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Mother Of the Male Lead Who Lives With An Ad**terous Man RAW novel - chapter (7)
불륜남과 사는 남주 엄마가 되었다 (7)화(7/151)
레이첼은 읽던 책을 정리하고 천천히 홀로 걸어갔다.
베렝겔라는 오만한 얼굴로 저택 입구에 서서 홀을 둘러보고 있었다. 그녀는 레이첼이 계단을 내려오는 모습을 발견하자 부채로 얼굴을 가리며 톡 쏘아붙였다.
“저택 관리가 엉망이군요. 레이첼 백작 부인, 어째서 별로 크지도 않은 저택을 겨우 이런 식으로밖에 관리하지 못하시는 겁니까?”
레이첼은 베렝겔라의 말을 무시하고 공손하게 인사했다. 곧 남이 될 사람이 뭐라고 하든 알 바 아니었다.
“어머님, 오셨어요.”
“백작 부인, 오랜만이군요.”
깍듯한 존댓말 안에 멸시가 숨어 있었고 모든 동작은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우아하고 기품이 넘쳤다.
오로지 보여주기 위해 꾸민 아름다움, 베렝겔라의 특징이었다.
베렝겔라는 체면, 명예, 규율, 작위 따위의 것들을 중요하게 여기는 전형적인 귀족 가문의 어머니였다.
테오도르가 굳이 수도, 황궁에서 일하는 것도 출세 욕심이 큰 베렝겔라 때문이었다. 그녀는 출세하려면 황궁의 높은 분들에게 눈도장을 찍어야 한다고 늘 잔소리를 해댔다.
테오도르는 제인을 마음껏 만날 수 있는 데다가 베렝겔라와 멀어질 수 있다는 이유로 황궁에서 일을 시작했다.
황태자의 생일 연회 준비를 테오도르가 맡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베렝겔라는 아주 기뻐했다. 드디어 엘로사 백작 가문의 앞날이 훤해지겠다며 즐거워했다.
부채 밖으로 보이는 베렝겔라의 눈에 표독스러운 빛이 서렸다.
“백작 부인. 저택 꾸밈이 너무 촌스럽다는 생각 안 드십니까? 수도에서 지내시려면 그에 맞는 격을 갖춰야 하지 않겠습니까. 대체 커튼이며 장식이 어느 시절에 유행하던 것들입니까?”
“제가 부족한 점이 많아 심려 끼쳐 드렸네요.”
“알고는 계시니 다행입니다. 요즘은 남쪽 지방에서 들여온 무겁고 고풍스러운…….”
“마차 여행이 고되지는 않으셨는지요? 자세한 이야기는 천천히 들을 테니 응접실에서 잠시 기다려주시겠어요? 차를 내가겠습니다.”
뭐라 잔소리를 쏟아내려던 베렝겔라가 입을 다물었다.
아닌 게 아니라 마차 여행은 고되었다. 여행 중에 먹은 음식은 맛이 없었으며 오래 앉아 있었던 덕에 허리도 아팠다.
“……좋은 생각이군요. 그럼 저는 응접실에서 잠시 쉬고 있을 테니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준비해 주세요. 수도에서 가장 유행하는 것들로.”
베렝겔라다운 주문이었다.
베렝겔라를 응접실로 들여보내고 사용인에게 음식을 구해오라고 주문하려던 차에 테오도르가 저택으로 돌아왔다. 그는 제 어미에게 혼날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처럼 희게 질린 얼굴이었다.
레이첼은 속으로 쯧 혀를 찼다.
‘서른이 다 되도록 엄마를 무서워하는 놈이라니.’
물론 겉으로는 착한 아내를 연기했다.
“벌써 오셨어요? 얼굴이 많이 안 좋은데, 너무 급하게 오신 것 아닌가요?”
“어, 아냐. 황태자 전하의 생신 연회가 생각보다 성대해져서 좀 힘들었거든. 피곤해서 집에 오려던 참이었는데 마침 어머님이 오셨다니 때가 잘 맞았네.”
테오도르가 황태자의 생일 연회에 힘을 쏟는 건 사실이었다. 황태자는 차기 황제였고 잘 보여서 나쁠 것이 없는 사람이었으니까.
입고 온 겉옷을 벗어 칼에게 건네며 테오도르가 자랑을 쏟아냈다.
“연회가 얼마나 커졌는지 알아? 공식 석상에는 얼굴을 잘 안 비추는 시안 대공과 티티예니스 대성자도 참석하겠다고 알려왔다고!”
“어머 정말요?”
