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Mother Of the Male Lead Who Lives With An Ad**terous Man RAW novel - chapter (69)
불륜남과 사는 남주 엄마가 되었다 (69)화(69/151)
“내게 왜 여기 있느냐 물었지요. 반역자 테오도르, 그대를 붙잡아 오라는 황제 폐하의 명을 받았습니다. 순순히 붙잡혀 주어 고맙군요.”
“으, 으아아!”
테오도르가 시안에게 붙잡힌 팔을 빼내려 했다. 하지만 며칠째 제대로 먹지 못한 테오도르가 시안을 힘으로 이길 수 있을 리 없었다.
시안이 레이첼을 돌아보았다.
“레이첼 백작은 저택으로 돌아가 계십시오. 저는 이 자를 황제 폐하께 끌고 가야 해서요.”
레이첼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 사람을…… 잘 부탁드립니다.”
“안 돼! 레이첼! 나를 이렇게 그냥 보내겠다고? 왜! 당신은 알잖아! 내가 반란을 꾸민 적이 없다는 거! 다 알면서 왜 이러는 거야!”
레이첼은 아무것도 듣지 못한 사람처럼 무표정하게 서 있을 뿐 대꾸하지 않았다.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애원이 이어졌다.
“바람피운 거, 내가 잘못했어! 미안해! 용서를 빌게! 그러니까 제발 폐하께, 대공 전하께 내가 반란을 꾸민 게 아니었다고 말해줘! 제발!”
테오도르의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얼굴에 묻었던 흙과 먼지가 눈물에 씻겨 내려가며 긴 눈물 자국을 만들었다.
시안은 혹시 마음 약한 레이첼이 놈을 동정하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레이첼은 테오도르가 자신을 붙잡으려고 내민 손을 철썩 내리쳤다. 경멸이 담긴 시선으로 한때 남편이었던 자를 바라보며 짓씹듯 말했다.
“쓰레기 같은 자식.”
“레이, 레이첼. 레이체엘!”
시안이 소리 지르며 발버둥 치는 테오도르를 제압했다. 바닥에 얼굴을 처박은 채 등 뒤에서 손을 포박당한 놈은 꿈틀거리며 울부짖었다.
“네가 어떻게 이럴 수 있어! 대공과 바람이 난 것도 부족해서 대공과 작당하고 날 모함하다니! 저주해! 저주할 거라고! 눈 감는 순간까지 난 두 사람을……!”
뻐억―!
시안이 손날로 테오도르의 목덜미를 쳐 기절시켰다. 순식간에 사방이 고요해졌다.
“시끄러워.”
낮게 중얼거린 시안은 기절한 테오도르를 둘러업고 레이첼에게 슬쩍 눈인사한 뒤 황궁으로 향했다.
* * *
저택으로 돌아온 레이첼은 응접실 창가에 서서 해가 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처리해야 할 일이 많았지만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가슴이 빠르게 뛰었고 손이 떨렸다.
시안에게 잡혀가던 테오도르의 모습이 자꾸 눈앞에 아른거렸다.
‘바람피운 거, 내가 잘못했어! 미안해! 용서를 빌게!’
원작에서는 한 번도 구한 적 없는 용서였고, 레이첼이 죽을 때조차 흘리지 않았던 눈물이었다.
더 빨리, 더 진심이 담긴 사과를 했다면 어땠을까.
전 재산을 빼앗지는 않았겠지. 작위를 빼앗지도 않았겠지. 길바닥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채 생활하게 만들지도 않았겠지. 죄인으로 만들어 황제 앞으로 끌고 가지도 않았겠지.
하지만 의미 없는 가정이었다.
과거로 돌아가 현재를 다시 살게 되어도 놈은 똑같이 행동했을 테니까.
한 번 쓰레기는 영원한 쓰레기다. 쓰레기가 개과천선하여 선량한 사람이 되는 일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이 자식한테 해당하는 얘기는 아니었다.
레이첼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마음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끝났어. 이제 끝난 거야.’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고생했어. 정말 고생 많았어, 레이첼. 내가 정말 해내고 싶었던 일 하나를 해낸 거야.’
