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Mother Of the Male Lead Who Lives With An Ad**terous Man RAW novel - chapter (74)
불륜남과 사는 남주 엄마가 되었다 (74)화(74/151)
다음 날 아침, 레이첼은 응접실에서 그레이엄과 라일러스에게 선물을 나눠 주었다. 모두 프람 성에서 일했던 사람들에게 받은 물건이었다.
테오도르는 제임스월드와 라일리가 죽은 뒤 성을 팔아 치우면서 유품을 모두 버리라고 명했다. 덕분에 두 사람이 사용했던 물건 대부분이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제임스월드를 존경했던 몇몇 사용인들은 테오도르 몰래 물건 몇 가지를 빼돌려 개인적으로 보관했다. 테오도르의 명령이 수상하게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레이첼이 돌아오자 무척 반가워했고, 기꺼이 유품을 돌려주었다.
“자, 이건 그레이엄 거고, 이건 아빠 거예요.”
그레이엄이 커다란 상자에서 검을 꺼내 들었다.
“우와아! 검이네요? 가벼워요!”
“엄마의 예전 아빠가 젊었을 때 쓰셨던 검이야. 우리 프람 가족의 보물이지.”
“보물이라고요? 제가 그런 걸 가져도 되나요?”
“물론이지. 엄마는 검을 쓸 줄 모르잖아. 그레이엄이 보관하고 있다가 나중에 정식으로 기사가 되면 쓰렴.”
“좋아요! 와! 연습용 검이 아니라 진짜 보물 검이라니! 엄마 최고예요!”
검은 시안이 인정했을 정도로 보관 상태가 훌륭했다. 대를 이어 썼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검 손잡이 부분에 프람 가문의 인장도 새겨져 있었다.
반짝이는 눈으로 검을 바라보던 그레이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고맙습니다, 엄마. 제가 이걸로 우리 가족을 지킬게요!”
“아하하, 고마워. 기대할게.”
그레이엄은 헤헤 웃으며 레이첼의 얼굴에 뺨을 비비더니 검을 써보고 싶다며 재빨리 연무장으로 달려갔다.
아이가 사라진 뒤 응접실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라일러스는 그레이엄이 사라진 뒤에도 흐리게 미소 지은 채 레이첼이 준 선물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레이첼이 조심스레 물었다.
“아빠, 괜찮으세요? 혹시 제가 괜한 물건을 가져온 걸까요?”
“아니다. 그럴 리가 있겠니. 옛날 생각이 났을 뿐이야.”
라일러스가 받은 선물은 아기를 안은 젊은 제임스월드와 라일러스가 그려진 초상화였다.
개구쟁이 같은 얼굴로 씩 웃는 라일러스와 달리 제임스월드는 다정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제임스월드는 좋은 녀석이었어. 성질머리가 괴팍한 내 유일한 친구였지.”
“그러셨구나.”
“예지력이 처음 생겼을 때 어찌나 놀랐는지 모른다. 나 같은 놈이 신에게 선택받은 성직자가 된다니 말이야. 믿어지지 않았고, 답답한 성직자 생활을 하기 싫어 화도 났어.”
“아빠는 성직자가 되려고 태어나신 분 같았는데 의외네요.”
“다 제임스월드 덕분이란다. ‘예니스 님께서 네게 예지력을 주신 이유가 있을 거야’라고 말해주었거든. 그 이유라는 게 뭔지 알아나 보자는 생각으로 성직자가 되었단다.”
“아빠다워요.”
초상화에서 눈을 뗀 라일러스가 자상하게 레이첼을 바라보았다.
“멋진 선물 고맙구나, 레이첼. 소중하게 간직하마.”
“마음에 들어 하셔서 다행이에요.”
“추모식을 하고 싶다고 했지?”
“네, 맞아요. 부끄러운 말이지만…….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제대로 추모를 해본 적이 없어서요. 아빠가 도와주셨으면 좋겠어요.”
“물론 도와줘야지. 네 마음이 제임스월드와 라일리에게 닿을 수 있게 해달라고 예니스 님께 부탁드려보마.”
“인사가 늦어서 엄마 아빠가 서운해하지는 않으실까요?”
“괜찮다. 제임스월드도 라일리도 서운해하지 않을 거야.”
