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Mother Of the Male Lead Who Lives With An Ad**terous Man RAW novel - chapter (78)
불륜남과 사는 남주 엄마가 되었다 (78)화(78/151)
“백작님! 레이첼 백작님! 이것 좀 보세요!”
케이티가 응접실 문을 벌컥 열며 들어오자 차를 마시던 레이첼이 활짝 웃었다.
“안녕, 케이티. 전단 2탄이 나온 거야?”
“2탄이 아니에요!”
“그럼 뭔데?”
“10년 넘게 황태후궁에서 나오지 않았다는 황태후 전하께서 자리에서 일어나셨대요!”
“황태후 전하께서?”
예상하지 못했던 말에 레이첼은 케이티가 내미는 전단을 받아들었다. 테오도르가 발행한 전단보다 훨씬 아름답고 고풍스러운 전단이었다.
[황태후 벨윈더, 황태후궁을 벗어나다]짧은 문장이었지만 레이첼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셨다니, 희소식이네.”
“그렇죠? 정말이지, 황태후 전하께서 일어나신 덕에 어제 그 저급한 전단이 더 나오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바깥 반응은 어때?”
“으음. 그게…….”
“이게 뭐냐며 난리가 났겠지. 나라도 황태후 전하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셨다는 것보다 대공과 백작의 불륜 얘기가 더 궁금할걸.”
“어휴, 그렇게 남 얘기하듯 하지 마시고요. 오늘은 황태후 전하 덕분에 전단이 안 나왔지만 내일은 또 어찌 될지 모르잖아요.”
“괜찮아. 이제 그 전단, 안 돌 테니까.”
“네? 그게 무슨…….”
“황태후 전하께서 본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알린 이유가 뭐겠어. 평소였다면 이런 얘기, 전단으로 알리지도 않았을걸?”
“하긴. 그건 그래요.”
“이건 선전 포고야. 황태후 전하께서 테오도르에게 하신 선전포고.”
사람들이 기대하는 전단이 단 한 장도 거리에 뿌려지지 않았다는 것.
벨윈더가 수도의 전단 시장을 장악해 버렸다는 뜻이었다.
바꿔 말해 테오도르가 전단 제작을 의뢰했다는 사실을 완벽하게 증명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고.
레이첼이 전단을 보며 감탄했다.
“과연 황태후 전하셔. 수도에 전단 제작자가 한두 명도 아니었을 텐데 그걸 어쩜 이렇게 순식간에 장악하셨을까?”
“10년 전에는 사교계에서 ‘군림하는 장미’로 불리셨다고 해요. 저도 실제로 본 건 아니지만 무척 유명하셨다고 하더라고요.”
“군림하는 장미라. 굉장히 위엄 있는 별칭이네. 멋지다.”
어떤 분이실까.
만나보고 싶었다.
그날 오후, 시안이 레이첼을 찾아왔다. 전단 때문이었다.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은 시안은 탁자에 놓인 벨윈더의 전단을 보고 희미하게 웃었다.
“벌써 보셨군요.”
“예. 황태후 전하께서 자리를 털고 일어나셨다니 무척 다행입니다. 10년 동안 걱정이 많으셨겠어요.”
“괜찮습니다. 강한 분이라 언젠가 자리에서 일어나실 줄 알았어요.”
“얘기는 들었습니다. 군림하는 장미라는 별칭으로 불리셨다고요.”
“사교 활동을 무척 좋아하는 분이셨습니다. 재능도 출중하셨고요. 전단 덕분에 자극을 받으셨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예전처럼 사교 활동을 하고 싶어 하시더군요.”
짐작했던 일이라 레이첼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교 활동이라면 곧 열릴 이아콥스 연회에 참석하신다는 뜻인가요?”
“아마 그럴 겁니다. 황태후 전하께서 연회 주최자인 멜리타 이아콥스 부인과 오래 알고 지낸 사이이니까요. 가까운 사이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군요.”
시안이 약간 생각에 잠긴 듯한 레이첼의 표정을 확인하고 덧붙였다.