남편이 바람피우는 걸 뻔히 알면서 모르는 척 연기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도움받을 곳 없이 홀로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는 일도, 사실은 외로웠다.
‘대공 전하를 만나지 않았다면……. 그 사람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정말 힘들었을 거야. 나중에 다시 만나면 꼭 인사해야지.’
일이 끝난 데서 오는 고양감 때문인지 시안을 떠올렸기 때문인지 흥분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한참이나 노을 지는 창가에 서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 응접실 문을 두드렸다.
똑똑
“레이첼 백작님. 대공 전하께서 방문하셨습니다.”
“벌써?”
가슴이 쿵 떨어지는 것 같았다.
시안을 떠올리고 있는데 시안이 찾아왔다는 사실이 운명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레이첼은 얼른 고개를 저어 생각을 털어냈다.
‘운명이라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시안은 테오도르와 실랑이하느라 더러워진 옷을 갈아입어 깔끔한 모습이었다. 테오도르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에 왠지 마음이 놓였다.
“대공 전하를 뵙습니다. 벌써 황궁에 다녀오신 건가요?”
“테오도르를 황궁 지하 감옥에 가둬두고 서둘러 돌아왔습니다. 백작이 소식을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아서요.”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시안이 레이첼의 곁으로 다가와 섰다.
가슴이 다시 쿵쿵쿵쿵 거칠게 뛰었다.
“노을을 보고 계셨군요.”
“네. 늘 기다리고 바라던 일인데 막상 눈앞에서 테오도르가 잡혀가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진정되지 않아서요. 앉아서 일을 할 수가 없더라고요.”
“그럴 것 같았습니다.”
짙은 걱정 어린 목소리였다.
민망해진 레이첼이 눈을 내리며 웃었다.
언젠가 시안이 염려했던 것처럼 테오도르가 불쌍해서, 시안에게 화가 나서 그런 게 아니라 좋아서, 흥분돼서 그런 거였지만 어쨌든 마음이 평온하지 않은 건 사실이었으니까.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일이 있기까지 여러모로 도움을 주신 것도 정말 감사드립니다. 얼른 추스르고 평소의 레이첼 백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
하늘을 바라보던 시안이 고개를 돌려 레이첼을 바라보았다. 노을로 물든 황금빛 눈동자가 아름답게 반짝였다.
“마음이라는 것이 참 우습습니다. 기운 없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파요. 하지만 이런 모습을 내게 보여주는 건 싫지 않습니다.”
“네? 그게 무슨…….”
어떤 의미인지 묻고 싶었지만 말을 마치지 못했다.
시안의 입술이 스테판의 입술이 닿았던 손등에 닿았기 때문이었다. 손등에 살포시 내린 입술은 너무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은 세기로 피부를 눌렀다.
느릿한 압박에 순간 숨 쉬는 것마저 잊어버렸다.
“그동안 고생 많았습니다. 얼른 테오도르 생각을 떨쳐내고 평소의 레이첼 백작으로 돌아오길 기다리겠습니다.”
다정하게 미소 짓는 시안을 보며 몸을 떨었다.
차마 테오도르 따위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지금 이 순간 당신 생각으로 머릿속이 터질 것 같다고 말하지 못했다.
* * *
테오도르는 황궁 지하 감옥에 갇혔다. 차갑고 음습한 감옥은 그가 평생 상상조차 해보지 못한 곳이었다.
황제의 부름이 있을 때까지 기약 없이 이곳에 갇혀 있어야 한다고 했다.
“내가, 대체 내가 뭘 잘못했길래 이런 취급을 당해야 해! 흑. 크흡. 젠장. 젠장!”
간수가 짤랑짤랑 열쇠 소리를 내며 다가와 무표정하게 테오도르를 들여다보았다. 지레 겁을 먹은 테오도르는 감옥 구석으로 기어가 몸을 웅크렸다.
한참을 훌쩍이다가 정신을 잃듯 잠들었다. 얼마간 시간이 지난 뒤 깨어나서 울다가 다시 잠들었다. 창문이 없어 시간을 알 수가 없었다.
철창 안으로 들어오는 빵과 물을 보며 지금이 낮이구나, 할 뿐이었다.
