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Mother Of the Male Lead Who Lives With An Ad**terous Man RAW novel - chapter (61)
불륜남과 사는 남주 엄마가 되었다 (61)화(61/151)
제인의 눈에 다시 눈물이 차올랐다.
“흑. 감사해요. 정말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됐어. 당신은 레이첼 백작님 눈에 띄지 않고 조용히 사는 게 도와주는 거야. 전 남편이랑 바람난 내연녀 얼굴이 뭐가 예쁘다고 자꾸 보고 싶겠어?”
“그런, 그런 건가요…….”
“난 아직도 이해가 안 된다니까. 백작님은 왜 당신 손을 치료해주고 거처를 마련해 준 것도 부족해서 테오도르한테 한 방 먹일 방법까지 알려주셨을까?”
케이티가 입술을 삐죽였다.
“나였다면 절대 안 했을 일인데. 백작님은 너무 선량하셔. 어쨌든 이 짓도 오늘이 마지막이야. 붕대 갈아주고 난 가봐야겠어. 약상자는 어디 있지?”
“아, 이쪽에 넣어뒀어요. 잠시만요.”
케이티가 꾸물거리는 제인을 밀어내고 약상자를 꺼냈다. 바람난 여자의 손을 치료해주는 일은 내키지 않지만 레이첼의 부탁으로 하는 일을 소홀히 하고 싶지도 않았다.
평소 제인의 손 치료는 숲 지기 의사가 맡았다. 하지만 테오도르가 곧 제인을 찾아온다는 소식을 들은 레이첼은 케이티를 직접 제인에게 보냈다.
‘마무리하고 오라는 뜻이겠지.’
제인의 붕대를 다시 감아주는 동안 오두막은 고요했다. 제인이 마음에 들지 않는 케이티는 그녀에게 뭔가 말하고 싶지 않았고, 제인은 그런 케이티의 눈치를 살폈다.
안절부절못하며 주변을 살피던 제인은 약상자 안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고 화색을 띠었다. 그녀는 케이티가 붕대를 모두 감아주자 얼른 약상자에서 발견한 것을 꺼냈다.
“저, 케이티 님. 이거 가져가세요.”
“이게 뭐지?”
잘그락, 맑은소리가 나는 주머니였다.
“테오도르가 프람 백작 저택으로 보내던 물건이에요. 비싼 거라고 하길래 몇 개 슬쩍 했는데 뭔지 몰라서 약상자에 처박아 두고 잊어버리고 있었어요.”
“흐음.”
케이티가 주머니를 받아들었다. 안에 든 것은 생각보다 가벼웠다.
“일단 받아 갈게.”
“아, 감사합니다!”
“감사할 거 없어.”
별거 아니라는 게 확인되는 순간 벽난로 속에 던져서 태워버릴 거니까.
말 대신 눈빛으로 싸늘하게 덧붙인 케이티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제인의 오두막을 나섰다.
* * *
망토를 쓰고 안대로 눈을 가린 시안이 길드 안으로 들어섰다.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1층을 물처럼 부드럽게 빠져나온 그는 구석에 난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올랐다.
계단 끝에 도착해 집무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소박한 길드장의 의자는 텅 비어 있었다.
“대공 전하께 변하지 않는 충성을.”
시안이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긴 백발을 단정하게 올려 묶은 사내가 문가에 한쪽 무릎을 세우고 앉아 예를 갖추고 있었다.
“휘지우스.”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내가 너무 늦은 건 아니겠지.”
“대공 전하께서 오시기에 늦은 때란 없습니다.”
시안이 책상에 챙겨온 서류와 도장을 내려놓자 그제야 휘지우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휘지우스의 흰 동공이 시안을 담았다.
“와주셔서 기쁩니다.”
“길드의 인장을 보냈는데 당연히 와야지. 오라고 보낸 것 아니었나?”
“맞습니다. 부족한 계략에 매번 속아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가볍게 웃는 시안의 등에 대고 휘지우스가 입을 열었다.
“어전회의 소식은 들었습니다.”
“빠르군.”
“드디어 시가르에게 반기를 드시는 겁니까?”
“반기라는 표현은 거북한데. 다만 전처럼 납작 엎드려 지내지는 않을 생각이다.”
“7년이나 기다렸습니다. 저는 대공 전하의 부친께 그딴 짓을 저지른 놈을 용서할 수 없어요. 전하께서 명하신다면 언제든 놈의 목을 치겠습니다.”
“고맙다, 휘지우스. 그대의 일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신경 쓰게 만들어 미안하고.”