“두 분이 좋은 사람이셔서요?”
“아니. 두 사람 모두 너를 사랑했으니까.”
짧고 단호한 대답에 레이첼이 입을 다물었다. 넘치는 애정에 가슴이 찡했다.
레이첼의 눈에 물기가 어른거리는 것을 본 라일러스가 얼른 헛기침하며 덧붙였다.
“어흠. 혹시 서운해하더라도 걱정 말렴. 내가 진상처럼 드러누워서 우리 착한 레이첼한테 서운해하지 말라고 떼쓸 테니 말이다.”
라일러스다운 농담에 레이첼이 눈가의 물기를 지우고 맑게 웃었다.
* * *
안락한 황제의 의자에 앉은 시가르는 홀로 생각에 잠겨 있었다.
테오도르가 했던 말 때문이었다.
‘저를 두고 바람을 피운 레이첼을 저주하겠습니다. 제게서 레이첼을 빼앗아 간 대공에게도 저주를 퍼붓겠습니다!’
그 말을 처음 듣던 순간에는 레이첼과 시안을 저주하는 말에 전율이 일어 다른 건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곱씹을수록 다른 것에 신경이 쓰였다.
“레이첼이 시안과 바람을 피웠다?”
시가르는 10년 넘게 눈에 불을 켜고 시안을 지켜보았다. 어떻게든 동생을 시궁창에 처박고 싶어 그의 흠을 찾고 또 찾았다. 하지만 놈은 그 흔한 염문 하나 없었다.
“남색이 아니냐는 소문이 돌 정도라 여자에게는 관심이 없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남편이 있는 여자와 바람을 피우고 있었단 말이지.”
시안의 행적을 적은 보고서를 펼쳤다. 최근 시안이 다녀간 곳을 정리한 기록이었다.
길드, 디카르시냐크 저택, 황궁, 아이스크림 가게, 그리고 프람 저택.
따분하고 지루해 보이던 방문 장소가 그제야 수상했다.
“검술 지도를 한다더니 실은 연애를 하려고 프람 저택에 드나들었던 거군.”
생각해 보니 수상한 게 한둘이 아니었다.
시안은 사사건건 레이첼의 일을 도왔다. 레이첼이 참석했던 유일한 연회는 시안이 연 연회였으며, 며칠 전 시안과 레이첼의 마차가 나란히 수도를 빠져나가기도 했다.
시가르의 입가에 조소가 어렸다.
“고결한 척하더니 뒤에서 더러운 짓을 저지르고 다녔던 거야. 그토록 찾아 헤매던 놈의 약점이 이렇게 가까이 있을 줄은 몰랐어.”
마침 시가르에게는 테오도르라는 써먹기 좋은 패도 있었다.
테오도르가 아트레이유의 생일 연회에서 추한 꼴을 보이고 몰락하던 과정을 떠올렸다. 어쩌면 시안이 같은 꼴을 당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등줄기가 짜릿했다.
“여봐라! 밖에 아무도 없느냐!”
잔뜩 흥이 올라 높아진 목소리에 문밖을 지키던 시종과 기사들이 우르르 달려왔다.
“부르셨습니까, 황제 폐하.”
“당장 지하 감옥에 갇힌 테오도르를 끌고 오고, 황궁으로 전단 제작자를 불러들여라!”
“저, 전단 제작자 말씀입니까?”
시종은 제가 들은 것이 믿기지 않는 듯 되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시가르는 거리에 나도는 신문과 전단을 들여다보지 않는 사람이었으니까.
시가르는 얼떨떨한 표정을 짓는 시종을 보며 흐흐 웃었다. 평소라면 제 명령에 토를 다는 거냐며 시종을 호되게 혼냈을 테지만 지금 그는 아주 기분이 좋았다.
“그래, 전단 제작자. 거리에 대공과 요망한 백작에 대한 염문을 뿌려줄 기특한 자들 말이다!”
* * *
레이첼이 집무실에서 평화롭게 서류 정리를 하고 있던 늦은 오후.
꽉 닫힌 집무실 문밖에서 누군가 우당탕 요란하게 달려오는 소리가 났다.
레이첼은 서류를 내려놓고 집무실 문을 바라보았다.
곧 똑똑똑똑, 빠른 노크 소리가 들리고 벌컥 문이 열렸다.