‘그래도 삼시 세끼 먹을 걸 챙겨줘서 좋구나……. 이게 얼마 만에 먹는 빵이야.’
밑도 끝도 없이 긍정적인 테오도르였다.
그렇게 얼마쯤 시간이 지났을 때 감옥 입구에서 여럿의 발소리가 들렸다.
드디어 황제에게 끌려가는가 싶어 바짝 긴장했으나 테오도르를 찾아온 것은 웬 꼬마였다.
건장한 기사 넷을 거느리고 온 꼬마 녀석은 테오도르를 보더니 활짝 웃었다.
“네가 테오도르구나?”
남은 감옥에 갇혀 있는데 신기한 구경거리를 만난 듯한 반응이라 배알이 꼴렸다.
저런 기사를 거느리고 여기까지 찾아온 걸 보면 보통 꼬마는 아니겠지만, 알면서도 삐죽였다. 어차피 죽을 목숨이니 이러나저러나 죽기밖에 더 하겠나 싶었다.
“구경났냐?”
“우와, 성격 봐. 감옥에 갇혀서 나한테 삐죽하게 구는 사람 처음이야! 아, 맞다. 나 감옥에서 사람 만나는 게 처음이었지.”
“흥. 바보 자식.”
“헤헤. 가끔 듣는 말이야.”
꼬마는 철창 앞에 쪼그려 앉더니 히죽거렸다.
“안녕, 테오도르. 난 아트레이유 아이사라고 해. 만나서 반가워.”
“네 이름 따위는 관심 없…… 아니, 아이사라고?”
“아이사가 뭔지 알아? 너는 바보 아니구나?”
뭔지 모를 리가 있나! 아이사는 제국의 이름이면서 황제의 성이었으니까!
그제야 황태자의 이름이 아트레이유라는 것을 깨달은 테오도르가 황급히 바닥에 엎드렸다.
“화, 화, 화, 황태자 전하를 뵙습니다!”
“어, 안녕. 나 너 되게 보고 싶었는데 이제 만나네.”
“저, 저를 보고 싶어 하셨다고요? 어째서 저를……?”
“네가 내 생일 연회에서 깽판…… 아, 선생이 이런 단어 쓰지 말랬지. 뭐더라? 말썽? 그래, 말썽부렸잖아.”
안 그래도 사색이던 테오도르의 얼굴이 더 하얗게 질렸다.
“죄송합니다! 정말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감히 황태자 전하를 욕보이려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알아. 나를 욕보이려던 게 아니라 생각이 없었던 거잖아. 난 그거 죄라고 생각 안 해. 오히려 고맙다니까. 생일 연회 지루해서 하품 나왔는데 덕분에 빨리 끝났거든.”
“어…….”
감사인지 욕인지 알 수 없는 말이었다.
뭐라 답해야 좋을지 몰라 우물거리는데 아트레이유가 손가락 두 개를 펴 보였다.
“있지, 테오도르. 이거 뭔지 알아?”
슬쩍 고개를 든 테오도르가 아트레이유를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글쎄요. 소, 손가락? 손가락 두 개?”
“아냐. 이리 가까이 와서 잘 봐봐.”
테오도르는 주춤거리며 아트레이유가 쪼그려 앉은 쪽으로 다가갔다. 하지만 거리가 가까워져도 여전히 펼친 손가락 두 개가 보일 뿐이었다.
“승리의 브이? 아니면 가위입니까?”
“둘 다 틀렸어. 더 가까이 와 봐.”
곧 테오도르가 아트레이유의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그는 철창을 붙들고 눈을 가늘게 뜨며 아트레이유의 손가락을 살폈다.
“으음. 황태자 전하, 저는 아무리 봐도 손가락으로 보입니다.”
“그래?”
아트레이유가 눈짓하자 아이의 곁에 서 있던 기사들이 테오도르의 손을 붙잡아 당겼다.
“으악! 갑자기 뭐, 뭘 하시는 겁니까!”
철장에 뺨을 딱 붙인 테오도르가 발버둥 쳤지만 의미 없는 움직임이었다.
아트레이유는 그런 테오도르를 보며 씩 웃었다.
“이거, 사실 무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