“누구도 아닌 대공 전하의 일입니다. 어떻게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눈부신 백발과 백안, 창백한 피부. 심각한 백색증을 앓는 휘지우스는 불길하다는 이유로 어린 시절 부모에게 버림받고 밑바닥을 구르며 노예보다 못한 삶을 살았다.
그런 휘지우스에게 길드는 생명줄이었다. 눈을 가리고 머리카락을 숨긴 시안은 자신처럼 눈을 가리고 머리카락을 숨긴 휘지우스를 쉽게 받아들였다.
휘지우스는 자신을 받아들여 준 길드와 시안에게 크게 감동했고 충성을 맹세했다. 짐승처럼 집착하고 매달리며 자신의 충성을 표현했다.
시안은 다듬어지지 않은 휘지우스를 길들여 길드장의 자리에 앉혔다. 휘지우스는 숨을 죽인 채 기꺼이 시안에게 길들여졌고, 손발이 되어주었다.
“언젠가 이런 날이 오면 드리려고 준비해 둔 것이 있습니다.”
“뭐지?”
벽을 더듬어 비밀금고를 연 휘지우스는 안에서 주먹만 한 주머니를 꺼냈다. 주머니 안에 든 것들이 부딪히며 잘그락, 맑은소리가 났다.
휘지우스에게 주머니를 건네받은 시안이 안에서 내용물을 꺼내 살폈다. 얇은 유리 막대처럼 생긴 기이한 물건이었다.
“……이게 뭐지? 처음 보는 물건인데.”
“유리 나무의 뿌리입니다.”
“유리 나무?”
“백 년에 한 번 발견될까 말까 한 아주 귀한 나무입니다. 보시다시피 연약해서 다 자라기 전에 산짐승의 발에 밟혀 죽는 것이 보통이지요. 온 제국을 다 뒤져서 겨우 그만큼을 구했습니다.”
“그런가.”
“유리 나무를 따뜻한 물에 달여 마시면 기분이 좋아져 잠이 잘 옵니다. 약초꾼들 사이에서는 ‘천사의 자장가’라고 불리지요.”
천사의 자장가라는 별명에 걸맞게 유리 나무에서는 향긋하고 포근한 냄새가 풍겼다. 햇빛에 비추니 무척 아름다운 무지개가 그려졌다.
휘지우스가 표정을 딱딱하게 굳혔다.
“시가르가 제지우스 전 황제 폐하께 선물했던 것이기도 합니다.”
“……뭐?”
시안의 목소리에 분노가 서렸다. 그는 눈앞에서 영롱하게 빛나는 물건을 당장 으스러트릴 듯 노려보았다.
휘지우스가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세간에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만, 유리 나무는 사실 오랜 시간 복용하면 영면에 드는 독입니다. 귀한 것이라 꾸준히 많은 양을 복용해본 자가 많지 않을 뿐.”
“그대는 그걸 어떻게 알았지?”
“독은 햇볕 아래 사는 약초꾼보다 저처럼 음지에서 굴러본 자들이 더 잘 아는 법이니까요. 이보다 더 조용히 누군가를 죽일 수 있는 독은 없습니다.”
“…….”
“제가 남은 것을 전부 긁어모았으니 아마 앞으로 백 년은 이 식물을 구할 수 없을 겁니다.”
“그래. 수고했다.”
“그리고.”
휘지우스는 금고에서 다른 주머니를 꺼내 열었다. 거기에는 심연처럼 새카만 막대가 들어 있었다.
“독을 우리고 남은 유리 나무 찌꺼기입니다. 이 검은 유리 나무가 있다는 건 유리 나무를 독으로 썼다는 의미이니 알고 계십시오. 괜한 의심을 살지 모르니 이건 제가 보관하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시안이 유리 나무를 갈무리한 뒤 주머니를 닫았다. 시가르에 대한 분노로 속이 끓는 그의 목소리는 전에 없이 싸늘했다.
“휘지우스.”
살의가 가득 담긴 목소리에 전율을 느끼며 휘지우스가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는 7년 전부터 오늘이 찾아오기만을 기다렸다.
“말씀하십시오.”
“…….”
시안은 해야 할 말을 찾느라 불러 놓고도 한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
시가르를 향한 분노 말고도 시안을 화나게 하는 것이 더 있었다. 무모하게 움직여 유리 나무를 이만큼이나 모은 휘지우스였다.
유리 나무를 모으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시가르는 확실하게 제지우스를 끝장내고 싶어 했으니 유리 나무를 남김없이 사들였을 것이다.
