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Mother Of the Male Lead Who Lives With An Ad**terous Man RAW novel - chapter (65)
불륜남과 사는 남주 엄마가 되었다 (65)화(65/151)
입꼬리를 삐뚤게 올린 시가르가 말을 이었다.
“지난번 회의에서 말했던 소금과 설탕의 공급, 기억하는지 모르겠군. 요즘 수도의 설탕과 소금 값이 전보다 더 저렴해졌다는 소문이 들려서 말이야. 그렇지, 로도투 백작?”
“예, 황제 폐하! 저희 로도투 백작 가문의 로도투 상단은 수도에 더 많은 소금과 설탕을 더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좋아, 훌륭한 자세야.”
고요한 대회의장에 시가르의 박수 소리가 울렸다.
대놓고 이아콥스 공작 가문을 겨냥한 행보에 귀족들이 긴장했고, 스테판은 말없이 고개를 푹 숙였다.
스테판의 반응이 마음에 드는지 시가르의 목소리가 빨라졌다.
“이 사안에 대한 경들의 생각이 어떤지 궁금한데……. 보아하니 공작은 충격을 받아 뭘 말하기 어려워 보이고. 누가 의견을 말해볼 텐가.”
시가르가 회의장을 쭉 둘러보았다. 귀족들은 혹시 시가르와 눈이 마주칠까 걱정스럽다는 듯 다들 천장이며 서류로 시선을 돌렸다.
황제에게 동의하며 공작 가문이 힘을 잃었다고 말하는 것도, 황제가 잘못한 일이었다며 공작 가문을 지지하는 것도 귀족들에게는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시가르의 눈동자가 레이첼에게 닿았다.
“레이첼 백작.”
레이첼의 좌우에 앉은 귀족들이 화들짝 놀랐으나 레이첼 본인만은 차분했다. 회의장에 들어설 때부터 예상했던 일이었다.
“부르셨습니까, 황제 폐하.”
“로도투 상단이 수도에 소금과 설탕을 공급하기 시작한 일을 어떻게 평가하시오.”
생각할 것도 없는 질문이었다.
레이첼은 여름 햇살 아래 핀 분홍 장미처럼 환하게 미소 지었다.
“수도와 제국에 안정적으로 소금과 설탕을 공급할 수 있는 상단이 늘어난다니, 무척 좋은 소식이네요. 감축드립니다, 황제 폐하. 전부 폐하의 은덕입니다.”
“……뭐?”
구김 없이 맑은 축하에 시가르의 얼굴이 당황으로 얼룩졌다.
이아콥스 상단에 불이익이 될지도 모를 소식이었다. 시가르는 아마도 스테판과 가까이 지내는 레이첼이 어쩔 줄 몰라 하거나 속상해하기를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는 안 되지.’
스테판이 고개 숙인 채 어깨를 부들부들 떨었고, 시안이 조용히 미소 지었다.
시가르가 말을 더듬었다.
“그, 그래. 나의 은덕이지. 아니. 하지만 레이첼 백작은…….”
“이아콥스 상단의 수입은 줄어들겠지만 독점은 언제나 경계해야 할 일이니까요. 큰 부담을 안고 독점 시장에 뛰어든 로도투 상단의 결정을 지지하는 바입니다.”
레이첼의 단정한 대답에 힘을 실어 준 것은 시안이었다.
“레이첼 백작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시안의 짧은 대답으로 시가르의 얼굴은 더욱 엉망이 되었다.
“……네놈들, 한편이 아니었나?”
“한편이요?”
레이첼은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저는 그저 사실을 말씀드렸을 뿐입니다.”
시가르가 도움을 청하듯 스테판과 시안을 돌아보았으나 도와줄 두 사람이 아니었다. 그의 혼란과 궁금증은 결국 회의가 끝날 때까지 해소되지 못했다.
“꼴 좋다! 그 자식 표정 봤어?”
어전회의를 마치고 정원으로 나오자마자 스테판이 한 말이었다.
눈을 동그랗게 뜬 레이첼이 주변을 살폈다.
“공작 각하. 혹시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그런 말씀을.”
