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Mother Of the Male Lead Who Lives With An Ad**terous Man RAW novel - chapter (6)
불륜남과 사는 남주 엄마가 되었다 (6)화(6/151)
칼의 주름진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분위기가 나빠지길 바라고 한 일이었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택에 문제가 있는 사용인이 마샤 하나뿐인 건 아니잖아. 이 일을 계기로 다들 한 번쯤 자신이 저지른 일을 되돌아보길 바랐거든.”
레이첼의 말대로 엘로사 저택의 사용인은 대부분 문제가 있었다. 마샤가 오랜 시간 위로회 활동을 하는 동안 아무도 그녀를 고발하지 않은 것이 증거였다.
사정과 형태는 달라도 다들 비슷한 생각이었다.
‘테오도르 백작은 어차피 저택에 신경 쓰지 않는다. 레이첼 백작 부인은 선량한 사람이지만 똑똑하지 못하다. 그러니 적당히 일하는 척하며 이 집안에 빌붙자.’
열심히 일하는 건 칼뿐이었다. 그에게 테오도르는 무척 ‘특별한 사람’이었으니까. 그런 그마저도 다른 사용인은 손을 놓은 상태이니 할 말 다 했다.
가장 먼저 마샤를 벌준 건 그녀가 유모였기 때문이었다. 다른 잘못보다도 아이를 소홀히 돌본 것이 가장 질이 나쁘다고 판단했다.
조금은 과한 방식으로 마샤를 내보내면서 다른 사용인들이 정신 차리길 바랐다. 훔쳐 간 물건이 있다면 돌려놓고, 맡은 일을 소홀히 하지 않기를 바랐다.
……뭐, 모든 사용인이 그렇게 순진하게 움직여 주진 않겠지만.
칼이 한숨을 내쉬고 머리를 조아렸다.
“……제가 사용인을 제대로 단속하지 못한 탓입니다. 용서하십시오.”
“그동안 내 할 일을 칼에게 맡겨뒀던 거잖아. 내가 미안하지. 앞으로는 꼼꼼하게 신경 쓸게.”
“사용인들에게는 마샤의 잘못을 알리고 몸가짐을 조심하라 이르겠습니다.”
“응, 부탁할게.”
대화는 마무리되었다.
사용인을 핑계로 레이첼을 겁주려던 칼의 계획은 실패했다. 오히려 그녀는 칼과 사용인의 잘못을 꼬집어 혼내주었다.
응접실을 나서는 칼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요즘 백작 부인께서 평소와 다른 것 같아. 더 조심할 필요가 있겠어.’
너무 늦은 생각이었다.
마샤가 해고된 뒤 레이첼은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그레이엄과 저녁 식사를 함께했다.
그레이엄은 무척 신이 났다.
“오늘은 정말 엄마랑 둘이서 저녁 먹어도 되는 거예요?”
“엄마랑 둘이서 밥 먹고 싶었어?”
“그럼요! 저는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좋으니까요!”
“앞으로는 매일매일 엄마랑 밥 먹자. 어때?”
“좋아요! 신난다!”
얼마나 신이 났는지 깡충깡충 뛰면서 레이첼이 앉은 의자 주변을 몇 바퀴나 빙글빙글 돌았다.
“저 오늘은 혼자 정원에서 놀았어요! 잘했죠?”
“정말? 혼자 놀기 심심하지 않았어?”
“전혀요! 이거, 엄마 드리려고 만들었어요!”
그레이엄이 기다렸다는 듯 식탁 구석에 놓아두었던 접시를 들고 와 레이첼에게 내밀었다. 오목한 접시 안에는 꽃 몇 송이가 들어 있었다.
“엄마가 매일 마시는…… 꼬차? 그거예요!”
꽃차!
나른한 오후면 홀로 꽃차를 마시던 레이첼의 취미를 요 자그마한 녀석이 알아준 것이다.
레이첼은 그레이엄이 내민 접시를 받아들고 꿀꺽꿀꺽 마시는 시늉을 했다.
“와아. 엄마가 매일 마시던 차보다 훨씬 맛있고 예쁜데?”
“에헤헤.”
“이건 엄마가 계속 보관해도 될까?”
“그럼요! 엄마 선물이니까.”
조그마한 그레이엄의 얼굴에 행복에 겨운 미소가 활짝 피었다.
예뻐서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소설 속에서 그레이엄은 세상에 다시 없을 미남으로 묘사되었다. 과장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네 살이지만 아이의 외모는 눈이 부실 만큼 어여뻤으니까.