휘지우스가 접촉했던 자들 대부분이 시가르와도 접촉했던 자들이라는 뜻이었다. 시가르가 휘지우스의 존재를 눈치채는 건 시간문제였다.
“죽을 수도 있었다. 알고 있나?”
놀랍게도 휘지우스는 웃었다.
“그 정도도 모를 줄 아셨습니까. 전하의 대신이기는 하지만 저도 나름대로 길드의 장이라는 이름으로 불립니다.”
“그대가 죽는 건 싫어.”
“그런 말이 저를 얼마나 황홀하게 하는지 모르실 겁니다.”
“농담하는 거 아니야.”
“저도 그렇습니다.”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휘지우스에게 ‘하지 말라’ 말하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지, 시안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시가르에게 복종하며 납작 엎드려 지내는 동안 저를 따르는 자가 목숨을 걸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대신했다는 사실에 속이 상했다. 스스로가 한심했다.
‘더 빨리 결심했어야 하는데.’
짧은 후회를 마치고 마음을 갈무리했다. 후회는 앞으로 나가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감정이었다.
“미안하다. 결심이 늦어 그대에게 이런 일을 하게 만들었어.”
“그것 말고 다른 얘기가 듣고 싶습니다.”
휘지우스의 백색 눈동자가 즐겁다는 듯 빙글빙글 웃음기를 띠었다.
시안이 마주 웃으며 답했다.
“고맙다, 휘지우스.”
“짜릿하군요. 그 말을 기다렸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시가르가 제지우스에게 이것을 먹였다는 증거를 찾는 일뿐이었다.
* * *
레이첼은 응접실에 앉아 케이티가 가져다준 물건을 빤히 바라보았다. 얇고 투명한 유리 막대였다.
‘칼하고 했던 약속 때문에 제인을 도와줬던 건데 설마 이런 걸 얻어낼 줄은. 대체 뭐지? 프람 백작이 죽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재산을 빼앗아 간 놈이 프람 저택에 귀한 걸 선물로 보냈다니.’
정말 귀한 게 맞는 건지도 알 수 없었다.
아름다운 것이 장식품이나 보석인가 싶어서 수도의 큰 장식품 가게와 보석상에 물건을 가져가 보았다. 하지만 몇 곳이나 가게를 돌아도 이것의 정체를 아는 사람이 없었다.
‘향긋한 냄새가 나는 데다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게 정말 신기해. 길드에 의뢰하면 뭔지 알아낼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물건에서 나는 달콤하고 나른한 향기를 깊이 들이마셨다.
때마침 똑똑,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시안이 응접실 안으로 들어왔다.
레이첼이 얼른 주머니에 물건을 집어넣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대공 전하를 뵙습니다. 벌써 훈련이 끝난 모양이네요. 오늘도 그레이엄은 남아서 검술 연습을 하고 있나요?”
시안은 응접실 문고리를 잡은 채 굳은 표정으로 서 있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레이첼이 고개를 갸웃했다.
“대공 전하?”
“보지 마십시오. 냄새도 맡지 마십시오.”
“예?”
설마 이 주머니 안에 든 걸 말하는 건가, 싶어 시선을 내리는데 언제 다가왔는지 시안이 레이첼에게서 주머니를 빼앗았다.
“대체 이걸 어디서 어떻게 손에 넣었습니까.”
“아……. 제인에게서 받았어요. 테오도르가 프람 저택에 선물로 보냈던 물건인데 귀한 거라고 해서 몰래 슬쩍해 두었다고 하더라고요.”
주머니 입구를 열어 안에 든 물건을 살핀 시안이 이를 갈았다.
“이건 유리 나무의 뿌리입니다. 꾸준히 우려서 마시면 잠이 늘고 결국에는 죽음에 이르는 독이죠.”
“도, 독이라고요?”
맙소사.
귀한 거라더니, 아내의 부모님에게 독을 보냈단 말이야?
테오도르가 저지른 짓에 쭈뼛 분노가 치솟았다.
‘나쁜 놈. 벼락 맞아 죽을 놈! 아무리 아내를 사랑하지 않았어도 그렇지. 어떻게, 어떻게 이런 짓을 해……?’
놈을 당장 진창에 처박지 않으면 분이 풀릴 것 같지 않았다. 눈가가 뜨끈해지는가 싶더니 다리에 힘이 풀렸다.
“레이첼 백작!”
시안이 화들짝 놀라며 다가와 휘청이는 레이첼의 허리를 붙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