“혹시 황태후 전하께 전할 말이 있다면 알려주십시오. 어머니께서 저와 레이첼 백작의 명예를 떨어트린 전단 사건으로 무척 언짢아하고 계시니까요. 분명 뭐든 도와주실 겁니다.”
내내 벨윈더를 황태후라 부르던 시안이 그녀를 ‘어머니’라 칭했다. 필요하다면 언제든, 확실히 도움을 주겠다는 신호였다.
레이첼은 그런 시안을 보며 미소 지었다.
“대공 전하께서는 언제나 그렇지만 오늘도 놀랍도록 정확하게 제 마음을 읽어주시네요. 안 그래도 황태후 전하께 여쭤보고 싶은 것이 있었습니다.”
“약혼할 상대의 기분과 의도를 파악하는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머.”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가볍게 연인 흉내를 내는 시안의 말에 레이첼이 웃음을 터트렸다.
예상은 했지만 시안은 정말이지 어색한 곳 하나 없이 훌륭하게 약혼자 역할을 해냈다.
‘하여튼 대단하신 분이라니까.’
기분이 좋아진 레이첼이 탁자 한쪽에 올려두었던 상자를 가져와 열었다. 상자 안에는 구겨진 종이 한 장이 들어 있었다.
시안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게 무엇입니까?”
“대공 전하와 프람 영지에 다녀온 뒤 사람을 시켜서 테오도르가 살던 타운 하우스를 수색했거든요. 거기서 발견했어요. 침대 매트리스 아래에 있었대요.”
[미지급된 급여에 대한 각서나 테오도르 엘로사는 이번 달 말까지 피넛에게 미지급된 급여 전체를 줄 것을 맹세한다. 급여를 주지 않을 시, 나를 경비대에 고발해도 좋다.]
종이를 받아 살피던 시안의 눈이 가늘어졌다.
“피넛이라면……. 밀린 월급을 받지 못해서 도망간 시녀 아닙니까?”
“맞아요. 주겠다고 해놓고는 침대 매트리스 아래 각서를 숨겨 놓고 발뺌 한 거예요. 내가 각서를 썼다고? 그런 적 없는데? 하면서요.”
“정말이지 구제 불능이군요. 그런데 이 종이가 황태후 전하와 무슨 연관이 있는 겁니까?”
레이첼이 싱긋 웃었다.
전단을 만들어 헛소문을 퍼트린 게 테오도르라는 걸 밝힐 시간이었다.
* * *
벨윈더가 전단을 장악한 뒤 거리는 건전한 전단으로 넘쳐났다.
[최고의 의상을 만들어 드립니다. 캐롤 의상실] [오늘의 퀴즈, 이아콥스 상단에서 보유한 코끼리는 모두 몇 마리일까요?] [세르히 멜롱드 백작과 달라리안 마그넷 자작의 결혼을 축하합니다!]사람들은 자극적이지 않은 전단에 흥미를 잃었고, 관심은 자연스럽게 이아콥스 연회로 옮겨갔다. 레이첼과 시안이 함께 참석한다는 정보 때문이었다.
드디어 이아콥스 저택에서 연회가 열리는 날.
이아콥스 저택 앞에 도착한 레이첼은 시안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마차에서 내렸다.
분위기가 어수선한 걸 보니 아직 벨윈더는 도착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감사합니다, 대공 전하.”
“바닥에 경사가 있으니 조심하십시오.”
귀족들은 레이첼과 시안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는 듯 두 사람을 훔쳐보았다.
주변을 살피던 레이첼이 피식 웃었다.
‘예상은 했지만 뒤통수가 따가울 지경이네.’
부채로 얼굴을 반쯤 가린 채 수군거리는 귀부인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어머, 세상에. 두 사람, 드레스 색하고 타이 색을 맞췄네요.”
“정말 그 전단의 내용이 사실인 걸까요? 설마 대공 전하가 불륜이라니.”
