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Mother Of the Male Lead Who Lives With An Ad**terous Man RAW novel - chapter (66)
불륜남과 사는 남주 엄마가 되었다 (66)화(66/151)
그레이엄을 저택에 데려다준 레이첼은 시안을 찾아갔다. 그는 먼저 온 스테판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대공 전하, 공작 각하를 뵙습니다. 벌써 모여 계셨군요.”
“오셨습니까, 레이첼 백작. 그레이엄과는 즐거운 시간 보내셨는지요.”
“네, 오랜만에 아이와 함께 놀았더니 기분이 무척 좋아요.”
시안이 싱긋 웃었고 마주 앉아 있던 스테판이 손을 들며 건성으로 인사했다.
“똑똑한 레이첼 백작 안녕. 여기 온 걸 보니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아는 모양이네?”
“방금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가게 주인이 설탕을 대량 구매한 것을 보고 오는 길입니다. 로도투 상단이 원래 팔던 가격보다 반이나 저렴한 가격에 설탕을 내놓았대요.”
“어, 맞아. 시가르가 움직이기 시작했어.”
의자에 앉은 레이첼이 탁자에 놓인 서류를 발견했다. 조언이 필요할까 싶어 달려왔는데 다행히 그럴 필요는 없어 보였다.
“<설탕과 소금 공급 중단 계획서>, 역시 그 방법을 쓰시려는 거군요.”
“응. 로도투가 지금처럼 헐값에 소금과 설탕을 파는 동안 이아콥스 상단은 아무것도 팔지 않을 거야.”
스테판이 레이첼과 눈을 맞추며 씩 웃었다.
“레이첼 백작 덕분이야. 고마워.”
“뜬금없이 무슨 말씀이신가요?”
“저택 단기 임대 말이야. 그거 덕분에 당분간 소금이나 설탕 안 팔아도 이아콥스 상단이 돈을 못 벌 일은 없게 됐거든. 당신 예상대로 그거, 엄청 잘 되더라.”
“다행이네요.”
“가격도 비싸고 예약도 안 받는데 사람이 몰려. 특히 예전에 시안한테 하루 빌려줬던 저택이 영애들한테 인기가 아주 많아. 거기 침실에서 한 번 자보려고 다들 난리를…….”
“……스테판.”
“크흠.”
신나게 단기 저택 임대 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던 스테판이 멋쩍게 머리를 긁적였다.
“아무튼 덕분에 소금이랑 설탕 며칠 안 팔아도 문제없게 됐어. 고마워.”
레이첼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스테판은 현명한 장사꾼이었다. 경쟁적으로 가격을 낮추는 치킨 게임이나 출혈 경쟁은 양쪽 모두가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니까. 가능하다면 빨리 빠져나오는 것이 낫다.
“하지만 이아콥스 상단이 판매를 중지하면 로도투 상단에서 슬금슬금 가격을 올리지 않을까요?”
“맞아. 로도투에서 소금과 설탕을 꽤 비싼 값에 샀거든. 거기에 운송비나 운영비도 더해야 하니까 아마 평소의 두 배, 지금의 네 배 정도 가격까지 올리겠지.”
“그렇다면 이아콥스 상단은 그때 다시 소금과 설탕 판매를 시작하겠군요.”
“오오, 역시 레이첼 백작. 정답이야. 그때가 되면 나는 예전 가격 그대로 판매를 시작하려고. 그럼 로도투는 그에 맞춰서 가격을 또 낮춰야겠지?”
“결국 로도투, 그리고 거기에 투자한 황제는 비싼 값에 물건을 사서 싸게 팔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겠네요.”
“황제가 이아콥스 상단에서 파는 소금과 설탕이 다 떨어질 때까지 버틸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절대 그럴 일은 없으니까.”
스테판이 여유롭게 씩 웃었다.
“이쪽은 몇 년쯤 이딴 귀찮은 짓에 어울려도 될 만큼 소금과 설탕을 확보해 놨거든.”
“멋지네요.”
“뭐 정확히는 내가 아니라 시안이 멋진 거지만.”
“대공 전하께서요?”