“괜찮아. 주어가 없잖아.”
“그…… 그런가요.”
키득키득 웃던 스테판이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진짜 못돼 처먹은 놈이라니까. 왜 남이 곤란해할 질문을 골라서 하지? 남 당황하는 모습 구경하는 게 그렇게 좋은가?”
레이첼이 곁눈질로 시안을 살폈다.
시가르가 저토록 못된 짓을 일삼고 주변 사람들을 면박 주며 기뻐하는 것은 아마 시안 때문일 테다.
굴복시키지 못한 동생 대신 다른 자들을 괴롭히는 거겠지.
눈치 빠르고 머리 좋은 시안이 그걸 모를 리 없었지만 그는 가타부타 반응하지 않고 말없이 걸을 뿐이었다.
중얼중얼 푸념을 늘어놓던 스테판이 레이첼을 돌아보았다. 당장 머리라도 쓰다듬어줄 듯 뿌듯해하는 표정이었다.
“그나저나 레이첼 백작은 똑똑하고 기특하단 말이지. 황제 앞에 내놔도 기 안 죽고 할 말 다 해서 걱정이 없다니까.”
“저는 사실을 말했을 뿐인 걸요.”
내내 말이 없던 시안이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그의 눈빛에 존경이 담겼다.
“저도 스테판과 같은 생각입니다. 훌륭한 경고였어요.”
“아. 알아채셨군요.”
맞다. 레이첼은 단순히 시가르를 당황시키려던 게 아니라 설탕과 소금 공급으로 장난치지 말라는 경고를 하고 싶었던 거였다.
시안이 빙긋 웃었다.
“소금과 설탕 공급을 늘린 일이 ‘좋은 일’이고 ‘폐하의 은덕’ 때문이라는 것을 증명하려면 앞으로도 지금처럼 공급이 안정적이어야 할 테니까요.”
“황제 폐하께서도 제 의도를 눈치채셨을까요?”
시안 대신 스테판이 답했다.
“아까 표정 못 봤어? 못 알아들었다는 데 1골드 건다.”
“……으음. 큰일이네요.”
“황제 폐하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계획을 실행할 겁니다. 혹시 실패하면 로도투 백작 탓을 하면 그만이니까요.”
스테판이 불끈 주먹을 쥐었다.
“올 테면 와라, 이 스테판 이아콥스가 상대해 주마!”
레이첼은 의욕을 불태우는 스테판을 보며 씁쓸하게 웃었다.
‘아무리 폭군이어도 그렇지, 자기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을 곤란하게 하려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걸까. 혹시 문제가 생기면 제국과 수도가 피해를 볼 텐데…….’
이해가 되지 않았다.
* * *
볕이 좋은 이른 가을, 레이첼은 아침부터 그레이엄과 함께 번화가로 나왔다. 마차에서 내려 손을 잡고 거리를 걷는 모자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다.
그레이엄이 레이첼의 손을 잡고 흔들며 폴짝 뛰었다.
“에헤헤, 엄마랑 둘이서 아이스크림 가게에 가다니 꿈만 같아요!”
“가고 싶었지? 그동안 엄마가 신경 못 써줘서 미안해.”
“괜찮아요! 저는 엄마가 언제나 저를 사랑한다는 걸 아는걸요!”
조금씩 상황이 안정되어 가면서 레이첼은 점점 그레이엄과 함께하는 시간을 늘려나갔다.
‘이제 그레이엄이 살인귀가 될 일은 없을 테지만 기왕 함께 살게 된 거 행복하면 더 좋잖아.’
아이가 함께 가고 싶어 했던 장난감 가게, 무기점 등을 차례로 다녀오고 오늘은 드디어 아이스크림 가게에 가기로 한 날이었다.
레이첼이 노력한 만큼 그레이엄은 행복해했다.
처음 만났을 때보다 안정되었고, 전처럼 엄마가 자신을 떠나거나 사랑하지 않을까 봐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혼자 연무장에서 검술을 연습하거나 밤에 화장실을 혼자 가는 등 씩씩한 모습도 더 많이 보여주었다.
