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Mother Of the Male Lead Who Lives With An Ad**terous Man RAW novel - chapter (71)
불륜남과 사는 남주 엄마가 되었다 (71)화(71/151)
레이첼은 마주 앉은 시안을 빤히 바라보았다. 답을 찾는 사람처럼 그의 얼굴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
시안이 기다리고 또 기다렸던 순간이었다.
앞으로도 레이첼이 지금처럼 자신만을 바라봐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잠깐의 상상만으로도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얼마간 시간이 지난 뒤 레이첼이 말했다.
“대공 전하께 여쭤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일부러 모르는 척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먼저 아는 체를 하지도 않았다. 시안은 그저 기다렸다.
레이첼의 입술이 떨렸다.
“제 부모님이 관리하던 성과 영지를 대공 전하께서 비싼 값에 사들이셨다고 들었습니다. 사실인가요?”
“맞습니다.”
“언제부터 그곳을 사려고 준비하셨던 건가요? 땅과 성이 필요하다면 훨씬 더 비옥하고 아름다운 곳을 사실 수 있는 분이 왜 하필 그곳을 사셨던 거죠?”
처음 레이첼을 만난 순간부터 답이 정해져 있던 질문이었다.
시안의 대답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레이첼 백작, 당신을 만난 뒤부터였습니다. 당신에게 선물하기 위해서요.”
“제게 선물하기 위해서였다고요?”
“예.”
레이첼이 입을 다물었다.
레이첼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을까.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시안은 자신이 더 자세한 내용을 설명할 차례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백작에게 필요한 것이었으니까요. 백작에게 성과 영지를 선물하며 대가로 제가 원하는 것을 요구할 생각이었습니다.”
“무엇을 요구하실 생각이신가요?”
“글쎄요.”
처음 선물을 준비할 때는 닉과 스테판, 휘지우스처럼 레이첼을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어 곁에서 일하게 할 생각이었다.
아트레이유가 레이첼이 좋아할 만한 선물을 준비해 달라고 부탁했다는 핑계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시안에게 레이첼은 함께 동업하고 싶은 유능한 인재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받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았다. 애정이 큰 만큼 욕망도 적지 않았다.
‘무엇을 달라고 해야 할까. 하룻밤 파티의 에스코트? 잠깐의 입맞춤?’
상상은 끝이 없었고 모든 상상의 끝에서 시안은 행복했다.
‘레이첼 백작이라면 그 이상을 요구해도 받아들일지 몰라. 어쩌면 내 반려, 돌리의 어머니가 되어달라는 부탁 역시 들어줄지도 모르고. 성실한 가짜 부인이 되어주겠지.’
문제는 아직 적당한 것을 고르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어떤 것을 선택해도 행복해진다는 건 무엇을 선택해도 선택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는 말과 같았으니까.
부담스럽지 않고 적당한 요구사항을 고르기 역시 쉽지 않았다.
“아직 정하지 못했습니다. 처음에는 원하는 것이 있었지만 지금은 마음이 바뀌었다는 표현이 좀 더 정확하겠군요.”
“그렇다면…….”
“시간을 주십시오. 조금 더 고민해 보겠습니다.”
다행히 레이첼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요.”
“기다리게 해서 미안합니다.”
“아뇨. 급한 일은 아니니 괜찮습니다. 천천히 고민해 보시고 요구사항을 알려주세요. 필요하시다면 성과 땅을 사느라 치르신 비용을 그대로 드릴 수도 있습니다.”
돈 따위는 시안이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고개를 젓다가 닉이 알려 준 무덤 이야기가 생각났다. 함께 무덤을 보고 오면 레이첼에게 요구하고 싶은 것을 정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괜찮다면 함께 성과 영지를 보러 다녀오시겠습니까?”
“……네?”
예상하지 못한 제안이었는지 레이첼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시안은 저도 모르게 미소 지었다.
“성과 영지를 사놓고 아직 어떤 모습인지 한 번도 확인하지 못했거든요. 겸사겸사 보여드릴 것도 있고요.”
“제게 보여 주실 것이 있다니요?”
“모르고 있는 것 같아서요. 백작의 부모님이 어디에 묻히셨는지.”
“……!”
시안이 레이첼을 위해 성과 땅을 샀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요구할 것이 있다는 말에도 놀라지 않던 레이첼이 처음으로 몸을 들썩였다.
“그, 그걸 찾으셨어요? 어떻게?”
“임시이기는 해도 제가 지금 그 성과 영지의 주인이니까요.”
입술을 깨물었던 레이첼이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갈게요. 저를 그곳으로 데려가 주세요.”
* * *
레이첼과 시안은 바로 다음 날 수도를 떠났다.
이아콥스 가문의 파티가 열리기 전에 다녀오려면 일정이 촉박했다.
일정만큼이나 레이첼의 마음도 급했다.
레이첼은 프람 가문의 마차에 탄 채 창밖을 내다보았다. 앞서 달리는 디카르시냐크 가문의 마차를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부모님의 무덤을 찾았다니.”
테오도르는 장례를 마치고 프람 가문의 흔적을 전부 지워버렸다. 프람 백작 내외의 시신을 어디에 묻어 두었는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레이첼의 일기에 몇 번인가 부모님의 묘를 찾아가고 싶어 하는 이야기가 쓰여 있었다. 하지만 테오도르는 레이첼에게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다.
“나는 찾을 생각도 못 했는데…….”
새삼스레 시안이 고마웠다. 레이첼 때문에 성과 영지를 사들였다는 사실도 놀라웠는데 부모님의 무덤까지 찾아봤다니 믿기지 않았다.
어제의 대화를 떠올리자 가슴이 쿵쿵 뛰었다.