“어. 시안 생각이었어.”
“어머.”
레이첼의 눈이 동그래졌다.
가만히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던 시안은 레이첼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자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언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요. 보관만 잘 하면 상하는 물건도 아니니 물량을 미리 확보해 놓는 게 손해는 아닐 거라 생각했습니다.”
“선견지명이 대단하시네요.”
“그렇게 평가해 주시니 기쁩니다.”
칭찬이 마음에 드는지 시안의 황금빛 눈동자가 아름답게 반짝였다.
곁에서 지켜보던 스테판이 흠흠, 헛기침하더니 탁자에 널브러진 서류를 주워 모았다.
“아무튼 오늘부터 황제의 지갑이 본격적으로 줄줄 샐 예정이야. 감히 양심과 성실로 장사해온 이아콥스 상단에 덤볐으니 대가를 치러야지. 우리는 기념으로 파티나 하자!”
“좋아. 마차를 준비하지.”
“마차는 갑자기 왜?”
“파티 하자며. 이아콥스 저택으로 가는 거 아니야?”
“여기서 할 건데?”
당당한 스테판의 대답에 시안이 미간을 좁혔다.
“누구 맘대로?”
“내 맘대로. 그리고 레이첼 백작 마음대로. 그렇지?”
갑작스러운 질문에 레이첼이 웃음을 터트렸다.
“저는 어디든 초대해 주시면 기꺼이 참석하겠습니다.”
“거 봐.”
시안이 한숨을 푹 내쉬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오늘 저녁은 내가 대접하지.”
“예에!”
그 후 스테판은 시안에게 값비싼 음식을 차려 내라 성화했고, 시안은 친구의 요구를 무시한 채 레이첼이 좋아하는 요리가 가득한 만찬을 준비했다.
흥겨운 시간이었다.
* * *
며칠 뒤.
시가르는 차가운 눈빛으로 바닥에 엎드려 벌벌 떠는 로도투를 바라보았다.
본래 누군가 제 앞에 엎드려 떠는 것을 좋아하는 시가르였지만 지금은 기쁘지도, 신이 나지도 않았다.
“이아콥스가 꼼수를 썼다고?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말해보라, 로도투 백작.”
로도투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겨우 목소리를 짜냈다.
“저희가 싼 가격에 소금과 설탕을 팔면 판매를 중지했다가 가격을 올리면 다시 원래 가격에 판매를 시작하는 식입니다.”
“그래서?”
“사 온 값에 팔지 못하고 계속 손해를 보고 있습니다…….”
시가르의 시선이 바닥에 널브러진 수십 장의 보고서를 향했다. 어려운 내용과 숫자가 줄줄이 적혀 있는 보고서였지만 요약은 간단했다.
“자루 당 20골드에 사서 겨우 10골드에 팔고 있다는 건가.”
시가르의 이가 으드득, 소름 끼치는 소리를 냈다.
“이아콥스가 저장해 놓은 소금과 설탕은 어느 정도지?”
“지, 지금까지 밝혀진 것만 60만 포대로, 돈으로 환산하면 600만 골드 정도 됩니다.”
600만 골드. 제국의 웬만한 영지를 모두 사들이고도 남을 액수였고, 황제인 시가르에게도 적지 않은 금액이었다.
거기 쌓인 소금과 설탕이 모두 없어지기 전까지 시가르는 계속 손해를 볼 수밖에 없었다. 시장을 독점할 수 없기 때문에.
심지어 임대업을 시작한 스테판은 며칠쯤 소금과 설탕을 팔지 않아도 돈을 버는 데 문제가 없었다.
시가르는 자신을 찾아왔던 스테판을 떠올리며 주먹을 쥐었다.
‘혹시 반역으로 오해하시지 않을까 싶어 미리 보고를 올리러 왔습니다. 사업 시작에 필요한 기사 몇을 추가 고용하고 싶습니다.’
‘당당하군.’
‘당당하니까요.’
이아콥스가 보유한 저택은 작고 별 볼 일 없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게다가 새로 고용하겠다는 기사의 수 역시 저택마다 열 명 내외로 무척 간소했다.
