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Mother Of the Male Lead Who Lives With An Ad**terous Man RAW novel - chapter (64)
불륜남과 사는 남주 엄마가 되었다 (64)화(64/151)
“송구스럽게도, 테오도르는 아직 붙잡지 못했습니다.”
셔츠 소매를 접어 올리던 시안이 우뚝 동작을 멈췄다. 심호흡하듯 천천히 숨을 내쉰 그는 두 손으로 책상을 짚었다. 닉에게 등을 보인 채였다.
“이유가 뭐지? 테오도르의 생김새나 거처, 무엇 하나 빠짐없이 알고 있지 않나. 설마 수도 경비대가 내 명령을 허투루 수행하고 있는 건가?”
곱지 못한 시안의 목소리에 닉이 바짝 긴장했다.
“생각보다 눈치가 빠른 자였습니다. 경비대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걸 깨닫자마자 원래 살던 타운 하우스를 버리고 숨어버렸습니다. 방심했습니다.”
“숨어버렸다고.”
테오도르는 숨고 숨기는 것에 익숙한 자였다.
7년이나 레이첼에게 들키지 않고 내연녀와 바람을 피웠다. 같은 기간 동안 세금 관리국의 감시를 피해 재산을 빼돌렸다.
도와준 자가 있었다고는 해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내가 직접 움직여야 하는 걸까. 지금 기분 같아서는 잡아서 시가르의 앞에 꿇어 앉히지 못할 것 같은데.’
발견하자마자 사지를 잘라버릴 것 같아서.
하지만 그렇다고 레이첼과의 약속을 미룰 수는 없었다. 최대한 빨리 수도에서 놈의 존재를 지워버려야 했다.
“일단 알겠다. 경비대에는 계속 수색을 부탁하지. 흔적을 발견하면 즉시 연락하도록. 내가 직접 나서겠다.”
“면목 없습니다.”
“놈의 숨는 솜씨가 좋아서 그런 것이니 너무 신경 쓰지 마. 시가르는?”
“예상대로 설탕과 소금의 공급을 늘리고 있습니다. 곧 작전에 돌입할 생각인 모양입니다.”
“성급한데. 비싼 값에 설탕과 소금을 사들이면서 무리하고 있으니 최대한 빨리 일을 마무리 짓고 싶은 것도 무리는 아닌가.”
“맞습니다. 덕분에 저는 지켜보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일이 없어져서 문제지만요.”
“할 일이 없다니, 안 그래도 조사를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었는데 잘 됐군.”
잘그락, 맑은 소리에 닉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제지우스 전 황제 폐하의 죽음……. 말씀입니까.”
“유리 나무의 존재를 알고 있었나?”
“예. 혹시 대공 전하께서 물으시면 언제든 답해드릴 수 있어야 하니까요.”
“그렇다면 이야기가 빠르겠군. 시가르가 이것을 구했던 정황을 살펴라. 검은 유리 나무의 흔적도 좋고. 필요한 게 있다면 돈이든 사람이든 부족하지 않게 지원해 주겠다.”
“맡겨 주십시오.”
“너무 위험한 일은 하지 않도록 유의하고. 유능한 보좌관을 잃고 싶지 않아.”
닉이 가볍게 웃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대공 전하께서 인정하신 최고의 보좌관 아닙니까.”
“그래. 믿겠다.”
* * *
“아, 젠장. 어떻게 하지?”
스테판은 저택으로 돌아온 뒤 내내 시안의 집무실 앞을 서성였다.
닉이 집무실로 들어가며 ‘대체 뭘 하고 계시는 거냐’는 표정으로 스테판을 돌아보았고, 집무실에서 나오며 ‘아직도 그러고 계시는 거냐’는 표정으로 다시 한번 돌아보았다.
평소였다면 입술을 삐죽이며 뭘 보냐고 시비를 걸었을 텐데, 오늘은 그럴 수가 없었다.
시안이 제게 화를 내는 건 처음이라 다른 건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문 앞에서 왔다 갔다 하던 스테판은 두 손으로 머리를 헝클어트리며 비명을 질렀다.
“적당히 할걸! 이렇게까지 화낼 줄은 몰랐다고! 장난 좀 치려다가 돌아가시겠네!”
처음에는 레이첼을 찾아가 평범하게 감사 인사를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곧 망할 장난기가 발동했다. 시안이 질투하는 모습이 보고 싶었다. 일부러 커다란 꽃다발을 준비하고 레이첼의 손등에 입을 맞췄다.
단순한 호기심, 짓궂은 장난일 뿐이었다.
‘나나 망할 황제 놈이 뭘 하든 늘 여유롭고 평온하던 녀석이었어. 그런 놈이 사랑에 빠져서 이런저런 모습을 보여주잖아! 이런 유혹을 참을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질투하는 시안의 모습이 재미있을 것 같았다. 유치하게 질투를 한다며 꼬부랑 할아버지가 될 때까지 놀려 먹을 생각이었다.