시안은 성과 영지를 넘기는 대가로 요구할 것이 있다고 했지만 협박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대공이라면 더 쉽게 나를 협박할 수 있었어. 당장 내게 검을 들이대거나 그레이엄을 납치하기만 해도 되잖아. 결혼 무효 신청이나 작위 수여를 방해하는 방법도 있었고.”
하지만 시안이 그런 적 있던가.
아니.
단 한 번도.
협박은커녕 시안은 레이첼에게 해가 될 행동을 한 적조차 없었다.
레이첼의 뺨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두 손으로 뺨을 감쌌다.
“왜 이렇게까지 하시는 걸까. 혹시, 설마. 내게 호감이 있어서 그러셨다거나?”
맙소사. 이게 무슨 망상인지.
자신이 내뱉은 말에 어이가 없어서 레이첼은 피식 웃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생각이야. 대공 전하께서? 사교계와 원로회의 정점인 그분이 나를? 레이첼, 너 자의식과잉이구나? 개인적으로나 전략적으로 내 도움이 필요하신 거겠지.”
시안은 좀 더 생각해 보고 요구할 것을 알려주겠다고 했다. 어차피 때가 오면 알게 될 일이니 지금은 고민할 필요 없었다.
레이첼은 라일러스가 준 길쭉한 종이봉투를 두 손으로 꼭 쥐었다.
지금은 돌아가신 부모님의 무덤을 찾고 그 앞에서 명복을 비는 것만 생각하기로 했다.
* * *
목적지에 도착한 레이첼과 시안은 마차에서 내려 거리를 걸었다.
시안의 영지가 된 후 아직 이름을 붙이지 않은 성과 영지는 모든 것이 수도보다 소박했다.
성과 영지를 거닐던 시안이 레이첼에게 옛날 기억이 나느냐고 물었다. 레이첼은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나고 자란 곳을 기억하지 못한다니 이상해 보일 일이었지만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다.
다행히 무덤까지 두 사람을 안내하기로 한 숲 지기가 레이첼을 도왔다.
“지난번 주인이 성과 영지를 크게 바꾸었소. 새 주인은 원래 영지의 주인이었던 프람 백작의 흔적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셨거든.”
“그렇습니까.”
“오랜만에 찾아온 사람이라면 누구든 낯설게 느낄 거요. 거리 이름부터 가게 이름까지 안 바뀐 게 없으니까. 그러니 낙담하지 마시오.”
시안이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레이첼을 돌아보았다.
두 사람은 숲 지기를 따라 숲속으로 들어갔다. 나무 사이에 난 오솔길을 걷다가 어느 순간 길이 없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레이첼의 표정이 굳어졌다.
“……대공 전하. 정말 이 길이 맞는 건가요?”
“아마 그럴 겁니다.”
레이첼이 한숨을 푹 쉬었다.
이렇게 험한 숲을 지난 곳에 무덤을 마련해 두었으니 찾기 어려운 게 당연했다.
‘테오도르 나쁜 자식. 무덤을 굳이 이런 곳에 숨겨 뒀어야 했냐고.’
안으로 걸어 들어갈수록 지형은 험했고 바닥도 미끄러웠다.
시안이 앞으로 나서서 튀어나온 나뭇가지와 수풀을 걷어 주었지만 레이첼에게 숲길은 여전히 한 발짝 내딛기도 힘겨운 곳이었다.
“아.”
눅눅한 낙엽을 밟은 레이첼이 미끄러져 휘청이자 시안이 얼른 팔을 뻗어 레이첼을 붙잡았다.
“괜찮습니까?”
“네에.”
“으음.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네? 아.”
시안의 커다란 손이 레이첼의 손을 꽉 붙잡았다.
레이첼의 뺨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 덕분에 힘들어서 빨개진 것처럼 보여 다행이었다.
미끄러져도 휘청여도 단단하게 버텨주는 손에 의지해 또 한참을 걸었다.
‘숲이 끝날 기미가 안 보여. 이렇게 깊고 거대한 숲을 지나야 갈 수 있는 무덤이라면 차라리 오래 걸리더라도 마차를 타고 돌아오는 게 낫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했을 무렵, 저만치 앞서 걷던 숲 지기가 걸음을 멈췄다. 그가 레이첼과 시안을 돌아보았다.
‘뭐지? 아직 안 끝났는데, 숲…….’
순간 등골이 오싹하며 다리가 뻣뻣하게 굳어졌다. 걸음이 느려졌다.
‘아니지? 설마, 이런 깊은 숲 한가운데 무덤이 있다고?’
시안이 레이첼을 돌아보았다. 그는 레이첼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는 사람 같았다. 레이첼에게 왜 걸음이 느려졌느냐 묻지 않고 그저 제 걸음의 속도를 함께 늦춰 주었다.
커다란 손이 떨리는 레이첼의 손을 더 꽉 붙잡아 주었다.
배려가 짐작에 확신을 불어 넣었다.
가슴이 뜨거워졌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움직여 겨우 숲 지기를 향해 한 발 한 발 다가갔다.
레이첼이 가까워지자 숲 지기가 길을 열어주듯 옆으로 비켜섰다. 시야가 트이고 작은 공터가 나타났다.
수풀과 나무가 울창한 숲속.
서툴게 풀과 낙엽을 걷어치운 자리.
울퉁불퉁하게 쌓인 동그란 흙무덤 두 개와 그 앞에 엉성하게 꽂아 둔 나무토막 두 개가 모습을 드러냈다.
시안이 미간을 찌푸리며 침음했고 레이첼은 주저앉았다.
숲 지기가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가 예전에 이 지역을 다스리던 프람 백작님의 무덤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