덩달아 레이첼 역시 뿌듯하고 행복했다. 이런 게 아이가 주는 행복일까 싶었다.
‘아이를 낳아본 적도 없으면서 이런 기분이라니. 원작 레이첼한테 감사해야겠어.’
아이가 엄마의 손등에 이마를 비볐다.
“기분 좋아요. 헤헤. 신난다.”
“우리 그레이엄이 즐거워하니까 엄마도 기쁘다.”
“앗, 아이스크림 가게다!”
잡아끄는 그레이엄에게 이끌려 걸음을 빨리했다. 몸집은 자그마한데 검을 배워서인지 이끄는 힘이 제법 셌다.
테오도르와 헤어지고 지금의 저택에 살게 된 뒤 그레이엄은 매일매일 맑고 밝고 반짝였다. 원작에서 살인귀였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혹시 원작을 오해한 것이 아닐까 싶었는데 아귀힘을 보니 새삼 아이가 살인귀의 싹이기는 했구나 싶었다.
‘내가 그만큼 원작을 많이 바꿨다는 의미겠지. 정말 다행이야.’
그레이엄은 가게 앞에 붙은 신상 아이스크림 그림을 보며 환호하더니 얼른 가게 문을 열었다.
주문을 마치고 자리에 앉아 아이스크림이 나오기를 기다리는데 갑자기 가게 문이 벌컥 열리더니 커다란 포대를 짊어진 인부들이 안으로 들어왔다.
포대에는 커다랗게 ‘설탕’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가게 주인이 손님들에게 연신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원래 물건은 밤에나 새벽에 들어오는데 오늘은 사정이 생겨 낮에 받게 되었습니다. 즐거운 시간을 방해해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가게 주인은 미안하다며 레이첼과 그레이엄에게 사탕을 나눠주었다.
그레이엄은 기뻐했고, 레이첼은 질문했다.
“갑자기 무슨 일인가요? 보아하니 설탕인 것 같은데요.”
주인은 자랑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렸던 사람처럼 냉큼 대답을 내놓았다.
“그게 말입니다, 사실은 오늘 갑자기 로도투 상단에서 설탕을 헐값에 내놓았거든요.”
“어머, 그런가요?”
로도투 상단.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싶은 생각에 레이첼이 고개를 끄덕였고, 들뜬 주인은 얼굴에 미소를 숨기지 못했다.
“전에 사던 가격보다 반이나 저렴해서 냉큼 대량 구매해오는 길입니다. 이런 기회는 흔치 않으니까요. 다른 가게에서 사들이기 전에 최대한 많이 확보해 둘 생각입니다.”
“좋은 생각이군요. 설탕은 어차피 상하는 재료도 아니니까요.”
“하하, 맞습니다. 소식을 듣고서 아침부터 어찌나 기분이 좋았는지……. 어이쿠, 이보시오! 그걸 거기에 놓으면 어쩌라는 거요! 그럼 저는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레이첼은 인부들 쪽으로 급히 달려가는 가게 주인을 보며 눈을 내리떴다.
입안에 사탕을 넣고 왼쪽 오른쪽으로 굴리던 그레이엄이 고개를 갸웃했다.
“엄마? 왜 갑자기 속상한 얼굴이 됐어요? 저 아저씨 때문이에요? 제가 혼내줄까요?”
“아냐, 그냥. 일어나지 않았으면 했던 일이 일어나서 그래.”
“엄마가 속상하면 나도 속상한데. 이잉. 엄마 속상해하지 말아요.”
레이첼이 입술을 삐죽이는 그레이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입꼬리를 끌어 올렸지만 여전히 기분은 좋지 않았다.
‘분명 경고했는데.’
소금과 설탕은 필수품이었다.
수도와 제국에 소금과 설탕을 독점으로 공급하는 스테판은 책임감을 느꼈고, 높은 수익 대신 눈에 띄지 않게 저렴하고 안정적으로 물건을 공급해왔다.
그런 중요한 물건으로 장난을 치려 하다니.
아무래도 못된 황제의 지갑을 혼쭐내줄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