원래는 테오도르가 준비한 연회 따위에 갈 생각이 없었으나 아무래도 생각을 바꿔야 할 모양이었다.
미래의 사돈, 아니 시안이 참석하는 공식 연회에 불참하다니 그건 안 될 말이었다.
“연회가 그렇게나 성대해졌다면 올해는 저도 참석해야겠어요.”
“음, 그렇다면 어쩔 수 없……. 아니, 뭐?”
“왜 그렇게 놀라세요?”
“당신 이런 거 싫어하잖아? 당연히 안 갈 줄 알았는데.”
“맞아요. 사람 많은 연회는 질색이에요.”
“그럼…….”
테오도르는 뭔가 기대하는 사람처럼 눈을 빛냈지만 소용없었다.
“당신이 직접 준비한 연회인데 제가 얼굴이라도 비춰야죠. 다들 짝으로 연회장에 갈 텐데 당신만 짝이 없으면 남들이 뭐라고 하겠어요. 어머님께도 면목 없고요.”
‘어머님’ 얘기에 테오도르가 끙, 소리를 냈다.
“뭐 그렇기야 하겠지만. 너무 무리는 하지 마.”
“네에. 저는 어머님께서 부탁하신 일이 있어서 가봐야 하니까 일 마치고 다시 얘기해요.”
“일? 어머니가 뭘 부탁하셨어?”
“수도에서 유행하는 음식을 드시고 싶으시대요.”
“아! 그런 거라면 내가 잘 알지! 내가 다녀올게!”
그러더니 벗었던 겉옷을 다시 걸치고 황급히 저택 밖으로 뛰쳐나갔다.
저를 낳고 키워준 엄마와 만나는 시간을 늦추고 싶어서 사용인이 해야 할 심부름을 자처하는 모습이 우스웠다.
레이첼은 간단한 간식과 음료를 들고 응접실로 찾아갔다.
“어머님, 수도에서 유행하는 음식은 백작께서 구해오신다고 해요. 시장하실 테니 우선 이것부터 드셔보세요.”
“백작께서 어미가 먹을 음식을 직접 구하러 갔단 말입니까? 안 그래도 바쁘신 분께서 어찌 그런 번거로운 일을.”
말은 그렇게 해도 기분은 퍽 좋은 모양이었다.
“큰 연회를 주도적으로 준비하려면 무척 힘이 드실 거예요. 백작 부인께서 더욱 백작을 살뜰하게 챙겨주세요. 잘 먹고, 잘 쉬도록 말입니다.”
“네에.”
“가문을 지키고 키우는 일이 얼마나 고된지 아십니까? 테오도르 백작께서 태어나시기 전 엘로사는 원래 작고 미력한 가문이었습니다…….”
그러고는 자신과 죽은 전 백작이 어떻게 지금의 엘로사 백작 가문을 만들었는지 자랑을 이었다.
관심 없는 얘기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네, 네, 대답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베렝겔라는 레이첼이 관심 있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평소 얼굴을 뵙기 힘든 대공과 대성자님께서도 이번 황태자 전하의 생신 연회에 참석하신다고 하더군요. 친히 오시는 것을 보면 엘로사 백작께서 준비하는 연회가 마음에 든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 기회에 눈도장을 찍어야 해요.”
베렝겔라는 잠시 말을 멈추고 레이첼을 빤히 보았다.
다음 말은 듣지 않아도 뻔했다. 시안에게 가서 알랑방귀를 잘 뀌어보라거나, 뭐 그런 얘기겠지.
“대공의 딸이 그레이엄 또래라고 하더군요.”
뭐?
레이첼은 결국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
베렝겔라도 표정을 굳혔다.
“그 표정은 뭐죠, 백작 부인.”
“설마 대공과 가까워질 수단으로 그레이엄을 이용할 생각이신가요?”
“안 될 것 있습니까? 대공의 딸과 그레이엄이 친구가 된다면 우리 엘로사 백작가에 좋은 일이니까요.”
돌로라사와 그레이엄을 맺어주는 게 레이첼의 큰 사명이자 목표이기는 했다. 그러나 그건 그레이엄이 ‘엘로사의 성을 버린 뒤에’, 오롯이 ‘그레이엄이 원해서’여야 했다.
아무리 원작에서 사랑했던 사이라도 가문의 이득을 위해서 정략적으로 맺어지는 건 안 됐다.
테오도르라는 아주 좋은 표본이 있었다. 그는 ‘정략결혼’ 했기 때문에 레이첼에게 호감을 느끼지 못했다.
그레이엄을 테오도르처럼 만들 수는 없었다.
