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Mother Of the Male Lead Who Lives With An Ad**terous Man RAW novel - chapter (67)
불륜남과 사는 남주 엄마가 되었다 (67)화(67/151)
묵직한 주머니에서 잘그락, 듣기만 해도 행복해지는 소리가 났다.
“출장비야. 혹시 돈을 내놓으면 성과 영지를 산 사람이 누구인지 알려준다는 자가 있을지도 모르잖아. 그때 써.”
“세상에, 이렇게 큰돈을……. 이 돈을 다 그자에게 줘야 하나요?”
“그럴 필요는 없지. 달라는 대로만 주고 남으면 맛있는 거 사 먹어. 그래도 남는 돈은 케이티가 가지고.”
케이티가 주머니를 챙기며 장난스레 입꼬리를 올렸다.
“정말요? 한 푼도 안 쓰고 제가 다 가지면 어쩌시려고요.”
“그럴 수 있다면 그러라고 주는 돈이야. 이런 출장비 챙기는 재미라도 없으면 어떻게 그 길고 힘든 여정을 버티겠어.”
“백작님…….”
숙식비를 비롯한 여행 경비는 이미 따로 챙겨 주었다. 이 돈까지 더하면 여유롭다 못해 호화로운 출장이 될 것이다.
지난번 출장을 다녀온 뒤 며칠이나 기운 없어 했던 케이티를 배려한 결과였다. 레이첼은 일의 성과와 상관없이 출장 자체만으로도 그녀가 즐거워하길 바랐다.
부디 잘 다녀왔으면 좋겠다, 생각하는데 감동한 표정으로 눈을 반짝이던 케이티가 느닷없이 레이첼을 끌어안았다.
“앗, 케이티!”
“백작님은 정말 좋은 분이에요. 저, 이번에는 꼭 성공해서 돌아올게요!”
“후후. 그래. 기대할게.”
케이티는 마차가 출발한 뒤에도 한참이나 창문 밖으로 팔을 흔들었다.
그 모습이 무척이나 기운 차 보여서 레이첼은 기분이 좋았다.
마차가 보이지 않게 된 뒤에야 저택 안으로 들어온 레이첼은 홀에서 라일러스와 마주쳤다.
“아빠. 기도는 잘 마치셨어요?”
“아, 레이첼. 케이티를 배웅하고 오는 모양이구나.”
“출장비 두둑하게 챙겨주고 오는 길이에요.”
라일러스가 빙긋 미소 지었다.
“너는 한 번도 아빠의 예지력에 의지하는 법이 없구나. 앉은 자리에서 네가 궁금해하는 걸 단박에 알려줄 수도 있는데 말이지.”
“어떻게 그래요. 미래를 보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데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는 꼭 필요하지도 않은 일 때문에 미래를 봐달라고 하면서 아빠를 피곤하게 하고 싶지 않아요.”
“녀석. 이 라일러스 반이 예지력을 쓰다가 피곤해질까 봐 걱정하는 건 제국 전체에 너밖에 없을 거다. 예니스 님도, 티티예니스 님도 그런 걱정은 안 하실걸.”
“아무도 안 하니까 제가 해야죠. 아빠 딸이니까.”
“어허허! 내가 딸 하나는 참 잘 뒀단 말이지.”
타로나 점성술로 미래를 보고 나면 기운이 빠지거나 호되게 아프다는 말을 주워들은 적이 있었다. 간접적으로 미래를 보는 것도 그런데 직접 미래를 보는 라일러스는 오죽할까.
원래 예니스 교의 예지력으로 미래를 보거나 상처를 치료할 때는 돈이나 그에 상응하는 무언가를 준비해야 했다.
복채라고 불렀는데, 성직자가 정신력을 써서 미래를 보는 만큼의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었다.
미래를 구체적으로 봐야 할수록 지불해야 할 복채의 값이 커졌고, 신분이 높은 성직자일수록 더 선명하게 미래를 보았다.
티티예니스가 함부로 미래를 발설하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라일러스는 레이첼이나 그레이엄이 가족이라는 이유로 아무런 복채 없이 미래를 봐주었다.