혹시 반란이 아닐까 싶어 한동안 지켜보았지만 스테판은 정말로 주택 임대 사업을 시작했다.
그런 곳을 임대한다고? 누가 거기서 지낸다는 거지?
말도 안 되는 소리라 생각했다. 당연히 사업에 실패하고 고용 기사와 사용인의 월급만 날릴 줄 알았다.
그런데…….
스테판이 첫사랑에 실패하고 실의에 빠져 머물렀던 응접실, 시안이 여행 중에 들러 잠을 잤던 침실, 멜리타의 철 지난 드레스를 보관하는 드레스룸.
돈 좀 있다는 귀족이나 장사꾼들은 그딴 것을 구경하려고 이아콥스에게 어마어마한 돈을 가져다 바쳤다.
‘그딴 놈들에게 놀아나다니! 귀족 나부랭이들이 멍청하다는 건 알았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지난번 시안의 저택에서 열린 연회를 떠올렸다. 그때도 귀족들은 초대장을 구하기 위해 기꺼이 수천 골드를 지불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니 그때 그 일로 시안과 스테판은 어마어마한 돈을 챙겼을 것이다.
남들은 손해를 입으며 여는 연회를 한 번 연 것만으로.
타앙! 시가르의 주먹이 의자 팔걸이를 내리쳤다.
“젠장!”
쾅쾅쾅!
한참이나 팔걸이를 내리치던 시가르는 주먹이 벌게지고서야 동작을 멈췄다. 이런 걸로는 분이 풀리지 않았다.
“여봐라! 밖에 아무도 없느냐! 누가 나와서 이 무능력한 놈을 끌어내 목을 쳐라!”
로도투가 펄쩍 뛰며 애원했다.
“화, 화, 화, 황제 폐하! 제발, 제발 살려주십시오! 남은 소금과 설탕은 최대한 손해를 줄여보겠습니다!”
“손해를 ‘줄여 보겠다’? 손해를 메우고 돈을 벌어와도 모자랄 판에, 목숨을 구걸하며 한다는 말이 겨우 그거냐?”
“아니, 도, 돈을 벌어오겠습니다! 남은 소금과 설탕으로 아주 큰 돈을……!”
시가르는 로도투의 애원을 한마디로 일축했다.
“죽어라.”
“황제 폐하, 폐하! 제발, 제바알!”
로도투가 기사들에게 끌려 나갔고, 시가르의 소금과 설탕 작전은 엄청난 손해를 남기며 마무리되었다.
* * *
소금과 설탕 사건이 마무리된 뒤 귀족 사회는 적막에 휩싸였고, 시가르는 예정되었던 정기 어전회의를 줄줄이 취소하고 황궁에 틀어박혔다.
귀족들은 정당한 이유 없이 충성스러운 동생과 유능한 상단을 공격한 황제를 비난하는 동시에, 황제의 다음 목표가 자신이 될까 봐 두려워했다.
물론 모든 귀족이 어둠침침한 적막 속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아니었다. 레이첼과 시안, 스테판을 비롯한 몇몇 귀족은 오히려 전보다 더 평화로운 시간을 보냈다.
저택 앞에 서 있던 레이첼은 짐 가방을 든 케이티가 밖으로 나오자 반색했다.
“케이티! 기다렸어. 짐은 다 챙긴 거야?”
“네, 어떤 여정에도 끄떡없도록 단단히 준비했습니다. 반드시 전 프람 백작님께서 돌보시던 성과 영지를 산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내서 돌아올게요.”
“왠지 토벌이라도 보내는 기분이네.”
“비슷한 각오로 임할 생각입니다.”
가벼운 농담에 레이첼과 케이티가 모두 웃음을 터트렸다. 두 사람 모두 곧 성과 영지를 되찾을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마차에 짐을 실은 케이티가 레이첼에게 예를 갖췄다.
“그럼 레이첼 백작님, 다녀오겠습니다.”
“잠깐만. 출발하기 전에 이거 받아.”
“이건…….”
레이첼이 프람 가문의 인장이 그려진 주머니를 내밀며 씩 미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