“레이첼 백작님! 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인데 이렇게 호들갑이야?”
케이티는 헉헉, 거친 숨을 내쉬며 레이첼에게 종이 뭉치를 내밀었다.
“이, 이것 좀 보세요……!”
종이를 받아든 레이첼이 헛웃음을 지었다.
[여자를 돌 보듯 한다던 시안 대공, 그는 사실 더러운 사생활을 감춘 이중적인 사람이었다!목숨을 건 제보자의 충격적인 고백, 시안 대공과 레이첼 백작의 불륜!] [사교계 영애 누구도 해내지 못한 일을 해냈다!
시안 대공을 홀린 레이첼 백작의 은밀한 밤 기술 대 공개!]
케이티가 발을 동동 구르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지금, 거리에 이런 전단들이 엄청나게 날리고 있어요. 심부름 나갔던 시종이 주워온 건데 한두 장이 아니더라고요. 어쩌면 좋죠?”
“그렇겠지. 이런 걸 한두 장만 만들어서 뿌리면 무슨 의미가 있겠어. 나라면 수만 장은 준비했을걸?”
“수만 장이라니,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실 수가 있어요!”
“왜? 사실이잖아.”
“세상에……. 제가 침착한 백작님을 좋아하는 건 사실이지만 어떻게 이럴 때까지 침착하세요? 밤 기술이라잖아요! 백작님의 명예가 실추될 거예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사교계는 허영으로 이뤄진 세계였고 베렝겔라처럼 명예를 목숨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널린 곳이었다.
좋아하고 아끼는 레이첼의 명예에 큰 흠집이 날 만한 전단이 날리고 있다니, 케이티가 목소리를 높이며 허둥대는 것도 이해가 됐다.
하지만 레이첼은 달랐다.
“나는 이런 소문이 날 걸 알고 있었어. 전단이라는 방식을 쓸 줄은 몰랐지만.”
“알고 계셨다고요?”
“응. 기대했다고나 할까.”
“기대라니요?”
케이티는 말도 안 된다는 얼굴이 되었고 레이첼은 생긋 웃었다.
‘황제가 테오도르를 죽이지 않길 바랐으니까. 이런 전단이 돈다는 건 테오도르가 오해를 벗고 살아남았다는 뜻이거든.’
레이첼이 전단을 들여다보며 설명했다.
“이거, 테오도르가 그런 거야. 잡혀가기 직전까지 나와 대공 전하 사이를 의심했으니 황제 폐하의 앞에서 헛소리를 지껄인 게 분명해.”
“황제 폐하께서도 이 전단 내용을 알고 계신다고요?”
“그래. 돈 없는 테오도르가 이토록 많은 전단을 만들었을 리가 없잖아. 테오도르의 얘기를 들은 황제 폐하께서 뿌리신 거야.”
“왜……. 어째서 황제 폐하께서 그런 짓을…….”
“나와 대공 전하를 망가트리고 싶으니까.”
시안은 대부분의 귀족에게 사랑과 존경을 동시에 받는 존재였다. 그런 그에 대한 자극적인 추문을, 이토록 겁도 없이 적극적으로 뿌려댈 사람은 시가르뿐이었다.
더불어 작위 수여식에서의 시험과 어전회의에서 작위를 회수하려고 했던 일 등을 겪으면서 레이첼은 시가르가 자신 역시 탐탁지 않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레이첼이 라일러스의 대녀인 탓에 함부로 손대지 못하다가 테오도르의 얘기를 듣고 신이 나서 전단 작성을 의뢰했을 것이 뻔했다.
케이티는 아연한 표정으로 말을 더듬거렸다.
“말도 안 돼요. 그 황제 폐하께서 반란 혐의를 받은 죄인을 살려두셨다는 것도 말이 안 되고, 그런 놈 말을 듣고 이런 전단을 배포하신다는 것도 말이 안 되고…….”
“왜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
“……네?”
레이첼은 손에 든 전단을 흔들며 방긋 웃었다.
“증거가 여기에 있잖아.”
“이게 증거라고요?”
케이티는 혹시 제가 발견하지 못한 인장이나 표식이 있는지 한참이나 전단을 들여다보았고, 레이첼은 그런 그녀를 즐겁다는 얼굴로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