레이첼은 베렝겔라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원래의 레이첼은 테오도르가 베렝겔라를 두려워하는 것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그녀를 두려워했다. 한 번도 이런 식으로 눈을 마주친 적이 없었다.
베렝겔라의 눈이 가늘어졌다.
“백작 부인. 오늘 부인의 표정이 참 다채롭군요. 오랜만에 가문의 어른을 만난 덕에 예법을 모두 잊은 겁니까?”
“죄송하지만 어머님, 대공과 가까워질 수단으로 그레이엄을 이용하고 싶지 않습니다.”
“……지금 뭐라고 하셨지요?”
“그레이엄은 아직 네 살입니다. 정치적, 경제적 이익을 위해 이용되기에는 너무 작고 여립니다.”
“아니, 네 살이면 충분합니다. 잊은 모양인데, 백작이 백작 부인과 처음 결혼 이야기를 나눴던 것이 네 살 되던 해의 일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말씀드리는 겁니다. 네 살은, 절대 가문을 위해 무언가를 해도 좋을 나이가 아닙니다.”
“……백작 부인.”
“예. 말씀하세요.”
“지금 내게 무슨 짓을 했는지 알고 있는 겁니까?”
“제 의견을 말씀드렸죠.”
“아무리 시대가 변했다지만 감히, 백작을 낳아 준 어미에게 이런 식이라니요. 백작 가문의 기강이 바닥으로 떨어져 뒹구는 소리가 들리는군요. 설마 백작께도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 겁니까?”
백작 가문의 기강을 떨어트리는 놈이 누군데.
아직 테오도르와 제인의 연애가 대담해지기 전이라 많은 사람이 불륜을 눈치챈 건 아니었다. 하지만 지난번 제인의 방문 이후 저택의 사용인은 대부분 그를 의심했다.
‘이거 비밀인데 너만 알고 있어. 사실 테오도르 엘로사 백작이 말이야. 집에 여자를 데려왔어.’
‘여자? 무슨 여자?’
‘몰라. 화려한 옷을 입기는 했는데 귀족 예법은 전혀 모르는 여자였어.’
‘설마 평민이라고? 백작이 평민을 손님으로 초대했단 말이야?’
‘그러고 보니 나, 전에 백작이 거리에서 웬 여자하고 같이 있는 걸 봤는데…….’
‘아, 그럼 그 소문이 맞나? 백작이 골목에서 어떤 여자랑 키스하는 걸 누가 봤대!’
‘백작이 바람을 피웠단 말이야?’
‘세상에, 그럼 자기랑 바람피운 여자를 저택에 데려와서 부인한테 소개한 거야?’
사용인들 사이에서 번진 소문은 다른 저택 사용인에게 옮겨간다. 아직은 쉬쉬하는 분위기지만 시간문제였다. 사용인들과 시시콜콜 소문 이야기 나누는 걸 좋아하는 귀부인은 어디에나 있는 법이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베렝겔라는 응접실이 울리도록 쩌렁쩌렁 훈계를 이었다.
“감히 내게요. 지금의 백작 가문이 존재하는 게 누구 덕입니까. 전부 내가 지금의 백작을 어린 시절부터 혹독하게 단련시켜온 결과입니다. 알겠어요?”
“그 혹독한 단련이라는 게 참 쓸모없었던 모양이에요.”
“뭐…… 백작 부인! 그게 무슨 망발입니까!”
“어머님은 본인이 아들을 ‘잘’ 키웠다고 생각하세요?”
“당연하지요!”
그런 놈이 몇 년째 저보다 아홉 살이나 어린 평민 여자와 불륜을 저지르겠어요?
사실을 알았을 때 베렝겔라의 표정이 어떻게 일그러질지 궁금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불륜 얘기를 터트릴 시간이 아니었다.
레이첼은 비어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으며 생각에 잠긴 척했다.
“제 의견은 조금 달라요, 어머님.”
“백작 부인. 감히 대체 무슨 소리입니까.”
“잠시 기다려주시겠어요?”
“부인! 대화 중에 이런 식으로 자리를 비우다니요!”
소리치는 베렝겔라를 뒤로하고 서재로 들어간 레이첼은 방금 정리를 마친 따끈따끈한 장부를 가지고 응접실로 돌아왔다.
“자, 읽어보세요.”
“이게 뭡니까?”
“장부예요. 어머님이 잘 키우신 아들, 몇 년째 백작 가문의 재산을 빼돌리면서 탈세하고 있더라고요.”
“뭐, 뭐라고요?”
충격적인 얘기일 테다. 목숨보다 남들의 이목과 명예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베렝겔라에게 아들의 탈세는 수치스러운 일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