 백작이 골목에서 대장 노릇을 하는 여자를 찾아온 건 테오도르가 나타나기 얼마 전이었다.
‘부탁 좀 들어줘. 어렵지 않아. 저 집에 드나들던 테오도르라는 남자가 찾아오면 적당히 놀아주다가 제인이 사는 곳을 알려주면 돼.’
‘몇 년이나 이웃으로 산 정이 있소. 안 가르쳐 줄게요.’
‘정이 있으니까 가르쳐 주라는 거야. 제인이 키우는 개가 좀 사납거든.’
웬 개.
흥, 콧방귀를 뀌려는데 백작이 금화 주머니를 건넸다. 번쩍이는 금화를 확인한 여자는 죄책감도 망설임도 없이 백작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말 한마디 안 나눠본 인간이 이웃은 뭔 이웃이야. 그딴 이웃의 정 따위 개나 주라지.”
여자가 주머니에서 금화를 꺼내 잇자국을 냈다.
“레이첼 백작인지 뭔지가 지켜준다고 했으니까. 알아서 하겠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