라일러스가 여신에게 대신 복채를 지불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혹시 수명 같은 걸 지불하고 계시는 건 아니겠지?’
그건 아닐 것이다.
라일러스는 분명 자신이 아무런 탈 없이 오래오래 살 운명이라고 했으니까.
그러고 보니 오늘 따라 라일러스의 얼굴이 어두워 보였다.
레이첼은 라일러스에게 다가서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의 안색을 살폈다.
“괜찮으세요? 아빠, 오늘 따라 피곤해 보여요.”
“그러냐? 어험. 면도를 깜빡해서 그런가.”
“아빠 원래 면도 잘 안 하시잖아요.”
“너무 아빠를 잘 아는 거 아니냐?”
멋쩍은 얼굴로 턱에 난 수염을 쓰다듬던 라일러스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무겁게 입을 열었다.
“사실은…… 고민이 좀 있거든.”
“고민이요? 아빠가?”
“그래. 어떻게 하는 게 옳은 일인지 여러 미래를 살피며 고민하는 중인데 쉽게 답을 내기가 어렵구나.”
“결과를 알면서도 고민해야 한다니. 무척 어려운 문제인가 봐요.”
“그럼. 아주 어려운 문제지.”
라일러스가 주름진 손으로 레이첼의 머리를 토닥여 주었다.
“아빠가 고민하는 만큼 우리 레이첼이 덜 아프고 더 행복해질 테니까.”
“아…….”
그런 고민이라면 레이첼도 해본 적이 있었다. 빙의하고 처음 그레이엄의 엄마가 되었을 때.
같은 고민을 한다는 라일러스가 반갑기도 하고, 자신에게도 그런 사랑과 고민을 쏟아주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이 고맙기도 했다.
레이첼이 맑게 웃었다.
“고마워요, 아빠.”
“당연히 해야 할 일인걸.”
“아빠가 저를 너무 예뻐해서 예니스 님이 질투하시는 건 아니겠죠?”
“에이, 그럴 리가. 그분은 그렇게 소심한 분이 아니시란다. 그렇지 않습니까, 예니스 님?”
갑자기 열린 창문으로 휘잉, 강한 바람이 불어 닥치더니 거칠게 커튼을 흔들었다.
라일러스는 옷자락을 붙잡으며 어이가 없다는 듯 입꼬리를 씰룩였다.
“나 참. 좋다고 고백할 때는 참새 대변을 뿌리시더니 이번에는 왜 또 이러시는 겁니까? 하여튼 갈피를 잡기 힘든 분이라니까.”
“예니스 님은 부끄러움이 많으신가 봐요.”
“흥.”
라일러스가 콧방귀를 뀌었고, 바람은 살랑살랑 홀을 맴돌았다.
화창한 가을이었다.
* * *
“젠장!”
테오도르가 욕을 지껄이며 은행을 나왔다. 몇 푼이라도 대출을 받아볼까 싶어 은행을 찾아갔지만 은행은 신분도, 담보로 잡을 것도 없는 테오도르에게 돈을 빌려주지 않았다.
사람들을 피해 골목으로 들어간 테오도르는 근처를 지나가는 경비병이 있는지 확인하고 눌러 썼던 모자와 입가를 가린 두건을 벗었다.
“하. 이제 어떻게 하면 좋지?”
테오도르에게는 이제 남은 돈이 없었다. 소금 때문이었다.
타운 하우스를 나와 거리를 배회하던 테오도르는 소금과 설탕 가격이 출렁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쌀 때 사두었다가 비쌀 때 팔면 돈을 벌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 테오도르는 있는 돈 없는 돈을 다 끌어모아 소금을 샀다.
그런데 웬걸. 뭘 해보기도 전에 소금값이 전처럼 안정되어버렸다. 게다가 하필 테오도르가 소금을 산 건 로도투 상단이 소금값을 올리던 때였다.
결국 테오도르에게 남은 건 터무니 없이 비싼 값에 산 소금 한 포대뿐이었고, 그나마도 손해를 보고 전부 팔아버려야 했다.