의자에 앉아 식사를 시작하려던 그레이엄이 갑자기 울상이 되었다.
“아, 엄마. 흘렸어요…….”
구운 소고기 한 조각을 떨어트린 모양이었다.
“이런. 아쉽지만 주워 먹으면 안 돼. 더럽거든. 새로 가져다 달라고 할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알았지?”
“네! 착하게 기다릴게요.”
씩씩한 대답이 귀여워서 웃었다.
맞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더러운 고기를 주워 먹으면 안 되는 거다.
아깝고 아쉽다고 주워 먹었다가는 크게 탈이 나기 마련이니까.
레이첼은 태어나자마자 테오도르의 정략결혼 상대가 되었다. 테오도르가 네 살, 그러니까 지금의 그레이엄 나이일 때였다.
대책 없는 낭만주의자인 테오도르는 철이 들 무렵 제 처지를 비관하고 좌절했다.
‘사랑 없는 정략결혼이라니 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결혼 준비를 시작할 무렵 나타난 작고 어린 제인은 그런 테오도르에게 완벽한 도피처가 되어 주었다. 이뤄질 수 없기 때문인지 그는 더 불타올랐다.
‘신분 차이, 나이 차이, 게다가 부모까지 반대하는 사랑이라니 이 얼마나 가혹한 운명이란 말인가! 끔찍한 일이지만 사랑의 힘으로 극복하고 말겠어!’
……라는 것이 테오도르의 생각이었다.
참으로 웃기는 일이었다.
비극 소설을 쓰려면 혼자 쓸 것이지 불쌍한 레이첼은 왜 끌어들여서 이 사달을 만드는지.
레이첼은 테오도르에 대한 적의를 불태우듯 열정적으로 고기를 썰었다.
엄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레이엄은 식사 내내 다리를 동동 흔들며 조잘조잘 떠들었다.
“아까 막대기를 주워서 책 속의 기사 흉내를 냈는데 재미있었어요.”
“그레이엄이 기사라니, 정말 멋지다. 나중에 엄마도 지켜주기야.”
“그럼요! 엄마는 제가 꼭 지켜드릴게요. 나쁜 놈이 나타나면 저한테 얘기하세요. 엄마를 아프게 하면 누구도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
그러더니 그레이엄은 정말 기사라도 된 듯 허리를 반듯하게 세우고 눈을 빛냈다.
남편은 지켜주는 척도 안 하는데 아들이 믿음직스럽구나.
기쁜 마음에 레이첼이 방긋 웃었다.
“고마워. 나중에 그레이엄한테 여자친구가 생기면 좀 서운할 것 같네.”
“저 여자친구 안 사귈 거예요.”
“정말?”
그러면 안 되지. 돌로라사가 서운해한단다.
“나중에 어른이 되면 생각이 달라질 거야.”
“싫어요! 저한테는 엄마뿐이라고요!”
그레이엄이 의자에서 내려오더니 쪼르르 달려와 레이첼의 허리를 꼭 껴안았다.
그래, 그래, 하면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낯가림이 심하고 내성적인 아이는 어렸을 때부터 엄마만을 따랐다. 유모인 마샤가 그 모양이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덕분에 레이첼의 죽음이 그레이엄에게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가 됐을 테고.
안타까웠다.
착하고 수줍음 많은 아이에게 또래 친구를 만들어 주고 싶었다. 당장이라도 돌로라사를 찾으러 떠나고 싶었다. 그녀라면 상냥하고 멋진 친구가 되어 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아직 이혼이며 돈 같은 문제가 산더미였다.
당분간은 레이첼이 그레이엄에게 친구가 되어 주어야 했다.
‘조금만 기다리렴, 그레이엄. 오늘 엄마가 네 미래의 장인어른에게 미끼를 던져 놓았단다.’
얼른 시안이 테오도르를 미행하길 바랐다. 불륜의 증거를 찾았다고, 고맙다고 찾아오면 그걸 이용해 이혼도 하고 그레이엄과 돌로라사도 만나게 해줘야지.
생각만 해도 벌써 기대가 됐다.
* * *
오늘도 칼은 어김없이 똑같은 질문을 했다.
“오늘 일정은 어떻게 되십니까?”
“오늘도 서재에서 책을 읽으려고. 어제부터 읽기 시작한 소설이 참 재미있거든. 제목이 <불륜남과 사는 남주 엄마가 되었다>인데, 남편과 이혼한 젊은 백작 부인이 멋진 공작을 만나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야.”
“크흠.”
관심 없으니 그만 떠들라며 칼이 헛기침했다.
레이첼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을 멈췄다.