“대체 레이첼 백작의 밤 기술이라는 게 뭔지 궁금하네요.”
그때 시안이 레이첼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다정하게 속삭였다. 귀족들은 노골적으로 사랑을 속삭이는 듯한 그의 행동에 놀라 눈을 피했다.
“다들 우리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불편하지는 않으십니까?”
“괜찮아요. 이 정도쯤은 예상했는걸요.”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건 생각한 대로 움직이지 않는 법입니다. 혹시 견디기 힘들고 거북하다면 언제든 제게 의지하십시오. 지켜드리겠습니다.”
“대공 전하도 참.”
레이첼이 가볍게 웃음을 터트렸다.
두 사람의 말을 엿듣는 귀족들을 의식해서인지 오늘의 시안은 한층 더 다정하고 간지러웠다.
“그렇게까지 지켜주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혹시 힘들고 거북하더라도 상관없어요. 이건 제가 견디고 해결해야 할 제 일이니까요.”
“…….”
시안은 속이 상했는지 눈을 조금 내리떴으나 이내 표정을 풀었다.
“백작의 마음이 그렇다면 이제 더 묻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들어갈까요?”
“그러죠.”
길을 비켜주는 사람들 틈을 지나 함께 이아콥스 저택으로 들어섰다.
화려한 조명과 아름다운 음악이 가득한 홀 중앙에서 귀족들과 인사를 나누던 여성, 멜리타 이아콥스가 함께 들어오는 레이첼과 시안을 발견했다.
우아한 걸음으로 다가온 멜리타는 무릎을 굽히며 시안에게 예를 갖췄다.
“대공 전하를 뵙습니다. 제 연회에 대공 전하께서 참석해 주시다니 무한한 영광입니다.”
“멜리타 부인, 그간 격조했습니다. 잘 지내셨습니까?”
“덕분입니다. 대공 전하께서 내주신 투자금 덕에 스테판이 돈을 많이 벌어오거든요.”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시안에게 생긋 미소 지어 보인 멜리타가 이어 레이첼에게 시선을 던졌다. 깔보듯 차갑게 식은 눈빛이었다.
‘나 참. 너무 노골적이신 거 아니냐고요.’
기죽을 레이첼이 아니었다.
“멜리타 이아콥스 부인을 뵙습니다. 레이첼 프람 백작입니다.”
“반갑습니다, 레이첼 백작. 베아트릭스 황후 폐하의 하나뿐인 동생이자 스테판 이아콥스 공작의 모친인 멜리타 이아콥스입니다.”
“연회에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얼요. 그대 같은 사람을 초대해 사교계 적응을 돕는 것이 사교계의 꽃인 내가 할 일 아니겠습니까.”
“부인의 배려에 감사…….”
멜리타는 뭐라 대답하려는 레이첼의 말을 끊고 덧붙였다.
“물론 그대에 대한 더럽고 추잡한 소문을 미리 알았다면 초대장을 보내는 일 따위 하지 않았을 테지만요.”
“…….”
예상했던 종류의 조롱이었다.
곁에 서 있던 시안이 눈을 매섭게 치떴다.
“멜리타 부인. 지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제가 무슨 얘기를 했던가요?”
멜리타는 들고 있던 부채로 입을 가리며 시치미를 뗐다. 근처에 모여 있던 귀족들 모두가 들을 정도로 크게 말했으면서 시치미라니.
어이가 없어진 레이첼이 생긋 웃으며 뭐라 쏘아붙이려던 순간이었다.
“멜리타 이아콥스.”
벨윈더가 홀로 들어서며 멜리타를 불렀다.
황태후의 등장에 멜리타가 화색을 띠며 무릎을 굽혀 예를 갖췄다.
“황태후 전하를 뵙습니다. 황태후 전하께서 여기까지 방문해 주셔서 무척 영광…….”
“인사는 필요 없습니다.”
지나가던 시종의 은쟁반에서 간식을 집어 든 벨윈더는 멜리타의 뺨에 간식을 발라버렸다.