테오도르에게는 당장 빵 사 먹을 돈이 필요했으니까.
“이게 어깨에서 사서 무릎에서 판다는 건가? 젠장. 되는 일이 하나도 없군.”
베렝겔라를 찾는 건 이미 포기한 지 오래였다. 지금은 제 한 몸 건사하기도 벅찼다.
소금 판 돈으로 야금야금 빵을 사 먹었고, 돈이 다 떨어진 뒤에는 빵집에서 빵을 팔고 남은 부스러기와 신전에서 얻은 성수로 끼니를 해결했다.
돈이 떨어지자 마음이 조급해졌다.
어쩔까 고민하다가 다시 제인을 찾아가 보았지만 개들 때문에 노크도 제대로 해보지 못했다. 어쩌다 외출을 할 때는 왜인지 수도 경비대나 길드의 용병이 제인을 호위했다.
레이첼의 집은 더했다. 프람 저택은 단단히 무장한 경비들이 밤낮으로 지켰다. 언젠가 저택으로 숨어들 때 썼던 개구멍도 막혀 있었다.
은행 탁자 위에서 슬쩍 해온 과자 부스러기를 꺼내 입안에 넣고 우물거렸다. 배가 고팠던 탓인지 꽤 맛이 좋았다.
‘보고 싶다……. 레이첼, 아니, 제인. 아니 레이첼. 아무나 보고 싶다.’
자신을 사랑하는 여자들에 둘러싸여 지냈던 시간이 그리웠다.
반짝이는 조명, 포근한 잠자리, 달콤한 음식, 사랑을 속삭이던 악마 제인과 사랑을 구걸하던 레이첼을 동시에 누리던 때를 다시 얻을 수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뭘 하면 좋을까. 어떻게 하면 그때로 돌아갈 수 있지?’
하지만 아무리 고민해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테오도르가 할 수 있는 일은 매일 아이스크림 가게 주변을 서성이면서 레이첼이 혹시 근처를 지나가지 않을까 기대하는 것뿐이었다.
아이스크림 가게 주인이 수상한 몰골로 근처를 어슬렁거리는 자신을 경비대에 신고했다는 사실도 모르고서.
* * *
닉이 시안의 집무실로 황급히 뛰어 들어왔다.
“대공 전하! 테오도르를 찾았습니다!”
책을 읽던 시안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찾았다고? 어디지?”
“번화가 아이스크림 가게 근처입니다. 최근 수상한 자가 근처를 어슬렁거린다며 가게 주인이 경비대에 신고했답니다.”
아이스크림 가게라고?
시안과 레이첼이 아이들을 데리고 가려다가 테오도르를 만난 곳이었고, 며칠 전 레이첼이 그레이엄과 둘이서 다녀온 곳이기도 했다.
레이첼이 놈을 만날 뻔했다는 생각이 들자 바짝 긴장됐다.
“테오도르가 확실한가?”
“예. 나이와 외모가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일단 경비대에는 모르는 척 내버려 두라고 지시했고, 놈은 아직 낌새를 눈치채지 못했는지 주변을 배회하는 중입니다.”
갈 곳 잃은 놈이 하필 아이스크림 가게 주변을 배회하고 있다니. 이유야 불 보듯 뻔했다.
시안은 입술을 깨물었다.
“레이첼 백작을 만나려는 모양이군.”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지금 바로 출발하지. 더 늦기 전에 놈을 처리해야 해.”
“마차를 준비하겠습니다.”
서둘러 겉옷과 검을 챙겨 든 시안이 밖으로 나가려고 문고리를 붙잡는 순간, 누군가 집무실 문을 두드렸다.
시안이 벌컥 문을 열자 문 앞에 서 있던 시종이 화들짝 놀랐다.
“무슨 일이지?”
“헉, 그, 그게. 라일러스 주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급한 볼일이니 당장 대공 전하를 만나고 싶으시다고…….”
“주교님이 찾아오셨다고?”
하필 테오도르를 잡으러 가려는 지금?
시안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무슨 일이 일어나려는 거구나.’
직감한 시안은 서둘러 라일러스가 기다리는 응접실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