“아, 이런. 이런 이야기 안 좋아하는구나. 미안해.”
“아닙니다. 오늘은 종일 서재에서 보내시는 것으로 알고 있겠습니다. 길드에서 보낸 청구서가 도착했는데 확인하시겠습니까?”
길드의 청구서!
벌써 불륜의 증거를 다 찾은 걸까?
두근두근 떨리는 마음으로 꼭꼭 접힌 종이를 펼쳐 읽었다.
[의뢰 비용을 청구합니다.저택까지의 왕복 출장비: 20골드
대기 비용: 13골드
선수금: 5골드
주문하신 물건들을 찾는 중입니다. 길드의 명예를 걸고 반드시 지정한 날짜까지 보내드리겠습니다.
길드 수석 정보원, 알리아스]
아쉽게도 레이첼이 원하는 내용은 적혀 있지 않았다.
생각보다 일이 빨리 처리되지 않아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군대를 파견하지 않는 걸 보면 레이첼의 말이 완전히 거짓이 아니라는 건 확인한 듯했으니까. 그나마 다행이었다.
‘내가 구해 달라고 했지만 확실한 불륜의 증거가 뭘지 짐작도 안 돼. 여긴 카메라나 문자 메시지도 없잖아.’
시안은 똑똑한 사람이니 그를 믿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다 읽은 종이를 칼에게 건넸다.
“청구된 비용을 지급해 줘. 그밖에는?”
“베렝겔라 부인께서 오늘 중에 저택에 도착하실 예정이라는 전갈을 받았습니다.”
“드디어 오늘이구나. 알았어. 손님 맞을 준비를 해줘.”
베렝겔라 엘로사. 테오도르의 어머니이자 레이첼의 시어머니.
다행히 베렝겔라의 선물은 그녀가 도착할 시간에 맞춰 준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들의 탈세와 재산 은닉의 증거를 확인하면 그 깐깐한 부인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벌써 궁금했다.
“장부, 장부, 장부……. 옳지.”
먼지 쌓인 책장을 훑으며 필요한 책을 골라냈다. 책을 꺼낸 곳이 티 나지 않도록 다른 책을 끼워 넣거나 순서를 바꿨다.
지난 며칠, 레이첼은 소설을 읽는 척 서재를 드나들며 저택 관리와 재정에 관련된 서류를 찾아냈다.
저택 관리를 소홀히 하는 테오도르는 중요한 정보가 담긴 서류를 서재 이곳저곳에 끼워두었다.
“예상은 했지만 정말 엉망이야.”
장부는 황궁에 보고하거나 세금을 내기 위해 형식적으로 정리한 것들이었다.
테오도르가 관리하는 엘로사 백작령은 농지가 많고 기후가 온후해 늘 풍작이 드는 곳이었다. 그런데도 전 백작이었던 테오도르의 부친이 죽은 뒤에는 늘 살림이 빠듯했다.
‘테오도르가 백작위를 물려받은 뒤부터 대놓고 제인에게 퍼주기 시작했으니까.’
처음에는 ‘빈민구제비’라는 웃기지도 않은 항목을 썼다. 제인이 평민이기 때문이었던 모양이다. 제인이 들으면 자존심 상해할 일이었다.
시간이 조금 지난 뒤에는 아예 수입이 줄어들었다. 수입의 일부를 제인에게 주고 남은 금액만 가문의 수입으로 기록했다.
수입이 줄었으니 당연히 세금도 줄어들었다. 꿩 먹고 알 먹고라며 좋아했을 테오도르의 얼굴이 눈에 선했다.
레이첼은 콧방귀를 뀌었다.
“제 자식은 밥 사 먹을 돈이 없어 용병 일을 나갔다가 살인귀가 되도록 놔두고 말이지. 하여튼 생각할수록 나쁜 자식이라니까.”
머리가 크면서 그레이엄도 테오도르가 벌인 짓을 알게 되었다. 아이는 인간과 사랑을 믿지 않았고 인류애를 잃었다. 그런 아이에게 사람을 죽이는 용병 일은 식은 죽 먹기였다. 살인하는 데 망설임이 없고, 동정을 호소해도 들어주지 않았다.
불쌍한 그레이엄.
정리를 대강 마치고 읽던 소설책을 펴 자리에 앉았다.
두 챕터를 읽었을 즈음 서재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마님, 베렝겔라 엘로사 부인께서 도착하셨습니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응, 지금 나갈게. 칼은 테오를 불러줘.”
자, 그럼 며느리를 못 잡아먹어 안달하는 시어머니에게 선물을 주러 가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