기대, 흥분, 즐거움 같은 감정들로 범벅이 되어 주체하기가 어려웠다.
설마 이토록 무시무시하게 질투를 하리라고는, 솔직히 예상하지 못했다. 제발 살려달라고 빌고 싶은 심정이었다.
‘딸기 케이크를 사 올까? 아냐. 선물은 안 돼. 뭘 사 오든 그걸로 얻어맞고 말 거야. 역시 정공법인가? 그래, 그 방법밖에 없어. 녀석의 인류애에 기대를 걸자!’
후, 하, 후, 하, 몇 번이나 심호흡을 한 스테판이 집무실 문을 두드렸다. 늘 예고 없이 열고 들어가던 문을 두드리려니 영 어색했다.
“무슨 일이지?”
시안의 목소리가 들리자 손이 떨렸다.
“나, 나야. 스테판. 할 얘기가 있어서. 들어가도 돼?”
“그래.”
망설임 없는 대답이었다.
복잡한 생각을 접어둔 채 후다닥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시안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책상 앞에 앉아 서류를 살피고 있었다. 그는 흘끗 스테판을 바라보더니 다시 서류로 시선을 돌렸다.
“설탕이랑 소금은?”
다짜고짜 묻는 말이 당황스러울 법도 한데 스테판은 기다렸다는 듯 성실하게 대답했다.
“그건 걱정 마. 너 걱정할 일 없게 착실히 준비하고 있으니까. 물량도 충분하고 보관 상태도 아주 좋아. 본격적으로 일 시작되면 보고할게.”
“그래. 이제 가 봐.”
“벌써 가라고?”
“그럼, 안 가?”
“어……. 그게.”
문가에서 머뭇거리는 스테판을 보며 시안이 고개를 갸웃했다.
“죽을죄라도 지은 모양이지?”
“비, 비슷한 짓을 저지른 것 같아서. 정말 미안하다.”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군.”
“그, 레이첼 백작에게 한 짓 말이야. 꽃 선물하고 손등에 입 맞춘 거.”
“그게 뭐가 문제지?”
“……어?”
“도움을 받았으니 감사 인사를 하는 게 당연하고, 정원에 장미가 만발하니 장미를 선물하는 게 당연하고, 존중과 존경을 표현할 땐 손등에 입을 맞추는 게 당연하잖아.”
옅게 웃음기가 감도는 목소리에 소름이 돋았다.
“설사 네가 레이첼 백작에게 사랑을 느꼈대도 난 상관없어. 레이첼 백작은 그럴 만한 사람이니까.”
아니!
절대 그럴 일 없어!
제발 살려주라, 친구야!
스테판의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그는 고개를 내저으며 얼른 시안이 앉은 책상 쪽으로 다가갔다.
“진짜. 이번에는 진짜 내가 잘못했다. 사과할게.”
시안은 대답하지 않았다.
입을 열어도 열지 않아도 무서운 녀석이었다. 스테판은 울고 싶었다.
“일부러 너 있을 때 찾아온 거야. 너 없을 때 레이첼 백작이랑 단둘이 만나는 것 보다 너 있을 때 만나는 게 좋을 것 같았어. 겸사겸사 너 놀려주고 싶기도 했고.”
“알아. 그럴 것 같았어.”
“레이첼 백작이 보고 싶었다는 건 거짓말이야. 너 자극하려고 그랬어.”
“그래?”
“장미, 그거 많아 보여도 사실 100송이 아니었어!”
“알아. 99송이더라.”
그건 또 언제 셌냐?
스테판은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꾹 눌러 담으며 애써 웃었다.
시안이 책상에 팔꿈치를 대더니 천천히 앞으로 몸을 기울였다.
“입술은? 레이첼 백작의 몸에 입술을 댄 이유는 뭐야.”
“야, 몸이라니. 그렇게 말하니까 내가 야한 짓이라도 저지른 거 같잖아. 겨우 손등이었다고.”
“그래서 손등은 몸이 아니다, 이 말인가? 나는 레이첼 백작 손등에 입 맞추고 사흘 동안 한숨도 못 잤어.”
그렇게까지 못 잘 일이냐고!
한 번 더 속마음을 감추고 고개를 숙였다.
“……아니. 몸이지. 손등은 완벽한 신체 일부야. 내가 잘못했어.”
시무룩하게 고개 숙인 스테판은 커다랗고 순한 개처럼 보였다.
“처음에는 그렇게까지 할 생각 없었어. 너 질투하는 거 보려고 일부러 과하게 손등에 입 맞췄던 거야. 인정할게.”
“그런가.”
눈을 감고 후우, 긴 숨을 내쉰 시안은 뭔가를 꿀꺽 넘겨 삼키고서야 눈을 떴다.
그것이 자신을 향한 분노와 질투라는 것을 스테판은 단박에 알아챘다.
“그…… 미안해. 이번 건 내가 심했어. 앞으론 자중할게.”
“뭐 하나만 묻자.”
“뭐든! 뭐든 물어봐. 진짜 성실하게 대답할게.”
“레이첼 백작을 사랑해?”
“아니. 절대. 저어얼대 안 사랑해.”
“왜?”
“왜냐니. 이유가 필요해?”
“당연하지.”
레이첼을 사랑하지 않는 스테판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한 말투였다.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고개까지 기울인 것이 아무래도 정말 이해가 안 되는 모양이었다.
“레이첼 백작은 내가 본 사람 중에 가장 아름답고 똑똑한 여성이었어. 사랑스럽고, 지켜주고 싶고, 안아주고 싶은 사람이라고. 그런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니, 이상하잖아.”
헛웃음이 나왔다.
“너 진짜 중증이구나.”
“중증?”
“그래. 레이첼이 예쁘고 똑똑한 건 인정해. 근데, 뭐,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사랑에 빠질 만큼 매력적인 사람이냐, 하면 그렇진 않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뭐가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레이첼이 그렇게 매력적이면 테오도르인가 하는 놈이 7년이나 바람을 피웠겠어?”
“그건 놈이 쓰레기라서 그런 거잖아. 놈이 레이첼을 바로 봤다면 반하지 않았을 리 없어. 실제로 불륜이 들통난 뒤에 레이첼한테 돌아와서 매달리기도 했고.”
스테판이 한숨을 쉬고 고개를 저었다.
“그래. 그렇다고 치자. 아무튼 나는 아니야. 네가 레이첼 백작을 좋아한다는 거 알면서 욕심내고 싶지 않아. 나는 네 연적이 되고 싶은 생각 추호도 없어.”
“진짜로?”
“야, 사람이 말을 좀 하면 믿어라! 내가 레이첼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데 내 전 재산과 이아콥스 상단의 내 지분과 네가 맡긴 상단의 권리를 다 건다!”
“그 정도면 믿을 만하군.”
그렇게 말하면서도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어쩌라는 거야? 온 세상 남자들이 다 레이첼을 사랑한다고 하면 온 세상 남자를 다 쓱싹 해버릴 놈이, 온 세상 남자가 다 레이첼을 사랑하지 않는 건 이해를 못 한다니!’
스테판이 책상 모서리에 털썩 걸터앉아 머리카락을 쓸어올렸다.
‘진짜 첫사랑 한번 요란하게 한다. 저거 저러다가 레이첼 백작이 다른 남자를 좋아하기라도 하면 어쩌려는 거지? ……설마 제국 멸망?’
생각만으로도 소름이 끼쳤다.
* * *
다시 어전회의가 열리는 날, 귀족들이 모인 대회의장의 분위기는 평소와 달랐다.
시안과 스테판이 함께 회의에 참석한 것이 몇 년만의 일이기도 했고, 시안의 도움으로 원로회 등록 절차를 빠르게 마친 레이첼이 새롭게 참석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사람이 나고 드는 일이 많지 않은 어전회의에서 보기 드문 변화였다.
또 하나 다른 점은 시가르의 기분이 무척 좋아 보인다는 점이었다. 그는 노골적으로 레이첼을 흘끔거리며 미소 지었다.
‘어쩜 저렇게 나 오늘 너한테 못된 짓 할 거야, 라는 표정을 지을 수 있지? 저것도 능력이라니까.’
제국 곳곳에서 올라온 문제를 보고하고 대처 방안을 내리는 긴 회의가 진행되었다.
언제나 그렇듯 시가르는 문제를 보고한 자가 제시한 방안을 적당히 인자한 척, 적당히 근엄한 척 받아들이며 회의를 진행시켰다.
놀랍게도 시안은 지루한 회의 내내 집중력을 흐트러트리지 않았다. 시가르가 왜 그의 흠을 쉽게 찾아내지 못했는지 이해가 됐다.
‘대공 전하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야.’
레이첼의 시선을 느낀 시안이 슬쩍 눈을 굴려 레이첼과 눈을 맞췄다.
티 나지 않게 눈꼬리를 휘어주는 모습에 레이첼의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회의가 마무리될 무렵, 시가르는 기다렸다는 듯 본론을 꺼냈다.
“다들 알고 있겠지만 최근 수도에 변화가 생겼네.”
회의실 구석에 앉은 로도투 백작이 뿌듯한 듯 허리를 곧게 폈다.
레이첼은 시가르가 대회의장에 들어오면서부터 꾸민 일이 곧 시작되려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